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뮈스는 프로방스로 향했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첫 남성복 컬렉션은 그의 고향 프로방스로 향했다. | 파리,디자이너,designer,시몽포르테자크뮈스,시몽자크뮈스

생투앵이 파리를 대표하는 곳은 아니다. 파리 북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북쪽으로 다섯 정거장 더 가면 파리 외곽 순환로 낙후 지역에 위치한다. 이곳은 클리낭쿠르 벼룩시장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길 모퉁이에 자리 잡은 남자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휴대폰을 팔기도 하고 시장을 둘러싼 허름한 가판대에는 운동복이나 싸구려 조리 도구, 진귀한 물파이프가 가득 쌓여 있다. 유명한 프랑스인을 마주치기 힘든 동네이긴 하지만 칙칙한 카페에서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는 탄탄하게 성장 중인 여성복에 이어 2018년 첫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만 29세밖에 되지 않은 이 남자는 2009년 자신의 본명을 딴 자크뮈스 브랜드를 설립한 후 꾸준히 주가를 높이고 있다. 특히 2018 S/S 컬렉션 ‘La Bomba’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쉽고 단순하며 섹시한 시그너처 미니백(휴대폰과 카드 몇 장, 골루아즈 담배를 담으면 가득 차는 사이즈)은 무섭게 팔려나갔고, 해변 파라솔만큼 챙이 넓은 밀짚모자는 그 시즌 히트 아이템이었다. 그가 디자인한 옷은 비욘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셀레나 고메즈 등 유명인들이 즐겨 입는다. 지금 이렇게 핫한 그에게 파리의 외곽 순환로 너머의 조그만 카페는 적합한 인터뷰 장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5분 일찍 카페에 도착해서 유리잔을 닦고 있는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자크뮈스는 브라메장(Bramejean)에 있는 가족 농장에서 자랐다. 프랑스 남단에 있는 100명 남짓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마르세유와 아비뇽 사이에 자리 잡은 전원 지역이다. 그는 위로 말쑥하게 쓸어 넘긴 헤어스타일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귀여운 소년이었다. 어린이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당시 헤어 젤을 곱게 바르고 해변과 정원, 등굣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카랑바 캔디 광고 사진은 지금도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볼 수 있다. 그의 부모님은 채소와 과일을 팔았으며 조부모님은 몇십 년 동안 줄곧 농장에서 일한다고 한다.“대여섯 살 때부터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술적인 시도를 했던 거 같아요.” 자크뮈스가 말했다. “그때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요.” 유년 시절 그는 발레를 배웠고 친구들과 팝 그룹을 만들어 셀린 디온이나 그웬 스테파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파리가 그를 불렀다.“제가 당장이라도 영화에 나올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몽상가였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죠.”18세 때 그는 수도 파리로 이사 갔고 패션 디자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 중 마을을 떠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저는 사과나무를 보고 자랐어요.” 자크뮈스가 말했다. “가족은 제 인생 그 자체였고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했죠.” 하지만 그가 파리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됐을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당시 그는 동기 학생들이 학업에 의의를 두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미 공부에 대해 환멸을 느꼈던 터라 시련은 그가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뒤 저는 파리로 돌아왔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난 해낼 거야.’” 그가 말했다. “저는 폭탄이었어요, 폭탄. 좋은 의미에서 말이죠.”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디자이너는 생마르탱 운하 옆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를 파리 근처의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60명이 넘는 스태프를 수용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훈련 과정 없이 자크뮈스는 “패션을 하고 싶은 시골 소년”(프랑스 잡지는 일찍이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에서 ‘빛의 도시’ 파리의 가장 밝은 불빛으로 급성장했다. LVMH의 특별 심사위원상 후보로 두 번 이름을 올렸고 마침내 입상했다. 2017년 900만 유로(대략 114억 원)의 수익을 달성했고, 이는 거의 전년도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매년 사업을 두 배씩 확장하고 있어요.” 자크뮈스가 말했다. “엄청나죠.”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자크뮈스 남성복이 탄생했다. 지난해 자크뮈스는 디올, 루이비통, 프라다 외 다수의 명품 브랜드와 일해온 감독 고든 본 스테이너와 제작한 영상 를 공개했다. 2018 S/S 시즌 여성복 컬렉션의 스케치를 담은 캠페인 영상으로 자크뮈스 감성의 정수를 녹여냈다. 노을이 비치는 절벽 위 빌라 주변을 싱글 롱테이크로 카메라가 돌며 아름답고 늘씬한 여성들이 몸을 비틀거나 요염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최면에 걸린 듯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노을 지는 해변가의 어스름은 브랜드의 미적 감성을 대변한다. 햇볕을 받아 후텁지근하고 마치 옆집 소녀 같은 자크뮈스의 의상에서 해변의 여인과 여성적 형태에 대한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또한 자크뮈스는 클럽에서 즐기기 위한 옷을 만들기보다는 ‘과일과 채소, 잔디밭을 누비는’ 디자인을 한다고 말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파란색과 흰색, 스트라이프, 태양, 과일, 삶, 시, 마르세유, 1980년대를 좋아한다고 써놓았다. 로맨틱한 그의 감성은 그동안 여성복에서 빛을 발해왔다. 하지만 남성들도 과연 자크뮈스가 지닌 해 질 녘 어스름의 매력에 반응할까? “프랑스 남부 남성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실행했다. ‘르 가조(Le Gadjo)’는 로마니 남성이 아닌 사람을 일컫는 로마니어로 프랑스 남부에서 소위 ‘젊은 남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데, 이 타이틀의 컬렉션은 파리나 런던, 밀라노가 아니라 마르세유 근처 해변에서 진행했다. 게스트를 위해 준비한 타월, 맨발의 모델들, 하지만 런웨이는 없다. 그저 물가의 단단한 모래와 다 허물어져가는 방파제가 늘어서 있을 뿐이다.의상은 편하고 루스했다. 자연의 색과 어우러진 대담한 프린트, 앞자락을 모두 풀어놓을 수 있게 디자인한 칼라, 끈, 배기 주머니, 느슨한 짜임과 가벼운 원단. 여성 컬렉션과 평행선을 이룬 색 조합은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지만 규칙을 깨는 어떤 단단함과 간혹 눈에 띄는 시스루 원단, 그리고 액세서리가 있었다. 몇 해에 걸쳐 햇볕을 받을수록 근사해질 챙이 넓은 밀짚모자와 가는 스트랩이 달려 목에 걸 수 있는 남성용 미니 지갑 등도 있었다. 모델들 또한 2018년에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넓은 어깨와 큰 몸집의 건장한 사내들이었다. 그중 다수는 그 지역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남성들이다. 자신감 넘치며 스왜그를 풍기는 진정한 ‘가조’ 말이다. “저는 젊은 남성들을 위한 디자이너예요.” 자크뮈스가 말했다. “첫 컬렉션을 통해 제가 너무 순진했다는 점과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많이 배우게 될 거라는 걸 잘 알아요.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기계가 될 순 없지만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제 말은 처음이 단순히 실험적이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앞으로 많은 걸 배워나갈 거라 믿고 있고 컬렉션 하나하나는 그 과정이 되겠죠. 제 여성복은 정말 많이 바뀌어왔어요. 이제 남성복 차례예요.자크뮈스는 한 달에 한두 번, 특히 여름에는 더 자주 가족과 친구들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파리에서도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저한테는 좀 어려워요.” 카페 안으로 반사된 빛에 눈을 살짝 찡그리며 그가 말했다. “파리와 사랑에 빠져본 적은 한 번도 없죠. 물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전망도 좋고 팀원도 맘에 들어요. 하지만 파리는 저와 안 맞아요. 햇빛이 없거든요. 항상 하늘이 잿빛이에요. 빛을 볼 수 없을 때가 정말 힘들어요.”질 좋은 현지 로제 와인과 비타민 D가 부족하긴 해도 자크뮈스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아마 그의 겸손함과 흔들림 없는 자신감의 기이한 조합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이토록 멋진 남성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의 첫 남성 컬렉션은 고급 하이패션은 아니다. 불손하고도 쉬운 반면 흥미를 일으키는 미묘함이 있다. 게다가 적절한 문화적 맥락 안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잠재하고 있을 결점, 예를 들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은 싫어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남성복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란 믿음도 지니고 있다. 진지한 얼굴과 냉철한 눈빛의 자신감을 가진 그는 거만한 게 아니라 단지 알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프로방스의 특유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