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속도전의 도시에서 지난해 내추럴 와인이 가장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몹시 기묘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다급하며, 유기농 식사는 거의 불가능하고, 화가 많이 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끔 설계되었다. 이토록 언내추럴한 도시에 내추럴 와인이 위풍당당하게 개선장군처럼 밤을 장악한 풍경은 조금도 내추럴해 보이지 않았다. 주거 공간과 식사와 사람과의 관계, 그다음이 술이 아닌가 했다. 그러니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처음부터 반갑지 않은 마음으로 내추럴 와인을 목격한 데다 말 오줌과 모기약 풍미가 강렬한 와인만 연속으로 고르는 불운이 닥친 덕에 내 일상에 내추럴 와인이 개입할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순간도 기억난다. 그런데 어젯밤 나는 프랑스에서 함께 포도밭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들과 여섯 병이 넘는 내추럴 와인을 마시고 지금 숙취 없는 상태로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지난달에는 머릿속을 맑은 가을 하늘로 가득 채우는 루아르의 화이트 와인을 만났다. 쥐라의 사바냉은 지역과 품종을 고스란히 반영한 맛이라 유독 깨끗하고 영롱하다는 것 말고는 내가 마셨던 맛있는 와인들의 조건과 거의 일치했다. 나는 그 와인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고, 와인 숍에 온 고객들에게 추천해주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기회라든가 깨달음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문을 열어주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회현동의 와인 바 피크닉에서 일하는 소믈리에 클레멍은 시음회에서 만나 내가 던진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마시는 와인이라면 적어도 최소한은 유기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말 오줌, 갑작스러운 트렌드, 라벨의 현혹 같은 말로 내추럴 와인을 어렵게 배배 꼬았던 나의 고지식한 세계를 산산조각 냈다. 그저 음식의 일부인 내추럴 와인을 깊이 고민하다 보니 마치 종교처럼, 종파 싸움처럼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형태로 변질된 것이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이 유독 강렬하고 폭발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서울에 머물고 있었고.
우리가 내추럴 와인에서 찾아야 할 진실은 딱 하나, 자연에 위반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와인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 맛있는 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맛있어야 한다. 지난달 강렬한 더위를 뚫고 부르고뉴에서 만난 내추럴 와인메이커 샹탈 레스퀴르(Chantal Lescure)는 “꿈꿈하고 꼬릿꼬릿하며 오래된 마구간 냄새로 표현되는 브레타노미세스(Brettanomyces) 효모가 와인 향을 압도할 정도로 거친 경우 그건 좋은 와인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추럴 와인이지만 할머니가 만드는 포도주가 아닌 식품이며 상품이기 때문에 마실 수 있는 상태의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와인메이커의 기본이고, 소비자는 잘못된 와인의 맛과 향에 의문을 가지고 본인의 선택이 맞는지 틀리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다는 기준은 각기 너무나 다르지만, 반대로 나는 맛처럼 보편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서너 가지 와인을 두고 테이스팅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정말 맛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와인이 있다. 그런 와인의 경우 대개 그 포도밭이 귀한 곳이며, 만든 사람의 열정과 애정이 다른 와인메이커보다 뛰어나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해도 그 안에 더해지는 환경의 요소가 와인을 더 맛있게 한다. 그것을 인지하고 숨은 이야기를 찾아나설 때 내추럴 와인을 방금 밭에서 딴 상추로 만든 샐러드처럼 맛있고 건강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루아르에서 만난 마리에트와 알베릭(Mariette & Alberic)은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들만의 세 평짜리 천국에서 도란도란 사랑하며 ‘침용의 밤(Nuit de
Mac´eration)’ 같은 아름다운 와인을 만드는데, 한 모금 마시면 정말로 밤의 양조장에서 포도와 함께 발효의 순간을 보내는 신비한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마법이지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내추럴 와인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데 어떤 표현이든 그 세계를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추럴 와인>을 쓴 저자 이자벨 르쥬롱은 “내추럴 와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본래의 와인인데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책에는 샴페인 생산자 앙셀므 셀로스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와인에 아황산염을 넣어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행위는 전두엽을 제거해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라며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빗대 말했다. 나에게도 내추럴 와인을 쉽게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중 하나는 ‘고대의 암포라 토기에 한 송이 포도를 넣어두었는데, 모두들 잊고 있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발효된 포도즙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한 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을 맑은 가을 하늘로 가득 채우는 루아르의 깨끗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마시다 보면 우리는 수다나 소란스러움 없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최전방의 도시에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폭풍 같은 한 해를 보냈으니 이제 정말 고요하게 마실 때다. 그저 와인이 들려주는 보글보글하고 정직한 발효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