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래미가 달라졌어요' 확 바뀐 2019 그래미 어워드 그 결과는?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019 그래미 어워드의 키워드는 힙합과 젠더. ‘아재 끝판왕’이었던 ‘화이트 그래미’가 달라졌지만 감격할 일은 아니다. | Music,음악,힙합,뮤직,그래미

올해도 어김없이 그래미 어워드(이하 ‘그래미’)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어김없이 배철수-임진모 콤비가 출동했다. 누군가는 이들의 중계가 지겹다고 불평하지만 당신은 지금 가장 놀라운 사실을 놓치고 있다. 임진모와 그래미가 동갑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래미는 올해 61번째 시상식을 개최했고 임진모 역시 올해로 61세가 됐다. 둘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이것은 운명이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불평하기 전에 네이버 검색 필수요!올해 그래미를 살펴보기에 앞서 작년 그래미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년 그래미를 가리켜 감히 최대 위기였다고 말해도 될까. 일단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60번째 시상식이었던 작년 그래미는 9년 만에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재작년에는 2600만 명이 시청했지만 작년에는 1764만 명이 시청했는데 이는 21%가 하락한 수치다. 폭락이라는 단어가 걸맞다.흥행뿐 아니라 내용도 논란에 휩싸였다. 정확히 말하면 작년 그래미는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온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화이트 그래미’. 그래미는 백인 음악을 노골적으로 우대한다는 것. 비슷한 다른 말로 하면 그래미는 힙합을 외면한다는 것.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힙합이 명실상부한 ‘현재의 사운드트랙’임에도, 켄드릭 라마가 장르를 초월한 명작을 연거푸 내놓아도 그를 몇 년간 연속 종합 부문 트로피 하나 없이 빈손으로 돌려보냈다는 것. 제이지와 비욘세도 마찬가지로.게다가 올해 그래미가 열리기에 앞서 젠더 이슈마저 발생했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대표 닐 포트나우의 입이 문제였다.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는 뮤지션 중 여성의 비율이 적다는 문제 제기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여성 뮤지션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힙합과 젠더. 최근 들어 가장 동시대적이고 민감한 두 키워드에 가장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반응한 셈이다. 그렇게 그래미는 ‘아재 끝판왕’이 되어가고 있었다.물론 관점의 균형을 잡을 필요는 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집단이, 일관된 의도와 목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외부의 추측은 사실 대부분 허망하다. 그래미 역시 백인 우월주의를 내면화한 소수 늙은이들의 밀실 야합에 의해 돌아가는 집단이 아니다. 대신 이 시상식은 시스템과 투표인단에 의해 돌아간다. 그 때문에 여전히 그래미 관련 댓글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음모론’은 건강하지도 않을뿐더러 유효하지도 않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스템이 곧 완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체계화된 인종주의일 수도 있다. 시스템 자체가 차별적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면 그것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래미는 올해부터 이 시스템을 개선했다. 작년 시상식이 끝난 뒤 그래미가 한 일은 ‘다양성 및 포용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래미에 900명의 새로운 투표인단이 합류했다. 요건은 세 가지였다. 여성이거나, 백인이 아닌 인종이거나, 39세 이하거나. 변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변화의 의지는 곧 결과로 나타났다. 새 투표인단의 합류에 더해 작년의 실패를 의식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다. 먼저 올해 그래미는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일단 사회자부터 여성이었다. 알리시아 키스는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시상식을 순조롭게 이끌었다. 알리시아 키스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소개한 ‘여성 4인조’도 상징적이었다. 레이디 가가, 제이다 핀켓 스미스, 제니퍼 로페즈, 그리고 미셸 오바마는 저마다 음악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차례로 관객과 공유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4명이 올해 그래미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사람들은 제가 이상하다고 했어요. 제 외모, 제 선택, 제 음악을 세상이 환영할 리 없다고 했죠. 하지만 음악은 저에게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고 말해줬어요.” 레이디 가가의 말이다.올해 그래미는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컵에 물이 반이나 찼다고 좋아할 수도, 반밖에 없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물줄기를 올바르게 트는 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힙합과 젠더는 한동안 그래미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수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그래미에서 수상한 여성은 31명이다. 이는 작년 대비 무려 82%나 증가한 수치다. 시상식의 주인공 격인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컨트리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는 무대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예술과 음악에 정말로 필요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그래미에서) 여성의 더 많은 활약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한 두아 리파의 소감은 더욱 직접적이다. “이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해야겠어요. 훌륭한 여러 여성 뮤지션과 함께 후보에 올라 영광이었어요. 제 생각에는 올해 우리가 정말 분발한 것 같아요!” 닐 포트나우의 코멘트를 다시 소환한 그녀의 말이었다.힙합 혹은 흑인 음악도 작년보다 조금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 단적으로 차일디시 감비노는 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수상하는 파격을 일으켰다. 물론 작년에 이 두 부문을 수상한 브루노 마스의 음악도 흑인 음악이긴 하다. 그러나 브루노 마스의 음악이 백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풍요롭고 댄서블한 팝에 가까웠다면, 차일디시 감비노의 음악은 인종 및 총기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 사회에 대놓고 던지는 비판이라는 점에 그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광경은 흡사 켄드릭 라마의 정치성이 지난 몇 년간 넘지 못한 문턱을 차일디시 감비노가 마침내 넘은 듯한 모습으로도 읽힌다. 물론 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하지만 올해 그래미 결과에 힙합이 감격한 것은 아니다. 실은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김이 빠져 있었다. 그래미 측의 공연 제의를 켄드릭 라마, 드레이크, 차일디시 감비노가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켄드릭 라마와 차일디시 감비노는 아예 시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경험이 작용한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드레이크의 수상 소감은 흥미롭다. 으로 올해의 랩송 부문을 수상한 드레이크는 마이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노래를 사람들이 이미 다 따라 부르고 있다면, 당신이 이미 고향에서 영웅이라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비와 눈을 맞아가며 열심히 일한 돈으로 당신의 콘서트 티켓을 사고 있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제가 약속할게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승리한 거예요.”드레이크의 말은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수상자의 겸손한 멘트로 볼 수도 있고, 월간 에 실릴 법한 잠언 같은 멘트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드레이크의 말은 이렇게 들린다. “그래미가 우리 힙합을 계속 물먹여온 걸 모두 알잖아. 그래서 난 올해 공연 제의도 거절했어. 굳이 내가 해줄 필요가 있겠어? 그런데 뭐, 상은 받으면 좋은 거니까 일단 참석은 한 거야. 하지만 너희 래퍼들이 이 상에 너무 집착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받으면 좋지만 아니어도 우린 괜찮아. 그래미가 알아주지 않아도 힙합은 앞으로도 잘해낼 거야.”힙합 입장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그래미 사상 최초로 후보에 오른 랩송은 디제이 제지재프 앤드 프레시 프린스의 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미를 보이콧한다. 랩 부문 시상을 TV로 방영하지 않겠다는 주최 측의 결정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때가 1989년이었으니 그로부터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술했듯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래미와 힙합은 여전히 불편하고 찝찝한 관계에 있다. 그래미는 여전히 힙합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힙합은 그래미만 빼면 세상은 내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이 광경은 비단 그래미와 힙합의 관계로 다가오기보다는 옛것과 새것, 혹은 서로 다른 시대의 충돌로 비친다.뻔한 말이지만 올해 그래미는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컵에 물이 벌써 반이나 찼다고 좋아할 수도, 컵에 물이 아직 반밖에 없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물줄기를 올바르게 트는 데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힙합과 젠더라는 두 키워드는 앞으로도 한동안 그래미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