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와 웨이드와 나' 드웨인 웨이드를 추억하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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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와 웨이드와 나' 드웨인 웨이드를 추억하며

데뷔 17년차 드웨인 웨이드는 지난 4월 11일, 코트의 영웅을 마다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ESQUIRE BY ESQUIRE 2019.05.30

농구를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좋아하기 시작했다. 다섯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는데 연세대 ‘상민 오빠’를 심하게 좋아하다 보니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도 덩달아 파란 유니폼에 Y 글자만 보면 열광했다. 그러다 NHK에서 하는 NBA 농구를 보기 시작했다. 그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농구의 황제’ MJ였다. 그의 간결한 레그 스루 드리블,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한 페네트레이션, 유려한 페이드어웨이를 하나하나 눈여겨봤고 다음 날엔 어김없이 그의 플레이를 연습했다. 혀를 내밀고 하는 그의 시그너처 무브까지 흉내 낼 만큼 MJ를 따라 하던 나는 MJ가 다시 NBA 3연패를 이룩한 1998년쯤 학교 대표 선수로 농구 대회를 나갈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 시즌을 끝으로 MJ는 2차 은퇴를 선언했고 롤모델을 잃은 나는 상실감에 허전해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케빈 가넷,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나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의 가넷과 코비를 따라 해보고 싶진 않았다. 나의 롤모델 찾기는 고등학생 때 더욱 시들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대입 공부가 있었지만 좋아서 따를 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스포츠 신문에서 NBA 뉴스 정도만 챙겨 볼 정도로 NBA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갈 때쯤 드웨인 웨이드를 만났다. 웨이드는 2003년 데뷔하자마자 코트 위의 가장 빠른 선수란 뜻의 ‘플래시(The Flash)’로 불렸다. 돌파할 때 볼 간수 능력이 좋아 스틸을 당하지 않고 끝까지 골로 마무리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데뷔 전에는 무명의 마켓 대학교를 NCAA 파이널 4로 이끌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였다. 여기까지 얘기하니 웨이드와 많이 닮은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나의 원조 롤모델이었던 MJ였다. MJ는 더 이상 없었지만 가장 MJ를 닮은 웨이드를 좋아하며 다시 NBA에 빠지기 시작했고 모든 넷상의 아이디를 ‘wade3’로 바꿀 만큼 웨이드를 사랑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러 2018년이 됐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1998년 MJ가 은퇴를 선언했듯이 2018년 웨이드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의 소속 팀 마이애미 히트는 이전처럼 강팀이 아니었기에 웨이드는 정규 시즌 여든두 번째 경기에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며 그의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여전한 솜씨의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가장 화려할 때 코트를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결심을 응원하고 싶다. 지난 16년간 추억을 선물해준 드웨인 ‘플래시’ 웨이드 형에게 “고마웠어”란 말과 함께.

https://www.instagram.com/p/BwiRK0onmoG/?igshid=8v8prg4xv4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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