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KA 트위그스의 진가

사랑을 잃고 나는 부르네

BYESQUIRE2019.12.12
 
FKA twigs, Madalene, Matthew Stone.

FKA twigs, Madalene, Matthew Stone.

FKA 트위그스가 두 번째 앨범을 내기까지는 4년의 공백이 있었다. 두 번째 앨범이 늦게 나왔다기보다는 데뷔 앨범이 너무 빨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에 낸 첫 정규 스튜디오 앨범 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대중적으로도 꽤 성공했지만 정작 FKA 트위그스 본인은 당시의 자신을 ‘아직 설익었던 때’라고 회상한다. 와의 인터뷰에서 “나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나는 헤드라이트 앞의 사슴 같았다”고 표현했다. 직업 댄서였던 10대 후반의 FKA 트위그스는 뮤지션이 직접 음원을 업로드하고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는 음악 오픈 마켓 사이트 ‘밴드캠프’에 첫 EP 앨범을 올렸다. 이후 영 턱스 레이블과 계약하고 낸 두 번째 EP부터는 BBC와 <빌보드> <피치포크> 그리고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등이 줄줄이 그녀를 주목해야 할 신예 아티스트로 꼽았다. 그리고 이즈음 런던의 한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만난 포토그래퍼는 그녀를 패션 매거진과의 사진 작업으로 이끌었다(FKA 트위그스를 찍고 싶어 했던 그 남자는 지금까지 그녀와 거의 모든 비주얼 작업을 함께 하는 비주얼 디렉터이자 아티스트 매튜 스톤이다). 돌이켜보면 빛나는 재능을 가진 FKA 트위그스는 다른 예술가들이 대번에 알아볼 만큼 데뷔 앨범을 포함해 늘 놀라운 작업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그녀는 내내 그런 자신의 능력과 자신을 둘러싼 갑작스러운 변화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첫 번째 앨범인 만큼 풋풋해서 대담하고 날것 같은 에너지는 충분했지만, 그녀 말대로 어쩐지 성글고 덜 다듬어진 채로 가슴에 아티스트란 이름표를 붙여버린 것이다. FKA 트위그스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특이한 스타일링을 하는 이 사이가 벌어진 여자’로만 기억되는 것은,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조금 슬픈 일이다.
그다음 앨범 대신 미디어에 나온 건 <트와일라잇>의 스타 로버트 패틴슨과의 연애와 결혼설이었다. 파혼 이후 FKA 트위그스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샤이아 라보프의 영화 <허니 보이>에 출연하면서 샤이아 러버프와도 짧은 연애를 했다. 이런 사랑이 그녀를 파파라치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녀를 향한 미디어의 시선도 바꿔놓았다. 더 많이 사진 찍히고 더 많은 면이 공개된다고 해서 내면의 감정을 내보여도 된다는 말은 아닐 거다. 보이지만 보여줄 수 없는 슬픔은 FKA 트위그스에게 다른 위로와 안식을 찾게 했다. 그녀는 막달레나를 생각했다.
“나는 여자로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남성들의 서사로 연결되는지를 생각하면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성녀 막달레나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예수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약재 전문가이자 치료사였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에는 ‘창녀’로 쓰여 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품위, 우아함 그리고 많은 영감을 느꼈다.” FKA 트위그스가 새 앨범의 타이틀을 설명하는 말에는 그녀가 겪은 일들이 고고하면서도 선동적이고 초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이 앨범에 종교적인 색깔은 없다. 새가 지저귀는 것 같으면서 주술사 같기도 한 FKA 트위그스만의 보컬로 빚은 신곡들은 R&B 리듬을 성스럽게 하고, 폴에 매달려 느리게 돌아가는 퍼포먼스는 (평소 가볍기 짝이 없는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서조차) 관객들을 홀렸다. 니콜라스 자, 스크릴렉스, 잭 안토노프 등이 FKA 트위그스와 함께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Holy Terrain’이라는 곡에는 래퍼 퓨처가 피처링으로 나섰다.
경박한 뉴스재킹 사이트들은 여전히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를 난도질해 한줄 한줄씩 발췌해서는 바로 이 부분이 로버트 패틴슨과 실제 있었던 일인 것 같다는 추측을 기사화하고 있다. 그런 일에 마치 오랜 시간 단련된 듯 FKA 트위그스는 “과거 나의 모든 연인과 앞으로의 모든 연인에 관한 기록”이라는 말을 미리 남겨둠으로써 쓸데없는 상상을 멈추게 한다.
하찮은 연애를 끝내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별담을 만드는 건 쉽다. 그런 장면을 비틀어 짜내 기어코 남을 울리고 속을 후벼 파는 행위로 자극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별 후에 온 깨달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고백하고 기록하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다. ‘트위그스’는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어린 시절부터 격하게 춤을 춘 그녀는 관절에서 나뭇가지를 부러뜨릴 때처럼 우두두둑 소리가 나서 ‘FKA 트위그스’라 이름 지었다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녀는 몸과 마음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산산이 부서졌던 날들로부터 만들기 시작한 음악을 통해 이제야 온전한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