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19가 뒤흔든 전 세계 나라별 모습, 뉴욕편

팬데믹 시대에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BYESQUIRE2020.03.27
 
  

From NEW YORK

 
writer 신현호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맨해튼 도보를 걷는 사람들. 사진이 찍힌 3월 4일만 해도 뉴욕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욕에 있는 아시아인들은 마스크를 썼다.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맨해튼 도보를 걷는 사람들. 사진이 찍힌 3월 4일만 해도 뉴욕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욕에 있는 아시아인들은 마스크를 썼다.

 
외관적으로 포위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 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얼마 전 새 아이폰을 사기 위해 그랜드 센트럴 역의 애플 스토어에 갔다. 진열된 샘플 아이폰으로 크기와 무게를 가늠하고 몇 가지 기능을 확인한 뒤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어떤 모델을 살지 이미 생각해놓았기 때문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판매 직원과 가벼운 인사와 악수를 하고 신용카드를 건넸다. 직원은 그 카드를 단말기에 넣고 결제를 한 뒤 돌려주었다. 요즘은 보호 필름도 판매 직원이 붙여준다. 내 담당 직원은 손으로 화면을 꼼꼼하게 닦고 필름을 붙였다. 이렇게 말끔하게 준비된 전화기를 받아 들고 다시 그와 가볍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날은 뉴욕시가 두 번째 코로나19 확진자를 발표한 날이었다. 2번 확진자는 뉴욕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의 부촌 웨스트체스터에 살고 있고 네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변호사였다. 뉴욕시에서는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랜드 센트럴 역을 통해 통근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랜드 센트럴 역은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떠나고 도착하는 100년이 넘은 기차역, 교외에 살며 뉴욕에서 일하는 통근자들을 매일 아침 토해내는 뉴욕의 심장 같은 곳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바이러스는 탈것이 필요하다. 작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바이러스의 의도를 헤아리는 것은 실없는 일이지만 만약 바이러스의 생존 목표가 끊임없는 자기 복제를 통한 확산이라면 매일 수십만 명이 오가는 대도시의 기차역은 아마도 바이러스에게는 탈것으로 가득한 편리한 장소일 것이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 덕분에 전 세계가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구의 31번 확진자 신천지 신도와 뉴욕의 2번 확진자 변호사조차도 이 감염의 연결 고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선가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바이러스가 비행기와 크루즈를 타고 대륙을 이동하고 기차를 타고 순식간에 도시 사이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환승하고 공항과 기차역을 거쳐 더 넓은 범위로 퍼진다. 전 세계적인 규모의 팬데믹은 고도로 발달한 교통과 물류, 도시 문명과 사회적 활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새로 산 아이폰을 들고 역의 중앙 광장에 나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기차역 특유의 리듬으로 밀려왔다 밀려갔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없었다. 무신경하게 부딪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사람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포옹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팬데믹의 렌즈로 그랜드 센트럴 역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불특정 다수가 만져보는 아이폰과 내 신용카드, 직원이 정성스럽게 맨손으로 붙여준 보호 필름, 내 호의를 담은 악수가 모두 찜찜한 것이 된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누군가의 기침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선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재채기를 해도 반사적으로 “블레스 유(Bless you)”라고 말해주는 미국식의 무심한 친절함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이미 뉴욕에 도착한 코로나19는 언제든지 확산할 수 있고 그 범위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모르는 것은 위험의 크기와 상관없이 확실히 더 두렵다. 공포는 이 불확실성을 먹이 삼아 스스로 크기를 키운다. 일부 사람들은 이 공포를 변명 삼아 그간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상대를 ‘바이러스의 탈것’으로 보는 순간 추악한 편견마저도 쉽게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바이러스가 선택한 ‘탈것’이 중년의 백인 변호사라서 차라리 안심했다. 만약 평범한 아시아인이 슈퍼 전파자가 된다면 나는 이 도시에서 어떤 시선을 받게 될까?
뉴욕은 수많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곳이고, 그래서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인종적 편견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리티로 산다는 것은 이런 편견이 드리운 작은 마음의 그늘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것을 의미한다. 증상이 없어도 아이폰 하나 사러 굳이 그랜드 센트럴 역의 애플 스토어처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은 찾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자가 격리’ 하게 되는 삶이다. 종종 이렇게 공동체의 면역 시스템이 나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내가 진정 여기에 속해 있는 건지 질문하게 된다. 심지어 그것이 오작동하는 것일지라도 그렇다.
기차역은 수많은 약속으로 가득 찬 곳이다. 기차는 약속한 시간에 들어오고 승객들은 그 시간에 맞춰 객실 칸에 오른다. 그랜드 센트럴 역 중앙 광장의 티파니 시계 앞에는 언제나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만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탄 중심에 있는 기차역에서 공동체의 약속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코로나19 시대의 약속.

Keyword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신현호
  • PHOTO ⓒ GETTY IMAGES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