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 남자는 섹스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웃다 보니 침대.



“여자를 웃게 할 수 있다면 그 여자의 침대에 반쯤 걸터앉은 것이나 다름없다.”

“여자를 웃게 할 수 있다면 그 여자의 침대에 반쯤 걸터앉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풍스러운 듯하면서도 왠지 경망스러운 이 말은 영국 속담이다. 지난달 인터뷰를 위해 참고한 최영미 시인의 에세이에서 이 문장을 봤다. 시인도 참. 아무튼 이 속담을 통해 남녀 관계에서 여자를 웃겨야 하는 건 시대를 불문한 남성의 교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웃기면 여자와 잘 수 있을까?
“네, 저는 그런데요.” 소룡포의 육즙을 터뜨리며 김미홍 씨가 말했다. “자체적으로 압도적인 섹시함이 있는 게 아니라면 웃기기라도…”까지 말하고 김미홍 씨는 숟가락에 고인 만두의 육즙을 잠깐 삼켰다. 그 틈에 물었다. 잘생기지 않았다면 웃기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김미홍 씨는 고개를 저었다. “유머 코드는 엄청 중요한 거잖아요. 웃겨서 통하는 게 아니라 코드가 맞아서 마음이 동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저는 웃어야 잠자리까지 갑니다.” 유머가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유머는 제가 선택한 불가피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테판야키집의 열기 앞에서 김진수 씨가 비장하게 말했다. “35년을 살면서 양친을 포함해 잘생겼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진수 씨는 베어 그릴스의 생존술 같은 개념으로 유머를 키운 남자였다. 그에게는 살아남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김진수 씨는 스스로의 유머 점수로 7점 만점에 6.5점을 줬다. “남자가 잘생기면 여자는 안 웃겨도 웃어줘요.”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묵묵히 밥을 볶았다. 그간의 회한을 태워서 날려버리려는 듯.
“웃긴 거 중요하지.” 밤의 커피숍에서 만난 김예리 씨는 말했다. “그런데 좀 잔망스럽게 웃기는 애들은 싫어요.” 김예리 씨의 말에는 맞는 구석이 있는 동시에 어려운 면이 있었다. 잔망스럽게 웃기는 건 무엇일까. 잔망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다. 잔망스러운 걸 싫어하는 김예리 씨는 그날 뉴밸런스 990v4 트리플 블랙을 신고 왔다. 실로 잔망스럽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신발이다. 하지만 발렌시아가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심심한 신발이고 커먼 프로젝트를 신는 사람에겐 너무 과한 신발이다. 유머엔 정답이 없다.
“저는 상대의 반응에 반응합니다. 상대가 웃어야 저도 좋아요.” 다만 정성은 있다. 조지 리 씨는 상대방을 웃겨야 본인이 즐겁다고 했다. “저는 좀 웃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순발력이 좋아요.” 여기서 말한 순발력은 계속 상대방을 관찰하다가 저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뭔가를 내놓는 것이다. 이건 유머의 옷을 입은 관찰과 정성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여자와 자기 위해 관찰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거다. 원래 여자와 자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머는 관찰과 순발력과 배경지식이 모두 필요한 고도의 정신 기술이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하면서도 의외의 뭔가가 있는 말을 던져서 다른 반응도 아닌 웃음을 이끌어내려면 재능과 연습이 모두 필요하다. 예능 프로그램의 유명 연예인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최고의 순발력으로 시대를 풍미한 운동선수들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한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수많은 사람 중 유독 운동선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데에는 그들의 순발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다. 고도의 정신 기술인 유머를 잘 쓴다면 섹스에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
그 관찰과 정성을 잘 기울이면 권헌준 씨처럼 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어느 날 권헌준 씨와 2 대 2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어느 목요일 밤, 야근을 하는데 권헌준 씨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 근처에서 약속이 잡혔는데 여자가 둘이니까 어서 나오라고. 권헌준 씨가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다 싶어서 나가 보니 그의 말대로 이미 여자 두 명이 나와서 앉아 있었다. 권헌준 씨는 그중 한 명과 잤다고 했다. 권헌준 씨와 잤다는 그 여자는 이미 술에 취했고 권헌준 씨와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렇지 않고서야 형광등 불빛이 수술실처럼 빛나는 오징어나라에서 나를 마주 앉혀놓고 권헌준 씨를 껴안고 그의 귀를 핥지는 않았겠지. 그 이후로 난 오징어나라만 보면 혀가 생각난다.
그날 권헌준 씨를 보니 어떻게 그렇게 여자와 많이 잤는지 알 수 있었다. 권헌준 씨는 그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웃겨주었다. 나는 권헌준 씨가 그렇게 체력이 좋은 줄도,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줄도 그날 처음 알았다. 권헌준 씨는 여자들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사용해서 대답해주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대화의 침묵을 만들지 않았다. 목요일 새벽 1시의 오징어나라는 테이블에 침묵이 10초만 고여도 “집에 가자”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권헌준 씨는 정말이지 침묵을 1초도 만들지 않았다. “오빠 너무 웃기다. 왜 이렇게 웃겨?” 여자들은 끊임없이 웃었다.
결국 그날의 자리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권헌준 씨는 4시까지 그 여자 둘을 다 웃겨주고도 여자들을 택시 태워 보냈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렇게 여자가 자고 싶어 하는 티를 냈고 권헌준 씨 본인도 그렇게 웃겨줬는데, 그냥 이렇게 보낸다고? “그냥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만난 거지.” 권헌준 씨는 여기까지 말하고 대리운전을 불렀다. 권헌준 씨는 나보다 어린데 이날은 그가 나보다 형처럼 보였다. 유머와 체력은 정말 중요하다. 섹스에서든 삶에서든.
웃다 보니 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