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바라본 두 가지 시각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전 세계가 함께 그 고통을 겪고 있다.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명의 전문가에게 향후 벌어질 일을 소설처럼 써달라고 부탁했다.

BYESQUIRE2020.05.08
 
 

HOW THE WAR WOULD END : ECONOMY 

 
 
 

The Worst Case Scenario

2020년 크리스마스는 역사책에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로 기록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이 무너진 데 이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까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전염되는 첫 번째 연결 고리는 유가였다. ‘세계의 공장’ 또는 ‘원자재 먹는 하마’라 불리는 중국 경제가 망가지면서 세계 원유 시장 참가자들이 유가 하락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원유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부각되던 연초만 해도 배럴당 60달러 선에 거래되던 것이 3월 초에는 배럴당 40달러 초반까지 빠졌는데, 유가의 하락 폭을 더욱 크게 키운 것은 사우디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감산 합의에 실패한 요인이 컸다.
수요가 줄어들 때 가격 급락을 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 4월에는 ‘OPEC 플러스’(석유수출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 연대체)가 5~6월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주요 산유국들은 추가 감산에 실패했을까?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려 들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 때문이었다. 참고로 셰일이란 오랜 세월 동안 진흙이 쌓여 이루어진 퇴적암층을 뜻한다. 셰일에 고여 있는 가스와 석유는 밀도가 무척 낮을 뿐 아니라 셰일 암석이 꽤 단단한 편이라 석유 생산에 장애 요인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며 셰일 암석층에 있는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며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
사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미국 셰일 오일 생산 기업들의 경쟁력은 형편없었다. 셰일 오일 생산이 계속된 건 당시의 높은 유가 덕이었다. 당시 1배럴을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단가가 80달러 혹은 그 이상 수준이었음에도 유가가 1배럴에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다 보니 어찌 됐든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이익이었지만 셰일 오일 생산은 계속됐고, 기술자들의 숙련 수준은 올라갔으며, 채산성은 개선됐다. 그 결과 2010년대 중반에 와서는 미국 퍼미안 분지를 비롯한 상당수 지역의 셰일 오일 생산업체들은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지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쉽게 얘기하면 40달러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면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은 이익을 내기 힘들다.
미국 기업이 셰일 오일을 생산하게 둘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지점에서 사우디와 러시아 등 산유국 간의 입장 차이가 부각되었다. 사우디는 주요 산유국이 감산에 합의해 석유 가격의 하락 흐름을 막자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미국의 셰일 오일업체들을 파산시키자는 의견을 고수했다. 양자 합의에서 의견 차이는 실패를 뜻한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을 밑돌면서부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국제 유가의 폭락은 이제 미국 회사채 시장, 특히 투기 등급 회사채(이하 ‘정크 본드’) 시장의 패닉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신용평가회사들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다양한 등급을 부여하는데, AAA 등급에서 BBB- 등급까지를 투자 적격 등급으로 분류하며 그 아래 등급을 받은 채권을 투자 부적격 등급 채권, 즉 ‘정크 본드’라 부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 기업들은 은행보다는 회사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특히 셰일 오일 생산 기업을 비롯한 신생 분야의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의 대출 심사를 피해 적극적으로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셰일 오일 기업들이 발행한 정크 본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 역시 부적격 채권 시장을 부풀어 오르게 만든 또 다른 요인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 연방준비위원회(연준)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제로 금리 정책을 펼치자 고금리 채권을 찾아 나섰고, 그들 눈에 들어온 것이 경쟁력이 나날이 개선되고 있는 미국 셰일 오일 기업의 정크 본드였던 것이다.
채권은 안전하게 이자를 먹자고 뛰어드는 금융 상품이다. 그런데 셰일 오일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파티의 끝이 도래했다. 여기에 ‘중국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던 루이싱커피가 대규모 회계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투자자들의 태도를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 분식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그들이 투자했던 기업들이 ‘거짓 숫자로 포장된 사기꾼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회사채에 대한 불신이 번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회사채 시장에서 투자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2020년 9월부터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시작된 것이 두 번째 신호였다. 기온이 오르며 전염병의 확산이 진정되는 듯하더니 가을이 돌아오자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채권시장의 규모가 크고 또 시장의 신뢰가 뒷받침되는 나라와 달리 신흥국들의 상황은 달랐다.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까지는 보조를 맞췄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달러로 조달했던 외채의 만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연쇄적인 외환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먼저 중동 산유국과의 교역이 많은 터키의 리라화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라틴아메리카의 맹주 브라질마저 상품 가격 폭락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다른 돈이 무너지면 기축통화인 달러는 오히려 강해진다. 안전한 돈으로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 기축통화인 달러가 폭발적인 강세를 보이자 미국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이 큰 정보통신 기업들이 차례대로 ‘어닝 쇼크’를 예고한 것이 3월 12일의 저점을 깨고 내려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투매를 더욱 촉진했다. 특히 3월부터 시작된 주가 반등에 동참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대부분 레버리지를 이용했다는 점이 문제를 키웠다. 쉽게 얘기하면 하락장에서 한몫 잡아보려고 ‘돈을 빌려서 투자한 개인들’이 무너졌다.
나라마다 불황의 정도는 조금씩 달랐다. 원유 등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가장 극심한 고통을 받았고, 금리를 내리고 양적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선진국일수록 상대적으로 고통은 덜했다. 한국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었다. 환율이 끝없이 상승하지도 않았고 라틴아메리카의 나라에 비해 재정도 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된 수출 대상 국가가 차례대로 무너지는 상황에서 한국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점포 정리 세일’ 팻말만 가득했던 2020년 크리스마스는 ‘잃어버린 10년’의 진정한 시작이었던 것 같다.
 
 

The Best Case Scenario

역사상 수많은 질병이 인류를 공격했지만 인류는 지속적으로 번창해왔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역시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은 막대했다. 2020년 9월 미국의 실업률은 10%를 넘어서고 있고, 확진자 수는 끝없이 늘어나 10월을 기준으로 약 2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이미 ‘승리의 선언’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020년 2월 12일 기록했던 역사상 최고치(2만9551포인트)를 7개월 만에 다시 회복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서 금융시장이 패닉에서 회복될 수 있었을까? 기적 같은 부활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기폭제는 세계 중앙은행이 윤전기의 버튼을, 그것도 아주 힘차게 눌렀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위기가 닥치자 미 연준부터 유럽 중앙은행까지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돈을 풀기 시작했다. 특히 미 연준이 회사채는 물론 주식(정확하게는 상장지수펀드)까지 양적 완화 대상으로 포함시킨 게 결정타가 됐다. 쉽게 얘기하면 연준이 회사채와 주식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회사채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설명이 좀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가장 강력한 정책 도구는 금리 인하다.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기존 1.25%에서 0.75%로 인하한 것이 좋은 예인데, 문제는 제로 금리가 되었을 때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정책 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떨어지면 정책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채권시장에서 국채 혹은 회사채를 사들여 경제를 부양하려 노력하는데 이를 양적 완화라고 한다. 양적 완화를 하면 경제에 두 가지 방향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무엇보다 채권이나 주식을 보유하던 금융기관(혹은 개인)이 좋은 가격에 매각함에 따라 현찰을 손에 쥘 수 있고, 또 중앙은행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해 가격 하락을 떠받쳐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연준이 양적 완화를 펴자 가지고 있는 주식이나 회사채를 싼값에 팔아치우려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태도를 바꿨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당장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 시장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격리 조치가 5월까지 이어지며 각국 경제가 받을 타격이 커진 데다 국제 유가 폭락으로 물가 상승률이 안정된 탓에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
주식시장이 축포를 쏘아 올리게 된 두 번째 기폭제는 치료제 개발이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람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에 부적합하다는 임상 실험 결과가 발표된 2020년 4월 말 금융시장은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7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다름 아닌 반려동물 구충제 중 하나인 ‘이버멕틴’을 개량한 약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안 그래도 6월을 고비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적 격리가 해제되며 2차 팬데믹에 대한 공포가 퍼져가던 중에 발표된 획기적인 치료제의 개발 소식에 각국은 환호했다.
사실 세계 각국의 질병대책본부는 6월 말로 사회적 격리가 해제되는 것에 대해 걱정해왔다. 왜냐하면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이뤄졌던 ‘역사적 실험’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918년 10월부터 덴버에서만 주간 단위 50명 이상 사망자(10만 명당 비정상 사망자 수)가 발생하자 시 당국은 학교를 폐쇄하고 강력한 사회적 격리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다 사망자 수가 20명 전후로 줄어들자 12월 다시 학교의 문을 열었지만 안타깝게도 폭발적인 2차 감염이 시작되었다. 인구 10만 명당 주간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할 정도가 되자 시 당국도 손을 들고 말았다. 다시 학교 문을 닫은 것이다.
1918년 덴버시의 사례는 2020년에도 비슷하게 출현할 뻔했다. 주요 산업 국가들이 두 달 넘게 폐쇄되는 것은 경기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대부분 나라가 5월 말을 전후해 봉쇄를 풀었다. 날이 따뜻해지고 습도가 올라가면서 코로나19의 확산은 예전보다 억제되기는 했지만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던 찰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1918년의 악몽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결과 2020년 10월 말 발표된 3분기 경제성장률은 기적적인 반등이 나타났다. 2분기 -20% 이상 경제 규모가 수축되었던 미국 등의 선진국은 3분기에는 반대로 20% 성장을 달성했다. 아, 오해하지 말자. 경제성장률 -20%란 2분기 경제 규모가 1분기에 비해 20% 줄어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2분기 성장률의 속도가 일 년 내내 이어질 때의 성장률이 -20%라는 뜻이다. 직전 분기에 비한 성장률(QoQ) 기준으로 보면 2분기에 대부분의 나라가 -5% 전후 성장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3분기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한 데 있다. 아직 여행이 본격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외식과 쇼핑이 회복되면서 이게 다시 고용 증가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나타났다. ‘냉장고 파먹기’에 질린 사람들이 다시 맛집 순례에 나서고, 정부가 ‘노후 차량 교체 지원’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한 것에 반응해 여력 있는 부자들이 대거 신차 구입에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고,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부터 여행사는 공적 자금의 지원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특히 2분기 말부터 남반구 국가에서 빠르게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해외여행이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보란듯이 회복했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이야기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대공황이 아니라 눈폭풍’이었던 셈이다. 눈폭풍이 불 때 사람들은 집 밖에 나가지 못하기에 경제활동은 전면 중단된다. 그러나 눈폭풍이 그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집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긴 눈폭풍이었던 셈이다.
 
Who’s the writer?
홍춘욱은 경영학 박사로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으며 현재는 EAR리서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