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 힘든 시대다. 팔로워와 ‘좋아요’의 숫자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됐다. <벨벳 버즈소>의 뒤틀린 유머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고고한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갤러리나 뮤지엄은 물론이고 아티스트 역시 이 중독적인 네트워크의 힘을 가볍게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붓질 한 번, 칼질 한 번 할 때마다 컬렉터들로 하여금 돈다발을 흔들게 만드는 스타 작가가 여럿 포진해 있다. 나름 개성이 분명한 인물들답게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뱅크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66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banksy)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3일 열린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영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그의 2009년 작 유화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가 987만 파운드(약 146억원)라는 거액에 낙찰됐다. 뱅크시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가 기록이다.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드문 아티스트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법한 일을 했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다. 뱅크시는 고가의 예술이 소수만을 위한 재화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 평론가 로버트 휴즈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오늘 밤 경매에서 뱅크시의 페인팅이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이 내 소유가 아니었다는 게 애석하네요.”

갤러리가 작가와 컬렉터를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됐다. 지금의 아티스트들은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든 팬과 덧글이나 하트를 주고받을 수 있다. 뱅크시는 이 막강한 네트워크를 상당히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눈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몇 년 전 뉴욕의 아틀리에에서 만났을 때 세실리 브라운(@dellyrose)은 소셜 미디어가 단지 머리를 식히기 위한 놀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섹슈얼한 에너지와 강렬한 색감이 폭발하는 듯한 추상화, 혹은 구상화로 널리 알려진 그는 종종 미완성 상태의 작업을 포스팅한 뒤 팔로워들의 의견을 구하곤 한다. 덧글로 달린 피드백을 반영할 때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화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팔로워 대부분은 제 작업을 좋아하는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반응이 너그러운 편입니다. ‘하트가 500개나 되네? 이 작품은 완벽해!’ 이럴 수는 없다는 거죠.” 기분 좋은 응원과 그로부터 얻는 약간의 에너지. 세실리 브라운에게 SNS의 효용은 딱 이 정도다.
신디 셔먼은 또 다른 케이스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다양한 캐릭터를 차용한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에 오랜 기간 몰두해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야말로 내가 아닌 나를 연출하려는 욕망이 경쟁적으로 출몰하는 기이한 가상현실이다. 지나온 궤적을 생각해보면 그가 소셜 미디어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된 건 거의 필연처럼 느껴진다. 2017년부터 신디 셔먼은 개인 계정(@cindysherman)을 통해 일종의 연작을 띄엄띄엄 공개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괴할 정도로 과장된 리터칭을 거친 셀피들이다. 2~3개의 사진 보정 앱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는데, 전형적인 포즈와 표정, 그리고 앵글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매우 낯설고 불편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신디 셔먼의 인스타그램은 단숨에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전시 계획은 고사하고 아예 시리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세실리 브라운의 경우처럼 이 모든 게 대수롭지 않은 놀이에 불과한 걸까? 혹은 대수롭지 않은 놀이처럼 보이기 위해 복잡하게 계산된 프로젝트일 가능성도 있다.
아이웨이웨이(@aiww)도 인스타그램 피드 중 셀피의 지분이 상당히 높은 아티스트다. 하지만 가상의 캐릭터를 종류별로 섭렵하는 신디 셔먼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54만 명의 팔로워에게 다큐멘터리처럼 중계한다. 전시장 안팎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이어온 아이웨이웨이의 포스팅은 종종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8년에는 중국 당국이 자신의 베이징 작업실을 기습 철거하는 광경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팔로워들과 함께 그 순간을 목격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전시장에 안전하게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렬한 경험이다. 이 거침없는 작가는 소셜 미디어를 요긴한 메모장이자 캔버스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그의 계정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홍콩의 시위 소식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사진가이자 화가이며 작가이기도 한 브래드 필립스는 긴 무명 생활 끝에 컬트 아티스트로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계기가 된 건 역시나 인스타그램(@brad___phillips)이었다. <바이스> 매거진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그는 자조적인 유머를 곁들여 이렇게 적었다. “여전히 존중받을 만한 최후의 뉴욕 미술 평론가 중 한 명인 제리 살츠는 내 작품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대한 글을 썼다. 이 사건을 내 약력에 포함시켰느냐고? 물론이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기회를 얻을 거라던 앤디 워홀의 말은 인스타그램 시대에 대한 예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15분 뒤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스타가 탄생하는 속도만큼이나 잊히는 속도도 빠르다. 스마트폰 액정 안의 인기를 오프라인의 미술 시장까지 확장시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은 미술의 화법을 바꾸어놓게 될까? 혹은 시장의 법칙을 극적으로 재편하게 될까? 누군가가 거창한 질문을 던져온다면 일단은 유보적 태도로 대답을 얼버무릴 것 같다. 소셜 미디어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한 툴이고,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기대나 예상에 미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려는 관람객들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대형 전시 티켓 판매량은 지금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