2019년 1월 8일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새롭게 교체되면서 문재인 정부 제2기 청와대가 시작됐다. 대통령 문재인은 초대 비서실장 임종석 후임으로 주중국 대사였던 노영민 전 의원을 임명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에는 3선 강기정 전 의원을 앉혔다. 이른바 핵심 친문(친문재인)의 귀환이다.
각각의 면면을 보기 전에 우선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임종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 단상에 오르며 “이 발표가 저의 마지막 미션”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후 신임 실장·수석들을 차례로 발표한 뒤 후임자인 비서실장 노영민과 미소와 악수 그리고 포옹을 나눴다.
다른 수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떠나는 사람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리는 없었다. 마치 내쫓기듯 전임자들이 갑자기 무대 뒤로 사라지거나 숨죽이듯 뒤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격려와 응원을 주고받았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취임식을 같이 하는 문화가 아쉬웠다. 그래서 반가웠다.
평소 잘 웃는 임종석은 순간 울컥했다. 20개월간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초심에 대해서 꼭 한 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기대 수준만큼 충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0개월 동안 대통령의 초심은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 떠날 때가 되니까 부족했던 기억만 가득합니다.”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문을 여는 사람이 어려운 법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내딛는 건, 심지어 탓할 대상도 없다는 건 악몽 같은 일이다. 촛불혁명으로 시작된 정부의 상징성만큼이나 초대 비서실장으로서 얼마나 부담이 컸을지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다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저 인지도 높은 전직 국회의원이던 임종석이 잠재적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대중의 집중도가 높은 정치인일수록 몸값이 높아진다. 정치적 부담이 곧 대가로 돌아올지, 총선 그리고 대선을 거치면서 증명될 것이다.
# 제2기 청와대의 시작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건 만 2년이 채 안 됐다. 2019년 1월 현재, 21개월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3년 차’를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혹은 보고 싶은지가 반영된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번 청와대 개편 이유는 집권 중반기를 맞아 분위기 쇄신 성격이 가장 컸다. 2020년 총선 출마 희망자를 정리해주는 성격도 크지만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의 비서진에 대한 교체 요구와 그에 따른 소모적인 논란을 줄이기 위한 측면도 있다. 임종석과 조국 민정수석은 야당의 대표적 표적이었다(조국은 유임됐다).
무엇보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핵심 측근들을 배치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은 대통령의 욕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노영민이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원조’ 친문이자 최측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조직운영본부장을 맡았다. 2015년 당대표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는 “주요 정치 현안을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공개 발언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이런 이유로 노영민은 비서실장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하지만 친문 색채가 너무 강한 게 오히려 장애가 됐다. 탕평인사 차원에서 결국 임종석이 선택됐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아프게 하는 대목은 고용을 비롯한 경제지표다. 수년 혹은 수십 년간 누적된 경제 문제와 그에 따른 좋지 않은 경제지표, 실패로 끝난 낙수 효과에 기댄 기존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시도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야당과 보수 언론은 경제 위기론을 쏟아내며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임명 직후 인사차 집무실을 찾은 노영민에게 대통령은 “정책실장뿐 아니라 비서실장도 경제계 인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다행’인 것은 노영민은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던 경제통이라는 점이다. 특히 노동운동을 하다 전기 사업에 뛰어들어 10년 이상 기업인으로 살았다. “사업을 안 해본 사람은 정치를 모른다”며 후배 의원들을 무안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비서실장 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주요 인사들과의 ‘케미’도 중요하다. 국무총리, 여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 빅 3의 역할이 중요하다(과거에는 국정원장까지 빅 4였지만 현 정부에서 국정원장은 국내 정치 개입에서 배제되고 있다). 다행히 이해찬과 노영민은 소통이 잘되는 사이다. 노영민을 맞이한 이해찬의 표정은 밝았다. 국회를 찾은 노영민은 “이해찬 대표와는 특수 관계”라고 화답하며 자신이 초선 의원 때(17대)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해찬을 지지한 인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강기정도 대표적인 ‘원조 친문’ 인사다. 3선을 지낸 강기정은 지난해 정무수석 제의를 받았지만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고사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강기정은 2015년 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았을 당시 정책위의장으로 활동하며 호흡을 맞췄다.
당시 비문(반문재인) 진영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할 때 문재인 편에 섰다. 또 2016년 ‘호남 홀대론’이 불거지면서 광주 지역 의원 대부분이 당시 안철수 의원을 따라 탈당했을 때도 당에 홀로 남아 지켰다. 문재인으로서는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총선 불출마와 지방선거 패배 후 야인으로 지내던 그가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한 첫날, 다짐은 구체적이었다. “3년여간 국회 밖에 있으면서 정책이 날것으로 다니며 국민과 충돌하고, 국민이 이해를 못 하는 것을 봤다”면서 “정책에 민심의 옷을 입히는 것이 정무수석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 3선 의원인 만큼 더불어민주당과의 소통도 원활할 것으로 기대된다.
# 청와대에는 매뉴얼이 있다?
문재인 정부 3년 차. 그렇다면 역대 정부의 3년 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비슷한 경로가 보인다. 가장 상징성이 큰 초대 비서실장 자리에 처음부터 핵심 측근을 임명하진 않았다. 우아하게 표현하면 탕평인사, 쉽게 표현하면 정권 초반 눈치 보기다.
김대중 대통령의 김중권, 노무현 대통령의 문희상, 박근혜 대통령의 허태열 등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아니었다. 이들은 정무형 혹은 실무형으로 분류됐다.(다만 이명박은 특이하게 정치인이 아닌 교수 출신의 류우익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그는 핵심 측근이었다.)
하지만 중반기에 접어들거나 정권의 위기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내 사람’이다. 김대중 에게는 한광옥-박지원, 노무현에게는 문재인, 이명박에게는 임태희, 그리고 박근혜에게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었다. 측근이자 실세로 불렸다.
과거 초대 비서실장의 특징은 정권 초반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오는 잡음을 대통령 대신 흡수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임기가 2대 비서실장보다 짧은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의 허태열은 불과 6개월 만에 청와대를 나왔고, 후임자 김기춘은 1년 6개월 동안 비서실을 지켰다.(김기춘이 최소 2~3년은 한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기 때문일까?)
이명박의 류우익은 측근임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4개월 만에 짐을 싸야 했다. 후임인 정정길은 약 2년 근무했다. 노무현 정부에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했던 문희상 초대실장은 1년간 재임했다.
# 야당, 기다리고 있었다
청와대 개편이 발표되자마자 역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야당의 혹평이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 대변인은 “국정 난맥의 실마리를 찾고, 얼어붙은 경제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며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 친정 체제 공고화를 위한 시대착오적 2기 청와대 인선”이라고 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명단이다. … 기강 해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조국 민정수석은 그대로 둔 채 갑질하는 비서실장과 폭행 전과 정무수석을 앉힌 이유가 무엇이냐”고 비판에 가세했다. 특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국 수석이 유임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현 정권에 다소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평화당도 “국민에게 아무런 기대를 주지 못하는 인사”라고 했다. 정의당은 “신임 참모들은 국민을 위하는 길이 대통령을 위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앞으로 건강한 당청 관계를 만들어 협치가 안착하는 데 일조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청와대의 인사 발표 직후 이재정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쇄신, 경제 성과 도출, 소통 강화 의지”라고 평가했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 여당과 야당은 놀라울 만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마치 배턴 터치라도 하듯 여와 야의 입장이 바뀌면 논평은 거의 똑같이 닮는다. 서로 과거 자신들이 비판 혹은 옹호했던 논평을 통째로 주고받으며 날짜와 주어만 바꾸는 느낌이다. 실제 집권 세력이 정치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했지만 무조건 비난만 하는 정치의 후진성도 한몫한다.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문재인은 취임 후 정확히 20개월이 되는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섰다. 야당이 지적하는 소통 강화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직접 진행 마이크를 쥐었다. 직접 기자들을 지명하고 현장에서 질의와 응답을 이어갔다. 질문 내용 유출은 물론 순서까지 정해져 있던 지난 정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역시 ‘경제’였다. ‘혁신’과 ‘성장’이라는 단어도 수십 차례 언급됐다. 지난해에 한반도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다.
대통령은 “국가경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국민이 여전히 많다”면서 “올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야말로 ‘사람 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며 “중소기업·대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소상공·자영업이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 기조 유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1기 청와대가 기틀을 마련하는 숙제를 해야 했다면 2기는 성과를 내야 하는 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필요한 일임에도 국민들의 인내심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딜레마다. 야권에서는 기조 변화가 없다는 것을 비판한다. 지지층에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 상황’을 우려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잇달아 만나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그 딜레마를 돌파하는 게 정부의 실력이다.
정권이 힘을 발휘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4년 차부터는 레임덕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년 이맘때쯤 어떤 평가가 기다리고 있을까. 1년 뒤 바로 이 지면에서 괜찮은 얘기가 나오길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글_이승원(정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