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은 과연 존재할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좋은 이별은 없겠지만, 잘 헤어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이별 가이드



연애에 쓰는 에너지에 비하면 잘 헤어지기 위해 사람들이 들이는 노력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가 지금껏 거쳐온 연애의 횟수는 니컬러스 케이지의 2000년대 이후 히트작 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 줌짜리 이력이긴 한데 뒤늦게라도 열심히 보충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다시 시도한다고 해도 전보다 잘할 자신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들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고, 이미 겪었던 즐거움과 괴로움이 비슷하게 반복될 거다. 다만 이별만큼은 좀 더 만족스럽게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지난 연애의 마침표들을 되짚을 때면 종종 시간을 거슬러 스스로를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 든다. 불편한 대화를 피하려고 우물쭈물 연락을 끊었던 적도 있고, 차인 뒤에도 구질구질하게 연락을 하면서 자존심을 헐값에 넘긴 적도 있다. 아마 좀 더 감정을 추스르고 최대한 예의를 지켰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이별에 대한 복기는 다음 기회에는 있는 힘껏 잘 헤어져봐야겠다는 난데없는 다짐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아무래도 로맨스의 8할은 이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추억이 될지, 그저 그런 기억이 될지를 좌우하는 건 마지막에 주고받은 말이나 행동, 태도 같은 것들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의 도입부다. 그런데 연애에 쓰는 에너지에 비하면 잘 헤어지기 위해 사람들이 들이는 노력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을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고르느라 뇌세포를 혹사시키기 전에 갑작스러운 이별에도 성숙하게 대처할 훈련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데이터 저널리스트이자 정보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매캔들리스와 리 바이런이 1만여 개의 페이스북 프로필 업데이트 추이를 근거로 산출한 통계에 의하면 1년 중 커플들이 가장 많이 결별하는 시점은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전후라고 한다. 〈에스콰이어〉 2월호를 읽고 있는 당신이 참고할 만한 정보다. 혹시 기혼자들에게는 이게 다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OECD 국가 중 9위, 아시아 1위에 빛나는 한국의 이혼율을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하트 모양 초콜릿 상자에 소금을 잔뜩 치는 소리 같기는 한데, 원래 디저트는 ‘단짠단짠’이 진리인 법이다.
좋은 허구에는 상당량의 진실이 깃들어 있다. 어떤 영화들은 순식간에 시들거나 힘없이 깨져버리는 로맨스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짚어준다. 나는 이런 쓸쓸한 멜로드라마를 통해 연애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돼 각종 시상식의 후보작 목록에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도 그중 한 편이다. 연극 연출자인 찰리와 배우인 니콜은 오랫동안 일과 일상을 모두 공유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고 돌이키기 힘든 단계로 진입하는 동안에도 둘 사이에 남은 감정들은 오래된 찌꺼기처럼 들러붙는다. 감독은 ‘우호적인 결별’이라는 간결한 문구 이면에 감춰진 어지럽고 날카로운 단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사적이고 예민한 부분이 법정에서 함부로 들춰지고, 둘 사이의 문제를 둘이 결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부부는 가능한 최선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결혼 이야기〉는 로맨스의 2막을 그리는 멜로이자 두 성인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니콜은 곁에 있는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 솔직하게 원하는 삶의 모습을 새롭게 고민한다. 그리고 찰리는 순탄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누군가의 묵묵한 희생으로 유지되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별은 연애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몰랐던 많은 것을 알려준다. 첫사랑과 평생을 함께하는 삶도 아름답기는 하겠지만 나는 헤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믿는 쪽이다. 사랑이 눈을 멀게 한다면 이별은 차가운 손으로 안대를 풀어주거나 가끔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기도 한다.
아침 드라마의 세계에서라면 관계의 끝은 곧 파국이다. 명백한 가해자와 가련한 희생자가 고막이 피곤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전쟁을 치른다. 물론 최종회에서는 최후의 심판이 김치 싸대기와 함께 악역들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TV 밖의 현실은 훨씬 더 미묘하다. 어느 누구의 잘못 없이도 사람들은 끝내 헤어진다. 시드니 폴락의 1973년 작인 〈추억〉은 인연이라는 냉정한 필연에 대해 조기교육을 시켜준 작품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퍼드가 연기한 주인공들은 정치적 견해와 삶에 대한 태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금씩 멀어진다. 영화의 엔딩은 일종의 에필로그다. 헤어졌던 두 사람은 몇 년 뒤 길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여자는 남자의 새 연인을 어깨 너머로 곁눈질하며 이렇게 말한다. “애인이 사랑스럽네, 허블. 다음에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면 어때?” 남자가 답한다. “안 될 거 같아, 케이티…. 안 돼.”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사랑만으로 유지될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건가 보다 막연하게 생각했다. 성인이 돼서 다시 감상을 하자 좀 더 미세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인이 서로를 동일한 크기의 감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 때로는 그중 한 사람의 사랑이 충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헤어진다고 해도 그게 덜 사랑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애초부터 한쪽의 일방적인 공세였다면 차라리 애틋할 일도 없다. 하지만 서로 사랑을 하면서도 애정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관계는 조금 서글프기는 하다. 두 감정의 간격 어딘가에서 흩어져버린 많은 가능성을 자꾸만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일 거다.
A와는 약 3년간 장거리 연애를 한 뒤에 헤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다만 A가 나를 ‘충분히’ 좋아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잊고 있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를 지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고 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보리차인가 싶을 만큼 싱거운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홀짝인 뒤 A가 곧 결혼을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넘겨받은 스마트폰 속에서 약혼자의 사진을 본 나의 반응은 이랬다. “와, 잘생겼네. 다음에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 잠깐, 이런 장면을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르는 ‘The Way We Were’(영화 〈추억〉의 주제곡)에 코러스를 넣다가 깨달았다. A와도, A의 남편과도 같이 모여 술을 마실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추억〉을 미리 본 게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이틀 간격으로 술 약속을 재촉하며 눈치 없음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올해의 ‘구 남친’에 선정될 뻔했다.
좋은 이별은 없겠지만, 잘 헤어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