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정보 없이 라스베이거스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승무원의 말에 선뜻 라스베이거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한 번 더 타든 차를 타든 어딘가를 경유할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부랴부랴 다시 확인해본 여정서에는 라스베이거스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와! 대한항공에 직항이 있구나.’ 미국까지의 긴 여정에 대한 걱정이 한시름 놓이는 순간이었다.

헬기 투어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나오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번 팸 투어의 테마는 아트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해볼 예정이다. 우리는 자연이 빚어놓은 예술 작품을 보기 위해 리무진에 올랐다. 바로 그랜드캐니언이다. 20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구 최고의 협곡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선댄스 헬리콥터 투어. 차로는 5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40분 만에 그랜드캐니언에 다다를 수 있다.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셈이다. 설렌다. 하지만 무섭다. “헬리콥터가 생각보다 무서워요.” 옆에 탄 김주혁 작가가 무서움을 더해줬다. 헬리콥터는 하버댐을 지나 콜로라도강을 따라 그랜드캐니언의 인디언 자치구 쪽인 웨스트림 포인트로 향한다. 이윽고 눈앞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협곡이 펼쳐지고 처음 타보는 헬리콥터에 대한 두려움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눈 녹듯 사라졌다.
스케일이 다른 라스베이거스의 액티비티는 땅에서도 이어진다. 이그조틱 레이싱에서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포르쉐 911 등 세계의 명차들이 주차된 곳에서 내 마음이 닿는 한 대를 택해 서킷을 달릴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엔터테인먼트다.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고 코치도 옆에 함께 타기 때문에 안전하게 짜릿함을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운전면허를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어 운전에 두려움이 있다면 전문 레이서 옆에 동승하는 체험도 있다. 그게 무슨 재미냐고? 서킷을 두 바퀴 도는 동안 레이서는 자신의 최고 실력을 발휘해서 드래프트를 선사해준다. 차 안에는 고프로가 설치되어 있어 체험을 마친 뒤 중력의 노예가 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받아 볼 수도 있다. 나는 받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화려한 중심가의 이름은 바로 스트립이다. 다양한 브랜드의 호텔과 럭셔리한 쇼핑몰 그리고 화려한 간판이 줄지어 있는 7km 정도의 거리다. 이 거리를 걷고 있으면 진정 내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 스트립의 많은 육교는 호텔, 쇼핑몰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그 내부를 어쩔 수 없이 지나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기 위한 다양한 유혹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이다. 호텔을 테마로 한 라스베이거스판 호핑 투어랄까.

시저스 팰리스는 6개 테마의 수영장을 비롯해 공연장인 콜로세움, 클럽 옴니아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저스 팰리스라니 정말 뻔한 느낌이었다. 그리스 로마의 향을 낸 익숙한 조각상들로 가득한 오래된 호텔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직접 가보기 전의 생각이었다. 호텔 입구부터 아름답게 펼쳐진 분수 공원과 니케의 승리의 여신상, 사이프러스 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스케일이 다르다. 완성도도 다르다. 미국다운 규모로 마치 로마 시대의 궁전같이 꾸민 건물 외부와 내부는 모든 곳이 인기 있는 사진 스폿이었다. 특히 이곳의 메인 수영장인 ‘가든 오브 더 갓 풀 오아시스’는 라스베이거스의 수많은 호텔 중 시저스 팰리스를 선택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충분했다. 나에겐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호텔 선택의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런 수영장이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선택되어야 마땅하다.
수영장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노부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일식의 세계화에 앞장선 노부 마쓰히사의 가장 대표적인 식당이 시저스 팰리스에 자리 잡고 있다. 방어를 선두로 신선한 굴과 새우, 참치 등으로 이어지는 해산물의 향연으로 노부에서의 만찬이 시작되었다. 만찬의 하이라이트는 화려한 불꽃과 함께 등장한 랍스터와 와규 스테이크. 쫀득한 랍스터의 살과 풍성한 육즙으로 입안에서 사라지는 스테이크의 서로 다른 질감이 재미있다. 이런 조화는 왜 이 요리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밴더펌프 칵테일 가든에서 라스베이거스색의 칵테일과 라스베이거스색 디저트를 즐기며 제대로 라스베이거스에 취한 밤을 만들어냈다.

더 노매드 호텔은 객실부터 레스토랑, 바까지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인다.
더 노매드 호텔은 파크MGM 호텔의 4개층을 사용하는 호텔 속의 호텔이다. 체크인 후 카드 키를 담아 건네준 벨벳 느낌의 케이스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 난 이 방에서 잘 나가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더 노매드 호텔의 객실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입구의 로비. 오크 나무로 된 바닥에, 큰 옷장과 샤워실 등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이 공간은 존재 자체로 스위트한 느낌을 주었다. 침대 옆의 대형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벨벳 소파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을 하염없이 넋 놓고 보다 보면 약속 시각을 잊기 일쑤였다.
2만5000여 권의 진짜 책으로 수놓인 판타지 같은 책장. 높은 천장에 걸린 3층짜리 아름다운 샹들리에. 더 노매드는 레스토랑도 그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당하기 충분했다.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무엇보다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각 테이블을 관리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라이프 이즈 뷰티풀 페스티벌에는 3일간 약 19만 명이 입장했다.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아직 20시간이나 남았네…’ 오늘은 포스트 말론을 만나는 날이다. 2013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을 화려한 색으로 물들이는 음악 페스티벌, 라이프 이즈 뷰티풀은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였다. 빌리 아일리시, 찬스 더 래퍼, 뱀파이어 위켄드와 K팝 대표로 등장한 몬스타엑스 그리고 포스트 말론까지 특정할 수 없이 넓은 스펙트럼의 라인업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라인업. 소싯적부터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잘 노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뮤직 페스티벌을 가보았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은 내가 경험한 이전의 페스티벌과는 조금 달랐다. 기존의 페스티벌이 공연하는 아티스트에게 포커싱되어 있다면 이곳은 조금 더 관객에게 포커싱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YOU ARE BEAUTIFUL’이라고 적힌 입구를 통과하여 들어오는 관객들을 한참 보고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라라랜드의 노을과 함께 이 공간의 모든 사람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 5시간 남았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에서는 EDM과 힙합으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DJ 텐트부터 코미디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장까지 7개의 다양한 무대를 각자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 그렇게 공연을 즐기던 수천 명의 관객이 다운타운 스테이지로 몰려갔다. 시간이 되었다. 지금 시대 최고의 아이콘. 마지막 날 메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 포스트 말론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나도 다운타운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Better Now’, ‘Psycho’, ‘Hollywood’s Bleeding’ 등 익숙한 노래를 들으며 휘적휘적 어설픈 몸짓을 취했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즐기는 시간. 어설픈 몸짓 중간에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나에게 미소와 눈웃음을 보내주었으며 이따금 신이 날 땐 강렬한 하이파이브를 권했다. 노래 참 좋고 인생 참 즐겁다. 너무나 화려하여 낯설었던 이 도시가 점점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감정선이 좋았다. 내년에 다시 오자. 라스베이거스는 직접 와봐야 하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