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멘디니 헌정 우표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평생 젊었던 거장을 추모하며. | 조명,실내인테리어,조명인테리어,실내조명,멘디니

지난 2월 18일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세상을 떠났다.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의 일이다. 멘디니를 알지는 못해도 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고, 그의 작품 또한 어찌어찌 한 번은 마주했을 거다.그리 큰 관심이 없다가 라문 아물레또의 탄생기를 듣고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궁금해졌다. 손자의 눈 건강을 생각해 램프 ‘아물레또’를 만들었고, 그 이름의 의미는 ‘친구처럼 가까이서 나를 지켜주며 내 소원을 지켜주는 수호물’이라고 했다. 별거 아닌 듯 보여도 그 산타클로스 같은 다정함에 넘어갔다. 어쩌면 제품 마케팅에 넘어간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아이 방에 꼭 이 라문 아물레또를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만하면 제대로 넘어간 거다. 그렇다고 또 그 후부터 미친 듯이 멘디니를 파헤치거나 광적으로 좇진 않았지만 그의 임종 소식을 듣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구입해 읽었다.분명 흥미로운 인물이다. 거장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디자이너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건축가, 디자이너, 편집가… 아니, 정확히 따지고 보면 건축가, 편집가, 디자이너 순이다. 공학으로 대학에 입학해 건축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때도 저널리스트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다. 건축가로 활동하다 건축, 디자인 관련 잡지 편집장으로 15년을 근무했으니까. 세 매체에서 5년씩 근무했는데, 5년인 이유가 그만큼 일하다 보면 지겨워져서 자발적으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의 명성은 멘디니가 편집장일 때 쌓아 올린 거라니, 이 인상 좋은 아저씨가 더 달리 보인다.그러고는 돌연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1989년 그의 나이 58세에. 건축·디자인 잡지인 편집장으로 있을 때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아틀리에를 열고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해 제일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다. 참고로 아물레또 조명은 그의 나이 80세에 만들었다. 저자가 멘디니에게 그의 인생에도 위기가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내가 50살이 되었을 때 두가지 일이 동시에 닥쳤다. 이혼을 했고, 를 떠나게 됐다. 그때 동생과 같이 아틀리에 멘디니를 열었다.” 멘디니의 확장은 꿈을 꾸었기에 가능한 걸까? 자신을 믿었기에 가능한 걸까? 멘디니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자신을 강하게 믿어야 한다. 겸손하며 동료를 사랑하고 삶의 목표를 돈에 두어서는 안 된다.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을 절대 멈추지 마라.”멘디니는 “좋은 디자인이란 시와 같고, 감성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며, 미소와 로맨스를 건네주는 것”이라 했는데, 가만 보면 그가 디자인한 것들이 그렇다. 그의 작품을 오래오래 귀엽게 보고 싶어 이 우표를 만들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에게 헌정하는 알레산드로 멘디니표 우표다.아, 후루룩 읽어 내린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든 멘디니의 말은 이거다.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는 나는 읽고, 조금 걷고,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