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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엔 정종 말고 이런 술을

올해 음복에는 정종 말고, 의례에 맞는 술을. 일가 복됨을 기원하는 마음에 맞는 술을. 그리고 기왕이면, 입맛에도 꼭 맞는 술을.

BYESQUIRE2020.01.16
 
 
 

맞는 술

 
 
우리가 차례주로 즐겨 쓰는 정종은 일본 청주에서 기인한 술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청주의 상품명 세이슈(혹은 마사무네, 正宗)가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퍼진 것. 분명 그 전에는 우리 곡식으로 빚은 맑은 술이 차례상에 올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뜻에 맞게 전통주로 고쳐 올리려거든 전통주갤러리 초대 관장을 지낸 이현주 작가의 조언을 참고해볼 수 있겠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청주는 일본의 맑은 술을 가리킨다. 그러니 우리 술을 차례주로 쓰고자 할 때는 상표 뒷면에 ‘약주(藥酒)’라는 식품 유형이 표시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재료가 국내산 쌀과 누룩(국)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한 가지 더해, 음식과 술은 같은 밥상 위에서 발전해온 것이니 이왕이면 고향이나 그 인접 지역에서 생산된 술을 찾아 쓴다면 제수(祭需)와도 좋은 조화를 이룰 것이고 조상님들도 그 세심함에 감복하지 않으실까 싶다.”
명료한 설명이지만 여기서 끝맺기는 석연찮다. 정종이 부적절한 차례주라는 게 하루 이틀 된 논란도 아닌바, 더러는 실상을 알면서도 미처 관행을 바꾸지 못한 것 아닐까? 평생 지켜온 관행을 버릴 만큼 명쾌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 말이다. 일곱 명의 전통주 애호가와 전문가에게 차례상에 올리기 좋은 술을 한 가지씩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자태와 내력을 꼼꼼히 살펴보시길. 작은 양조장의 생경한 술도 대개 택배 서비스를 하니, 대목이 닷새 이상 남았다면 전국 어디서든 능히 구할 법하다.
 
 
1 세종대왕어주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대왕은 홍수나 가뭄으로 인한 금주령에 이런 예외를 둔다. “술 빚는 것을 업으로 하거나 몸이 아파 약으로 마시는 이는 금주령에서 제외한다.” ‘약주’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처럼 정말로 ‘약이 되는 술’을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어주는 어의 전순의의 기록에 따라 세종대왕이 재위 시절 마셨던 벽향주를 재현한 술이다. 역시나 세종대왕이 병을 앓을 때마다 머물렀던 지역 충북 청주의 양조장 장희도가에서 만드는데, 2019년 대한민국우리술품평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일단은 지난 한 해 최고라 평가받은 청주를 올린다는 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영예만큼 맛도 좋고 말이다. 깔끔한 단맛과 산미가 아주 조화롭고 갖은 음식에 두루 어울린다. - 류인수(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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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배술
음복술은 조상에게 예를 표한 후 자손들이 나누어 마시는 술이다. 그러니 나는 가장 근본에 가까운 술을 음복술로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헌에서는 〈위지동이전〉의 한반도 일대 고대 국가에 대한 기록에서 술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부여는 정월에 영고, 고구려는 10월에 동맹, 예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의식을 거행했는데 이때 모두 술을 사용했다. 지리적으로 보면 한반도 북쪽이니 쌀이 아닌 잡곡을 이용한 발효주였을 것이다. 성상, 제조 방법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하겠으나, 그 근본이 가장 유사한 술로는 문배술을 꼽을 수 있을 성싶다. - 김재호(한국식품연구원 산업지원연구본부장, 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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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향주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추연당은 이제 3년 된 새내기 양조장이다. 다만 여기서 생산되는 순향주는 1600년대 고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주방문을 해석하여 빚은 것이니 그 역사가 깊다. 쌀 맛 좋기로 소문난 여주 햅쌀과 우리 밀 누룩을 쓴다. 다섯 번에 걸쳐 술밥을 나누어 넣는 오양주법으로 빚기에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데다 집에서 술을 빚듯 수작업으로 생산하기에 수량이 많지 않다. 쌀의 양을 넉넉히 사용하여 천연의 단맛을 내고 발효와 숙성 시간을 길게 잡아 산미와 감칠맛을 더한다. 맵고 양념이 강한 음식만 아니라면 전이나 나물과도 잘 어울리고, 육류와도 좋은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살짝 달콤하면서도 과실 풍미 가득한 술 향이 음식 장만을 위해 애쓴 안주인들의 마음을 다독이기에 그만이다. - 이현주(전통주갤러리 초대 관장, 〈한잔 술, 한국의 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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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해소주
차례주로 무엇을 올릴지는 어떤 가치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답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만약 개별 술이 품은 의미에 중점을 둔다면, 내 답은 삼해소주다. 석 삼(三)에 돼지 해(亥) 자를 쓰는 이름처럼, 음력 정월 첫 돼지날(亥日) 해시(亥時)에 밑술을 담그고 돌아오는 돼지날마다 세 번 덧술을 쳐 만드는 술이니까. 돼지는 건강과 복을 불러온다고 여겨진 가축이니 그만큼의 정성으로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셈이다. 삼해주는 소주뿐 아니라 약주 형태로도 만든다. 다만 삼해주가 설 차례주로 뜻은 통하지만 시기적으로 잘 맞는 술은 아니니, 장기 보관에 용이한 삼해소주를 추천하는 게 사리에 맞지 싶다. 더 귀하게 여겨졌을 증류주를 올리는 게 마음에도 더 흡족하고 말이다. - 조성주(얼쑤 오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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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송화백일주
음복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적잖이 고민을 했다. 전통 양식보다도 오늘날에 대해. 제사라는 문화가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니까 말이다. 전통주 중에 ‘곡차’라는 술이 있다. 스님이 빚는 사찰주로, 소나무의 꽃인 송화를 가루 내어 술에 담가 약으로 마시는 술이다. 오늘날에는 전북 완주 수왕사 아래 자락의 송화양조에서 만드는 송화백일주가 유일한 곡차이자 사찰주다. 이 술을 추천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유교를 받아들이기 전 고려 시대 선조들도 제사를 지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술 대신 차를 냈다고 한다. 가양주 문화가 뿌리내리기 전이며 대부분의 술은 승려가 만들던 시대였으니까. 남성 위주의 문화인 유교 문화는 현시대와 상충하는 부분이 있으니 개인적으로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던 고려 시대의 문화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다. 둘째는 차와 술의 접점에 있는 특유의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마셔 약이 되게 한다는 곡차의 정신을 이어, 심신을 편히 하고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으면 좋을 것 같다. 오곡에 맵쌀,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송홧가루와 고랭지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술이 송화오곡주, 이 술을 증류하여 구기자, 산수유, 솔잎, 송홧가루를 담가 100일간 숙성한 술이 송화백일주다. 도수가 부담이 된다면 전자를 택해도 좋겠다. - 임병진(바 참 오너 바텐더)
BUY 우체국쇼핑몰(mall.epost.go.kr) 혹은 전화 주문(송화양조 063-221-7047)
 
6 풍정사계 춘
개인적으로 차례상에는 제수든 술이든 조상께서 살아생전 즐겼던 것을 올리는 게 취지에 맞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과 지역에서 난 농산물로 빚은 술을 올리면 좋겠다는 뜻. 물론 딱히 짚이는 게 없다면 좋은 청주를 택하는 것도 방편이겠다. 여기서 ‘청주’라는 표현을 오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현행 주세법은 청주를 일본의 맑은 술로 한정하고 전통주 중 맑은 술은 약주라 이르는데 이는 일제가 남긴 잔재다. 본래 우리의 맑은 술 명칭도 청주다. 충북 청주의 풍정사계는 이 명칭의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양조장이다. 어른께 권하는 술을 이르던아름다운 우리 표현 ‘청주’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주권 회복’이라고. 풍정사계의 빼어난 술 중에서도 춘(春)을 고른 건 설날과 어울릴 듯해서다. ‘봄이 온다’는 표현과 ‘만복을 기원한다’는 표현에는 통하는 바가 있으니까. 향이 강하지 않은, 와인을 연상시키는 맛을 지닌 술이니 온 가족이 즐기기도 좋을 테고 말이다. - 이지민(대동여주도 콘텐츠 제작자, PR5번가 대표)
BUY 풍정사계 홈페이지(hwayang.co,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소진 시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신세계 백화점 본점, 혹은 전화 주문(풍정사계 043-214-9424)
 
7 백수환동주
추천 이유는 그 이름만 뜯어봐도 쉽게 알 수 있겠다. 머리 흰 늙은이가 마시면 도로 아이가 되는 술(白首還童酒). 백과사전에 보면, 사람의 몸에 몹시 유익해 온갖 병을 물리치고 골수를 꽉 차게 해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쓰여 있다. 조상께 바치고 가족이 다 함께 나눠 먹는 데에 이보다 좋은 술이 있을까? 백과사전을 더 읽어 내려볼 필요가 있다. “〈양주방〉에 남은 백수환동주에 대한 묘사는 그 맛이 입에 머금은 후에도 삼키기 아까운 술이라 한다.” 맛도 빼어나다는 뜻. 실제로 첫 향은 달콤한 파인애플 같고 마시다 보면 구운 빵 냄새가 풍기며 끝으로는 고소한 견과류 향을 남긴다. 알코올 도수 측면에서나 취향 측면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두루 즐기기에 제격이다. - 더스틴 웨사(전통주 소믈리에)
BUY 전화 주문(봇뜰 031-528-3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