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점의 질문들

비가 내리는, 한가하고 한가한 금요일 저녁에 친구가 찾아왔다.

BYESQUIRE2019.11.12
비가 내리는, 한가하고 한가한 금요일 저녁에 친구가 찾아왔다. 웃옷 양쪽 주머니에서 캔 커피 하나씩 두 개를 꺼냈다. 촌스럽다, 하고 나는 웃는다. 생각보다 앞선 웃음은 좀처럼 감추기가 어렵다. 시름 같은 건 금방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하다. 요즘 어때? 하고 말을 꺼낸 친구는 곧장, 안 물어봐도 알겠다. 손님 없어 어떡하냐, 한다. 나는 피- 하고 입바람을 뺀다. 잠시 우리는 창밖을 본다. 서점에 들어오려는지 우산을 털고 있는 사람이 있다.
들어온 손님에게 인사를 하느라, 그가 원하는 책을 찾아주느라, 계산을 하고 또 배웅을 하느라 잠시 부산을 떤다. 어느새 캔 커피는 밍밍하게 식고 못 본 사이 생겨난 소식들도 동이 났다. 이번에는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서점에 제일 많은 게 뭔지 알아? 친구는 잠깐 생각하다, 사람? 하고 대답한다. 놀려놓고는 저 혼자 웃는다. 그러게.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너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입히고 재우고 다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냐. 서점에 제일 없는 게 사람이다. 그다음은 아마 돈이겠지.
서점에 하고 많은 것. 책보다 더 많은 것. 그건 바로 질문이다. 어찌나 많은 질문이 있는지, 퇴근할 때쯤이면 목이 다 아플 정도라니까. ‘이런 책 있어요?’, ‘저 책은 어떤가요?’ 하는 유는 질문 축에도 끼지 못한다. 서가에서 찾아 건네면 되는 거니까. 이를테면, 단골손님 H 선생. 그는 국회의원도 두 차례나 해본 명망 있는 인사다. 우리 서점에서도 손에 꼽히는 독서가인 그는 나를 보면 어김없이 오늘은 얼마나 팔았느냐고 묻는다. 짐짓 진심을 담아 근심스러운 그의 얼굴에 대고 거짓말을 하거나 둘러댈 요령은 생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들은 그는 곧장 혀를 차고 그러면 나는 또 후회를 곱씹고.
뭐가 그리 우스운지, 친구는 깔깔댄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래도 H 선생은 단골이고 나의, 서점의 생계에 한몫해주는 사람이기나 하지. 생전 처음 보는 이 중에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가 많다. 시인이 더 벌어요, 서점 주인이 더 벌어요? 월세는 얼마나 내요? 이만한 서점 차리려면 얼마나 드나요? 웃음을 거둔 친구가 말한다. 그게 무슨 질문이야 오지랖이지. 그것도 쓸데없이 넓은. 그래 맞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질문은 다른 것이다. 언젠가 오늘같이 비가 오던 날에 두 눈이 퉁퉁 부은 이가 찾아와 약이 되는 시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떤 약요? 어디가 아픈데요? 생각만 하고 묻지는 못했다. 질문은 서점 주인의 일이 아니니까. 고심 끝에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건넸다. 그는 자리에 앉아 그 시집을 모조리 다 읽고 돌아갔다. 언젠가 그가 돌아온다면 그땐 내 편에서 한번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 뒤로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반가운 질문도 있어. 가령, 시인님 시집은 어디 있어요 같은. 근사하지 않아? 친구는 콧방귀를 뀐다. 퍽도 좋겠다. 그럼, 좋지. 언젠가 인세도 받고 시집 판매 금액도 생길 테니. 속물이 되었군. 900원 더 버는 걸로 속물? 맞아, 나 속물이야. 흰소리를 주고받는 동안 밖은 한층 더 깜깜해지고.
이따금 시 구절 하나만 외워서 서점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몰라. 그래도 명색이 시인인데 딱 맞히지 못하면 얼마나 낭패니. 그래서 맞힌 적도 있어? 당연히 있지. 열 번 중 예닐곱 번은 눈치껏 찾아낸다. 서가 앞에서 한참이나 망설이던 남자가 있었다. 찾기를 포기한 그가 내 얼굴을 살핀다. 오랫동안 찾아 헤맨 시집이 있다는 거였다. 군 제대하는 날, 버스 터미널 서점에서 우연히 그 시집을 읽게 되었다고, 급히 떠나야 해서 내려놓고 왔다고. 그래서 여태 찾으며 후회 중이라고. 기억하는 건 시구의 일부분뿐이라 했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들어보자 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너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에서 뛰고, 나의 심장은 너의 왼쪽에서 뛰는, 그런 내용이에요.” 함민복 시인의 시였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나 겉으로는 더없이 심드렁한 태도로 그 시가 담긴 시집을 찾아 건넸다. 연신 고맙다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그는 시집을 안고 돌아갔다. 좋았겠네. 혼잣말하듯 친구가 그랬다. 그랬겠지. 시집이 좀 많은가. 못 찾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 친구는 나를 빤히 보다가 아니, 너 말이야 한다. 그렇게 찾아줄 수 있어서 좋았겠다고. 그 말에 나는 대꾸하지 못한다. 정말 그랬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어딘가 겸연쩍었기 때문이다. 창밖은 완전한 밤이 되었다. 밤의 서점은 친구와 있기 참 좋은 장소. 무언가 근사해져서 우리는 둘 다 가늘어지는 빗소리 끝에 집중했다. →
 

 

이달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창비, 1996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창비, 1996

빈 호주머니 속에 담뿍 담기는 주먹의 온기는 몇 도나 되는 것일까. 그것은 허전한 것이며 동시에 든든한 것이다. 조그만해진 중에 부릴 수 있는 호기 같은 것이다. 함민복의 이 시집은 슬프도록 가난해서 찬란하다. 사람의 맨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청춘들에게 기꺼이 권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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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은희
  • WRITER 유희경
  • WEB DESIGNER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