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의 대명사 코닥의 현재와 미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가히 ‘사진’이라는 매체의 다른 이름이었던 브랜드. 코닥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는가.



코닥은 어쩌다, 어디로


한국코닥의 홈페이지. 소비자 사업 부문의 국내 철수 이후 'Contact' 항목을 누르면 오류 페이지로 연결된다.

한국코닥의 홈페이지. 소비자 사업 부문의 국내 철수 이후 'Contact' 항목을 누르면 오류 페이지로 연결된다.

영국 출신 사진가 마크 파워는 ‘코닥(Kodak)’이라는 이름의 개를 키운다. 언젠가 그를 직접 대면했을 때 개 이름의 연원을 물었더랬다. “필름 시대에 대한 오마주인가?” 그는 대수롭잖게 답했다. “아니. 사진이라는 매체 전반에 대한 오마주지.” 충격적인 답이었다. 그렇구나. 40여 년간의 꾸준한 작업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매그넘 포토스 소속 60대 사진가에게 코닥은 여전히 사진이라는 매체를 대표하는 이름이구나. 코닥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기사를 보며 ‘재작년에 부활한 필름 엑타크롬에 대한 이야기인가?’ 생각한 사람도 있을 테고(아직까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거나 사진 애호가일 테다), ‘그 회사가 아직도 살아 있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테다(슬프지만, 그냥 일반적인 범주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코닥이라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가 가까스로 재상장되고 이스트만 코닥과 코닥 알라리스로 분할되어 필름과 이미지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분명 사진업계 사람일 것이다. 퀴즈쇼 출전을 준비 중인 사람이거나). 에디터가 이 기사의 취재를 시작한 건 코닥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저 회사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닥은 일찍이 단종한 슬라이드 필름 엑타크롬의 생산을 재개하는 한편, 휴대폰 카메라 액세서리나 의류를 발표하기도 하고, 곧 인도에서 TV를 출시한다고도 했다. 아날로그 매체를 택배로 보내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디지타이징 박스’ 서비스는 뭐고, 가상 화폐 ‘코닥코인’은 또 뭔지. 이 사방으로 뻗친 행보 속에서, 대체 코닥의 지침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우선 간략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코닥의 상황에 대해서. 1888년 설립되어 한 세기를 사진이라는 매체의 다른 이름으로 군림했던 이 브랜드는 1990년대,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빠르게 추락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기업의 말로.’ 코닥은 경영학 서적이나 자기 개발서에 등장하는 단골 스터디 케이스가 되었으나, 사실 이런 평가는 사후확증편향일 수 있다. 〈Side by Side〉 같은 다큐멘터리가 알려주듯, 당시만 해도 그 조악한(초기 디지털 카메라) 품질의 매체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필름의 자리를, 그것도 모조리 빼앗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브랜드도 코닥이다. 상품화하지 않았을 뿐. 코닥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만은 기술 개발에 방대한 투자를 한 사업가였다. 연구소에 천명한 것은 두 가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구해보라’는 것과 ‘너의 연구가 사진의 미래’라는 것이었다. 이런 행보는 1만5000개에 달하는 특허를 남겼고 결국 필름 산업의 몰락에 이어진 무수한 경영 실패에도 코닥을 연명토록 한 기반이 되었다(‘특허 좀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무튼 끝없이 추락하던 코닥은 결국 2012년,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때부터 코닥이 인원을 감축하고 특허를 팔게 된 거죠. 그런데 그 안에 역설이 있어요. 코닥이 그렇게 빨리 추락한 것도 결국 거대한 규모 탓이었는데 줄어들고, 떨어져 나가고, 팔리고, 덩치가 작아지니까 필름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적은 수익으로도 지탱이 가능하니까. 후지필름과는 정반대 상황인 거죠. 후지필름은 여타 사업 부문에서 잘 풀리면서 필름 부문을 계륵처럼 여기게 된 것 같거든요. 수익은 푼돈인데 품은 많이 들고, 그렇다고 없애자니 사명이 후지 ‘필름’이고. 눈치 보면서 필름 사업부의 군살을 조금씩 빼고 있는 것 같아요.” 충무로의 필름 현상소 포토마루 이루 대표의 설명이다. 첫 문단에서 제시한 분류법을 들자면, 코닥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그의 인식은 ‘짠함’이라고 했다. 후지필름에 대한 인식은 ‘얄미움’이고. 코닥의 파산보호 절차는 다행히 빠르게 종결되었고, 이듬해 증권거래소에 재상장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구조는 좀 달라진 채였다. 영국의 코닥 퇴직자 연금 관리 기관인 KPP(Kodak Pension Plan)는 코닥의 몇 개 사업부를 인수해 코닥 알라리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과 영국의 코닥 알라리스, 두 업체로 나뉜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포토마루는 지난 2015년 스마트폰과 PC에서 접속할 수 있는 현상 결과물 스토리지 서비스 ‘마루스캔’을 내놓았다. 그 만듦새와 5년간의 개선 양상을 보면 단순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넘어 필름에 ‘유비쿼터스’적 속성을 더해주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필름이라는 매체를 현대의 맥락으로 가져오려는, 국내에서 가장 실험적이고도 실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필름 랩(Film Lab)이라는 뜻이다. 이루 대표는 필름 매체의 속성과 시장 양상에 대해 연구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그에게 평가를 맡기면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오늘날 코닥의 행보를 어떻게 보는지. “정신 못 차리는 거죠.” 그는 단언했다. “미국 로체스터의 코닥 공장은 문제가 하나 생기면 필름 한 종류가 아예 몇 달 동안 생산이 안 되는, 뭐 그런 상태예요. 그런데 요 몇 년간 필름 수요가 대폭 늘어났죠. 필름 카메라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생산 시설을 증설하고 있어요. 사실 코닥 알라리스는 필름 사업부를 계속 팔려고 노력 중인 걸로 알거든요. 그런데 가격은 안 맞고, 상황은 좀 달라지고, 그래서 일단 주춤한 것 같아요. 뭐 거기까진 그렇다 쳐요. 문제는 이스트만 코닥이죠. 의류니 TV니, 희한한 사업들은 전부 이스트만 코닥이 벌이는 거니까요.” 이야기가 코닥코인에 이르렀을 때 그는 거의 한숨을 내쉬었다. 코닥은 2018년 암호 화폐 ‘코닥코인’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다만 그 내실을 살펴보면 어감보다는 흥미로운 발상이긴 하다. 이미지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사진의 유통과 소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것. 발표 당일에는 하루 만에 주가가 125% 오르기도 했다.


“직원 중에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내 안에는 아직 노란 피가 흐르고 있다’ 하는 사람들요.”


필름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일에는 코닥 공장의 생산 시설 증설로 인한 눈에 띄는 상승이 있었다.

필름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일에는 코닥 공장의 생산 시설 증설로 인한 눈에 띄는 상승이 있었다.

코닥은 이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할까? 코닥 알라리스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는 비즈니스 매니저 정은형 부장은 우선 ‘짠하다’는 평가를 일종의 유대감으로 받아들였다. “그 시대를 지나온 이들 중에는 코닥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까요. 직원 중에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내 안에는 아직 노란 피가 흐르고 있다’ 하는 사람들요.” 다만 일련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아무래도 내외부의 시각 차이가 있다. 우선 코닥 알라리스의 경영 상태는 꽤 안정적인 편이다. 가장 큰 캐시카우는 키오스크 사업이다. 아시아에서는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키오스크 ‘Kodak Moments’가 꽤 인기를 얻고 있다. 그게 총매출의 43% 정도. 관공서나 은행에 스캐너를 판매하는 사업이 34%, 필름과 인화지 사업은 23% 정도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카메라 필름으로 범주를 좁히면 6~7%에 지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건, 이스트만 코닥의 중구난방 행보 역시 일종의 ‘착시’라는 것이다. “코닥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질적인 제품은 대부분 브랜드 라이선싱 사업이에요. 휴대폰 케이스, 의류, TV, 코닥 코인까지 전부 다요. 브랜드의 레거시를 빌려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거죠.” 코닥은 인기가 많은 브랜드라고 했다. 공식적인 브랜드 가치 평가와는 별개로. 엄밀히 다른 회사의 일이기는 하나, 정은형 부장은 이런 행보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코닥이 망한 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브랜드 라이선싱이 브랜드 인지도(Brand Awareness)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돈을 받으면서요.”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코닥의 행보에서 그 의도가 궁금한 케이스는 딱 하나가 남는다. 엑타크롬. 이미 옛날에 단종된 필름을 다시 생산한 것인데, 네거티브 필름이 아닌 슬라이드 필름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필름 라인업에 하나를 더하는 수준이 아니라, 별도의 생산 방식을 다시 구축한 것이니까(코닥은 슬라이드 필름을 전부 단종시킨 상태였다). 35mm 포맷에 이어, 이번에는 120mm 중형 포맷도 출시했다. 명백히 최근 몇 년간 일어난 필름의 재인기에 대한 화답이다. 이루 대표가 말했듯 늘어난 수요에 맞추기 위해 로체스터 공장의 생산 라인을 증설 중이기도 하다. 코닥은 필름의 이런 인기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재림’이라 여기는 걸까? 서면 인터뷰에 이런 질문을 써서 보내자, 코닥 알라리스의 부사장 토마스 무니는 ‘필름 산업은 건강하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어느 정도 유행의 요소가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업계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필름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의 1/3이 35세 미만입니다. 이 젊은 사진가들은 처음으로 필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닥은 필름을 디지털과의 양자 택일 구도로 놓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죠. 두 기술은 같은 목적, 그들의 예술적 비전을 표현하기 위한 대체적 도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토마루 이루 대표의 전망은 좀 다르다. 그는 시장에서 그 징후를 읽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필름 카메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어요. 올림푸스 뮤2를 예로 들면 고작 5만~6만원에 거래되던 게 30만원까지 갔으니까요. 그런데 이 상승 곡선이 주춤하고 있어요. 꽤 오래 평행을 그리거나, 간혹 가격이 내리는 모델도 있죠.” 이런 현상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필름의 인기가 식었거나, 혹은 필름이라는 형식에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 한계선에 다다랐거나. 전자에 비하자면 작은 문제이기는 하나, 후자의 상황이라고 해도 여전히 문제다. 코닥이 생산 설비에 투자하면서 도리어 필름 가격이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사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저희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필름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마케팅 활동을 공격적으로 펼치면 오히려 인기를 잃을 거라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너무 메인스트림이 되면 ‘힙’하지 않게 여기는, 그런 풍조도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가격도 마찬가지예요. 수요에 따라 생산을 늘리긴 했는데, 또 가격 변동 폭에 따라 수요가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가 너무 힘든 거죠.” 정은형 부장의 설명이다. 현재 엑타크롬 E100의 가격은 한 롤에 2만5000원이다. 코닥 필름 라인업 중 가장 저렴한 코닥 컬러플러스 200도 6500원에 달하며, 그나마도 재고 부족 상태다. 필름 가격이 다시 내려갈 확률은 요원하다. 더 오르면 올랐지.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라, 기존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필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스레처럼 꼭 이런 말이 오간다. “에휴. 이제 그만 해야지.” 필름의 미래를 물으면 누구나 ‘글쎄요’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다. 흐름이란 게 있긴 하지만 작은 변수들이 일으키는 파동이 너무 크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고는 있으나, 코닥도 미래를 확신치는 못할 것이다. 토마스 무니 부사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가히 ‘사진’이라는 매체의 다른 이름이었던 브랜드. 코닥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