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가이 pH-1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pH-1은 더 이상 힙합만 고집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색이 있다고 했다. | 힙합,랩,래퍼,hiphop,pH-1

ORANGE IS THE NEW BLACK주황색은 pH-1의 시그너처 컬러가 됐어요. 반드시 주황색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뮤지션으로서 브랜딩에 도움이 될 색깔로 정한 거예요. 그래서 1화부터 모든 착장에 주황색 아이템 하나씩은 꼭 착용했어요. 주황색을 조금씩 보여주다가 마지막 경연곡을 ‘주황색’으로 내 아이덴티티를 완성하자, 이 색을 독점하자, 이런 계획이었어요. 누구나 어디서든 주황색을 보면 pH-1이 생각날 정도로.여전히 2차 경연에서 부른 노래 제목처럼 ‘Home Body’고요?네. 미국에서의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는 ‘불러도 안 나오는 애’로 통했어요. 뮤지션으로서 ‘홈바디’라는 정체성을 정한 건 제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나 대다수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아서였어요. 음악적으로도 누군가는 자극적인 소재를 쓴다든지 묘기 같은 랩을 하는데 저는 그런 음악에 매력을 못 느끼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요.그럼 잘 알려지지 않은 pH-1의 모습은 어떤 건가요?더 날카롭거나 거친 모습. 제 안에 그런 면이 확실히 있거든요. 제가 가사에 욕설을 안 쓸 뿐이지 속에는 화도 많고 시니컬한 면이 있어요. 이번 앨범의 ‘너무 싫어’나 그 전에 낸 ‘Hate You’가 그래요. 통통 튀는 비트 위에 짜증이 난 채로 막 싫다는 얘기를 하는 노래죠.최근 들어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모습이 있나요?‘나는 마음에 사랑이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자주 느껴요. 방송 이후 주위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 변하기도 하더라고요. 고마운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해요. 그리고 저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화가 나요. 계속 신경 쓰이고요. 저는 생각보다 긍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자처해서 경쟁의 연속인 에 참가한 사람의 말 같진 않은데요?그래서 제가 에 나간다고 했을 때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걱정했어요. “너랑은 안 어울리는 프로그램인데 괜찮겠냐”라고. 분명 경쟁심 불타오르는 사람이 많을 거고, 저는 평가받는 걸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속으로 되뇌었죠. 그러면서 그런 게 무서워서 못 나간다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지난 3월 말 발표한 는 첫 번째 정규 앨범이에요. 어떤 시작인 것 같아요?개인적으로는 아티스트로서 큰 발걸음을 내딛은 거예요. 저는 발표한 음악도 많고, EP도 낸 적 있고, 다른 뮤지션 피처링 참여도 많이 했지만 정규 앨범은 처음이니까요. 또 정규 앨범은 뮤지션에게는 하나의 명함이 되는 거고, 제 이름을 걸고 내는 첫 번째 오피셜 프로젝트잖아요. 그래서 ‘pH-1의 음악적 색깔을 잘 표현하자’ 이런 목적으로 만들었어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적 요소를 저만의 방식으로 편집해 pH-1이란 장르를 만들고 싶었어요.를 발표한 지 약 두 달이 지났어요. 앨범에 대한 예상치 못한 피드백이 있나요?‘정말 좋은 앨범이다’, ‘정말 잘 만들었다’ 이런 거. 좋은 앨범이란 피드백 자체가 예상외였어요. 저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 앨범 발표 몇 주 전부터 ‘사람들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아무도 안 듣겠지?’ 이런 걱정도 했거든요. 그래서 칭찬해주는 게 정말 신기하고 의외였어요. 특히 발표 당일 다른 뮤지션들이 샤웃 아웃(shout out)을 해준 건 더더욱. 그런 걸 보면서 ‘내 앨범을 좋게 생각해주는구나. 참 감사하네’ 이런 생각을 했어요.에 대해 ‘집돌이가 집 밖에서 겪은 관계에 대한 감정을 집으로 돌아와서 메모한 일기 같은 가사’라는 표현은 어때요?맞아요. 를 낸 직후에 했던 인터뷰에서 ‘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토픽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관계’라고 답한 적도 있어요. 저는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사로 적어요.작년 여름부터 의 전곡 프로듀서이기도 한 모키오와만 작업하고 있어요. 그가 그렇게 맘에 드는 이유가 뭐예요?첫 번째 이유는 모키오가 음악을 너무 잘한다는 거예요. 또 자기만의 음악 색깔이 너무 뚜렷한 뮤지션이고요. 그리고 드레이크 하면 프로듀서는 40가, 빈지노 하면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가 떠오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저와 잘 맞는 친구이자 뮤지션 모키오와 함께 가는 거예요.모키오가 힙합만 고집하는 뮤지션이 아니라서 pH-1과 더 잘 맞는 게 아닐까 짐작했어요.맞아요. 저도 굳이 타이틀을 정하라면 래퍼지만, 사실 제 음악의 기반은 힙합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제 음악은 힙합, 팝, 알앤비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거든요. 스스로도 정통 힙합 스타일만 고집하는 뮤지션이란 생각을 안 해요. 제 음악은 더 이상 100% 힙합이 아니거든요. pH-1의 말하듯 툭툭 뱉는 랩 스타일이나 가사의 성향에 대해 생각하다 떠올린 래퍼가 둘 있어요. 맥 밀러와 빅 션, 이 두 래퍼와 닮은 점이 있다는 말은 어때요?완벽한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맥 밀러와 빅 션이에요. 제이 콜까지 더하면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명의 뮤지션이고요. 빅 션은 말하듯이 힘 안 주고 랩하는 게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그리고 맥 밀러의 만사가 귀찮다는 듯 툭툭 뱉는 여유롭고 칠(chill)한 랩을 너무 좋아해요.더블 타이틀곡인 ‘Like Me’와 ‘Malibu’는 너무 다른 성향의 노래예요.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두 노래 중) 대중적인 노래가 압도적으로 이기면 답이 나와버려”라고 묘사할 만큼.‘Like Me’는 제 음악에서 대중적인 면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선물처럼 준비한 노래예요. 반면에 ‘Malibu’는 뮤지션으로서 음악적 욕심을 담은 노래고요. 개인적으로 더블 타이틀은 일종의 실험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딥’한 힙합곡인 ‘Malibu’가 인기가 많아서 놀랐어요. 이제 많은 분들이 만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힙합적인 사운드도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는 pH-1이 대중적인 요소와 자신만의 음악적 성향을 잘 조율한 앨범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정확해요. 제가 에서 얻은 장점이자 단점이 ‘싱잉 래퍼’라는 타이틀이에요. ‘싱잉 랩을 참 잘하는 뮤지션이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pH-1 노래하는 사람 아니야?’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제 옛날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저는 원래 랩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싱잉 랩은 제가 좋아하고 앞으로도 할 거지만, 그 틀 안에 갇히긴 싫은 거죠.을 통해 알려진 pH-1의 이미지에는 ‘착한 래퍼’라는 것도 있어요.그 이미지가 싫진 않은데 부담이 되긴 하죠. 제가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니까.(웃음) 모든 사람이 완벽하지 않듯이 저도 아주 바른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착하고 인성 바른 사람의 이미지로 나온 게 감사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요.가사에 힙합 특유의 마초 성향이 덜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가사에 욕설이나 성적인 표현이 없기도 하고.가사에 욕설을 쓰지 않는 건 제가 크리스천이라 종교적인 이유가 커요. 그래서 제 음악에서 듣는 사람이 불쾌하거나 공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말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해요. 저는 미국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한국에 왔는데 3개월 만에 하이어뮤직과 계약도 하고 커리어를 순탄하게 쌓고 있어요. 이런 게 다 제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센 가사를 쓰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를 뿐이죠.pH-1은 힙합 신의 중심에 있는 뮤지션이면서 대중적인 리스너의 취향도 설득할 수 있는 드문 래퍼가 아닐까 생각해요.저는 힙합 음악을 하기 전에는 밴드를 한 적도 있고 여러 가지 악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한때는 붐뱁(Boom Bap)처럼 센 힙합만 좋아한 적도 있고요. ‘래퍼는 노래하면 안 돼’, 이런 꼰대 마인드를 가진 적도 있어요. 그러다 점점 뮤지션으로서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너는 음악적 경험이 다양한데 그걸 왜 사용 안 하냐, 그걸 다 섞어서 너만의 색을 만들어’ 이게 스스로 준 미션이었어요.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들기도 해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저는 에 나가기 전부터, 그리고 촬영하면서도 방송 이후에는 제 인기가 줄어들 걸 예상하고 있었어요. 시청자로서 거품이 사라지는 걸 여섯 시즌 동안 목격했으니까요. 이에 대한 대비책은 늘 하던 대로 제 음악을 잘 준비하는 거예요. ‘방송을 통해 커진 인지도는 덤으로 받고, 늘 하던 대로 가자’ 이런 맘이었고 지금도 그래요. 그런 걸 힙합에서는 ‘허슬(hustle)’이라고 하죠? 허슬은 하이어뮤직 소속 뮤지션들의 특징이기도 하잖아요. ‘준원아, 빵 터질 필요 없어. 꾸준히만 하면 돼.” 박재범이 ‘Iffy’ 가사로 한 말처럼.곡을 자주 내진 않을 수도 있는데, 영리한 타이밍에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너무 자주 내면 뮤지션으로서 소모될 수 있으니까.그리고 박재범은 ‘주황색’ 가사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네가 예전에 고민을 했잖아. 내가 다 때가 있다 했잖아. 지금 봐, 나 점쟁이인가 봐.”되게 고마웠죠. 재범이 형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가사에 써줬구나, 생각했어요. 그 경연 무대 당시도 형이 늘 해줬던 말이 “네가 여기서 이기든 지든 중요한 게 아니야. 넌 이미 이긴 거야”였어요. 재범이 형은 당시 제 인지도가 오르는 걸 보면서 자기 일처럼 행복해하기도 했고요. 가사에 쓴 것처럼 “야! 봐봐, 내가 말했잖아. 너 잘될 거라 그랬잖아!” 그러면서.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원하는 대로 유명해진 기분이 어때요?당연히 좋은 점도 있지만, 저는 유명해지는 것과는 안 맞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해요. 부러워했고 원했던 건데 막상 그렇게 되니 힘든 점도 있더라고요. 제가 엄청 유명한 건 아니지만, 전보다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나니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저는 개인적인 공간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더 집에서 안 나오고 숨게 되는 것 같아요.그럼 활동 안 하고 쉴 때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래퍼 제이 콜처럼 살아보면 어떨까요? 활동 안 할 때는 산악인처럼 숨어 지내다가 돌연 멋진 음악으로 컴백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홈바디’의 삶.그건 너무 갔어요.(웃음) 저는 제 집이 더 좋아요.pH-1이 말하는 집은 서울인가요, 혹은 가족이 있는 롱아일랜드인가요?지금은 서울이죠. 여기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젠 서울에 적응했어요. 그래도 제 인생 전체로 봤을 때는 롱아일랜드예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밀집한 곳이자 늘 그리워하는 곳은 롱아일랜드의 우리 집이에요.공식 집돌이는 올여름을 어떻게 보낼 계획이에요?어떤 아티스트와 유닛 형태로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고 있어요. 아직 밝힐 순 없지만 함께하는 뮤지션은 싱어예요. 첫 곡은 여름을 겨냥한 노래가 될 거고요. 그 외엔 ‘수 셰프(Sous Chefs)’라는 이름으로 2년 전에 함께 협업 싱글을 낸 적 있는 래퍼 오왼 오바도즈와 올해 꼭 공동 앨범을 내자는 얘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