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10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갤럭시 노트10의 핵심은 젊은 노트와 친환경적 디자인이다. 갤럭시 노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로 이끈 강윤제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장을 만났다.

나는 디자이너다


갤럭시 노트10(이하 ‘노트10’)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느껴져요. 한마디로 예뻐졌습니다.
잘 보셨어요. 2017년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갤럭시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디자인팀은 물론 여러 관련 부서의 전략서를 모두 읽고 내린 결론은 갤럭시가 젊은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죠. 젊은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우리의 아이템이 젊게 바뀌어야 하기에 노트10 역시 파격적인 디자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사실 노트10은 크고 성능이 뛰어나며 남성성이 강한 플래그십 모델이었습니다.
2011년 노트1이 나온 이후 그 이미지를 고수해왔으나 지금 시대에는 젊고 예쁜 노트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현재 노트10의 시그너처 컬러는 다소 파격적인 아우라 글로우입니다. 아우라 글로우는 유리가 지닌 수많은 빛의 파장과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색을 뜻하는데 각 사용자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디자인이죠.
‘예쁘다’는 말을 할 때 보르도 TV를 빼놓을 수 없어요. 검은색 텔레비전이 장악하던 시절 보르도 TV는 혁신적이었습니다.
보르도 TV 프로젝트를 맡았을 당시 성공하는 TV의 법칙은 화질, 음질, 편리성, 형태 순으로, 화질이 좋으면 잘 팔리고 형태, 즉 디자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그때 읽던 <톰 피터스 에센셜>은 라이프스타일을 주로 다룬 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성 소비자를 주목하라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균 TV 시청 시간은 하루 4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 시간은 꺼져 있는 상태인데 크기만 크고 투박한 디자인의 TV가 집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TV 디자인에 과감하게 와인색을 적용하고 네모반듯한 형태가 아니라 굴곡 있는 형태로 부드럽게 마감 처리를 했습니다. 화면 옆에 붙어 있던 커다란 오디오도 과감하게 TV 안쪽에 넣음으로써 슬림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이미 시중에 나온 모든 TV는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오히려 디자인이 독특하고 마치 하나의 가구, 오브제처럼 보이는 보르도 TV를 주목했습니다. 최근 출시된 더 세리프, 더 프레임 TV 역시 같은 맥락에서 디자인된 제품들입니다.
노트10에 대해서 좀 더 물어보겠습니다. 젊은 사용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 심미적 기능을 강화시킨 것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젊은 세대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성세대가 오염시킨 지구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하고 살기보다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을 선호합니다. 노트10의 패키지를 살펴보면 노트9 패키지와 크게 달라진 점들이 있습니다. 패키지 외부를 싸고 있던 소재를 과감히 빼고 패키지 내부의 액세서리를 쌌던 비닐류도 모두 제거했습니다. 비닐로 보호되어 있던 유광 TA 어댑터는 모두 무광으로 교체했습니다. 친환경 패키지는 이번에 새로 출시된 갤럭시 워치 액티브2에도 적용해서 전작에 비해 박스 크기 자체가 혁신적으로 줄었고 박스 공간을 나누는 데 활용한 펄프도 훨씬 적게 사용했습니다.
놀랍습니다. 갖고 싶은 제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네요.
마이너스적 디자인 사고를 통해 가장 멋진 디자인과 환경을 고려한 효율적 디자인의 접점으로 구현된 제품이 바로 노트10, 워치 액티브2입니다. 앞으로 갤럭시에서 새로 출시할 제품에도 모두 적용할 예정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죠.
비용 절감 효과가 커서 구매팀이 굉장히 좋아해요. 패키지 하나를 만들 때 대략 1/3 가까이 비용이 절약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 편의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상품을 만들고 진열하는 장소와 환경까지도 모두 고려해서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상상되지 않네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떻게 미대를 준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시도도 못 해본 것 같아요. 그리고 대입 학력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이제 곧 스무 살 성인인데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왔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한번 해보라’며 돈을 주고 가셨습니다.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그 큰돈을 주셨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디자인에 첫발을 딛게 된 거군요.
가자마자 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심지어 대부분 입시 미술반이었는데 저는 혼자 취미반이었습니다. 다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열심히 그리고 있을 때 저는 옆에서 삼각뿔, 원뿔을 열심히 그렸죠.
결국은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며칠 그리다 보니 또 금세 익숙해지더라고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 그렇게 열심히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실기 시험까지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림만 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분이 있었습니다.
대학 때 은사이신 이재국 산업디자인과 교수님이었죠. 그 전에는 저를 잘 모르셨는데 3학년 때 학교 축구 대회에서 제가 골을 많이 넣어 우승을 하니까 ‘쟤는 축구를 안 하고 왜 디자인을 하냐’고 농담을 하기도 하셨죠. 하루는 수업 시간에 제가 그린 스케치를 보시고 “스케치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다른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던 것 같아요. 업계에서 명망이 높으신 분에게 받은 첫 칭찬이었기 때문이죠.
25년간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하셨습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오니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입시 미술 학원 다닐 때가 떠올랐어요. 또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실에 잠시 실망도 했지만 길게 가진 않았습니다. 손 놓고 멍하니 있다가는 1년도 버티기 힘들어 보였거든요. 낮에는 선배님들이 시키신 일을 하고, 저녁에는 혼자 남아서 연습을 했어요. 어차피 당시 집이라 해봐야 반지하의 조그마한 방이 전부라서 오히려 서울역 야경이 보이고 커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좋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문득, 여가 활동할 시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20여 년 전, ‘내가 디자인으로 돈 버는데 디자인에 투자해야지’란 다소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해서 디자인 가구, 조명 등을 구입했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을 탈탈 털어 톨로메오 조명을 사서 집에 갖다 놓으니 남은 돈은 없어도 마음은 뿌듯하더라고요. 그렇게 전 세계를 다니며 사 모으기 시작한 게 지금은 각 방은 물론이고 거실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아내가 머리에 이고 살 거냐며 말리는 중이에요. 지금은 집을 직접 지어서 한쪽은 거주 공간으로 쓰고 한쪽은 갤러리로 만들까 합니다. 이미 집 설계도는 다 나온 상태입니다.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면요?
이재국 교수님의 퇴임식 때였습니다. 저희 제자들 모두 초대하신 자리에서 “디자이너로 살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교단에까지 섰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윤제가 이뤄줬고, 나 대신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칭찬을 자주 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이 참…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갤럭시 노트10의 핵심은 젊은 노트와 친환경적 디자인이다. 갤럭시 노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로 이끈 강윤제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장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