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 이게 최선일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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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골목식당', 이게 최선일까?

백종원과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에게 권하는 솔루션.

ESQUIRE BY ESQUIRE 2019.01.24

근래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은 어딘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선량한 주인공과 친구들의 안녕을 위협하는 빌런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최선을 다해 빌런을 극복해낸다. 그렇게 한바탕 혈투가 지나가고 평화가 올 무렵이면 능력치가 더 강한 빌런이 등장해 또다시 주인공과 친구들의 안녕을 위협한다…. 해방촌 원테이블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집이 끝판왕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기껏해야 천진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오공 무리가 프리저를 무찌르고 나니 인조인간들과 셀이 지구로 내려왔듯, 포방터 홍탁집과의 뒷목 잡는 혈투가 끝나고 한숨 돌리려 하니 이제 청파동 피자집 사장이 등장해 떡 진 면을 국수랍시고 내놓고 앉아 있다. 땅덩이도 작은 나라에 대체 빌런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정치 성향이나 젠더, 세대, 성적 지향, 종교 따위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던 SNS의 수많은 사람들도 목요일 0시쯤 되면 빌런을 향한 비난으로 하나가 된다.

혹시 SBS가 ‘골목 빌런’이 등장할 때마다 솟구치는 시청률을 노리고 빌런들을 더 많이 보여주는 건 아닐까? 백종원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와 같은 의혹을 부정했다. “내가 못하는 식당엔 그만큼 오래 머무른다. 문제없는 식당은 나도 있기 뻘쭘하다. (포방터) 돈가스집처럼 ‘메뉴를 줄이자’ 정도의 간단한 조언만 해주면 끝난다. 그러니까 촬영 분량이 별로 없다. 그런데 문제 많은 식당에선 보이는 모든 게 다 문제다.” 2019년 1월 인터넷 언론 <위키트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백종원은 분량 문제에 대해 이와 같이 해명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방송을 통해 다른 외식업 종사자들 역시 이런 케이스들에 대해 생각하고 훈련해볼 기회가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서열 표 하단에 있는 극적인 케이스들이 고맙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뛰어드는데, 매주 사람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골목 빌런’들만큼 그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람들도 드물다는 얘기다.

그래서 백종원은 개별 점주들의 역량 강화를 강조한다. 메뉴의 마진율을 조정해주고,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조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가격 경쟁력을 위해 어떤 메뉴를 추가하고 어떤 메뉴를 빼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개인적으로 점주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진심을 담아 솔루션을 제공하는 백종원의 선의는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골목식당>이 표방하는 바가 식당 한두 개를 살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죽어가는 거리를 절대 망하지 않는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지역 경제 심폐 소생 프로젝트라는 걸 떠올리면, 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지 의구심이 든다. 정말 백종원과 제작진의 선의 어린 솔루션을 듣기만 하면 상권이 살아나고 외식업의 파이가 늘어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대답은 ‘아니요’다. 선의로 가득한 <골목식당>의 솔루션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구조적 요인인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격과 건물주들의 약탈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골목식당> 첫 방송을 앞둔 2018년 1월, 백종원과 <골목식당> 제작진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건물주만 좋은 일은 안 하려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옛날엔 잘나갔는데 상권이 죽어 있는 데가 있다. 대부분 아직도 임대료가 높아서 안된다. 그런데 살려봐야 건물주만 좋은 일이라 저는 안 된다고 했다. 살려봐야 건물주 좋은 일만 시킨다. 신사동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대표적 케이스다. 여전히 임대료는 장난 아니게 높고 권리금만 제로베이스인 곳들이다. 살려놓으면 똑같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라는 백종원의 말은, 그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협하는 주된 요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김준수 PD의 말처럼 ‘아직 아기자기하게 새로운 자영업자들이 있는 상권, 가능성의 여지가 보이는 골목’을 찾아서 솔루션을 주면 괜찮아질까? 2017년 4월 소상공인들의 현실에 대해 취재한 <경향신문>의 기사 “할 말 있습니다 - ①소상공인. ‘임대료 상승·프랜차이즈 입점 막아 삶터 보호해달라’”는 이렇게 시작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창작촌 인근에서 10년째 천막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명훈 씨(42)는 지난 1월 가게를 옮겼다. 원래 가게가 있던 자리에서 문래동 변두리 방향으로 70m 떨어진 곳이다. 김씨는 “집주인이 2년 계약이 끝나자 월 임대료 32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다”며 “지난 3년간 임대료가 동결됐는데 상권이 활성화되니 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철공소로 가득했던 문래동은 젊은 예술가들이 싼 월세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와 카페와 아틀리에를 차리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상권도 없던 동네였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2016년 4/4분기 m2당 1만원대였던 문래동 문래창작촌 인근 상가 임대료가 2017년 3/4분기가 되면서 m2당 2만1000~2만3000원으로 증가했다. 한 해가 채 지나기 전에 두 배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개별 점주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구조적 대책 없이는 그 과실이 건물주들의 입으로 돌아가고 상인들은 자꾸만 변두리로 밀려난다. 개별 점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노하우와 솔루션은 개별 점포를 잠시 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 망하지 않는 거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심폐 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여기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개입하면 사태는 더 험악해진다. 물론 백종원은 프랜차이즈가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협한다는 말을 부정한다. 2018년 11월 <시사IN>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프랜차이즈의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가맹점주는 한 달에 얼마씩 가맹비를 내야 한다. 계속 본사에서 물건을 사서 써야 하고, 인테리어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따져보면 재료비가 더 싸지도 않다. 메뉴도 가격도 마음대로 못 정한다. 경쟁력이 있으려면 마진율이 더 박하겠지. 그래도 남으니까 하는 거잖나. (자영업자가) 거기랑 비교해서도 못 이기는 게 프랜차이즈의 잘못이냐고.”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무서운 건 개별 가맹점 때문이 아니다. 홍대입구 사거리에서 25년 넘게 영업해온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은, 2012년 임대료를 무리하게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에 떠밀려 폐점했다.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롯데의 프랜차이즈 커피숍 엔제리너스 커피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목이 좋은 자리에 시그너처 매장을 내기 위해 비싼 세를 지불할 능력이 되고, 필요하다면 건물을 통으로 장기 임대하는 출혈도 감수할 수 있다. 리치몬드과자점 측이 건물주에게 들었다는 말만큼 본질을 제대로 짚은 말도 없다. “롯데만큼 임대료를 줄 수 있느냐. 당신은 그 돈 주고 못 산다.”

손님이 몰리면 세가 오르고, 선주민들은 인상된 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난다. 입소문을 많이 탄 가게들이 인상된 세를 힘겹게 감당해가며 선주민의 자리를 대체하는 1차 젠트리피케이션이 끝날 무렵, 건물주는 굳이 권리금을 물어줄 필요가 없는 예외 조항인 재건축을 꺼내어 그들마저 밀어내고 대형 프랜차이즈를 유치한다. 이게 2차 젠트리피케이션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거주지였던 용산 경리단길이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힙한 골목이 되었다가 다시 10년도 채 안 되어 건물주들의 약탈적 세 인상과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출점으로 시시해지기 시작한 과정이 이와 같았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골목식당>이 골목 상권을 살리고 있다는 듯한 시그널을 꾸준히 보내고, 시청자들은 이제 영세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할 때조차 “<골목식당> 보니 기본이 안 된 집이 너무 많던데 그 탓 아니냐”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골목 빌런들의 존재는 이 모든 게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식의 프로파간다에 힘을 실어주고, 영세 외식업자들이 처한 구조적 위기를 덮는다.

‘우리보고 대체 어쩌라고’ 싶을 것이다. <골목식당> 제작진이 개별 점주들에게 건물을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건물주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을 할 수도 없는데, 일개 프로그램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개별 점포 단위로 솔루션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골목 단위의 솔루션을 설계해주는 건 어떨까?

비슷한 업종으로 과잉 경쟁 중인 점포들을 설득해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다변화를 도와주고, 여러 점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자재는 공동 구매를 유도하고, 골목 내 점포들에서 함께 적립하고 사용하는 포인트나 쿠폰을 도입해 개별 점포에 쏠린 손님들을 골목 전체로 유도하는 방법을 짜주는 ‘골목 단위’ 솔루션 말이다. 흩어져 있을 때는 한 집 한 집 세를 올려 쫓아내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이들이 이익으로 연대한 공동체가 되면 그 일이 쉽지 않다. 건물주들이 담합하여 월세를 일제히 인상하는 시대에, 혼자 살아남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점주들을 묶어주는 일은 많은 부분을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 또한 시도해볼 만하다. 백종원과 <골목식당> 제작진이 골목에 솔루션을 제공하면, 지자체가 상생 협약을 주선하는 행정적 도움을 줌으로써 솔루션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다. 성동구는 성수동에 사람들이 몰리자 2017년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의 상생 협약을 주선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임차인들은 급격한 임대료 인상을 피할 수 있었고, 소위 힙하다고 입소문 났던 상권 중 여전히 그 활기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상권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처음 문래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이들이 임대료 인상에 밀려나는 걸 목격한 영등포구도 작년 여름 문래동 일대 상가를 일일이 방문해 103건의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일개 프로그램이 어떻게 지자체에 이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느냐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인천 중구청이 <골목식당>을 유치하기 위해 협찬금 2억원을 지불한 전례도 보았다. <골목식당>이 빌런 장사로 시청률을 추수한다는 비난을 피하고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다면, 이제 그들도 다음 걸음을 떼어야 하지 않겠나? /글_이승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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