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미국 록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50년 이상 미국인의 삶을 노래하며 그들의 심장을 깊이 울렸다. 그는 라이브 원맨쇼가 고스란히 담긴 넷플릭스 스페셜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자신의 가장 용감했던 여정이 영혼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 인터뷰,뮤지션,아티스트,브루스 스프링스틴

SONGS OF HIMSELF우리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라이브 원맨쇼 ‘스프링스틴 온 브로드웨이(Springsteen on Broadway)’ 공연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뉴욕에 있는 월터 커(Walter Kerr) 극장의 백스테이지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브루스입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이어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았고 둘 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키가 178cm인 그는 생각한 것보다 더 컸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조용한 성격인 그는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이며 자기 비하적인 경향도 있다. 자주 미소를 짓고 진저 에일을 즐겨 마신다. 무엇보다 30년 이상 정신분석을 받아온 남자의 솔직하고 공개적인 자세로 이야기한다. 그는 정신분석이 자신의 삶을 구원했다고 생각한다.스프링스틴은 그날 69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있었다. 그가 지난 10년간 겪은 여정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60대에 접어들면서 심한 우울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사력을 다했고 이제 의기양양하게 70대를 맞이한다. 파워풀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이 브로드웨이 쇼의 성공 덕분이다.이 쇼는 일반적인 콘서트가 아니라 방대한 드라마틱 모놀로그로 그의 노래가 중간중간 삽입된다. 전석이 매진된 이 쇼를 시작한 지 1년이 흘렀고 지난 12월 15일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날 밤, 넷플릭스를 통해 이 쇼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됐다.DNA, 스프링스틴이 무대에 올랐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언제나 과학보다는 느낌을 중시하는 남자에게 예상 밖의 선택이자 낭만적이지도, 시적이지도 않은 단어다.그러나 DNA는 ‘스프링스틴 온 브로드웨이’ 쇼의 가장 중요한 갈등이면서, 여러 의미에서 스프링스틴의 무자비한 적수, 즉 그가 맞서 싸워야 하는 공동 주연이기도 하다. 피와 가족을 통해 운명적으로 존재하는 자아 대 의지를 발휘해 새로 태어난 자아. 스프링스틴이 전에 밝혔듯 그는 오래도록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와 씨름하며 평생을 보냈다. 나의 DNA로 나를 국한시킬 것인가, 아니면 바로 내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것인가?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일깨워준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기 창조의 힘을 믿으면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된 순간 말이다. 1956년 어느 일요일 밤, 곧 7세가 되는 스프링스틴은 뉴저지주 프리홀드(Freehold)에 있는 작은 주택의 거실에서 엄마 아델(Adele)과 함께 TV 앞에 앉아 있었다.이날은 바로 그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본 날이다. 인생의 비전을 얻은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유년기였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죽은 별, 블랙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뿐입니다”라고 스프링스틴은 엘비스가 그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설명했다.“DNA는 브로드웨이 쇼 주제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스스로를 아무 곳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주적 행위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쇼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나는 어른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성장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과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목적이 필요하고, 자의식이 필요하고, 성인이 되려는 욕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섭고 위험한 삶의 모든 요소에 기꺼이 맞서려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자주적 행위자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의 과거와 이력을 직시해야 합니다. 무대 위에서 낭독하는 ‘Song of Myself’는 내 쇼가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입니다.”그러나 이 쇼는 다른 갈등에 관해서도 다룬다. 고독 대 사랑(사랑을 받는 능력 및 주는 능력), 죽음의 힘 대 생명력, 무엇보다도 아버지 대 아들. 그렇다,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다. 또한 그의 아버지에 관한 내용도 있다. 스프링스틴은 자신을 창조했지만 여러모로 거의 파괴시킨 남자와 함께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2016년에 발간한 스프링스틴의 자서전 에는 그가 어렸을 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여겼는지 묘사한 부분이 있다.“나는 성격이 온화하고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고 몽상적인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이런 면이 겉으로 드러나 아버지를 화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자질을 혐오했어요.” 스프링스틴은 자신이 아버지처럼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엄마와 비슷한 성격이라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낀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나의 어머니는 친절하고 인정 많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매우 사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정신 세계와 일치합니다.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나약함으로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본질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아주 무시했습니다. 그 상황이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평생토록 자세히 살피고 탐구하는 여행길에 오르게 만들었습니다.”아버지인 더그 스프링스틴(Doug Springsteen)은 살집이 있는 다부진 체격의 남자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몸무게 105킬로그램의 시어스 백화점 바지를 입은’ 그리고 한때는 ‘사탄의 얼굴’을 한 남자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카펫 공장에서 바닥 청소 담당부터 버스 운전사까지 다양한 생산직 분야에 종사했으나 주된 직업은 집 밖이 아닌 집 안에 있었다. 그는 가정을 장악하고 자신의 작은 왕국을 침묵과 협박으로 다스렸다. 그의 왕좌는 다름 아닌 식탁 의자였다.매일 밤 어두운 주방의 식탁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침묵의 휴화산이었다. 매일 밤 벌어지는 한 노인의 주방 철야 농성, 분노의 붉은 연기로 뒤덮인 정적의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공포와 우울의 바다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 바다가 너무나도 광활하여 나는 제대로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라고 스프링스틴은 썼다.그에게 유년 시절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집 주방이었어요. 그곳에 들어섰을 때, 매우 강력하고 위협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주방은 위험이 가득 도사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어둡고 조용했으며 공기는 답답했습니다. 조용히 어둠 속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그리고 흥미롭게도 소년을 둘러싼 무거운 침묵을 깨어버린 건 다름아닌 로큰롤이었다. 로큰롤은 기쁨을 주는 소음이다. “10대가 되었을 때,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도 제 자신이 텅 빈 그릇 같았어요. 음악으로 차츰 빈 그릇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세상과 친구들에게 미치는 제 개인의 영향력을 인식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주방을 위한 음악도 만들었어요. 앨범을 들어보세요. 엄마 몫에 해당하는 공간을 위해서 만든 곡인데 상당히 즐겁고 밝은 장소로 표현했어요.” 스프링스틴은 아버지의 침묵과 멀게만 느껴지는 마음의 거리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아버지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프링스틴이 로큰롤이라는 정체성을 택하기로 결정했을 때 무엇을 했는가? 그는 아버지의 작업복과 페르소나를 훔쳤다. “당신이 물려받은 모든 것을 사용해 하나의 인격을 완성해야 하니까요.”이 쇼에서 가장 가공되지 않은 부분 중 하나는 스프링스틴이 자신의 여섯 번째 앨범 에 수록된 ‘My Father’s House’를 노래할 때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소년이 되어 노래한다.“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을 주지 않은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모방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그래서 그 때가 왔을 때,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택했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뭔가 성스러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리가 남자다움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뿐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영웅이었고 동시에 막강한 적이었습니다.”스프링스틴의 첫 번째 신경쇠약은 32세에 찾아왔다. 앨범을 내놓은 무렵이었다. 1982년 어느 늦여름 밤, 그는 친구 맷 델리아와 1969년식 포드 XL을 몰고 뉴저지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갔다. 그들이 텍사스에서 우연히 방문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 밴드가 연주하고 남녀가 별빛 아래에서 서로 껴안고 느릿느릿 행복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차 거리만큼 떨어져 있던 스프링스틴은 축제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행복을 조용히 응시했다. 바로 그때 그 안에 있는 무엇인가에 균열이 갔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자신이 왜 그날 밤 혼돈의 심연으로 떨어졌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그렇게 찾아온 신경쇠약으로 그는 정신분석 상담을 받게 되었다. 신경쇠약은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스프링스틴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마 같은 존재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는 쇼를 통해 우리가 위험을 각오하고 내면의 어두움, 악마를 못 본 척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악마에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한다.이 쇼는 그가 지칭하는 것처럼 하나의 ‘마술 묘기’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리바이벌 쇼’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노래가 청중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부활시키는 쇼다. 자신의 결함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한 남자가 벌이는 쇼다.텍사스에서의 그날 밤 이후로 거의 10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스프링스틴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의 아버지였다. 그는 패티 스캘파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며칠만 있으면 두 사람의 첫 아이인 에반이 태어날 예정이었다. “너는 우리에게 잘 대해주었어.” 아버지의 말에 스프링스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나는 너에게 잘해주지 못했어.”스프링스틴은 쇼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 인생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건 바로 그것뿐이었습니다. 내가 아버지가 되기 바로 며칠 전에 아버지가 나를 찾아와서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고백하고, 내 아이들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 우리 죄의 굴레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스스로 선택하고 그들만의 고유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아버지가 인생 말기에 얻은 답 덕분에 스프링스틴의 통찰력은 더 깊어졌다. 아버지 더그 스프링스틴이 어두운 주방에 홀로 앉아 말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 수많은 밤, 그곳에 있던 아버지는 길을 잃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편집증적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진단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불우했던 소년 시절에 대한 맥락을 알려주는 해답이 되었다.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공포도 안겨주었다. “나는 거의 정신병 환자 수준까지 악화되었습니다. 내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년 동안 치료해야 했습니다. 마음의 평온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약을 복용했습니다. 이 병은 나의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전부터 내려온 우리 집안 내력입니다.”20년 전 봄, 그의 아버지는 73세의 나이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날 프리홀드에 있는 가족 묘지에서 목사님이 장례 기도를 마친 후 스프링스틴은 친한 친구 몇 명과 친척들만 남기고 조문객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삽을 들고 마지막 한 줌의 흙까지 모두 아버지의 무덤으로 옮겼다. 아버지의 시신을 아들의 손으로 직접 묻는 것, 마치 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나는 그런 관계를 원했습니다. 나에게 의미가 컸어요.” 아버지가 당신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중에 듣고 싶었던 말이 있는가? 그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이 있는가? “글쎄요,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스프링스틴은 말한다. 한 번도? “네. 아버지는 그 비슷한 말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임종할 때도 하지 않았나? “안 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나?스프링스틴은 다시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대기실의 거울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아닙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 말은 그냥 그의 레퍼토리에 없는 말이니까요. 그는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못 들었어도 괜찮았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말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매우 서투른 사람이어서… 떠날 때마다 울었습니다. ‘나 이제 가봐야 해요, 아버지’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버지는 인생 말기 마지막 10년 동안 눈에 띄게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나는 쇼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를 언급했다. “소원이 있다면, 아버지가 여기 이곳에 와서 이 쇼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했던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스프링스틴은 조용해졌다.“솔직히 아버지가 지금 나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항상 맞닥뜨리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누구인지 볼 수 없었어요.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지는 들어주는 사람이죠. 나는 아주 일찍이 내 아이들의 삶에서 그것을 깨달았어요. 아버지의 역할, 그것은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나의 청중이었으면 하고 원했어요. 이 쇼를 보고 우리 두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하면 좋겠습니다.”스프링스틴은 아이들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둔 아버지이다. 28세인 에반은 인터넷 라디오방송 시리우스XM(SiriusXM)에서 일한다. 24세인 샘은 뉴저지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고, 26세인 제시카는 승마 선수이다. 스프링스틴은 아주 오래전에 자신과 약속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잃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잃지 않겠노라고.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애쓴 그의 노력은 그가 겪은 마음의 상처, 분노와 관련이 있었다. 지난 수년간 집과 가정에 대한 생각만 하면 ‘엄청난 슬픔과 불신’이 그의 마음을 채웠다. 27년간 함께한 아내 스캘파가 자신이 더 나은 남자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자신을 구원해주었다고 그 공을 돌린다(“아내는 지성과 사랑을 다해, 우리 가족이야말로 우리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고, 만만찮은 강적이며, 세상에 도전하여 그 세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었습니다”).아이들이 어릴 때 평생 야행성으로 지내던 브루스에게 “당신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거야”라고 말한 사람 역시 아내 스캘파였다. “무슨 말이야?”라고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들의 아침 식사, 아이들이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그 최고의 시간을 놓치게 될 거라고.” 그 후 브루스는 이른 아침 식사 당번 아빠로 새롭게 태어났다.“만약 모든 음악 업무가 남쪽에서 이루어진다면, 나는 아침 5시부터 오전 11시 사이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질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식당이라도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엄청난 친밀감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결핍의 아들이 아닌, 풍족의 아버지인 그는 주방을 다시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어둠과 침묵의 요새에서 활기찬 삶의 소리로 가득한 밝음의 땅으로 탈바꿈시켰다.오늘날 아들을 키우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야 한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함께하세요. 그들 곁에 있으세요. 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내 말은,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온전히 함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웃음) 다시 말해 그저 어떤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습니다. 나의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나의 존재가 여전히 매우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드문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할 때 더 많이 느끼죠.(웃음)”그렇다면 오늘날 좋은 남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내게는 두 명의 좋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자질은 세심하고 배려할 줄 알고 타인을 존중합니다. 그들은 남성성을 중시하던 1950년대의 감성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내가 씨름해야 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죠. 결과적으로 여성과 세상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는 전형적인 모습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 수 있고, 더욱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을 알고 사랑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사랑받는 방법도 압니다.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압니다. 이것은 내가 25세였을 때는 확실히 갖지 못했던 개념이며, 내 아들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내 세대와는 상당히 다릅니다.”여성 혐오가 부활한 이 세상을 열심히 항해 중인 당신의 딸은 어떤가? 당신과 스캘파와 이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가?“딸아이는 서너 번 진지한 연애를 하며 꽤 많이 배웠습니다. 내 생각에 요즘 여성들은 훨씬 더 빨리 배우는 것 같습니다. 딸은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스캘파의 공이라 여깁니다. 왜냐하면 스캘파는 늘 모든 아이와 잘 어울립니다. 딸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절대 참지 않는 상황이 많습니다. 나의 딸은 정말 터프합니다. 거친 스포츠에 종사하고 있는데 육체적으로 매우 용감하고 강인하며 정신적으로도 아주 결연하고 단호하죠. 이 점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는 아주 맹렬한 독립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죠.”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65세이든 25세이든 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스프링스틴은 한숨을 쉰다. “DNA 탓일 겁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당신도 책임을 거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스스로를 타고난 희생자라고 여길 것입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당신 안에 뿌리 박혀 있다면 자의식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성공 여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사고방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 자신의 행동,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삶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대답을 듣고 있으니 문득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지켜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나의 어머니가 가졌던 자질, 친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일종의 상냥함이죠. 사려 깊음, 이것은 나 같은 자아도취자들에게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자질입니다. 나는 아티스트의 가장 자연스러운 특징 중 하나인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스스로 터득해야 했습니다. 만약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는 확고부동하고 정직하고 진실합니다.”확고부동하고 정직하고 진실하다. 이것은 그의 좌우명이면서 그의 팬들이 그에게 투영하는 자질이기도 하다. 스프링스틴이 구현하는 이 가치관은 청중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청중은 스프링스틴이 자신을 안다고 믿는다. 심적 고통을 노래로 표현하여 대신 토로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열망하는 더 나은 자아를 대변해준다.그러나 그는 특히 자신의 커리어 후반기에 사회적 이슈와 소외 계층 문제를 다룬 곡을 쓰려고 노력했다. 항상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 같은 포크 싱어들을 숭배해왔으며 1995년 앨범 를 발매할 무렵에는 ‘The River’와 ‘This Land Is Your Land’ 간의 교차점을 이루는 곡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대로 이 교차점은 ‘정치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이 하나로 합쳐져서 깨끗한 물을 진흙투성이 강의 역사로 흘려보내는 장소’이다. 스프링스틴은 그의 책에서 미국에 대해 이렇게 썼다.“두려움과 불안의 기운(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 우리가 가졌던 꿈이 웬일인지 오염되었다는 의미, 그리고 미래는 영원히 무보험 상태라는 의미)이 감돌았다.” 한데 이상하게도 2018년 이 나라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가 ‘Darkness on the Edge of Town’을 만들었던 당시인 1978년의 미국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그 노래들은 현재의 미국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미국이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걸까?“더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더 나빠졌다는 의미인지 되물었다. “글쎄요, 40년이 넘는 세월이 미국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계속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로 인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불운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은 위협을 받고 있으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도 이 현상은 트럼프를 설명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역사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이 곡들을 썼던 시기에 주로 내 주변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브로드웨이 쇼에서 그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를 각색한 존 포드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인 ‘The Ghost of Tom Joad’를 노래하기 전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아주 훌륭한 의견을 내비친다. “지금 시대에도 사람들이 행진하며 시위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의 고위직들은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자아에 호소하며, 미국의 과거사에서 가장 추하고 가장 분열을 초래했던 유령들을 소집하고 싶어 합니다. 또한 그들은 ‘모두를 위한 미국’이라는 개념을 파괴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도입니다.”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나는 우리 대통령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라를 통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거의 매일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어요. 그것은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이 정치에 종사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다면 이런 행동은 전 세계에 내보내는 아주 끔찍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미국인 다수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대안 우파, 즉 극우 성향의 백인우월주의자들로, 샬럿츠빌에서 횃불을 들고 시위하며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이죠. 아무튼 이 모든 상황이 표면화되어 주목받고 있잖아요? 우리 대통령이 기꺼이 그들의 장단에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통합된 미국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미국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데 전부를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절체절명의 중대한 시기입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이 현상은 독성이 너무나도 강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이 양심적인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두려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그는 캠프파이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불길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닮았다. “많은 사람이 요즘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로 인한 미국의 변화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들 자신의 공포와 국가의 공포에 맞서는 것을 잘해냈습니다. 진부한 표현입니다만, 여러 천재들이 시스템을 만들고 한 명의 바보가 그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이론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트럼프 체제를 견뎌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통합할 인물이 곧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점이 걱정스러워요. 왜냐하면 당파와 국가가 둘로 쪼개져 양분되는 것은 심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망이 무엇이냐고요? (한숨) 식상한 것들입니다. 우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미국인으로 여기도록 내버려두는 것, 평등이든 사회 정의이든 간에 나라의 기본 설립 원칙이 충실히 지켜지는 것,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회를 주도록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나는 우리의 마지막 미팅을 준비하면서 그가 오히려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신경쇠약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60세가 되고 몇 년 있다가 그에게 갑자기 찾아왔다. 긴 어둠의 터널이 3년간 오락가락 지속되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이번에는 ‘격정성 우울증’이라는 증상이 발병했다. 이 기간에 나는 마음이 극심하게 불편했고 자신감도 결여되어 있었다. 그냥 나라는 껍데기를 벗겨내고 싶었다. 원치 않는 불필요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죽음과 불길한 예감만이 기다리고 있다.”이는 깊은 고통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남자의 글인가? 혹시 당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리려는 시도를 한 적 있는가? “아니요, 아니요. 기분이 정말 안 좋았던 때가 한 번 있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마치….” 그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계속한다. “나는 한때 심각한 공황 상태에 갇혀 있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고, 몸도 마음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편치 않았습니다.”그것이 그의 첫 번째 신경쇠약 기간에 일어난 일일까? “아닙니다. 내가 자서전에서 말한 ‘격정성 우울증’을 앓던 때였습니다. 불안과 우울 증세가 점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져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단 한 평의 공간조차 제대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의 두 손을 얼굴 양옆에 갖다 댄다. 마치 곁눈질을 못하도록 말에게 씌우는 눈가리개 가죽처럼 두 손을 얼굴에 계속 댄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갔다.“마음의 평화가 전혀 없었어요. ‘이런, 정말 모르겠네. 내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증 상태였어요 그리고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도로 아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 ‘이런, 정말 모르겠어, 모르겠어’뿐이었습니다. 이 병을 겪고 난 후 약간의 통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스프링스틴의 목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그가 얼굴에 대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어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깨고 물었다.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아무도 내가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스프링스틴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매우 훌륭한 두 명의 의사를 두었는데, 불행히도 그때가 8월이었습니다. 모두 휴가를 갔어요.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나는 정말 기분이 안 좋았고, 도움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주아주 짧은 기간 동안 자살 위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얼마 동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그때를 회상해보니, 할 말이 없네요. 아마 2주쯤? 정말 아주 나쁜 마법에 걸린 겁니다. 그냥 그렇게 왔어요…. 나를 나쁜 곳으로 이끄는 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했어요.”살아오면서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았던 그 소년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는지 물었다. “내가 심리분석 상담을 통해 겪게 된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한 아이로 보았고, 순수했던 동심을 경험했고,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그 사람을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주를 하며 감내했습니다. 자아를 발전시켜 나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진짜 모습으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습니다.(웃음) 이것은 자기혐오라는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자기혐오의 성향은 내 DNA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제 나는 그런 DNA를 갖고도 전보다 훨씬 더 잘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인 싸움입니다.”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40대에 접어들어서야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돌파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자신이 지닌 모든 모습을 바라봤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잔인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 줄기 빛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경험 그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 상담에서 무엇을 할까요? 이 모든 오해와 혐오를 사랑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나쁜 경험을 활용하여 음악으로 만드는 것도 멋진 일이죠.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면 자연스레 깨달음이 따라옵니다.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내가 그동안 나 자신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는지, 그리고 인생 말기까지 계속 그렇게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이 답변을 들으면서 그의 노래 ‘The Promised Land’에 나오는 가사가 떠올랐다. “Sometimes I feel so weak I just want to explode… take a knife and cut this pain from my heart…(가끔은 내가 너무 나약해서 그냥 폭발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칼을 들고 내 심장에서 이 고통을 잘라내고 싶어요…).” 오랫동안 이 곡이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비통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에 관한 노래입니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그럼 “the lies that leave you nothing but lost and brokenhearted(거짓말은 당신을 길 잃은 실연당한 사람으로만 남긴다)”라는 가사는? “우리 모두가 그런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제나 가슴 깊이 파고드는 가사입니다. 나는 매일 밤 이 노래를 할 때마다 여전히 이 가사에 깊이 감화됩니다.” 그 말을 들으니 ‘The Ties That Bind’가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당신이 벗어날 수 없었던 DNA와 가족 관계에 관한 노래인 것 같다고 답했다.“가족 간의 유대감, 또한 내가 속한 공동체와 동료 시민들과의 사이에서 결코 깰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노래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트럼프를 보세요. 그는 이런 것들을 많이 저버렸습니다. 그는 가슴속 깊이 손상을 입었죠.” 그가 유대감, 결속 관계를 저버렸기 때문에? “맞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우리를 하나로 묶는 유대감을 깊이 느끼지 않는다면 위험한 사람이죠. 매우 안타깝고 측은한 일입니다.”이어 그의 노래 ‘Born to Run’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sadness(슬픔), love(사랑), madness (광기), soul(영혼)’이라는 네 단어를 가사 한 줄에 포함하여 그를 종합적으로 표현한다. ‘Together, Wendy, we can live with the sadness / I’ll love you with all the madness in my soul’ “그것은 내가 쓴 가사입니다. ‘Born to Run’은 나의 묘비명 같은 것이죠. 이 노래를 매일 밤 브로드웨이 쇼의 마지막 순서에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사용합니다. 이 노래야말로 내가 말한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믿습니다.”‘sadness, love, madness, soul’, 이게 당신의 네 가지 요소인가라고 묻자, “내 위대한 곡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매일 밤 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이기도 하죠.” 스프링스틴은 말을 멈춘다. “내가 이 곡을 쓴 게 24세 때였습니다. 오래도록 인기 있는 노래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시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오래 사랑받는 노래, 내가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