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디모레 스튜디오 말하는 위대한 실내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실내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는 곳. 그중에서도 듀오 디자이너 디모레 스튜디오의 손길이 스친 실내는 사람이 아름답게 살거나 우아하게 일하는 공간이 된다.

디모레 스튜디오의 듀오 디자이너 에밀리아노 살치와 브릿 모란.

디모레 스튜디오의 듀오 디자이너 에밀리아노 살치와 브릿 모란.

듀오 디자이너 에밀리아노 살치(Emiliano Salci)와 브릿 모란(Britt Moran). 디모레 스튜디오를 이끄는 이들의 작업을 글로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디모레 스튜디오는 패션과 인테리어를 사랑하는 이들(가령 펜디 일가, 소니아 리키엘, 혹은 매년 4월 열리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를 순례하는 자들)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활기차지만 세련되고, 혼란스럽지만 지적이며, 부담스러운 과장과 우아한 풍성함은 다르다는 점을 아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말이다. 가구와 패브릭을 디자인하고 숍부터 주택 인테리어까지 실내, 아니 일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아우르는 디모레 스튜디오의 작업은 글로도, 말로도 필요 없이 직접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디모레 스튜디오가 남긴 인테리어 디자인의 정수를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그들의 손길이 닿은 공간부터 먼저 읊어본다.
우선 런던 메이페어에 자리한 더 아츠 클럽. 방문객은 핑크 로즈빛 거울로 채워진 터널을 지나 농밀한 붉은빛 커튼과 대나무 칸막이로 이뤄진 은신처에 도달한다. 레트로풍 스트라이프 장식의 황동 테이블 옆에는 에로 사리넨의 튤립 체어가 자리해 있고, 의자 위에는 고급 실크 브랜드 만테로의 야자수 패턴 직물이 놓여 있다. 자칫하면 두통을 유발할 만큼 강렬한 요소들이건만 디모레 스튜디오의 능수능란한 손길이 스쳐간 뒤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완성되었다.
밀라노의 편집숍형 백화점인 엑셀시오르도 있다. 원래 아르데코풍 극장이던 건물을 건축가 장 누벨이 하이테크적으로 재해석하고 여기에 디모레 스튜디오가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더했다. 카펫이 덮인 고전적인 계단은 현대적인 유리 벽과 이어지고, 전구가 알알이 박힌 거울이 자리한 고고한 피팅 룸에는 합판을 뒤섞었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한 발자국 늦었다. 빅토리아 시크릿 아웃렛에 자리를 내주느라 엑셀시오르는 지난겨울 사라져버렸다. 쇼핑객들은 가장 즐거운 경험 하나를 빼앗겼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디모레 스튜디오(이탈리아어로 ‘디모레’는 ‘거주’라는 의미다)의 주거 프로젝트가 세계 곳곳에 형형히 남아 있다. 그중에는 에밀리아노 살치와 브릿 모란이 1년 전에 이사한 새 공간도 있다. 디모레 갤러리라 이름 붙은 이곳은 환상적인 빈티지 가구의 컬렉션장이나 마찬가지다.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크롬 골조에 양털을 입힌 암체어, 조 폰티가 디자인한 1930년대 옷장, 이그나치오 가르델라가 디자인한 1960년대 플로어 램프가 어우러진 디모레 갤러리. 시대를 넘나들면서도 조화롭다.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크롬 골조에 양털을 입힌 암체어, 조 폰티가 디자인한 1930년대 옷장, 이그나치오 가르델라가 디자인한 1960년대 플로어 램프가 어우러진 디모레 갤러리. 시대를 넘나들면서도 조화롭다.

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최근 10년 동안의 인테리어 판도, 나아가 시대정신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듀오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편이 가장 쉽다. 1990년대 인테리어는 흰색 벽과 고광택 소재로 이뤄진 미니멀리즘으로 정의된다. 2000년대는 레트로적 아이러니와 원색의 편안함으로 정의되고 이후 최근 10년은 1950년대 티크와 공장 느낌의 벽돌로 규정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 모든 트렌드와 정의를 배제한 일명 ‘힙스터 룩’이 급부상했다. 강렬한 색채, 과감한 프린트, 각기 다른 형태와 질감의 조화. 디모레 스튜디오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으면서도 품 안에 와서 안기는 듯 사랑스러운 시선을 전했다. 그것이 힙스터 룩. 에르메스, 보테가 베네타, 포멜라토, 라루스미아니, 볼리올리 등 파워 하우스 브랜드들이 디모레 스튜디오를 찾는 이유다.
에밀리아노 살치는 이탈리아 출신이고 브릿 모란은 미국 출신이다. 내향적인 이탈리아인(다소 오해일 수 있지만)과 싹싹한 미국인, 짙고 까칠하게 자란 수염과 곱슬머리 금발. 두 사람은 겉보기에 기묘한 대비를 이루지만 이들이 나고 자란 배경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살치의 아버지는 토스카나 아레초에서 유명한 현대 가구점을 운영했고 모란의 아버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애시보로에서 바닥재 회사를 운영했다. 두 아버지 모두 고가구를 수집했다.
살치와 모란의 첫 만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대 예과생이던 모란은 이탈리아인 친구 집을 찾아 밀라노로 왔다. ‘의대에서 앞으로 몇 년은 보낼 테니 1년만 쉬어야겠다’ 생각했다던 모란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 1년의 휴식 계획이 긴 안식년이 돼버렸죠.”
모란은 휴학 기간 동안 영어 교사, 그래픽 디자이너 일을 하며 보내다 가구 브랜드 카펠리니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살치를 소개받았다. “서로 공통된 친구가 몇몇 있었어요. 우리는 가구와 디자인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했죠. 둘 다 변화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당시 살치가 막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내게 도와달라고 했죠. 그때 저는 ‘이 일이 잘되면 함께 다른 뭔가를 또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밀라노 브레라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그것이 공식적으로 디모레 스튜디오의 탄생이다. 2003년의 일이었다. 여러 젊은 디자인 에이전시가 그러하듯 디모레 스튜디오 역시 초기 프로젝트들은 알리지 않고 신중히 진행했으나 입소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업계 사람들이 점차 디모레 스튜디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디스퀘어드2의 딘&댄 케이든도 그중 하나였다. 초창기부터 디모레 스튜디오에 작업을 의뢰해온 케이든 형제가 이들과 처음 작업한 때를 떠올렸다. “여러 해 동안 디모레 스튜디오의 작업을 열렬히 흠모해왔어요. 우리는 디스퀘어드2를 가장 따뜻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죠. 우리 고유의 분위기를, 우리가 수집해온 경험과 취향을 더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디모레 스튜디오의 인테리어 취향이 우리가 찾던 바로 그것이었죠.” 그 결과 디스퀘어드2 밀라노 본사 꼭대기에 체레시오7 레스토랑이 탄생했다. 각진 황동제 조명과 나지막한 벨벳 가구, 오묘한 페트롤 블루빛 벽, 그 벽에 우아하게 걸린 사진과 그림…. 이 아름다운 실내는 수영장과 마주하고 있다. 체레시오7은 순식간에 유명 인사들의 집합소이자 디모레 스튜디오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모란이 덧붙였다. “그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마치 트램펄린과 같았죠.”


2019년 4월에 열린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 기간 동안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모레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비시오니(Visioni)>. 가브리엘라 크레스피의 가구와 램프를 단독으로 선보였다.

2019년 4월에 열린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 기간 동안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모레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비시오니(Visioni)>. 가브리엘라 크레스피의 가구와 램프를 단독으로 선보였다.

밀라노는 언제나 스타일리시한 도시다. 하지만 밀라노라면 죽고 못 사는 ‘멋쟁이’마저도 밀라노가 정말로 쿨한 시절은 오래되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라노가 가장 스타일리시했던 전성기는 톰 포드가 베르사체와 구찌의 디렉터이던 시절, 1990년대다. 인테리어 디자인 관점에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 멤피스 그룹이 재치 있는 미학으로 세계를 정복하던 시기를 되짚어야 한다. 그 이후의 이탈리아 디자인은 돈이 되고 안전한 곳만을 향해 크게 후퇴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기묘하게 호화롭고, 요상하게 전통적이며, 유쾌하게 회고적인 새로운 이탈리아 감성이 나타나고 있다. 패션에서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는 디모레 스튜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살치와 모란은 다시 젊어진 밀라노 디자인 분야의 스타가 되었다.
그와 다르게 밀라노 비아 솔페리노에 자리한 디모레 갤러리는 수십 년 동안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디모레 갤러리가 자리한 건물은 본래 화가 체사레 안드레오니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체사레 안드레오니는 1900년대에 활동한 미래주의 화가다. 철저히 밀라노스러운 이 건물은 치장 벽토로 단장돼 있고 차분하지만 웅장하며 정원으로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문이 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디모레 갤러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원래 살치의 개인 집이었던 이곳의 벽은 잘 익은 알밤색으로 칠해져 있다(색은 매년 바뀐다. 2017년에는 연분홍빛, 그 전년도에는 잉크처럼 짙은 미드나이트블루였다).
 디모레 갤러리의 한 공간. 뿌리목과 스모크 글라스(연기를 쐬어 어둡게 만든 유리)로 이루어진 선반은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했다. 선반 앞에 가늘고 길게 늘어진 1970년대 샹들리에는 현대미술가 마리요 야지와 스튜디오 사이먼의 협업 작품. 1920년대 흑단색 테이블은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의 디자인. 1960년대 암체어는 모더니즘의 아이콘 워런 플래트너의 디자인. 1970년대 플로어 램프는 가에 아울렌티의 디자인.

디모레 갤러리의 한 공간. 뿌리목과 스모크 글라스(연기를 쐬어 어둡게 만든 유리)로 이루어진 선반은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했다. 선반 앞에 가늘고 길게 늘어진 1970년대 샹들리에는 현대미술가 마리요 야지와 스튜디오 사이먼의 협업 작품. 1920년대 흑단색 테이블은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의 디자인. 1960년대 암체어는 모더니즘의 아이콘 워런 플래트너의 디자인. 1970년대 플로어 램프는 가에 아울렌티의 디자인.

갤러리의 여러 공간 중 방 하나는 최근 디모레 스튜디오가 론칭한 패브릭 라인으로 채워져 있다. 3차원 패턴 혹은 국화, 붓꽃, 낙원 속 새들이 흐드러진 자카르와 실크 제품들이다. 다른 방에는 디모레 스튜디오가 모은 빈티지 물품(조금만 나열하자면 미국의 가구 디자이너 폴 에반스가 1970년대에 만든 황동 테이블,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가 디자인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사이드보드, 이탈리아 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의 흔들의자, 조명 디자이너 안젤로 렐리의 1950년대 유리 램프 등)과 더불어 이들이 직접 디자인해 뿌리목으로 만든 책장, 초록빛 베르데 알피 대리석과 황동으로 만든 액세서리, 전면에 사진이 프린트된 마호가니 캐비닛 등이 어우러져 있다. 마치 어느 미술관에 온 것 같다.
“그땐 우리 둘뿐이었어요.” 모란은 혀를 내두르며 갤러리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지금은 팀원이 거의 40명이죠. 우리는 각자의 일에 대해 균형점을 찾았어요. 에밀리아노는 모든 창조적인 활동을 이끌고, 저는 측면에서 운영을 좀 더 책임지죠.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이끌어가려고 해요. 가끔 나 혼자서 결정을 내린다면 환상적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모란은 웃었다. “하지만 바람직한 위원회 같은 믿을 만한 사람을 두는 건 아주 필요하죠. 우리는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엄청나게 운이 좋은 거죠.”
모란은 ‘운이 좋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운이라는 것은 어떠한 분야나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결정하는 데 늘 작용해온 필수 불가결의 요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디모레 스튜디오가 제시하는 현실도피주의, 클래식한 글래머를 원하는 소비자는 별로 없었다. 2016년이 되어서야 펜디가 로마의 플래그십 스토어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그웨나엘 니콜라와 디모레 스튜디오에 맡겼다. 펜디의 로마 플래그십 스토어는 본래 디올, 샤넬, 불가리와 같이 수많은 파워 하우스의 스토어 건축과 인테리어로 저명한 피터 마리노가 꾸몄다. 마리노에서 디모레 스튜디오로. 실내 디자인의 수문장을 교체할 때 이보다 더 극명한 신호는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청록색 암체어는 에우제니오 체릴리가 디자인한 것. 1970년대 테이블은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가 디자인했다. 조 폰티가 디자인한 사이드보드 위에 설치한 샹들리에는 지노 사르파티의 1960년대 디자인. 무라노 유리로 만들었다.

1970년대 청록색 암체어는 에우제니오 체릴리가 디자인한 것. 1970년대 테이블은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가 디자인했다. 조 폰티가 디자인한 사이드보드 위에 설치한 샹들리에는 지노 사르파티의 1960년대 디자인. 무라노 유리로 만들었다.

디모레 스튜디오의 작업에서는 데이비드 힉스, 필립 스탁, 데이비드 콜린스 같은 디자이너들의 DNA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장르와 시대를 제멋대로 혼합해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살치와 모란이 빚어내는 인테리어는 필립 스탁이 선보이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적인 판타지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항상 고객과 만나고, 공간을 방문하고, 공간의 특징과 주변 건물, 도시 및 분위기를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살치가 디모레 스튜디오가 작업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다음 무드보드를 만들고 프로젝트의 기술적 부분을 시작하죠.”
디모레 스튜디오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에 비하면 무드보드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하게 들린다. 디모레 스튜디오의 고객은 자신이 의뢰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에 앞서 아름답게 장정된 책을 받는다. 프로젝트의 기준점이 빼곡히 담긴 책이다. 예를 들어 런던의 더 아츠 클럽의 무드보드에는 1950년대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나이트클럽부터 2000년에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화양영화>까지 담겨 있다. 무드보드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는 원하는 색채를 구현하기 위해 직접 페인트를 조색하여 물 빠진 녹색, 시클라멘꽃을 닮은 붉은색, 타오르는 불꽃의 노란색, 비 오기 전날의 노을색, 설백색, 알밤색 등등 빅토리아 시대 어느 화가의 팔레트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색을 만들어낼 정도로 세심히 일한다.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예술가예요.” 모란이 말했다. “그들과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들이 ‘아니요’라고 말하는 걸 들을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야 해’ 또는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식이에요. 항상 ‘가능하게 해보자’라는 태도예요.”
지난 몇 년 동안 디모레 스튜디오는 파리, 멕시코, 밀라노의 럭셔리 호텔을 디자인하고, 빈티지 안경 프레임의 대명사 올리버피플스를 위해서는 안경을, 시르 트루동을 위해서는 향초로 가득한 부티크를 만들어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매해 세계 최대의 디자인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에 초대받고 참석하며 이들의 명성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밖에서 사진기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진 않아요.” 모란이 장난스레 반박한다. “우리는 그리 유명하지 않아요.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에는 2005년부터 매년 참석하고 있어요. 우리 이름을 드러내기에 좋은 방법이죠. 제 동료이지만 살치는 객관적으로도 아주 창의적이에요.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는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그 표현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창구이고요. 우리가 처음 참석했을 때보다 훨씬 거대한 행사로 성장했죠. 아시겠지만 작년 박람회에서는 우리 전시 공간에 1만2000명이 방문했어요.” 모란은 자신의 홍보 컨설턴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음식 대접을 시작해야겠어요.”


디모레 갤러리의 우아한 옛 구조 속에 조 폰티의 1940년대 팔걸이의자와 루이지 카치아 도미니오니의 1980년대 벨벳 소파, 유리와 연철로 만든 미드센추리 커피 테이블이 어우러져 있다.

디모레 갤러리의 우아한 옛 구조 속에 조 폰티의 1940년대 팔걸이의자와 루이지 카치아 도미니오니의 1980년대 벨벳 소파, 유리와 연철로 만든 미드센추리 커피 테이블이 어우러져 있다.

“에밀리아노 살치와 브릿 모란은 엄청나게 웃겨요. 그렇지 않나요?” 더 아츠 클럽 대표이사인 앨리스 채드윅 힐리는 재밌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더불어 일 잘하는 사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스트레스가 매우 심한 일이에요. 그러니 함께 있을 때 재밌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하죠. 디모레 스튜디오와 일할 때 우리는 항상 즐거웠어요. 무엇보다 결과물에 더없이 만족하게 되죠.”
디모레 스튜디오를 거쳐간 클라이언트들은 다시 디모레 스튜디오를 찾는다. 최근 살치와 모란은 체렌시오7 바&레스토랑 프로젝트로 만났던 딘&댄 케이트 형제의 의뢰로 런던의 리틀베니스에 있는 리젠시 하우스를 새로이 단장했다. 이번에도 형제는 만족했다. “모든 게 정확히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예요.” 더 아츠 클럽은 두바이 분점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디모레 스튜디오가 다시 맡았다. 채드윅 힐리는 이곳이 멋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모란이 자신들의 회계사가 이런 농담을 건넨다며 말을 전했다. “우리 회계사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둘 다 씨를 아주 잘 심네요’라고.” 디모레 스튜디오가 세계 곳곳에 심은 씨앗이 새로운 명소로, 사적인 아지트로 자라나고 있다.
올해 열린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에서 디모레 스튜디오는 2017년에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크레스피의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가브리엘라 크레스피가 1970년에 디자인한 황동 사각 테이블과 유리 램프, 1980년에 디자인한 청동 테이블이 디모레 스튜디오의 가구와 어우러져 디모레 갤러리를 채웠다. “가브리엘라의 딸이 왔더라고요.” 모란이 소중한 추억을 꺼내듯 말했다. “우리의 작업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어머니의 작업 방식과 우리의 작업 방식 사이의 연결 고리를 그녀도 본 것 같아요.”
펜디의 로마 플래그십 스토어에 마련한 오직 VIP를 위한 공간, 펜디 프리베. 디모레 스튜디오가 작업했다. 스웨덴 출신 디자이너 브루노 맛손의 1960년대 라운지체어와 빈티지 베니니 샹들리에,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실크 술이 달린 벨벳 데이베드가 손님을 환대한다.

펜디의 로마 플래그십 스토어에 마련한 오직 VIP를 위한 공간, 펜디 프리베. 디모레 스튜디오가 작업했다. 스웨덴 출신 디자이너 브루노 맛손의 1960년대 라운지체어와 빈티지 베니니 샹들리에, 디모레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실크 술이 달린 벨벳 데이베드가 손님을 환대한다.

오묘하게 우아한 것, 유쾌하면서도 기품 있는 것. 가브리엘라 크레스피와 디모레 스튜디오의 연결 고리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브리엘라 크레스피는 이탈리아 밖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작품은 수집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다. 인터넷 시대 이전이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가브리엘라 크레스피의 여러 오브제가 ‘진귀한 빈티지 가구’라는 설명과 함께 퍼지고 있지만. SNS 시대의 디모레 스튜디오는 보다 빨리, 보다 선명하게 인지도를 얻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인기가 잦아들면 디모레 스튜디오는 도리어 안도감을 느낄 거다. 현대 디자인은 개방성, 투명성, 공간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상호 연결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그에 반해 디모레 스튜디오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를 취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들에게는 언제 또 바뀔지 모를 현대 디자인 트렌드, #가구스타그램 #디자인스타그램 같은 헛바람은 필요 없다. 디모레 스튜디오는 네 개의 벽으로 단단히 이루어져 있고, 오가는 문은 단 하나인, 즉 온전한 공간의 형태를 지향할 뿐이다. 그것이 전하는 안락한 공간감의 힘을, 인테리어의 근원을 믿는다.
그리하여 디모레 스튜디오가 완성한 공간은 대개 벙커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완고하고 완전하다. 그곳의 조명 빛은 먼 곳에서 스며든 듯 아스라이 번지고, 뿌연 유리창 너머로는 하늘 한 조각이 언뜻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어느 한순간을 위한 완벽한 접근법이 아닐까. 은둔, 향수, 그러나 온전한 안정감, 찬란한 내적 고요. 디모레 스튜디오가 전하는 공간에서야 비로소 실내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실내: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는 곳.
실내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는 곳. 그중에서도 듀오 디자이너 디모레 스튜디오의 손길이 스친 실내는 사람이 아름답게 살거나 우아하게 일하는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