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서점의 창밖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비가 오면 사람도 온다. 비 오는 날의 서점 풍경. | 서점,창밖,시집 서점,유희경,시인

  비가 오려나 하는 기대로 창밖을 본다. 순식간에 깜깜해지더니 몇몇 사람이 이마를 가리고 뛰어간다. 서점 앞에 내놓은 입간판을 걷으러 바깥에 나갔을 땐 이미 빗방울이 굵다. 금세 젖은 어깨를 털어내고 자리에 돌아와 빗소리를 듣는다. 타닥대는 소리가 무언가 타는 것도 같고, 그러니 탄내가 나는 것도 같지만 지금은 비가 내리는 중. 창밖 모든 것이 젖어가고 있다. 어느새 서점 처마 아래에 고등학생 셋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문을 열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교복에서 나의 어린 시절 냄새를 맡는다. 더는 권하지 않고 서점 안으로 들어온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운다.     내가 지키고 있는 곳은 동양서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195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내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많은 셈이다. 한국에서, 그것도 서점이 이만큼의 시간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참 빨리 부수고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이며 서울이라는 도시다. 물론 이 서점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작년 12월에 건물 내부를 수리했다. 그 시기에 맞춰 내 서점이 2층으로 이사했다. 내 서점의 이름은 위트 앤 시니컬. 시집만 취급하는 서점이다. 처음에는 흔히 이대앞이라고 하는 신촌기차역 부근에서 문을 열었다. 시집 500권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다. 3층에 있었는데 거기에도 커다란 창문이 있어 종종 빗소리를 들었다. 처마 아래에 아이들이 서 있던 적은 없었지만.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날 때쯤 동양서림 사장님과 만나게 되었고 함께하기로 했다. 1층에는 동양서림, 2층에는 위트 앤 시니컬이 자리한 구조다. 두 서점은 좁다란 나선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나는 내 서점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서점 내 자리에 앉아서 쓰고 읽고 딴짓하며 이따금 졸기도 한다. 그렇지만 1층 동양서림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저 창문 때문이다. 혜화동로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저 창문 위로 구름이 나타났다 떠내려가 사라지고, 새잎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그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며, 지금처럼 비가 내린다. 물론 2층에도 제법 큰 창문이 넷이나 있지만 아쉽게도 보이는 것은 아파트 담벼락뿐이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1층에 내려와 동양서림 계산대를 지켜야 할 때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창밖을 본다. 매일매일의 사람들, 매일매일의 계절, 매일매일의 날씨, 많은 것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무엇 하나 같은 게 없고 매번 다르다. 오늘 내린 비만 해도 며칠 전 비와 달라서 보다 순하고 더 축축하다. 오래 창문을 내다본 사람은 그것을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다른 서점은 어떤지 모르겠다.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비가 오는 날 독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거운 구름과 눅진한 습기가 사람들 마음에 시를 불러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때로 익숙한 얼굴이 찾아오면 비 오는 날 서점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당사자도 왜 하필 비가 오는 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이곳을 찾아오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 나도 알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알겠는 것은, 비가 오면 독자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는 사실뿐이다. 반면 묘하게도 햇살 쨍쨍한 날씨에는 공 치기 십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날씨가 너무 좋아 다들 놀러 나가는 모양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니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가만히 혼자 두는 이 날씨를. 그리하여 묵묵하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마음을 접을 수 있는 이 날씨를. 시를 읽는 독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런 날씨를.   금방 비가 그쳐버렸다. 여름비는 이런 모양이다. 구름 사이사이로 부챗살 볕이 퍼져가고, 여전히 혜화동로터리를 돌아나가는 자동차들. 벌써 몇몇은 우산을 접고 걸어간다. 우산을 쓴 사람들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연인들뿐이다. 종이 ‘딸랑’ 하고 울린다. “덥네” 하며 누군가 들어선다. 그러게. 비가 몇 번 더 내리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