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지키고 있는 곳은 동양서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195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내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많은 셈이다. 한국에서, 그것도 서점이 이만큼의 시간을 쌓아 올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참 빨리 부수고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이며 서울이라는 도시다. 물론 이 서점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작년 12월에 건물 내부를 수리했다. 그 시기에 맞춰 내 서점이 2층으로 이사했다. 내 서점의 이름은 위트 앤 시니컬. 시집만 취급하는 서점이다. 처음에는 흔히 이대앞이라고 하는 신촌기차역 부근에서 문을 열었다. 시집 500권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다. 3층에 있었는데 거기에도 커다란 창문이 있어 종종 빗소리를 들었다. 처마 아래에 아이들이 서 있던 적은 없었지만.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날 때쯤 동양서림 사장님과 만나게 되었고 함께하기로 했다. 1층에는 동양서림, 2층에는 위트 앤 시니컬이 자리한 구조다. 두 서점은 좁다란 나선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나는 내 서점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서점 내 자리에 앉아서 쓰고 읽고 딴짓하며 이따금 졸기도 한다. 그렇지만 1층 동양서림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저 창문 때문이다. 혜화동로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저 창문 위로 구름이 나타났다 떠내려가 사라지고, 새잎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그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며, 지금처럼 비가 내린다. 물론 2층에도 제법 큰 창문이 넷이나 있지만 아쉽게도 보이는 것은 아파트 담벼락뿐이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1층에 내려와 동양서림 계산대를 지켜야 할 때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창밖을 본다. 매일매일의 사람들, 매일매일의 계절, 매일매일의 날씨, 많은 것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살피면 무엇 하나 같은 게 없고 매번 다르다. 오늘 내린 비만 해도 며칠 전 비와 달라서 보다 순하고 더 축축하다. 오래 창문을 내다본 사람은 그것을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다른 서점은 어떤지 모르겠다.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비가 오는 날 독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거운 구름과 눅진한 습기가 사람들 마음에 시를 불러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때로 익숙한 얼굴이 찾아오면 비 오는 날 서점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당사자도 왜 하필 비가 오는 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이곳을 찾아오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 나도 알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알겠는 것은, 비가 오면 독자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는 사실뿐이다. 반면 묘하게도 햇살 쨍쨍한 날씨에는 공 치기 십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날씨가 너무 좋아 다들 놀러 나가는 모양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니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가만히 혼자 두는 이 날씨를. 그리하여 묵묵하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마음을 접을 수 있는 이 날씨를. 시를 읽는 독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런 날씨를.
금방 비가 그쳐버렸다. 여름비는 이런 모양이다. 구름 사이사이로 부챗살 볕이 퍼져가고, 여전히 혜화동로터리를 돌아나가는 자동차들. 벌써 몇몇은 우산을 접고 걸어간다. 우산을 쓴 사람들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연인들뿐이다. 종이 ‘딸랑’ 하고 울린다. “덥네” 하며 누군가 들어선다. 그러게. 비가 몇 번 더 내리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