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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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SQUIRE2019.11.16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댄 길로이의 <벨벳 버즈소>는 현대미술계 이면의 홍보전과 머니 게임을 심술궂게 묘사한 호러 코미디다.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토니 콜레트가 연기한 탐욕스러운 큐레이터 그레첸도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저주받은 그림들이 설치된 전시장에 홀로 남겨졌다가 아니쉬 카푸어의 짝퉁 같은 구형 조각에 의해 팔이 잘리고 끝내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둔다. 갤러리 직원은 다음 날 보스에게 전화로 이 상황에 대해 보고한다. 그에 따르면 그레첸의 시체는 관람객의 입장이 시작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다들 피투성이가 된 광경을 설치의 일부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통화를 하던 목소리가 미묘하게 들뜬다.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온통 화제예요. 전시가 대박이 났다고요.”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 힘든 시대다. 팔로워와 ‘좋아요’의 숫자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됐다. <벨벳 버즈소>의 뒤틀린 유머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고고한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갤러리나 뮤지엄은 물론이고 아티스트 역시 이 중독적인 네트워크의 힘을 가볍게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붓질 한 번, 칼질 한 번 할 때마다 컬렉터들로 하여금 돈다발을 흔들게 만드는 스타 작가가 여럿 포진해 있다. 나름 개성이 분명한 인물들답게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뱅크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66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banksy)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3일 열린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영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그의 2009년 작 유화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가 987만 파운드(약 146억원)라는 거액에 낙찰됐다. 뱅크시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가 기록이다.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드문 아티스트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법한 일을 했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다. 뱅크시는 고가의 예술이 소수만을 위한 재화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 평론가 로버트 휴즈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오늘 밤 경매에서 뱅크시의 페인팅이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이 내 소유가 아니었다는 게 애석하네요.”
 
그는 인스타그램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문턱 높은 갤러리 안쪽에서 그들만의 서열 정리에 몰두하는 예술계의 권위적인 태도에 반기를 들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리의 벽을 전시 공간으로 택했던 아티스트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야말로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마음껏 놀다 갈 수 있는 광장이자 널찍하게 빈 벽이니까. 그의 계정은 작가가 직접 해설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에 가깝다. 피드를 살펴보면 작업의 맥락과 의도를 훨씬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10월 초 런던 남부 크로이던에서 갑작스럽게 진행된 전시 겸 팝업 스토어 소식을 전한 채널도 인스타그램이었다. 연하장 회사가 자신의 이름을 상표화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였으며, 온라인으로 작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은 난민 구호 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약 1년 전 소더비 경매에서 벌어진 스캔들은 뱅크시의 이름을 새삼스럽게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소녀와 풍선(Girl with Balloon)’이 120만 달러(약 15억원)에 낙찰된 순간, 액자에 설치해둔 파쇄기가 작동하며 화폭을 절반쯤 갈아버린 사건이었다. 작가는 ‘경매에 출품될 경우를 대비’해 장치를 장착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해뒀고, 해프닝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해당 영상을 자신의 계정에 업로드했다.
갤러리가 작가와 컬렉터를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됐다. 지금의 아티스트들은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든 팬과 덧글이나 하트를 주고받을 수 있다. 뱅크시는 이 막강한 네트워크를 상당히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눈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몇 년 전 뉴욕의 아틀리에에서 만났을 때 세실리 브라운(@dellyrose)은 소셜 미디어가 단지 머리를 식히기 위한 놀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섹슈얼한 에너지와 강렬한 색감이 폭발하는 듯한 추상화, 혹은 구상화로 널리 알려진 그는 종종 미완성 상태의 작업을 포스팅한 뒤 팔로워들의 의견을 구하곤 한다. 덧글로 달린 피드백을 반영할 때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화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팔로워 대부분은 제 작업을 좋아하는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반응이 너그러운 편입니다. ‘하트가 500개나 되네? 이 작품은 완벽해!’ 이럴 수는 없다는 거죠.” 기분 좋은 응원과 그로부터 얻는 약간의 에너지. 세실리 브라운에게 SNS의 효용은 딱 이 정도다.
신디 셔먼은 또 다른 케이스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다양한 캐릭터를 차용한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에 오랜 기간 몰두해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야말로 내가 아닌 나를 연출하려는 욕망이 경쟁적으로 출몰하는 기이한 가상현실이다. 지나온 궤적을 생각해보면 그가 소셜 미디어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된 건 거의 필연처럼 느껴진다. 2017년부터 신디 셔먼은 개인 계정(@cindysherman)을 통해 일종의 연작을 띄엄띄엄 공개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괴할 정도로 과장된 리터칭을 거친 셀피들이다. 2~3개의 사진 보정 앱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는데, 전형적인 포즈와 표정, 그리고 앵글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매우 낯설고 불편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신디 셔먼의 인스타그램은 단숨에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전시 계획은 고사하고 아예 시리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세실리 브라운의 경우처럼 이 모든 게 대수롭지 않은 놀이에 불과한 걸까? 혹은 대수롭지 않은 놀이처럼 보이기 위해 복잡하게 계산된 프로젝트일 가능성도 있다.
아이웨이웨이(@aiww)도 인스타그램 피드 중 셀피의 지분이 상당히 높은 아티스트다. 하지만 가상의 캐릭터를 종류별로 섭렵하는 신디 셔먼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54만 명의 팔로워에게 다큐멘터리처럼 중계한다. 전시장 안팎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이어온 아이웨이웨이의 포스팅은 종종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8년에는 중국 당국이 자신의 베이징 작업실을 기습 철거하는 광경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팔로워들과 함께 그 순간을 목격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전시장에 안전하게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렬한 경험이다. 이 거침없는 작가는 소셜 미디어를 요긴한 메모장이자 캔버스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그의 계정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홍콩의 시위 소식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의미심장한 작업 사이사이로 연예인과 함께 찍은 셀피를 슬그머니 끼워 넣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훨씬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쪽은 아무래도 신인이나 무명 작가일 거다. 네덜란드의 사진학도였던 하자르 벤지다는 2016년에 수업 과제 목적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개설한다. ‘Young Thug As Paintings(@youngthugaspaintings)’는 래퍼 영 서그의 사진을 모델의 자세나 무드가 흡사한 고전 작품의 이미지와 나란히 포스팅하는 프로젝트였다. 재치 있고 귀여운 농담이었던 셈인데 버질 아블로에 이어 영 서그 본인까지 팔로우를 하게 되면서 단순한 농담 이상의 화제를 모았다. 하자르 벤지다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결국 2018년 말에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서 데뷔 전시를 갖기에 이른다. 스폰서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영 서그였다. 뜯어보면 소셜 미디어에 관한 온갖 클리셰가 죄다 등장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밈과 패러디, 셀러브리티의 리그램, 그리고 갑작스러운 명성까지.
사진가이자 화가이며 작가이기도 한 브래드 필립스는 긴 무명 생활 끝에 컬트 아티스트로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계기가 된 건 역시나 인스타그램(@brad___phillips)이었다. <바이스> 매거진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그는 자조적인 유머를 곁들여 이렇게 적었다. “여전히 존중받을 만한 최후의 뉴욕 미술 평론가 중 한 명인 제리 살츠는 내 작품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대한 글을 썼다. 이 사건을 내 약력에 포함시켰느냐고? 물론이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기회를 얻을 거라던 앤디 워홀의 말은 인스타그램 시대에 대한 예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15분 뒤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스타가 탄생하는 속도만큼이나 잊히는 속도도 빠르다. 스마트폰 액정 안의 인기를 오프라인의 미술 시장까지 확장시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은 미술의 화법을 바꾸어놓게 될까? 혹은 시장의 법칙을 극적으로 재편하게 될까? 누군가가 거창한 질문을 던져온다면 일단은 유보적 태도로 대답을 얼버무릴 것 같다. 소셜 미디어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한 툴이고,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기대나 예상에 미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려는 관람객들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대형 전시 티켓 판매량은 지금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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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정준화
  • WEB DESIGNER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