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전설들의 축구 이야기 '뭉쳐야 찬다'의 인기비결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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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작은 여론 조사를 좀 했다. 스포츠 칼럼이 주특기인 이에게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써달라는 의뢰가 퍽 오랜만이라 준비가 필요하기도 했고, <뭉쳐야 찬다>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어서 주위 사람들 감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응답자 수가 많지 않아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전화를 돌렸으니 일단 그 결과부터 살펴보자. 응답자 22명 가운데 ‘JTBC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를 본 적 있다’고 답한 이는 모두 12명. 그중 ‘흥미로웠다’는 이는 9명. 시작한 지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고(10월 13일 기준 17회째), 응답자 22명 중 15명이 예능 프로그램에 비교적 무관심한 연령대(40대 이상)임을 감안하면 관심이 많은 편이다. 호의적 반응이 70%를 넘어 만족도 또한 높다. 다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3명의 의견이 소개하기 내키지 않을 만큼 지독하다. 그 가운데 불광동에 사는 한 친구의 의견은 실로 장엄 살벌하기까지 하다. “내 마음속 액자에 고이 담긴 스포츠 영웅들이 나이 먹고 슬랩스틱으로 무너져 내리는 꼬락서니는 보고 싶지도 않고 용납할 수도 없다.” 개인 의견이라 일일이 토 달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앞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쩐지 무섭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꽤 즐겁게 보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스포츠 전설’이라고 단편적으로 소개할 뿐 등장인물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 점은 꽤 불만이다. 이를테면 이만기 같은 경우. 믿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한때 민속 씨름은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 스포츠였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즈음 개최되는 대회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중계방송의 시청률 또한 하늘을 찔렀다. 주최 측인 한국민속씨름협회(현 한국씨름연맹)의 미숙한 대회 운영 능력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인기였다. (당시 협회의 무능함을 확인하고 싶다면 민속 씨름 심판들 복장의 변천사를 살펴보시라. 금방 답이 나온다. 권위를 온몸에 휘감고 있어야 할 심판들이 변두리 나이트클럽 웨이터 같은 옷차림을 한 적도 있고, <놀부전>의 주인공처럼 치장한 적도 있다. 그중에서도 웨이터 복장은 실로 최악이다. 셔츠를 좌우 반으로 나눠 한쪽이 홍샅바 쪽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빨간색, 다른 한쪽이 청샅바 쪽을 가리키는 파란색이었다. 심지어 가운데에 굵은 레이스까지 달렸다, 주렁주렁. 승패가 결정되면 심판은 승리한 쪽 손을 과격하게 치켜들며 호루라기를 부는데 그 순간, 한가운데의 굵은 레이스들이 일제히 부르르 떨린다. 자칫 맥주 몇 병 더 주문받았다는 웨이터의 자랑스러운 몸짓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일본 전통 씨름 스모의 심판인 ‘교지’들이 어떤 복장인지 비교해보시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열패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이다.)   이만기 1983년 민속 씨름이 프로스포츠로 출범할 당시만 해도 성공을 예측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각종 군소 대회에서 살집 뒤룩뒤룩한 덩치들이 별다른 기술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샅바를 부여잡고 시간만 끌다가 끝내 몸무게로 승패를 가리곤 하는 기존의 씨름 진행 방식이 스포츠 팬들을 자극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런 예상을 기분 좋게 배신한 모래판의 영웅이 바로 이만기다. 출범 당시 이만기는 한낱 신인에 지나지 않았다. 몸집도 작았다. 이준희, 홍현욱 등 당시 스타들이 모두 백두장사급(140kg 이하)인 데 비해 이만기는 한라장사급(105kg 이하)이었다. 그런 그가 첫 대회에서 거한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무명의 미들급 선수가 무제한급에 나서 헤비급 스타 선수들을 모두 넘겨버린 격이라고나 할까. 특히 이만기는 그 과정에서 씨름의 진수라 할 만한 기술을 숱하게 선보이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 가운데에서도 샅바를 쥐고 상대의 밑을 파고든 뒤 뒤집어버리는 ‘뒤집기’는, 당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지고 마는 공전절후의 기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장면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매력적이었는지는 당시 민속 씨름 시청률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경남대 2년생이던 이만기와 ‘모래판의 여우’라던 최욱진이 맞붙은 초대 천하장사 결정전의 시청률은 무려 61%. 갓난아기 등등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지켜본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민속 씨름은 그토록 인기가 대단했고, 그 인기의 중심에 있던 이가 기술 씨름의 대명사 이만기다. 그런 그가 지금 씨름판이 아닌 축구장에서 툭하면 후배들에게 핀잔이나 듣고 있으니 불광동 친구가 불만을 토로한 것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무시당할 행동을 곧잘 하기는 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젊디젊은 이만기가 전설적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 나와 어떤 소동을 빚었는지 젊은 독자들은 모를 것이다. 스피드 퀴즈 코너에서 진행자 허참이 낸 문제는 이것이었다. “자, ‘무슨무슨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슨무슨 강아지’는 어떤 강아지일까요? 정답은 두 글자!” 교육부가 권장하는 의무교육만 제대로 받았더라도, 아니 설사 그러지 못했다 해도 알아맞힐 수 있는 문제. 이만기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똥개.” 뒤집기 못지않게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지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아연실색의 대참사. 지금도 궁금하다. 이만기가 왜 그랬을까?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두 글자’라는 힌트에 지나치게 집착했을까,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물론 맨 앞이 정답이라 확신하지만, 어쨌든 모래판 밖에서의 이만기는 그처럼 허당이었고 그런 모습은 <뭉쳐야 찬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허재 그러나 그렇다고 이만기의 업적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다. 그는 한국의 전통 격투기인 씨름을 인기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모래판의 진정한 영웅이다. 지금 씨름의 흥행이 지지부진한 것은 협회의 마구잡이 행정이 주원인이겠지만, 이만기 같은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불광동 친구는 그 점을 일깨우려 했던 게 아닐까? 허재 또한 마찬가지. 이 사람의 이름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개인적으로는 1991년 농구대잔치 마지막 대결부터 돌이켜보게 된다. 기아와 현대의 맞대결. 현대는 농구대잔치 출범 때부터 줄곧 정상의 자리를 다툰 명문 클럽이지만 당시 기아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 이른바 ‘허동택 트리오’가 막강했기 때문. 특히 허재의 개인기는 워낙 뛰어났다. 현대는 임달식을 내세워 막아보려 했지만 수비의 달인이라는 그마저도 허재의 개인기 앞에서는 속수무책. 정상적인 기술 대결로 당해내지 못하는 팀이 이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카드는 뻔하다. 반칙 작전. 임달식은 집요한 파울로 허재를 막으려 했고 허재는 교묘한 반칙에 짜증이 많이 났다. 고의적인 반칙으로 넘어졌을 때는 짜증이 절정에 이르렀다. 허재는 벌떡 일어서며 항의했고 임달식은 싸움의 시작이 으레 그렇듯 뉘우치기는커녕 되레 눈을 부라렸다. 화가 난 허재가 가벼운 헤딩. 임달식은 새까만 후배가 어디 달려드냐며 펀치를 날렸다. 허재, 보란 듯이 다운. 폭력 사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허재가 분을 참지 못해 임달식에게 달려가며 복수를 꿈꿀 때 때아닌 훼방꾼이 등장했다. 현대의 센터 김성욱. 당당한 체격과 정확한 미들 슛, 그리고 불같은 승부욕으로 인기를 끈 혼혈 선수였다. 그가 임달식에게 달려드는 허재에게 또 한번 펀치를 날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아니 오른손 훅을 얻어맞은 허재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임달식과 김성욱이 폭력까지 불사한 이유는 단 하나다. 허재가 너무나 잘했기 때문이다. 그 화려한 개인기 앞에서는 어떤 수비 전략도 소용없었다. 골 밑이 비면 빛처럼 파고들었고, 골 밑이 붐비면 바깥에서 슛하며 득점했다. 그뿐인가. 자신에게 수비가 몰리면 정확하고 빠른 패스로 동료의 득점을 도왔다. 상대 팀을 응원하는 팬들 입에서 “아… 어찌 좀 안 될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기량이었다. 어찌 좀 안 되니 어쩌겠는가. 때리기라도 할 수밖에. 그런 면에서 코트 위에 결코 출현해서는 안 될 ‘폭력’은 역설적으로 허재의 실력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단어가 됐다. 이충희, 김현준, 서장훈, 현주엽… 숱한 스타들이 코트를 누볐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허재가 단연 으뜸이라고 확신한다. 정확한 슛, 화려한 개인기, 강렬한 캐릭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안정환 두 사람만이 아니다. <뭉쳐야 찬다>에 출연하는 안정환, 양준혁, 여홍철, 이봉주… 누구 하나 각자의 영역에서 이만기나 허재보다 못한 영웅이 없다. 신은 공평하다 믿었지만 안정환은 그 믿음을 깨부순 첫 번째 스타였다. 잘생긴 주제에 축구까지 잘했으니까.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지 않는 내게 양준혁은 허재만큼 미운 경계 대상이었다. 어찌 된 게 때만 되면 좋은 타구를 날렸고, 좋은 타구가 아니더라도 1루까지 전력 질주했으니 적이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홍철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기술을 두 개나 갖고 있는 체조계의 세계적 슈퍼스타. 마라톤의 이봉주도 마찬가지. 천안 직산 쪽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이봉주 거리’도 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안정환 감독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개발’을 휘날리고 있다. 얻어맞기는 고사하고 한 점이라도 얻으려면 누군가를 때리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불광동 친구는 그 모습을 ‘꼬락서니’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액자에 가둬놓은 혼자만의 이미지에서 이제 풀어줄 때도 됐다. 세상이 그렇다. 날이 갈수록 치솟는 시청률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