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포가 왔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이자카야가 지나간 자리.

이자카야가 귀환(!)했을 때 술꾼들은 이 새로운 술집을 탐구하느라 바빴다. 귀환이라는 건, 이자카야가 1960년대까지 서울과 부산에 잔존하던 식민지 문화였던 까닭이다. 대폿집과 이자카야가 상존했다. 이자카야란 말 그대로 일본식 술집이다. 오뎅(어묵) 팔고 다꾸앙(단무지) 주는 집을 당시 술꾼들은 종종 이자카야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시보리(물수건), 오봉(쟁반)과 함께. 이자카야의 귀환을 ‘투다리’부터 봐야 한다는 학설도 있다. 아, 전설의 투다리. 얼핏 들으면 영어식 이름 같고, ‘다리’가 있으니 한글이며, 일본어 뉘앙스도 슬쩍 풍겼다. 닭꼬치를 판다고 하여 ‘투다리’인 것일 텐데 지금도 한국 곳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장사하고 있다. 투다리가 이자카야의 한 버전이라고 주장하는 설은 닭꼬치와 오뎅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투다리가 이자카야의 전형이라고 굳게 믿었다. 한국 중국집에서 짜장과 매운 짬뽕을 먹다가 본토 중국집에서 희한하고 별난 요리를 목도한 중국행 관광객처럼 여행 자유화는 우리에게 이자카야의 진면목도 보여주었다. 다양하고 맛있는 안주, 기막힌 회와 생선 요리, 그리고 공짜 안주는 절대 없다는 일본식 주점 문화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일식집이 아닌, 일본 현지에서 갈고 닦은 솜씨로 귀국한 유학생 출신들이 연 이자카야는 다시 술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게에 들어서면 귀청이 떨어져라 ‘이럇사이마셰’를 외치고, 오뎅에 문어와 소 심줄이 들어가고, 회가 아니라 사시미라고 불러야 하고, 초장이 없고, 정종 대신 사케라고 불러야 대접받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됐다. 블로거 형님들은 재빨리 광어가 아니라 히라메, 도미가 아니라 타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걸 깨우쳤고, 튀긴 두부에 소스를 끼얹을 뿐인 아게다시 도후와 시메사바의 맛을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새로운 술 문화에 열광했죠. 손님들이 줄을 섰으니까요. 아, 어려움도 있었어요. 사시미를 시키곤 이내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죠. ‘쓰키다시 좀 많이 주쇼. 매운탕 얼큰하게 끓여서 얼른 주고.’”

술 마시는 사회, 대한민국은 이자카야의 천국이 되었다. 치킨 한 마리가 1만5000원인데 닭 가라아게는 3분의 1마리에 2만원인 이유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이자카야니까. ‘이랏샤이마셰’라고 외치지 않는가. 더구나 제대로 하는 집들이 진짜 있(었)다. 온갖 산지에서 재료를 올리고, 일본산 양념을 개인적으로 공수해가며, 힘들게 배운 요리 기술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한국의 일식 수준은 이들에 의해 적어도 서너 단계는 껑충 뛰었다고 생각한다. 진짜다. 깊이 감사한다. 그 덕에 우리는 일본에 가서 높은 품질의 이자카야에 들러도 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악화는 늘 양화를 구축한다. 이자카야 판에 ‘◦◦마트’파라는 게 있다. 일본 식재료 수입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파벌을 말한다. 온갖 마법의 기성 소스와(나가사키 짬뽕엔 그저 파우더를 뿌리면 되죠), 심지어 꼬치로 구울 필요도 없이 쪄서 석쇠 자국을 박아서 내는 닭꼬치 완제품도 있으며(띵! 전자레인지로 3분만 돌리세요), 시메사바 따위는 완제품을 냉동으로 받아서 해동만 하면 되는 그런 집들.

사람들은 지루해졌다. 어차피 우리 술집 문화도 아니니 싫증도 빨랐다. 현명한 요리사들은 새로운 것을 공급해야 했다. 오마카세가 대변하는 고급 스시집의 아성을 피해서 색다른 걸 공급해야 했다. 그래! 갓포 요릿집이다. 갓포란 ‘割烹(할팽)’의 일본어 발음이다. 자르고 삶는다, 즉 요리한다는 뜻이다. <맹자>에도 이 말이 나온다. 동양 삼국이 모두 이 용어를 쓴다. 일본에선 의미가 좀 다르다. 형식미가 강하고 지나치게 비싼 가이세키와 요정 요리 아래, 좀 더 자유로우며 카운터에서 요리사와 대면해서 마실 수 있으며, 값도 좀 싸고, 품질은 최상급인 그런 요릿집. 원래 먹는 거 좋아하는 간사이 오사카에서 1920년대 이후 히트 치기 시작한 요릿집이다. 이자카야도 고급이 있으므로 그 정도 수준이라고 봐도 되고, 조금 더 비싸고 격식 있는 편이라고 해도 좋다. 온갖 일식 요리집이 꽤 괜찮은 수준으로 서울에서 번져간다. 갓포집은 이제 더 많아질 것이다. 외워야 할 요리 용어와 재료 이름이 늘어간다. ‘가쓰오 와라야키 다다키’ 같은 것도 외워야 한다. 서울에서 미식가 노릇을 하려면 말이다. 절대 가다랑어 짚불 구이라고 하면 안 된다. 명심하시길.

이자카야가 지나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