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자벨 마랑을 만나다

이자벨 마랑과 서울에서 나눈 대화.

BYESQUIRE2019.07.15

나의 첫 이자벨 마랑은 11년 전에 산 오버사이즈 코트다. 10년 넘게 잘 입는 옷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당신 옷은 지금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브랜드를 만든 지 벌써 25년이 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당신처럼 내 옷을 오래도록 잘 입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 행복했다. 정말 좋은 건 테일러링 재킷을 좋아하는 사람과 티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이자벨 마랑을 즐겨 입는다는 거다. 이자벨 마랑은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를 말하는 브랜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취향이든 존중하고 디자인할 때도 늘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이자벨 마랑이 쉬운 옷은 아니다. 개성이 확실하고 실루엣도 평범하지 않다. 색과 프린트도 과감하고. 그럼에도 매일 입을 수 있다. 입을 때마다 나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파티에서 입는 옷이 꼭 블랙 미니드레스일 필요는 없고, 출근할 때 다들 비슷비슷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국적, 세대, 상황에 따라 옷을 구분하고 스타일에 경계를 만드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도 않고. 우리는 직접 운전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고, 퇴근 후 저녁 모임에도 가야 한다. 여러 상황과 장소에 따라 번거롭게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어디서든 자신감 있게 하는 스타일, 매일매일 입을 수 있고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스타일이 좋다.

이자벨 마랑은 유행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트렌드를 따라 이리저리 바뀌지 않고 늘 당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그게 또 늘 사랑받는다.

우리가 유행이라는 증거다. 이자벨 마랑의 카피는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도 입는 오버사이즈 코트, 웨지 스니커즈, 워싱한 데님 재킷, 아노락 점퍼의 카피 제품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유행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이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 물론 다 신경 쓰고 있겠지만.

사람들은 ‘프렌치 시크’라고 하면 ‘난 신경 안 써’ 같은 태도를 떠올린다. 줄담배를 피우고, 늘 와인을 마시고, 꾸미지 않았는데도 섹시하고, 운동은 전혀 안 하지만 살이 찌지 않고. 하지만 알아둬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척 신경 쓰고 있다. 그게 바로 프렌치 시크의 비밀이다. 나도 그렇고. 난 메이크업을 하지 않지만 규칙적으로 피부 관리를 하고, 염색을 안 하지만 고집하는 샴푸가 있다.

 

 

2018 S/S 시즌부터 남성복도 선보이고 있다. 남성복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자벨 마랑 옴므를 론칭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무척 놀랐지만 내겐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오래전 이미 남성복을 만든 적이 있다. 주로 니트웨어와 티셔츠였는데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이다. 다시 입기엔 너무 낡았지만 내 오랜 친구들은 그 옷들을 볼 때마다 다시 남성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체구가 작은 남자들이 이자벨 마랑 여성복을 즐겨 입기도 했고. 나는 늘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흔적을 컬렉션 곳곳에서 발견했을 거다. 이자벨 마랑과 이자벨 마랑 옴므는 닮은 구석이 많다.

남성복을 만들 때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콘이 있나?

뮤즈가 있었던 적은 없다.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이미지로 머릿속이 가득 차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된다. 물론 늘 사랑하는 남자는 몇몇 있다. 세르주 갱스부르의 스타일이 제일 섹시하고, 믹 재거의 애티튜드를 지향하고, 데이비드 보위가 그립다. 이 남자들은 모두 매스큘린하면서도 페미닌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당신은 록 스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은 일할 때는 영감을, 삶에는 휴식을 준다.

라이프스타일 관련 제품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컵, 노트, 라이터, 가드닝용품. 이자벨 마랑이 가구를 만든다면 그것도 무척 근사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이자벨 마랑, 이자벨 마랑 에뜨왈, 이자벨 마랑 옴므, 모든 슈즈와 가방까지 다 관여한다. 두 달 반 주기로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면서 모든 창의력을 쏟아내기 때문에 더 이상은 여유가 없다.

그렇게 바쁜데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나? 당신은 스타일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영감 그 자체이기도 한데.

패션 너머의 삶을 지킨다. 계속 압박에 싸여 있을 때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울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금세 안정을 찾는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가졌고, 그게 모든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적게 가진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내가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행복하다. 덕분에 나의 월요일은 스트레스로 가득하지 않다. 패션 너머에도 나의 삶이 있다고 느껴지니까.

패션 디자이너라서 즐거운 때는 언제인가?

한눈에 시선을 끄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 이자벨 마랑을 입은 걸 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