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지치게 하는 코로나19의 베스트와 워스트 예측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전 세계가 함께 그 고통을 겪고 있다.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명의 전문가에게 향후 벌어질 일을 소설처럼 써달라고 부탁했다.



HOW THE WAR WOULD END : HOUSING



The Worst Case Scenario


아이들 여름방학 기간에 예정된 이사를 앞두고,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 씨는 심각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 증세에 빠졌다. 박 씨는 최근 몇 년간 전세로 살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것을 발만 구르며 지켜보다가 이번에야말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올해 2월 작지만 번듯한 ‘내 집’을 계약했다. 이후 한 달간은 부푼 가슴을 안고 살았다. 아내가 말했다. “이제 우리 마음대로 선반도 달고 페인트칠도 할 수 있겠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그 돈에 대출을 더해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세 만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이 집을 보고 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집 앞 상가에 있는 학원에서 대량 감염 사태가 터져 단지 내 매물 거래에 불똥이 튀었다. 다른 단지 엄마들이 ‘그 단지 아이들이랑 놀지 말라’며 자기 애들을 단속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상황에서 박 씨의 집을 보러 오는 발길이 뜸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급한 마음에 집주인에게 사정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뻔뻔한 대답뿐이었다. “새로이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까지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집주인이라고 으스댈 때는 언제고 내 돈을 돌려줄 수 없다니,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결국은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을 해서 받거나, 그 전에 어떻게든 세입자를 구하는 수밖에 없단다. 당장 보름 뒤 잔금을 내지 못할 판이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돈을 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당장 주거래은행 창구로 갔다. 창구 직원의 대답은 차가웠다. 정부 규제로 시세의 40% 이상은 절대 대출해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만 반복했다. 박 씨가 매수한 집을 계약한 가격은 7억원. 최대로 대출 가능한 금액은 2억8000만원이라는 얘기였다. 계약금 7000만원은 이미 치렀으니, 전세 보증금 4억원만 제때 받았다면 취득세, 이사 비용은 물론 인테리어까지 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창구 직원은 이사 갈 집 주소가 어딘지를 묻더니 다시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며 “아!”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직원은 “자세한 건 심사를 올려봐야겠지만, 시세가 꽤 떨어졌네요”라고 말했다. 박 씨가 계약한 2월만 해도 집을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 하루하루 호가가 오르던 아파트 단지였다. 같은 동 다른 호수의 마지막 거래가가 6억8000만원을 찍은 걸 확인하고 계약했다. 박씨가 계약한 7억원은 해당 단지 같은 평수 아파트의 역대 최고 가격이었지만 몇 달 지나면 금방 7억원은 넘길 것이라 여겨 큰마음 먹고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직원이 말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닌데요, 요즘 분위기가 이렇습니다. 부동산 시세가 몇 달 전에 비해 크게 꺾이고 있어요. 지금 이 단지는 시세가 6억도 어려워요. 저희 DB 기준으로는 5억8000만원으로 나오네요. 여기에 40%를 적용하면 2억3200만원. 그런데 요즘 40% 받으려면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최근 3개월 소득 자료 있으시죠? 은행들도 요즘 대출 심사를 좀 더 깐깐하게 하거든요.” 최근 3개월 소득 증빙이라니. 사실 박 씨는 여행사 상품기획 부서에 근무하고 있다. 국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업계 최고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최근 3년간 실적으로는 밀린 적이 없다. 박 씨가 기획한 해외여행 상품 상당수가 회사 매출에 효자 노릇을 했다. 코로나19가 이토록 긴 수렁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 했다. 그냥 중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이 잠시 좀 줄겠거니 했을 뿐이다.
박 씨 회사의 매출은 지난 4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90%가 감소했다. 임직원의 무급 휴직 비율은 석 달 전에 이미 50%를 넘겼다. 박 씨 역시 이 50%에 들어갔다. 전년도 원천징수 자료를 토대로 한다면 몰라도 최근 3개월 소득 증빙으로는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미 낸 7000만원의 매매 계약금을 날리고 전세금을 내주지 않은 현 집주인에게 소송을 걸어 받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박 씨에게 집을 팔기로 한 최 씨도 난감해졌다. 최 씨가 집을 팔기로 한 데도 사연이 있다. 최 씨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주로 중국으로부터 원재료를 들여와 그걸 가공해 해외에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흐르더니 일부 중국 거래처가 휴업을 통보해오기 시작했다. 원자재를 제때 구할 길이 한 달 이상 막혀버리니 납기를 맞출 수가 없었다.
바이어들은 납품 기한을 어겼다며 독촉을 거듭할 뿐이었다. 사정을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급한 대로 비싼 가격에 다른 루트로 원재료를 사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번엔 한국에서 해외로 제품을 보낼 항공 물류의 공급이 턱없이 적어지며 가격이 치솟았다. 해상 물류를 이용하자니 납기 페널티가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시간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흘렀다. 돈이 묶여버렸고, 당장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은행 문턱은 높았고, 담당자는 비슷한 사정의 회사가 지금 한둘이 아니라며 미안해했다. 마지막 보루인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라도 회사를 살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국내에서 크게 번지기 직전인 2월 최 씨는 ‘지금 팔아야 제값을 받는다’는 부동산 사장의 말을 믿고 박 씨와 7억짜리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박 씨의 잔금은 숨통을 틔울 마지막 수다. 최 씨는 그 돈을 받아야 당장 이번 달 어음을 막는다. 계약금으로 받은 7000만원으로는 급한 불을 끌 수 없었다. 부동산 사장에게 다른 매수자를 구해달라 부탁했더니 가격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단다. 급매로 5억5000만원에는 팔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들 상황이 급해서 집을 내놓는 바람에 요즈음은 하루 지나면 1000만 원씩 시세가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2020년 9월, 가을 이사철 시즌은 아수라장이 됐다. 물고 물린 돈이 제때에 만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의 계약을 위반하면서 전세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문제가 폭증했다. 은행의 부동산 대출 연체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대출 연체 탓에 신규 대출 요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시장에는 사겠다는 사람은 없이 급매물만 넘쳐나는 상황이 전개됐다. 경매 시장에도 무더기로 새로운 물건이 등록되었지만 응찰할 수 있는 자본과 배포를 가진 이는 몇 없었고, 부실화된 채권의 날갯짓이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아무도 안심할 수 없고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공황은 이렇게 시작됐다.


The Best Case Scenario


코로나19 확산으로 세상이 다 멈추어버린 것 같은 날들이 느리게, 그러나 결국은 흘러갔다. 직장인 황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출퇴근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황 씨는 경기도 동남권의 신도시 아파트에서 강남역 인근 IT 회사로 출근하는 삶을 살았다. 아침이면 새벽밥을 먹고 나와 광역버스에 올라탔고, 그 길로 한 시간을 달려야 회사에 도착하는 일상이었다. 그나마 러시아워를 피해 7시 전에 출발하지 않으면 제때 도착하지 못했기에 실질적으로 출퇴근에 드는 시간은 하루에 거의 세 시간에 달했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출퇴근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서울 집값의 위세는 등등했고 황 씨의 마음은 늘 염원에 머물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다들 비슷했는지, 직장에 가까운 신축 아파트에는 10억, 15억 하는 괴상한 숫자가 붙어 있었다. 황 씨의 보금자리는 2014년에 지은 32평짜리 아파트였다.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신도시였지만 출퇴근이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가격이 저평가되어 요즈음은 4억 언저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황 씨는 삶의 질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과거 같으면 아침 6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준비하고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새벽같이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9시에 방에 들어가 컴퓨터만 켜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아침에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두 시간이나 생겼다. 처음에는 가족이 있는 곳에서 낮 동안 일하는 것이 불편하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IT 회사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일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회사 역시 재택근무를 위한 혁신적인 플랫폼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어서 업무 효율이 저하되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선 코로나 사태가 늦봄을 기점으로 꺾였다. 일상은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황 씨의 회사는 원격 근무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업무 방식으로 규정하고 더욱 확대해나갈 방침을 세웠다. 사무실의 물리적 공간은 절반 이하로 축소하기로 했다. 대면 회의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사무실에 나와 일하되 프로젝트의 수행은 각자의 판단하에 집에서든, 고객사 사무실에서든, 어디서든 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지난 석 달간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했지만 막상 그 결과를 놓고 보니 직원들의 만족도와 업무 효율이 오히려 올라간 것을 발견한 데에 따른 특단의 조치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황 씨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좋은 여건의 집에 살고 있었는지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빽빽하게 쌓아 올린 서울 시내 한복판 20평대 아파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황 씨의 집은 드넓은 평지에 공원처럼 지어놓은 신도시 아파트였다. 지은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아 새 집의 느낌이 가시지 않았으며 집 근처에 마트, 학원, 병원, 카페 등 모든 편의 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계획도시로 조성한 신도시답게 각 동이 널찍하고 여유 있게 늘어서 있었고 동네는 늘 청결하고 반듯했다. 황 씨의 동료 중에서는 본래 서울 시내에서 전세로 거주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다들 통근과 학군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굳이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게 되니 집값만 비싸고 낡고 좁은 집을 고집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개학은 끝났지만 이제 아이들은 원격 교육에 더없이 친숙해졌고 집에서도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든지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실리를 추구하는 젊은 층 사이에 재택근무에 대한 욕구가 서서히 확산했다. ‘강남불패, 마용성 직주근접’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시장의 프레임이 서서히 해체되면서 한국 사회 젊은이들의 발목을 부여잡던 양극화 문제에 돌파구가 생겼다. 정부에서는 마침 3기 신도시를 지정하고 한창 추진 중이던 찰나였다. 굳이 시내 한복판에 십수억을 주고 집을 구할 필요 없이 신도시에서 그 반값 이하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말 그대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3개월로 종식한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에 준 충격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걱정했던 대기업의 대량 해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팬데믹은 서울의 부동산 폭등세가 진정되는 기점이 되었다. 감염의 공포로 인해 부동산 거래가 급감해 가격이 보합세를 이어가자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금이 아니면 이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조바심이 꺾여서였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보다 넓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볼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퍼졌다. 3기 신도시 매물이 쏟아질 것이고 GTX라는 신개념 교통수단이 등장할 것이다.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지역 간의 부동산 가격 격차도 완화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을 감수해야 하는 출근길이 GTX가 개통하면 30분 안쪽으로 줄어들 것이고, 황 씨의 경우처럼 매일같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안정감과 자신감이 크게 개선되었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는 신혼부부도 늘어났다. 당장 탄탄한 주거 여건이 뒷받침되니 아무래도 결정이 쉬워진 덕분이었다. 나날이 꺾여가던 출산율은 다시 1명대를 회복했다. 이제 집합 주택의 복도에서 아이 웃는 소리를 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재택근무라는 거대한 사회 실험은, 비록 의도하거나 예상한 바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부동산의 지형을 평탄화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출퇴근에 대한 물리적 제약이 가장 큰 가격 결정 요인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삶의 질과 주거 여건이 다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보금자리’가 지닌 본래의 의미를 되찾으면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의 완화와 주거의 상향 평준화라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전 세계가 함께 그 고통을 겪고 있다.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명의 전문가에게 향후 벌어질 일을 소설처럼 써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