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씨는 배정남 씨와 함께 있을 때 유독 사투리를 많이 쓰시네요.
경북 봉화 태생이시죠? 대구에서 오래 연극 활동을 하셨고.
배정남(이하 B): 형수님도 서울말 할 줄 알아요? 한 번도 못 봤는데.
배정남 씨는 명절 때마다 이성민 씨 가족과 함께 보내시죠? 말은 쉬워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둘의 친분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이해도 필요하니까요.

네이비 재킷, 셔츠 모두 슈트패브릭. 그레이 스트라이프 팬츠 수트서플라이. 슈즈 에스.티.듀퐁.
그래도 처음엔 어색하지 않았어요?
아, 그렇구나. 잠깐만요, 그럼 오해가 없도록 정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배정남 씨는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여러 번 이성민 씨를 아버지처럼 여긴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성민 씨에게는 혹시 배정남 씨가 ‘온리 원’이 아닌 걸까요? 그냥 많은 후배 중 한 명이라거나….
L (웃음)
B 그 친구들은 제가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형님을 챙겨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비교하면 안 되죠.
두 분은 영화 <보안관>으로 처음 만나셨죠? 어떻게 친해진 거예요? 이성민 씨와 작업한 다른 배우들은 이성민 씨를 과묵하게 보는 경우가 많던데.
L 응, 그랬지.

더블 슈트, 셔츠, 슈즈 모두 구찌.
캐릭터의 영향이었을까요? 동네의 크고 작은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큰형님 역할이었잖아요.
그래도 처음에는 어려웠을 거잖아요. 이성민 씨가 워낙 대선배에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배우니까.
B 아, 형님! 처음에는 제가 어려워했죠.
L 아, 그래?(웃음)
B 그럼요. 상견례할 때는 형님뿐만 아니고 다 어려웠죠. 그런데 형님이 초반부터 마음을 열어주시더라고요. 까칠하게 대하면 저는 근처에도 안 가죠. 제가 눈칫밥 먹고 사는 놈이라, 보면 알아요. 알잖아요, 형님. 무서운 사람 있으면 제가 얼씬도 안 하는 거.
L 그게 저뿐만이 아니고 종수 형(배우 김종수), 성균이(배우 김성균)나 우진이(배우 조우진)도 정남이를 많이 챙겼어요. 어딜 가나 예쁨받는 애예요, 제가 볼 때는.

그레이 스트라이프 재킷 수트서플라이. 그레이 터틀넥 휴고보스.
이성민 씨는 최근의 내적 변화에 대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좀 더 낭만적으로 표현하시기도 했죠. “내가 워낙 말수가 없는 사람이라 주변에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이랑 있으면 나도 말이 많아진다.”
B 진짜 모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신기하게.
어찌나 좋으셨는지 계속 얘기가 <보안관>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네요. 두 분이 함께 촬영한 개봉 예정작 <미스터 주> 이야기도 좀 나오면 좋을 텐데…
B <미스터 주> 촬영 현장도… 아우, 너무 좋았죠.
L 일단은 김태윤 감독이 참 좋은 사람이라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줬고요. 밝은 내용의 영화이다 보니까 더 유쾌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카키 컬러 더블 슈트 맨온더분. 터틀넥 코스.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는 가족 영화인가 싶더라고요.
B 군견 출신의 ‘알리’라는 허세 많은 개가 있는데, 걔랑 소통하면서… 그… 미션을 해결해요. 간간이 다른 동물의 도움도 받으면서… 어, 이 정도면 스토리 전달이 되지 않습니까? 아닌가?(웃음)
L 맞아. 잘했어.
그럼 배정남 씨의 역할은 뭐예요?
L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해서 일을 망치죠. 그런데 또 아주 순진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 어떨 때는 큰 몫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까지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족 영화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B 이게 티켓 네 장 묶음 영화라니까요. 한두 사람씩 와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 온 가족이 손잡고 와서 보는 영화요. 100만 관객… 몰라요 이거.
L 하하하. 저는 예전에 쟤 영화 홍보 인터뷰한다는 데에 그냥 슬쩍 방문한 적도 있어요. 불안해서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결국 그날 쉬는 시간에 기자한테 그랬어요. 미안하다고. 잘 좀 정리해서 써달라고.(웃음)
한국에서 그간 보기 힘들었던 잘 만든 가족 영화다, 그 말을 하신 것 같은데요?
L <라이온 킹>은 사람이 안 나오잖아. 경우가 다르지. 근데 뭐, 맞는 말이긴 해요. 동물은 전부 CG거든요. 근데 미술감독도 완성본을 보고 그게 그래픽으로 구현한 동물이라는 걸 바로 못 알아채더라고요. “저기 원래 아무것도 없었잖아” 하니까 그제야 “아, 맞네” 하고 놀란 거죠. 촬영 현장에서는 제가 맨날 공이나 파란색 옷 입은 사람 보면서 연기했거든요.
힘드셨겠어요. <반지의 제왕> 비하인드 영상 중에 영국의 노장 배우 이언 매켈런이 연기하다가 갑자기 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온통 녹색인 합성용 세트장에서 혼자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코미디 영화라고 촬영 현장도 마냥 말랑말랑할 순 없겠죠. 당연한 얘기인데, 그래도 이성민 씨가 촬영 내내 김태윤 감독한테 당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묘하더라고요. ‘우리 쪽팔릴 짓은 하지 말자’고.
B 한국에서 이 정도면, 저는 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나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요. 벌써 다른 나라랑도 판권 구입 얘기가 오가고 있으니까요.

(배정남) 블랙 슈트, 화이트 셔츠, 슈즈 모두 프라다.(이성민) 그레이 스리피스 슈트 로드앤테일러. 화이트 셔츠 브리오니. 블랙 슈즈 트리커스. 워치 까르띠에.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정남 씨는 전에도 저와 인터뷰하신 적이 있잖아요. 그때 느낀 게, 워낙 말투가 농담조라서 그렇지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굉장히 진지한 것 같았어요.
L 정남이가 연기를 만만하게 보진 않아요, 절대.
B 연기, 어렵죠. 지금도 또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맡아서 촬영하고 있는데 공부하고 노력해도 또 깨지고, 여전히 그래요. 근데 그 과정이 재미있잖아요. 모델 처음 할 때도 그랬거든요. 쫓겨나고, ‘집에 끄지라’ 하고, ‘장난하나’ 해쌌고. 그래도 버티니까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주더라고요. ‘되네’ 싶은 순간이 오는 거죠. 차이점이 있다면 연기가 백배쯤 더 힘들다는 거고.
L 그런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찍고 오더니 연기가 아주 좋아졌더라고요. 감독이랑 다들 놀랐어요.
이성민 씨가 배정남 씨한테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그런데 그 내용이 연기론보다는 배우로서의 직업 정신 측면에 가까워서 재밌었어요.
L 방금 전에도 그랬지만, 정남이가 ‘배운다’는 표현을 쓸 때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여기가 애먼 돈 들여서 너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받은 만큼 값어치를 해야 한다.”
B 그런 말 들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L 그런데 잘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었죠.
B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해서… 미친 놈 하나 나올 겁니다, 영화에.(웃음)
만약 이성민 씨가 배정남 씨를 좋은 배우라고 평가한다면 그건 어떤 지점에서일까요?
L 정남이가 지금 혼잣말로 얘기한 것처럼, 좋은 배우인지 나쁜 배우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개성이 아주 독특한 배우인 것 같아요. 몇 컷만으로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죠. 그 장점을 잘 살리면 좋은 캐릭터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그래요. 옛날에는 그걸 ‘성격파 배우’라고 불렀는데, 일단은 그런 배우로 잘 성장하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그 후에 다른 종류의 캐릭터도 하나씩 섭렵한다면 그때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일단은 ‘장점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B 와이구야.
L 진짜야.
배정남 씨도 화답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배우로서의 이성민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브라운 컬러 코듀로이 슈트, 화이트 셔츠, 타이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워치 IWC 샤프하우젠.
다들 이렇게 ‘말이 필요 없는 분’이라고 칭송하니까 오히려 거장들이 칭찬에 더 굶주려 있을 수도 있잖아요.
L 뭘 배워. 그런 게 어딨어.(웃음)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태도 같은 면에서는 좀 정남이가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남이야 지금도 괜찮지만, 그래도 저는 여기에 모든 걸 바쳐왔고 이걸로 먹고사는, 이것 외에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영화나 연극을 대하는 태도, 배역을 대하는 태도가 정남이나 다른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지점으로 보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해요. 스킬 측면에서 뭔가를 봤다, 배웠다, 이런 건 제 생각에 말이 안 되는 것 같고요.
B 아니, 그런데 실제로 보고 배우기도 해요. 연기하실 때는 진짜 다른 사람 같으니까요. 맨날 같이 지내는 사람인데 화면에서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L 저도 오늘 정남이를 다시 봤어요. 화보를 같이 찍어보는 건 처음인데, 너무 낯설더라고요. ‘와, 이 자식 대단한 놈이구나’ 싶었던 게, 고도의 집중력? 그것도 장시간의. 그리고 모델로서 사진작가 앞에 섰을 때의 연기 태도?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스킬보다는 태도의 측면이거든요. 정남이가 저한테 느끼는 것도 비슷한 종류일 것 같아요.
혹시 그 외에도 이성민 씨가 후배인 배정남 씨에게 배우는 지점이 있을까요?
L 정남이는 저보다 따뜻한 친구 같아요. 저는 그런 지점이 얘보다는 부족하고, 얘만큼 순수하지 못하고 그래요. 그리고 연기로는… 아직 뭐….
B 에이, 고마.
L (웃음) 그리고 머리가 작은 거?
하하하. 그건 배울 수가 없는 부분이잖아요.
어떤 장면인지 힌트를 줄 수 있나요?
B 형님, 진짜요? 와….

와인 컬러 슈트, 블랙 터틀넥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럼 배정남 씨도 이성민 씨의 어떤 연기에 감명을 받았는지, <미스터 주>의 한 장면 꼽아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B 저는 형님 하시는 거는 항상 마….
L 자기 것 말고는 관심이 없어요.
B 제가 이걸 말하기가 애매하죠. 다 잘하셨는데.
L 얘는 진짜 경주마 같아요. 눈가리개 찬 말처럼 딱 앞만, 자기 것만 봐.
B 무슨 소립니까? 다 기억하죠. 근데 제가 감히 말하기가… 아, 모기가 왜 이리 많노.
L 말 돌리지 말고.
B 저는 뭐 매 순간순간… 그렇게 써주세요. 형님, 알잖아요. 이게 제가 지금껏 맡은 것 중 가장 큰 역할이라서 제가 뭐 남의 것 챙길 정신이 없었어요. 이 영화에 지금껏 찍은 영화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신이 나오는데.(웃음)
연기 파트너로서는 어떨까요? 서로가.
배정남 씨는요?
L 이제 저랑 작품 안 한대요. 저랑 너무 많이 해서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 같다고.
B 아따, 참말로. 나이 먹으면 소심해진다 그러더만, 무슨 농담을 못 하겠네. 같이 좋은 거 많이 해야죠.
저희 인터뷰 끝나가는데, 초반에 한 질문에 답을 안 받고 넘어간 게 마음에 걸리네요. ‘배정남 씨는 이성민 씨를 아버지처럼 여기는데 이성민 씨는 배정남 씨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감정에 가까울까요? 아끼는 후배? 좋은 친구?
B 그런데 그런 과거가 처음 연기할 때 도움이 됐어요. 모델 일 할 때도 도움이 됐고. 빨리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는 신에서 힘들었을 때 생각하면 순식간에 확 찍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L 그래도 그렇게 자꾸 되새기지 마. 다른 생각을 해. 다르게 풀어.
B 지금은 그렇게 안 하죠. 옛날에.
이 인터뷰가 12월호에 실릴 예정이에요. 연말인데 서로 덕담 한마디씩 하면서 끝낼까요?
L 하하. 저는 근데 일할 때 오히려 안 아픈 것 같아요. 긴장을 하고 살게 되니까. 얘는 뭐… 후배들한테 자주 하는 얘기인데요, 좋은 일 있을 때 조심하라고. 늘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B 형님이 요즘 골프에 열중하고 계신데 그것도 더 잘되면 좋겠고. 저는 골프 그만뒀다가 형님 때문에 다시 하고 있거든요.
L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이제 딴 거 하지 말고 나랑 놀자고.(웃음)
B 그래요. 뭐 올해도 잘 넘겼네요, 형님. 내년에도 파이팅합시다.
L 내년 1월에 개봉할 <미스터 주> 많이 봐주세요. 영화만 잘되면 우리야 뭐 저절로 건강도 좋아지고, 만사형통 아니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