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강한 식재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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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강한 식재료 그건 마치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처럼 우아한 오일이었다.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늘 먹는 샐러드에 오일을 두르고 한입 가득 넣자 채소의 신선함에 오일의 달콤 쌉싸래한 여운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식감이 입안을 사르르 감쌌다. 며칠 뒤에는 오일을 비빔밥에 둘렀다. 비빔밥에도 오일의 풍미가 기품 있게 퍼졌다. 이 오일은 국내산 깨를 저온에서 압착한 들기름이다. 살면서 들기름이 우아하다고 느낀 적이 또 있을까. 국내 마트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들기름은 수입산 들깨나 들깨분을 이용해 만든다. 그리고 참기름처럼 고온에서 볶는다. 고온에서 짜야 더 많은 기름을 추출할 수 있고 고소한 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보관도 용이하다. 반면 탄 맛이 느껴지고 들깨가 가진 영양소가 대부분 파괴되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까지 나온다. 들기름은 올리브 오일처럼 저온 압착해야 본연의 맛이 난다. 저온 압착은 60℃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으깨어 짜는 방식이다. 다만 저온 압착한 들기름은 건성유라서 쉽게 산화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고 개봉 후에는 냉장 보관해야 한다. 참기름의 풍미가 파도처럼 물결의 높이를 좌우한다면 저온 압착한 들기름은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수평을 좌우한다. 높은 것은 쉽게 눈에 띄지만 낮고 넓은 맛은 언뜻 알아채기 힘들다. 풍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혀에는 1만 개의 맛봉오리가 있는데 이를 통해 단맛과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떫은맛, 감칠맛에 반응한다. 수만 가지 향을 구분해내는 후각까지 더해지면 비로소 풍미가 된다. 이런 풍미를 구분하는 미각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축적된 경험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풀어내자면 스무 살 초반까지 음식은 끼니에 불과했다. 하루를 버티기 위한 동력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냉면이 주식이었던 것도 빠른 조리 시간과 섭취 시간 단축을 위해서였다. 그런 성향이 바뀐 건 지역의 향토 음식 맛집을 취재하면서부터다.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다. 개인적 기호와 상관없이 맡은 고정 꼭지 때문에 3년여간 팔도를 구석구석 빠짐없이 훑었다. 오래된 빈티지 와인이 한두 차례의 디캔팅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더 풍부하게 열리는 것처럼 경험이 쌓이면서 미각이 오감을 자극하며 활짝 피어났다. 맛이나 요리에 대한 생각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식당도 많았다. 그중 한 곳이 해남의 천일식당이다. 일반적으로 떡갈비는 고기 망치로 두드리거나 다져서 뭉친 뒤 편다. 반면 천일식당의 떡갈비는 한우를 잘고 얇게 칼집을 내 숯불에 구워낸다. 소고기의 육질과 육즙을 본래의 형태로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떡갈비를 찢어 입안에 넣으면 고기가 부드럽게 몽그라지며 육즙이 달콤한 양념과 함께 혀 위에서 불꽃처럼 퍼진다. 하루 한 시간이라는 초단시간 영업집이자 이제는 문을 닫은 광희동 부부청대문은 푹 익힌 우거지를 뚝배기에 두르고 이틀을 끓인 육수를 여러 번 토렴해 해장국으로 내놓던 곳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우거지와 소고기 육수의 풍미가 입안을 휘돌아 넘어갔다. 이 가게에서 ‘기름고기’라고 부르는 양지머리는 살코기와 하얀 지방이 거의 5 대 5로 섞여 있었다. 이 양지머리의 기름기는 혀끝과 혀 양옆을 정말 기름지게 찰싹찰싹 때렸다. 이어지는 짭짜름한 여운은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 아쉬워서 연신 쩝쩝거릴 정도였다. 양양의 자연횟집도 신세계였다. 새벽에 갓 잡은 생새우의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과 미끈거리는 육질, 간장을 부어 살얼음이 살짝 끼도록 얼린 간장새우의 달짝지근한 시원함은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단번에 풀어줬다. 맛집은 아니지만 제주에서는 잔칫집에서 빠지지 않는 ‘몸국’ 한 그릇으로 진득한 국물의 정의를 다시 내렸다. 실제 제주의 한 잔칫집에서 맛본, 돼지고기가 흐무러질 정도로 며칠을 끓인 뒤 다시 신선한 해초와 돼지고기를 넣어 삶은 몸국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간과 찐득하고 걸쭉한 풍미, 뭉개진 고기의 독특한 질감이 느껴졌다. 여수 경도회관의 갯장어, 남해 미조식당의 멸치무침, 나주 하얀집과 노안집의 곰탕은 이전까지 먹은 동일한 음식을 반문하는 계기가 됐다. 새싹을 딴 하동의  차(茶) 우전이 보여준 싱그러움도 잊을 수 없다. 모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나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신선한 재료로 재료 본연의 풍미를 제대로 살린 식당과 음식이었다. 맛의 구조를 알고 미식을 즐기기 위한 첫걸음이 여기 있다. 바로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식재료를 조리했을 때의 맛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미식의 나라 프랑스는 매년 10월 둘째 주에 ‘프랑스 미식 주간’을 연다. 유명 셰프 3500여 명이 전국의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건강한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가르친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됐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프랑스 요리의 거장인 조엘 로부숑이 닭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이 패스트푸드 매장의 치킨 닭 다리를 그리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 건의했다. 특별한 걸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저 신선한 식재료를 아이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대화를 나눈다. 오이의 색깔과 촉감, 향, 식감, 맛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찾아간 지역의 식재료와 요리의 특성을 알려주기도 한다. 향토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또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맛에 대한 보편적 정의다. 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 자신은 신맛이 지배적이라고 느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전부 쓰다고 말한다면 누가 옳을까. 답은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신맛에 특히 민감하거나 지금까지 쓴맛을 신맛으로 오해한 것이다. 취향은 이런 토대에서부터 쌓여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미식이 시작된다. 맛의 다양한 기준을 체득하고 조리법에 대한 지식까지 어느 정도 습득하면 이제부터는 코와 혀로 셰프가 조리를 통해 구현한 풍미의 레이어를 해부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의 해산물 요리에 자주 쓰이는 기본적인 소스인 화이트 와인 샬롯 소스를 예로 들면 이렇다. 화이트 와인 샬롯 소스는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마늘과 샬롯을 넣은 뒤 익힌다. 마늘과 샬롯이 투명해질 정도로 버터의 기름기가 배면 화이트 와인과 레몬즙을 붓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졸인다. 이렇게 조리하는 까닭은 샬롯 특유의 단맛에 화이트 와인의 뾰족한 신맛과 복합적인 향을 더하기 위해서다. 농어 필레에 화이트 와인 샬롯 소스를 곁들인다면 신선한 농어의 기본적인 맛을 포장하고 여운을 더 길게 이어가는 소스가 된다. 풍미의 확장이자 셰프가 구현하고자 하는 한입의 완성이다. 여기서 어떤 버터를 사용하고 어떤 샬롯을 썼는지에 따라 확장성과 레이어가 달라진다. 여기까지 닿는다면 이미 미식의 길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가식적으로 꾸며낸 음식이 아니라 건강한 식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과 그 맛들이 적층되고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화려한 미식의 향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