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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현장 취재기

리얼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YESQUIRE2019.12.02
 
 
 

# 1

택시에서 내리자 버터 냄새가 났다. 우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간판이 없었다. 전화를 걸자 철문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공단에 있는 리얼돌 공장이었다. “여기엔 볼 게 없는데.” ‘명품 레알돌’ 김경민 대표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도 취재에 응했다. 리얼돌에 대해서는 여러 쟁점이 있지만 정해진 날짜에 마감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은인이었다. ‘리얼돌을 알아본다’는 주제로 취재와 촬영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업체에 연락했다. 한국에 있다고 알려진 리얼돌 공장은 10곳 내외다. 그중 특정 언론 매체에 노출된 곳은 찾아본 결과 세 곳이었다. 경기 남부의 어떤 곳은 연락이 닿았지만 생산 현장 공개를 거부했다. 경기 북부의 어떤 곳은 대표의 휴대전화가 아예 착신 정지 상태였다. 긍정적인 답을 준 사람은 김경민 대표뿐이었다. 양산에 갈 수밖에 없었다. “먼 길 오셨습니다.” 경상도 억양을 쓰는 김경민 대표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았다. 들어가자마자 흠칫했다. 리얼돌이 우리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어디를 봐도 인형이었다. 비율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만화 캐릭터에 가까웠다. 얼굴은 너무 작고 가슴은 너무 컸다. 얼굴이 묘하게 앤 해서웨이를 닮았다.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건 그 인형뿐이었다. 김경민 대표는 왼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낮은 소파가 있었다. 거기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경민 대표는 해군 하사 복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월급의 90% 이상을 저축해 마련한 종잣돈으로 무역에 뛰어들었다. 일세를 풍미한 김우중의 말처럼 ‘사업가들은 사업을 하고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모든 게 다 돈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김경민의 눈에도 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돈은 인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리얼돌이었다. "아이템이 보였습니다. 그때는 리얼돌을 수입해 오는 게 가능했어요. TPE 소재로 만든 게 500만원씩 했습니다. 이걸 한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면 아이템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3년 전부터 공부했습니다.” 김경민 대표에게 리얼돌은 그저 사업 아이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리얼돌을 왜 만드냐는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돈이 되니까.” 돈을 본 김경민 대표는 돈을 주고 기술을 샀다. 기술을 산 결과 자신이 만드는 ‘명품 레알돌’은 품질이 좋다고 김경민 대표는 여러 번 강조했다. “TPE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고무 성분이에요. 고무 밴드를 상온에 두면 며칠 지나서 갈라지고 끊어지죠? TPE도 마찬가지예요. TPE 리얼돌이 제품이 안 좋은 경우엔 일주일만 지나면 무릎이 터집니다. 무릎이 터지지 않게 하려면 관절을 잘 펴줘야 해요. 명품 레알돌은 3개월까지는 괜찮습니다. 무릎이 안 터져요.” 그는 자신의 기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만져보세요.” 김경민 대표가 리얼돌의 머리를 내밀었다. 소파 근처에는 리얼돌의 머리만 10개 내외로 전시되어 있었다. 흠칫할 틈도 없이 리얼돌의 머리를 받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볼링공 정도의 무게감이었다. 왼손으로 리얼돌의 머리를 안고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당연히) 머리뼈가 없으니까 손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갔다. 위로 아래로 쓰다듬자 각질 같은 뭔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싼 걸 쓰면 손에 가루 같은 게 묻어나요. 그건 저희 회사 게 아니에요.” 리얼돌의 머리를 쓰다듬는 옆에서 김경민 대표가 말했다. 정말 뭔가가 묻어났던 모양이다. “저희 회사 건 일반 TPE와 달라서 묻어나는 것도 없고 고무 냄새도 없어요. 여러 가지 원료를 섞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게 저희 기술이에요.” 김경민 대표는 기술을 계속 강조했다. 그의 말로는 생산 관련한 핵심 기술을 들여오는 데 몇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생산 기술 면에서 보면 리얼돌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리얼돌의 뼈대 관절은 처음에 나사식이었다가 지금은 베어링식이다. 베어링식이 더 유연하게 움직인다. 명품 레알돌은 베어링식을 쓴다. 리얼돌의 머리와 몸을 붙이는 방식도 기존 방식은 나사 방식이었다. 머리를 몸에 나사처럼 돌려 끼웠다. 명품 레알돌은 직접 끼우는 방식이다. “저도 생산을 하는 사람인데, 더 잘 만들고 싶습니다. 제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김경민 대표가 말했다. 그는 공장 공개 전에는 조심스러워했지만 막상 현장에 찾아가자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취재와 섭외를 진행한 입장에서 그 점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지금 불법도 합법도 아니죠.” 워낙 민감한 사업이라 그런지 김경민 대표는 이 사업의 쟁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리얼돌은 생산 방면에서는 규제가 없다. 여성들의 항의도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여성들에게 항의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국민청원은 봤어요. 신경 안 씁니다.”
 

# 2

“내가 왜 그런 걸 알아야 하냐는 말이야.” 리얼돌을 취재하기 전에 여성들의 반응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 어떤 여성에게 물어봤을 때 돌아온 말이었다. 일리 있었다. 만약 리얼돌을 법으로 규제하려면 ‘제도는 개인의 사적 기호와 윤리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리얼돌의 생산과 소비를 막을 논리는 별로 마땅치 않다. ‘아동 크기의 리얼돌은 만들면 안 된다’는 정도다. 그런데 리얼돌은 아동의 몸매가 아니다. 작은 리얼돌은 스몰 사이즈의 개념이다. 정말 아이 같은 리얼돌은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은 생산자 쪽에서 더 확고하다. “가슴이 없는 아기 사이즈 리얼돌은 절대 안 만듭니다. 그건 범죄죠. 돈을 얼마를 줘도 안 만듭니다.” 김경민 대표도 호언장담했다. 반대론자 입장에서는 생산자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싫고 (생산을 막을 법적 근거까지는 아니어도)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소수의 비밀 고가 취미로 남겨두면 그만일 수도 있다. 무소속 국회의원 이용주가 판을 키웠다. 그는 2019년 10월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자기 오른쪽에 리얼돌을 앉혔다. 이용주는 “앞으로 인공지능 기능이 추가되면 단순히 인형이 아니라 사람과 유사한 느낌, 감정까지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논란이 될” 거고 “예전에는 1년에 13건가량 통관 신청이 있었는데 대법원 판결 이후 111건의 신청이 있었다. 관세청에서는 관련 제도가 정비될 때까지 통관을 불허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막아지겠느냐”라고 했다. 국회에서 일하는 여성 페미니스트 모임 ‘국회페미’가 같은 날 긴급 성명을 냈다. ‘대다수의 리얼돌 판매 사이트가 접속하기 위해 성인 인증 절차를 두고 있는데, 전체연령가인 국정감사장에 리얼돌을 전시한 것은 비판받아야’ 하고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분명한 이 의원의 발언 진행에 적절한 제재나 제한을 가하지 않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반성하라’는 이야기였다. 상식적인 비판이었다. 이용주 의원의 주장에도 일말의 일리가 있다고 볼 수는 있었다. 본인이 하는 일의 무게를 인지하고 어느 방향으로든 사회적 논의 같은 걸 했다면, 이용주 의원실의 돌발 행동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그가 본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정감사 같은 이벤트에 리얼돌을 들고 나왔을 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했다. 지금 보면 그는 그 정도의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국회의원 이용주의 무책임과 비겁은 오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을 통해 접촉한 결과 이용주 의원실은 해당 건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리얼돌 관련 대답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거야말로 정말 비겁하다. 일개 네티즌도 아닌 입법의 주체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를 트래픽 이벤트 삼아 ‘어그로’를 끌었다. “더 많이 팔렸어요. 주말도 없이 일했어요. 전에는 리얼돌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르던 사람들이 리얼돌을 알게 된 거예요. 이슈화가 됐잖아요.” 이용주가 비난을 받고 이슈에서 손을 터는 동안 김경민 대표 같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공장을 보셔야죠.” 여기까지 말하고 김경민은 벽 뒤의 문을 열었다. 리얼돌을 만드는 곳이었다.
 

# 3

공장에는 키가 큰 남자 한 명만 있었다. 그는 리얼돌을 눕혀두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틀에서 나온 리얼돌의 몸 곳곳에 남아 있는 자투리 TPE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자투리가 다 제거되지 않은 리얼돌이 스테인리스스틸 테이블에 누워 있었다. 팔이 90도로 들려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물갈퀴처럼 TPE가 남아 있었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틀어둔 노래가 들렸다. 투애니원의 ‘파이어’였다.
공장 규모는 단출했다. 한편에 작업 도구를 두는 선반이 있고 그 앞에 리얼돌의 세부 작업을 하는 스테인리스스틸 테이블이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 테이블 옆에는 부자재를 두는 작은 트롤리가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인조 손톱이 프라모델 틀 안에 50개쯤 고정되어 있었다. 반대쪽 벽면에 생산이 끝난 리얼돌이 매달려 있었다. 목 위에 후크 선장의 갈고리 같은 걸 고정시킨 후 옷걸이 같은 곳에 줄지어 매달아놓았다. 얼굴은 없었다. 여기서만들지 않고 수입한다고 했다. 몸은 이 공장에서 만든 다음 수입한 머리를 조립해서 명품 레알돌을 완성시켰다. 리얼돌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몰딩 안에 뼈대를 넣고 TPE를 부으면 된다. 몰딩의 모양에 따라 리얼돌의 몸매가 결정된다. 명품 레알돌은 네 가지 타입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기술을 가진 본국은 체형이 더 다양하다. 뚱뚱한 것부터 마른 것까지 포함해 20여 가지 체형이 있다고 한다. 명품 레알돌은 그중에서 잘 팔릴 듯한 네 가지만 들여왔다. 하지만 명품 레알돌만의 비밀 TPE는 말 그대로 비밀이다. 김경민 대표는 촬영 내내 친절했으나 재료가 사진에 노출되는 일은 세심히 막았다. 우리도 그의 지도를 빠짐없이 따랐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사진을 찍으셔야죠”라면서 김경민 대표가 리얼돌을 하나 꺼내 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에스콰이어가) 남자 잡지니까 이렇게 해야 좋아하지!”라고 말하며 그는 리얼돌을 눕히고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굽혔다. 사진가 송시영이 옆에서 몇 장 찍었다. “음부에 포커스를 맞추지는 않았어요”라고 송시영은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그 사진을 지면에 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음부와 유두는 연한 핑크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몰딩에서 갓 나온 리얼돌에는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나중에 칠하는 모양이었다. 투애니원의 ‘파이어’를 듣던 남자가 리얼돌의 유두와 음부에 색을 칠할 것이었다. 명품 레알돌은 리얼돌뿐 아니라 ‘오나홀’이라고 하는 TPE 남성용 자위용품도 만들었다. 그 옆에 몰딩이 있었다. 그 몰딩 안에도 빠짐없이 연분홍색 TPE가 채워졌다. 엉덩이 모양도 있고 맥주 캔 정도 크기에 여자 몸 모양을 만들어두고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어둔 자위용품도 있었다. 김경민 대표는 TPE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자위용품을 하나 짚더니 수타면 반죽 다듬듯 좌우로 쭉쭉 벌렸다. 자위용품은 늘어나지만 끊어지진 않았다. “이건 파는 건 아니고 고객 마케팅용으로 주는 겁니다. 이렇게 늘려도 끊어지지 않잖아요.” 오나홀 옆에는 두루마리 휴지와 굵기가 비슷하고 길이는 1.5배쯤 되는 TPE 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그 부품을 리얼돌의 음부 안으로 넣어서 자위할 때 쓰는 거라고 했다. 사정을 하고 나면 그 부품만 빼서 씻으면 되는 구조였다. 리얼돌의 몰딩은 옆방에 있었다. 사람 크기의 리얼돌에 몰딩을 채워야 하니 몰딩 뒤로 사람 키만 한 계단을 설치해두었다. 그 계단에 올라가서 몰딩 윗부분의 구멍으로 TPE를 붓고 기다리면 되었다. 마침 몰딩을 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몰딩의 구멍 위로 옅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 4

“사람들이 꼭 성적인 목적으로 리얼돌을 사는 건 아니에요.” 공장을 나와 김경민 대표가 말했다. “외로운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여자에게 사주고 싶은 옷이 있거나 화장을 시켜주고 싶을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리얼돌을 많이 씁니다.” 어떤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였지만 세상엔 다양한 기호와 취향이 있다.
“제가 명품 레알돌을 만들고 나서 이 업계에서 이름 날리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전국 단위로 성인용품을 납품하는, 업계에서 대표적인 분도 오셨어요.” 김경민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여러 경험을 쌓은 건 확실했다. “장애인협회에서 연설을 한 적도 있어요. 장애인에게도 성욕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성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불법이 되었지만 사창가 역시 한국에 여전히 존재하는데요, 거기서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리얼돌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리얼돌은 뭐라 규정하기 힘든 사회의 아주 복잡한 경계선에 있는 제품이었다. “아내와 함께 온 남자도, 딸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어요. 반려 인형 목적으로도 삽니다. 저도 리얼돌을 만드는 걸 숨기지 않아요. 마네킹일 뿐인데요.” 김경민 대표는 계속 당당했다. 하긴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돌아가기 전에 리얼돌을 들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떤 느낌이 들까? 얼마나 무거울까? 문 앞에 있던 리얼돌을 한번 들어보았다. 잘 들리지 않았다. 27kg이면 큰 생수통보다 무겁다. “적당히 무게감이 있어야 (자위할 때) 안 밀립니다.” 김경민 대표의 말과 함께 우리는 공장 문을 닫고 나왔다.
“양산은 공업 도시입니다. 그런데 작은 공장이 많아요.” 차로 15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며 김경민 대표가 말했다. “가장 큰 공장 중 하나는 롯데예요.” 롯데? “롯데제과 공장이에요. 못 보셨어요? 우리 공장 바로 옆에 있었는데. 초콜릿 녹일 때랑 과자 구울 때랑 각각 다른 냄새가 나요.” 우리가 공장 앞에서 맡았던 냄새는 진짜 버터 쿠키 냄새였다. 김경민 대표와 우리는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 당분간 버터 쿠키는 못 먹을 것 같아요.” 양산역 플랫폼에서 사진가 송시영이 말했다.
양산역에서 출발해 덕천역에서 내려서 구포시장을 지나 기차를 타기 위해 구포역까지 걸어갔다. 구포역 앞에는 만두가 맛있는 화상 금룡이 있다. 뭘 시키든 채 썬 오이에 마늘 넣은 간장을 끼얹어준다. 기차를 기다리며 찐만두와 군만두를 시켰다. 개인용 간장 접시에 식초 통을 기울였는데 식초가 잘 나오지 않았다. 상단의 버튼을 눌러야 식초가 나오는 듯했다. 무심코 식초 통 버튼을 누르다 우리는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리얼돌에서 느꼈던 그 TPE의 감촉이었다.
 

# 5

“일산에 꼭 가보셔야 할 텐데요.” 양산 공장에서 김경민 대표는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거기가 전시장이에요. 찍을 게 훨씬 많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일산에도 가보기로 했다. 일산에 50개는 있을 것 같은 대형 오피스텔 지하 1층의 관현악 협주실 옆에 명품 레알돌 전시장이 있었다. “80% 이상이 성적 목적과 관계없는 이유로 리얼돌을 찾아요.” 전시장에 있던 사장님이 말했다. “이혼하거나 혼자 사는 남자가 올 때가 많아요. 하나같이 ‘여자에게 지쳤다’고 하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은 사람들이 인형을 사 갈 때가 있어요. 대부분 점잖아요. 정말 노골적으로 성적 면모에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우리가 내보내기도 해요. 부부끼리도 잘 와요. 아이를 가질 수 없고 입양도 하지 않는 부부가 인형을 사 간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정상인인데, 보면 볼수록 인형에 영혼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에는 밤에 보면 깜짝 놀랐죠. 지금은 괜찮아요.” 촬영과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그들은 취재 대응에 익숙해 보였다. KBS 등 언론의 방문도 많았다고 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그들은 노출 자체가 본인들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원고가 리얼돌을 감정적으로 수긍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 기획을 제안한 김은희 에디터는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안 매운 음식을 해달라는 것 같은 이야기였지만 김은희 에디터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원고 안에서의 나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려 했다. 윤리나 당위보다는 사실에 치중하며 공장을 취재하고 원고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혼 남성, 미혼 여성, 아이가 있는 남성과 여성, 20대와 30대와 40대. 모두 의견이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모두 나름의 이치와 논리가 있었다. 방치든 반대든 불쾌든, 나는 당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당신의 몫이다. 다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원래 고부가가치 산업은 합법과 불법 사이의 회색 지대에 있다. 회색 지대에 있으니 부가가치가 높다고 볼 수도 있다. 금융이든 모빌리티든, 법보다 빠른 세상 위에서 기존의 법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신사업이 태어난다. 거기 더해 인간의 성욕은 분야를 막론하고 신기술 산업의 안테나 마켓이다. 기술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모든 사업의 영역에서 포르노 성향 제품이 나왔다. 대량 인쇄가 발달하자 춘화가 유통됐다. DVD가 나오자 DVD 포르노가, VR이 나오자 VR 포르노가 출시됐다. 인간의 외로움과 성욕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여러 산업을 끌고 갈 것이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동시에 SNS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훔쳐보기가 점점 쉬워진다. 모두가 자신을 소재로 리얼리티 쇼를 하는 시대, 우리는 더욱 숨기 쉬워지기 때문에 더욱 외로워진다. 그 사이에 있는 설명 못 할 욕구가 사람 모양의 뭔가를 빚어냈다. 리얼돌은 실제보다 예쁘고 실제보다 편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리얼돌이야말로 21세기 자체 아닐까.
 
리얼돌 타임라인
05. 2017. 리얼돌 수입업체 A사, 인천세관에 수입신고.
07. 2017. 인천세관,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규정. 수입 통관 보류 처분.
09. 2018. 1심 인천지방법원(정성완 부장판사), “리얼돌이 실제 여성의 신체 부위와 비슷하게 형상화되어 있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특정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이라 판단. 수입통관 보류 처분 적법 판결.
01. 2019. 2심 서울고등법원(김우진 부장판사), 리얼돌을 개인적 성기구라 규정. “성기구를 일반적인 성적 표현물인 음란물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 인용. 1심 판결을 뒤집고 A사 승소 판결. 인천세관 상고.
06. 2019.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 “성기구는 인간의 은밀한 성적 행위에 사용된다. 이런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는 국가가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 된다”며 인천세관 상고 기각. A사 승소 판결한 원심 확정. 한국 시장에 리얼돌 수입 허용.
10. 2019. 이용주 무소속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리얼돌 노출. 비판 여론이 일자 다음 날(19일) 입장문을 통해 “관련 산업을 지원하거나 보호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리얼돌 문제에 관해 현행법상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입법이 완료되기 전이라도 관련 부처가 규제 조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힘. 이번 취재차 수소문 해 본 결과 “해당 건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리얼돌 관련 대답은 하지 않는다”고 답변.
12. 2019. 12월호 마감일 현재 리얼돌 국내 제작 관련 법규 여전히 미비. 주무 부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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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박찬용
  • PHOTOGRAPHER 송시영
  • ART DESIGNER 주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