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김완선이 아니라 컴백하는 여자 댄스 가수를 먼저 찾았어요. 춤을 배워보고 싶어서. 김완선은 잘 알지 못하지만 춤 하면 또 김완선이다 싶더라고요. 앨범 발매 소식도 있고, 1인 기획사를 세우셨다고 해서 이때다 싶었어요. 그나저나 <불타는 청춘> 콘서트 후기를 보니 독보적이었다면서요?
아니, 뭐 (김)도균 오빠, (장)호일 오빠랑 무대를 같이 했는데, 그분들의 에너지를 받아서 굉장히 편하게 했어요. 도균 오빠는 10대 시절의 김완선을 본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재밌었어요. 관객들도 그렇고,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편안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었던 거 같아요. 뭘 해도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느낌.
예고편을 보니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던데.
네?(의아하다는 반응)
긴장한 거 아니었어요?
저 긴장 별로 안 해요.(웃음)
그럼 무대에 올라가면 사람들 표정이 다 보여요? 어떤 가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 얼굴도 안 보이고, 함성도 안 들린대요. 너무 떨려서.
저는 너무 잘 보여서 문제예요. 안 보였으면 좋겠어.(웃음) 잘 보이고 안 보이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무대에 설 때마다 매번 무대에 집중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집중이 잘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는데, 내가 집중이 잘될 때 좋은 공연을 하게 되는 거죠.
집중이 잘된다는 게, 관객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빠지는 거예요?
네. 제 경우에는 내가 나한테 더 많이 집중할 때 훨씬 더 좋은 공연이 되는 거 같아요.
촬영하다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추셨는데 너무 멋있어서 놀랐잖아요. 콘서트에 온 줄….
그냥 놀았던 건데요? 공연이면 더 했지.(웃음) 우선 음악 선곡을 훌륭하게 해주셨어요.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펑키한 노래를 틀어주셔서.
이건 또 너무 당연한 말이라 이상한데, 어떤 노래가 나오든 그렇게 즉흥적으로 춤을 잘 춰요?
그럼요. 원래 그게 내 전문이에요. 춤추는 거. 또 즉흥적으로 추는 거.(웃음)
음악은 어디서 많이 들으세요?
유튜브 레드요. 랜덤으로 들어요. 장르 가리지 않고.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33살인 저도 김완선 가수의 활동이 까마득한데, 저보다 10살, 20살 어린 요즘 친구들이 과연 김완선이라는 가수를 알까 싶었죠. 그런데 웬걸요. 1991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공연 영상에는 댓글이 천 개가 넘더라고요.
헉, 대박.
몇 시간 전까지도 댓글이 달렸어요. ‘시대를 앞서간 가수’부터 해서 ‘이 누나가 만약에 지금 데뷔했다면 혼자서 SM, YG, JYP 엔터테인먼트 다 처바르고 남음’, ‘저런 게 천부적인 끼라는 건가 보다’, ‘섹스어필 하나도 안 하는데 미친 듯이 섹시하고 아름답다’, ‘나 김완선이야, 독보적인 매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여 있음’, ‘이런 가수는 왜 이제 안 나오지?’ 등.
아아, 아이고 고맙다, 애들아!(웃음)
어떤 분은 동시대를 살았는지, 30년이 지나서 보니까 더 멋지대요. 어떤 댓글이 제일 와닿아요?
앞서간 가수?
앞서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거 자랑이죠?
아니 뭐 자랑이 아니라, 내가 좀 많이 앞서갔지.(웃음) 너무 빨랐어요. 시대랑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너무 앞서가서, 그래서 계속 다 어긋났던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해외 진출도 처음으로 하셨고.
그렇죠. 1988년도에 일본에 갔는데, 잘 안됐어요. 그때도 시기가 이르다 해서 다시 왔고. 대만도 제가 처음 갔었죠. 그러게, 뭐든지 좀 빨리 한 거 같아요. 음악도 1986년에 ‘오늘밤’을 냈는데 당시 가요 스타일하고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 장르였어요. 그때 젊은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분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게 어떻게 가요냐’ 하고. 하여튼 계속 쉽지 않았던 거 같아요.
비켜갔다고 하셔서 좀 놀랐어요. 지금 들어도 세련된 노래라 그때는 더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비켜갔어요. 그래서 1위도….
아… 그래서 4집 때 처음 1위를 했구나.
5집 때예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그러니까 내 노래가 기성세대한테는 잘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너무너무 좋아했는데, 당시 가요는 기성세대가 들었거든요. 제가 데뷔한 게 학생들이 가요를 듣기 시작한 어떤 계기가 된 거죠. 그런데 뭐,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 앞서간 게 안타까워요?
음, 오히려 데뷔 전에 가수를 준비한 3년이라는 시간이 참 꿈도 많고 기대감도 크고 설레기도 하고 여러 가지 희망에 차 있었던 것 같아요. 데뷔를 17살에 했는데, 그 후로는 너무 바빠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힘들기만 하니까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고.
인기가 엄청 많았는데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인기가 많아서 좋기도 하지만 일단 내 몸이 너무 피곤하잖아요. 그리고 음악이 좋아서 가수가 되려고 했는데, 막상 가수가 되니 매일 똑같은 노래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고. 예전에는 일 년 내내 한 곡만 불렀어요. 정말 일 년 내내. 가수는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다양한 걸 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너무 달랐죠. 그런 부분에서도 자주 부딪혔고, 그러면서 의욕이 사라졌어요. 그러다 외국으로 가게 되고,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하다 보니 30대 때는 방황을 굉장히 많이 했고요. 그리고 40대가 되면서부터는 그런 걸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나씩 한번 해보자, 한 거예요. 그래서 나의 40대는 음악을 여행하는 시기가 됐고요. 사실 앨범을 냈을 때 반응도 없고, 내가 앨범을 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고, 앨범을 듣는 사람도 없는 것 같지만 세월이 쌓이니까 이제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생각을 해요. 싱글 앨범을 계속 냈던 것이 나 스스로에게 힘이 된 것 같아요. 내 또래 가수들 중 나만큼 싱글 앨범을 많이 낸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그건 그냥 나 스스로 노력한 거죠.
왕년의 잘나가던 김완선이 지금도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건재하다, 이런 건 아니고요. 내가 직업이 가수니까 신곡을 만드는 게 당연한 거예요. 안 하면 뭐 해요?(웃음) 그리고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하고, 행사를 하는 명분이 생기는 거죠.
어린 시절 자신의 ‘책받침 여신’을 추억하는 글에 어떤 뮤지션은 김완선 씨를 꼽으며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하고, 상식을 넘어선 도발을 가진 디바.
캬. 다 너무 좋다.
지금 김완선은 이 수식어 중에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글쎄요. 별로 해당되는 게 없는 거 같은데요.(웃음)
왜요? 다 좋다고 하셨잖아요.
다 마음에 드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은 어떤데요?
나이를 먹다 보니 그냥 이지한 게 좋아요. 튀는 것보다는 편안한 쪽. 그런데 상식을 벗어나고 전위적인 걸 보는 건 여전히 되게 좋아해요.
김완선은 워낙 가진 색이 많은 가수죠.
이제는 내가 트렌드를 리드하는 역할이 아니라서 좀 자유로워요. 거기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뭐든 할 수 있어서.
가수 김완선은 어떤 색인 것 같아요?
총천연색이오.
처음부터 총천연색을 가진?
그렇진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는 좀 더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상태였죠. 거기서 어떤 색들이 조금씩 덧칠해진 거고. 이제 앞으로 더 총천연색이 돼야지.
데뷔 전 가수 인순이 씨의 백업 댄서로 활동한 영상을 봤는데, 그 사이에서도 눈에 띄더라고요.
연습생 시절에 앨범을 준비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은 거예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데뷔하고 무대에 올라갈 때도 별로 안 떨었던 거 같아요.
원래 잘 떨지 않는 성격 아니었을까요?
그건 그렇네요.(웃음) 늘 잘 안 떨긴 했어요.
그래도 살다 보면 나답지 않은 순간이 있잖아요. 살면서 떨거나 긴장했을 때는 언제예요?
언제나 내가 준비가 안 됐을 때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정말 많이 떨려요. 긴장되고.
굉장히 완벽주의자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올라갈 때도 많았어요. ‘분명히 망칠 거야’ 하면서 올라가기도 했고, 정말 망칠 때도 있었고. 하지만 망쳐도 안 망친 것처럼 태연하게 하고 나오긴 했죠.
김완선의 33년 가수 활동을 어렴풋하게 되짚어보면 마냥 꽃길만 걸은 게 아니더라고요. 한창 인기였을 때 돌연 은퇴하기도 했고. 여러 일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요. 대중가요계의 개국공신을 보는 느낌. 세월의 풍파를 겪은 만큼 지금은 더 많이 단단해졌죠?
아이, 그렇지 않아요. 자기도 20년 더 살다 보면 알겠지만 매번, 순간순간이 다 새로워요. 나도 지금 이 나이가 된 게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오래 살아온 경험이 주는 힘은 있어요. 똑같이 당황스럽고 똑같이 힘들어도 어릴 때는 그게 10의 강도만큼 힘들었다면 지금 내 나이 때는 뭐 4, 5 정도예요. 이제 굳은살이 박인 거죠. 크게 휘청일 만큼 타격을 받진 않지만 그래도 힘든 건 똑같아요. 다 새로운 경험이고.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어떻게 나는 맨날 또 이러냐’ 싶고. 그런데 이런 얘기도 나만 하는 게 아니라 다 똑같더라고요. 또래 친구들도, 언니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이래서 살게 되나 보다’ 싶어요. 마냥 좋은 일만 계속되는 것도 지루할 거고, 안 좋은 일만 있어도 너무 힘들 테고, 그렇게 왔다 갔다. 당장 눈앞에 놓인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다 보면 또 시간이 지나 있고, 인생이 그런 거죠 뭐.
언젠가 인터뷰에서 10대, 20대 때의 활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기억나세요?
아, 그럼요. 지금도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또 30대로는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요.
30대 때는 방황하느라 아무것도 못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서 30대가 훅 없어져버렸어요.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면 30대에 맞게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긴 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을 30대처럼 살면 되겠죠?
그럼요. 그리고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까 춤추는 거 보고 댄스 영화면 어떨까 싶었어요.
싫어요.
싫어요? 왜요?
댄스 영화는 추고 싶은 춤을 못 춰요. 다 짜인 안무대로 해야 하니까. 춤은 느끼는 대로 춰야 하는데.
지금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은 게 있어요?
음, 지금의 김완선을 보고 너무 과거만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2019년을 살고 싶은데 ‘김완선’ 하면 너무 과거만 떠올리니까 내가 지금 현재를 살 수가 없어요. 맨날 과거로 끌려가게 되니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요즘 김완선을 나타내는 건 어떤 게 있어요?
그냥 김완선이죠, 뭘.(웃음) 지금의 김완선은 음… 히트곡이 없어서 그런 건데 뭐 어떡해.
왜 또 히트곡이 없다고….
솔직히 김완선의 히트곡은 다 옛날 곡이지, 지금은 없잖아요. 지금 내가 싱글 앨범을 그렇게 많이 냈어도, 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해요. 지금은 ‘이게 나다’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앞으로도 나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 음, 나를 좋아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가 없으면 저도 사라지게 되겠죠. 지금 제가 만든 음악들, 발표하는 곡들이 예전의 것만큼 파워가 없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거라는 사실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그때는 17, 18살이었고 지금은 50살인데, 어떻게 그때랑 지금이랑 같겠어요. 그때의 김완선과 지금의 김완선은 똑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때 김완선은 굉장히 어렸고, 지금의 저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지금의 김완선은 살아오면서 그때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어요. 과거의 기억으로 17, 18살의 김완선을 계속 보길 원하면 제가 힘들죠.
음악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직업을 참 잘 선택한 거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특권인 거 같아요. 의사들은 일하는 시간 내내 아픈 사람들만 봐야 하고, 변호사나 검사는 범죄자나 힘든 사람들을 봐야 하는데 나는 일하는 시간에 굉장히 행복한 사람들만 보는 거잖아요. 그런 게 너무 좋죠.
그래서 반대로 그 에너지를 주는 가수들도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 있어요.
힘든 무대도 있고 쉬운 무대도 있고 그래요. 그건 정말 어떤 관객을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요. 대부분 서로 주고받고 굉장히 좋고, 힘든 무대는 상대적으로 적은 거 같아요. 왜냐면 사람들이 이미 즐길 준비가 돼 있으니까.
스마트폰으로 주로 뭐 하세요?
유튜브 봐요. 유튜브로 이것저것 찾고.
요즘 정보를 찾을 때 포털 사이트로 검색하면 X세대고, SNS로 검색하면 Z세대, 유튜브로 검색하면 요즘 세대래요.
어우, 나 요즘 세대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그런 걸 찾아봐요.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그런데 나는 누가 해주기보다 서툴러도 내가 직접 하는 걸 좋아해요.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어요.
바꾼 인테리어 중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음, 나는 없애는 걸 잘해요.
뭘 많이 덜어내셨어요?
그렇죠. 우선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해요. 내가 내 취향을 몰랐을 때는 이것저것 예쁜 걸 다 모았는데 모아놓고 보니까 이상하더라고요. 그런데 내 취향을 알고 나서는 꽤 괜찮아진 것 같아요.
언제쯤 취향을 발견하셨는데요?
일 년 전쯤?(웃음) 자기 취향을 아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 나는 음악도 그렇고, 인테리어든 뭐든 다양한 걸 좋아해서 선택을 못 해요. 그래서 힘들었는데, 일 년 전부터는 내 취향을 아니까 과감해지더라고요.
자신의 취향을 보니 김완선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굉장히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에스콰이어> 지면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모두 지우고 한 줄만 남긴다면, 어떤 걸 적을까요?
음….
요즘의 김완선? 오늘의 김완선?
그렇죠. 나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지금의 김완선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을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세요. 맨날 1980~1990년대로 끌려다니니까 지금도 괴롭고 싫증 나고 지겨워요.
왕관을 써보지 못한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요. 나도 그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지. ‘그거라도 있는 게 너무 다행이다. 그것도 감사하자’ 그런 마음도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사람은 항상 한 발 앞으로 가고 싶어 하잖아요. 제자리에 있기보다는.
유튜브 하실 생각 없으세요?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콘텐츠가…(한숨을 내쉰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지금부터 내 삶을 약간 다큐처럼 찍어볼까 해요. 찍는 대로 당장 보여주지 않고 내가 죽은 다음에 보여주면 어떨까 하고. 정말 김완선의 다큐. 얼마 전에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것도 찍고, 아까 화보 촬영했던 것도 찍고 그냥 계속 찍는 거지. 내가 찍고 싶은 게 이런 거예요. 그냥 지금의 삶. 이런 걸 하고 싶어요.
인터뷰하는 모습도 찍고 싶었는데,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 카메라를 꺼놨거든요. 아쉽다.
그러면 편집을 또 예쁘게 하면 되죠. 얼굴에 있는 모든 잡티와 주름을 잘 제거해주시고.(웃음)
준비 중인 앨범의 장르가 댄스라고 들었어요.
댄스가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떡하지?(웃음) 댄스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곡도 같이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노래가 먼저 나올지 모르겠어요. 그냥 되는 대로 순리대로 하려고요. 원래 성격이 별로 계획을 하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순리대로’가 ‘끌리는 대로’인 거죠?
아니, 순리대로는 자연스럽게 가는 거죠. 억지로 뭔가 하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꼭 뭐가 잘못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에서 크게 잡은 방향이 있어요?
어떤 장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고 밝은 마음이 들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정도.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발매한 싱글 앨범이 모두 슬프고 무거운 노래라 싫증이 나더라고요.
인터뷰 서문에 ‘요즘 김완선은 이지한 상태’라고 써야겠어요.
좋아요. 딱 지금 어울리는 말.
그런데 이지하다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이에요?
내가 편하다는 거죠. 내 마음 상태, 정신 상태, 몸 상태가 그냥 편안해요.
이제는 워커홀릭에서 벗어나셨나 봐요.
지금은 워커홀릭이 아니라 그냥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어릴 때는 정말 너무 힘들게 일만 했는데, 지금은 딱 재미있을 만큼만 해요. 많이도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