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무턱대고 들른 서점의 풍경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서점의 바깥.



서점의 바깥




나는 ‘그러니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하고 소리치는 대신, 무턱대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열린책들, 1999)의 한 대목. 주인공 ‘나’와 그의 아버지는 쏟아지는 우박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운전하는 아버지도 조수석에 탄 나도 거센 소리로 떨어지는 우박이 무섭다. 그때 그들은 괴짜 동네 사람 좀머 씨가 걸어가는 것을 본다. 아버지는 창문을 열고 좀머 씨에게 외친다. “좀머 씨. 차에 타세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좀머 씨는 대꾸하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다시 아버지가 소리를 높인다. “어서 타시라니까요. 그러다 죽겠어요!” 그러자 좀머 씨는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돌아본다. 그리고 대꾸한다. “그러니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소설 내내 걷기를 그만두지 않는 좀머 씨가 단 한 번 멈추는 장면이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한 이 대목을 떠올린 것은, 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로부터. “좀 쉬어. 그러다 죽어.” 그렇게 말해놓고 놀란 건 친구 쪽이었다. 그는 곧장 사과를 했지만 나는 좀머 씨를 떠올렸다. 전쟁 중 죽음의 실재를 목도한 좀머 씨. 죽음을 잊고 피하고자 걷기를 택한 좀머 씨.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고 또 걸은 좀머 씨처럼 나는 끊임없이 일을 한다. 작년 한 해 나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계획에 따르면 올해 역시 서점 일에 쉼 없이 매진할 것이다.
‘쉼’이란 단어에서 나는 구멍을 연상하곤 한다. 착착 연결되어야 하는 일과 일 사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쉼을 얻을 수 있을 때 나는 어쩔 줄 몰라 한다. 해야 할 일이 있을 것만 같고 그것을 잊은 것만 같고 그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길 것만 같다. 제대로 된 약속 하나 잡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적당한 도취도 있다. 성실히 살고 있다는 착각과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오만에 취해 지난 일 년을 살았다.
출근길에 무턱대고 버스에서 내린 것은 ‘쉼’이 숨이 드나드는 통로도 된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겨울 햇살이 비껴 드는 버스 창문에 기대어 막막히 바깥을 내다볼 때. 그러다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 붙들고 놓을 수 없을 때. 문득 당장을 돌아보게 되고 숨이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불현듯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좀 쉬어. 그러다 죽어.”
나는 ‘그러니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하고 소리치는 대신, 무턱대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얇은 겨울 오전의 햇빛. 드문드문 걸어가는 사람들. 차가운 겨울 공기. 입김이 날리는 동안, 이 익숙한 도심 거리에서 나는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그저 당장 서점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순서도 대책도 없는 다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그냥 걸었다. 서점은 하나뿐인 직원이 잘 돌볼 거였다. 걱정 대신 일탈에서 비롯된 설렘이 생겨날 때쯤 닿은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시내의 한 대형 서점이었다. 서점을 벗어나 다시 서점. 인근 미술관이나 극장을 갈 수도 있을 거고, 맛집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서점, 참 신기하구나. 그러자니 내가 큰 서점에 얼마나 오랜만에 방문을 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질서정연하게 놓인 신간들.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 살펴보는 독자들. 계산을 하느라, 책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직원들.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어떤 감정(그것은 안심인 것도 같고 기쁨인 것도 같았는데)에 사로잡혔다. 여전히 읽는 사람들. 읽는 일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분명 나의 서점의 모습이기도 하겠으나, 일을 해야 하는 내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광경. 나는 이 거리(距離)가 마음에 들어 서점 한구석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서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모저모를 구경하는 여유를 만끽하느라 허기도 잊었다. 한참을 머물다가 몇 권 책을 집어 계산을 하고 볼펜도 사고 그러다가.
서점 밖은 겨울밤. 옹송그리며 걷는 대열에 합류해 버스를 탔다. 노란 불빛으로 따뜻해진 나의 서점으로 가는 버스였다.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리워지다니. 참 어쩔 수 없구나 싶으면서 어서 그곳에 닿고 싶었다. 내가 서점에 들어서면 하나뿐인 직원은 눈동그랗게 뜨고 어디를 다녀왔느냐는 식으로 볼 것이며, 몇몇 독자들이 시집을 찾고 또 살펴보고 있을 것이며, 짐을 부려놓고 앉아 내 자리에 앉으면, 그곳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달의 시집


시에는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이 적혀 있다고 했던 시인 오규원의 말처럼, 신해욱의 〈무족영원〉에는 근사한 영원 같은 개념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이 앙상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어딘가 뜨거워지는 것은 그 앙상하고 아무것도 아닌 삶이 때로 의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은 아닌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시집이 아닐 수 없다. 〈무족영원〉, 신해욱, 문학과지성사, 2019.
서점의 바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