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는 과연 밝은 면만 있을까?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에 성공한 크루 드래곤. 하지만, 이로 인해 텍사스 주의 보카치카 마을은 산산조각이 났다.

BYESQUIRE2020.06.01
 
 
 
 
텍사스주의 조용한 마을 보카치카에 들려온 스페이스X의 로켓 소식

텍사스주의 조용한 마을 보카치카에 들려온 스페이스X의 로켓 소식

 
이 아름답고 고적한 지역에 뭔가를 건설하겠다는 개발자들의 꿈과 계획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언제나 결국 사라졌다.”
- 잡지 〈텍사스 공원 & 야생동물〉, 1992
 
 
주위에 아무도 없는 넓은 땅이 있으니 폭발해도 괜찮다.”
- 일론 머스크, 2018
 
미국 텍사스주 최남단에 자리한 작은 마을 보카치카의 주민들과 민간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 사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9년 9월 말, 주민들은 스페이스X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스페이스X가 보카치카에서 새 우주선을 공개할 예정이며 이 행사에 주민들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놀랐다. 이미 9월 초쯤 스페이스X가 보낸 다른 서한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주 비행 활동은 계속 확장할 것이며 이를 방해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두 번째 서한으로 인해 확실해졌다. 스페이스X의 야심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었다. 보카치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용히 지내길 원하는 은퇴자들이 모인 작은 마을이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스페이스X는 보카치카 마을을 모조리 사들이고 싶어 했다. 주민들에게 부동산 감정 가격의 3배를 주겠다고 흥정할 정도였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이것이 최종 제안이며 이 제안은 앞으로 2주 동안만 유효하다는 것. 2주의 데드라인은 나흘 전에 지나갔다. 제안을 받아들인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스페이스X가 새 우주선을 공개한다.
 
 

THE DAY

 
셰릴 스티븐스는 텍사스 남부에서 자랐다. 셰릴의 가족은 네 세대에 걸쳐 보카치카 해변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셰릴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다면 보카치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셰릴 스티븐스는 텍사스 남부에서 자랐다. 셰릴의 가족은 네 세대에 걸쳐 보카치카 해변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셰릴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다면 보카치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메리는 보카치카에서 스페이스X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이는 61세. 깡마른 체형에 현실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이다. 스페이스X의 새 우주선 공개 행사 당일 저녁, 메리는 손톱에 반짝이는 은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별 모양 귀걸이를 했다. 59세의 셰릴 스티븐스는 그 반대다. 곱슬머리가 하얗게 세가는 셰릴 스티븐스는 전직 법률 비서로, 이웃들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행사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셰릴은 지난 몇 년 동안 스페이스X에 맞서 싸웠다. 메리와 셰릴을 포함해 약 열두 명의 주민이 테리 히튼과 보니 히튼 집에 모였다. 테리 히튼은 70세, 보니 히튼은 71세다. 히튼 부부는 보카치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주민이다. 이들의 집 서쪽 너머로 국경 순찰 검문소를 통과해 들어오는 많은 외부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은 물떼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지난다.
땅거미가 질 무렵 스페이스X 직원 두 명이 보카치카 주민들을 밴에 태워 우주선 발사장으로 데려갔다. 보카치카가 이렇게나 붐비다니 초현실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단 두 갈래의 길에 수십 채의 집이 늘어선 잠잠한 동네였다. 해변을 따라 약 10km 떨어진 사우스파드레아일랜드, 그곳에서 열리는 비치 발리볼 대회 ‘스프링 브레이크 매드니스’의 풍경과 정반대다. 모두가 휴가를 떠나는 여름 시즌이면 오직 히튼 부부만 남을 때도 있다. 겨울의 가장 큰 오락거리는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의 집에서 매주 열리는 ‘게임 나이트’. 이곳에, 이런 마을에, 스페이스X와 일론 머스크가 등장했다. 그들은 여기서 새 우주선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페이스X의 열렬한 팬들과 머스크 주위를 위성처럼 맴도는 사람들이 발사장까지 약 2.4km에 이르는 길을 따라 죽 늘어섰다.
발사장에는 스타십 MK1이 우뚝 서 있었다. 스타십은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유인우주선이다. 달과 화성으로 발사할 목적이다. MK1이 시험비행에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지구 궤도로 올라갈 스타십 MK3 모델을 높이 70m의 대형 로켓인 슈퍼헤비 위에 설치할 계획이다. 유인우주선 스타십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즉 시험체인 MK1은 높이 50m에 스테인리스스틸로 선체를 완성했다. 스테인리스스틸이 투광 조명등 아래 빛났다. 메리가 MK1을 안아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메리의 친구 진 고어(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그는 사우스파드레아일랜드에서 서프보드를 제작한다. 스페이스X의 지역 지지자 자격으로 초대받았다)는 미래에 다가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을 비롯해 스페이스X 지지자들이 스페이스X 임원, 지역 정치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보카치카 주민들은 출입이 통제된 별도의 구역으로 안내받았다. 경비원들은 주민들이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놔두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가 무대에 올라 거대한 계획을 상세히 밝혔다. MK1은 최초의 풀스케일 스타십 프로토타입이 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역사상 가장 크고 저렴한 우주선의 개발로 이어질 것이다, 로켓은 인간을 여러 행성을 오가는 종으로 만들 것이다, 한두 달 안에 이륙해서 약 20km까지 올라갈 것이며 다시 돌아와 착륙할 것이다. 머스크가 청중에게 장담하며 외쳤다. 기존 우주 발사체들은 일회용이지만 스페이스X는 반복적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발사 비용을 현재의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렇기에 발사체가 발사된 후 되돌아오는 일은 스페이스X에 매우 중요하다. 머스크는 이 외에도 달 기지, 소행성 채굴, 화성에서의 연료 생산에 대해 말했다. 미래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낙관적인 비전이었으며, 머스크에 따르면 바로 이곳, 보카치카가 그가 그린 미래의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스페이스X는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 펜스를 설치했다. 그러나 발사장이 길 바로 옆에 있어서 마음먹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이스X는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 펜스를 설치했다. 그러나 발사장이 길 바로 옆에 있어서 마음먹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7월에 스타호퍼의 프로토타입이 18m 정도 떠올랐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홉’에 성공하자 들불이 일었다.

7월에 스타호퍼의 프로토타입이 18m 정도 떠올랐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홉’에 성공하자 들불이 일었다.

일론 머스크가 청중의 질문을 받는 동안 스페이스X 직원들이 보카치카 주민들을 서둘러 밴에 태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주민들에게 직원들이 ‘스페셜 게스트’가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그 스페셜 게스트는 머스크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근처 건물에 도착한 주민들은 퍼지와 칩을 먹으며 불안 속에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주민인 마리아 포인터의 휴대폰에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최근 몇 달 동안 친해진 한 기자가 보낸 문자였다. “일론 머스크가 당신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청중을 향한 머스크의 연설이 이어졌다. “우리는 보카치카 마을 주민들과 협업 중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방해가 심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보카치카 마을에 실제로 미칠 위험은 낮지만 미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위험을 지극히 미미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민들의 주택을 매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흘렀다. ‘스페셜 게스트’와의 만남은 대체 언제 이뤄지는 것인지, 주민들은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보니 히튼은 약을 먹으러 집에 갔다. 엘리 가르시아는 지긋지긋하다며 자리를 떴다. 그때 머스크가 들어섰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주민들이 내내 이야기하던 사람, 때로는 흥분해서(“일론 머스크가 내가 찍은 로켓 사진을 리트윗했어!”), 때로는 씁쓸해하며(“일론 머스크가 내 집을 그냥 사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야기하던 사람이다. 머스크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그의 기운이 금세 방 안을 채웠다. 스페이스X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보카치카로 이사한 앤디 고치는 신이 났다. 하지만 다른 주민들 대부분은 억눌러온 분통을 어서 빨리 터트리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머스크가 팔짱을 낀 채 가슴을 쭉 편 자세로 주민들이 쏟아내는 불만을 듣고 있었다. 우리의 집은 그저 사고파는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야생동물과 해변 등 보카치카의 특별함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머스크는 고개를 자주 끄덕였다.
미팅이 끝나갈 때 즈음 셰릴이 머스크와 셀카를 찍고 그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날 오전에 마을 도서관에서 그냥 가져가라고 내놓은 책들 틈에서 찾아낸, 1977년에 나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화성 특집 이슈였다. 일종의 화해의 선물이었다. 머스크는 깜짝 놀란 듯했다. 셰릴은 머스크가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머스크는 늘 주는 입장이니까.
다음 날 셰릴은 어제 행사장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한 사람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그 사람은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에서 왔는데 입장표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 스페이스X의 슈퍼 팬이었다. 슈퍼 팬은 아침에 모래언덕 여러 개를 넘고 몇 개의 출입 금지 표지판을 지나(그는 표지판을 못 봤다고 주장했다) MK1에 다가가 셀카를 찍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스페이스X는 이 사진을 보고 무단 침입의 증거로 간주했다. 슈퍼 팬이 셰릴에게 보낸 문자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지급 수갑을 차고 있어요. 제발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줘요.” 스페이스X는 그를 기소할 것이라고 했다.
 
 

BOCA CHICA

 
보카치카 사람들은 스페이스X의 진척 상황을 알고 싶을 때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보카치카 사람들은 스페이스X의 진척 상황을 알고 싶을 때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지난 10월 내가 처음 보카치카에 갔을 때 로켓이 일반 고속도로 옆, 훤히 보이는 곳에 있어서 놀랐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우주로 나가보겠다며 로켓 기업 블루 오리진을 세웠을 때는 호젓한 곳에서 실험하도록 텍사스 지역의 외딴 목장지를 조용히 사들였고,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의 우주 탐사 기업인 버진 갤럭틱을 뉴멕시코주가 사막에 소유한 시설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 두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달랐다. 그는 늘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고개를 숙이고 선을 뚫고 헤쳐나가라. 스페이스X답게 말이다.” 스페이스X 사장 그윈 숏웰의 말이다. 이번 경우 이 ‘선’은 보카치카를 가로지른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 측은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보카치카는 우주 탐사를 위한 홈 베이스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은 아니다.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곳도 많다. 먹을 것을 사려면 최소 30분은 차를 몰아야 한다. 대규모 물자를 옮기려 해도 강이 없기에 무조건 트럭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여기 있는 모든 건 다 녹슬고 썩고 곰팡이가 핀다.” 이곳에 살던 주민이 1992년 〈텍사스 공원 & 야생동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평원에서 부는 먼지바람에는 지독한 것이 섞여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개발자들은 오랫동안 보카치카 지역을 타깃으로 삼았다. 머스크 이전에도 큰 야심을 갖고 여기에 찾아온 외부인이 많았다. 그러나 그전에는 아무 일도 성사되지 못했다. 주로 허리케인 때문이었다. 1867년, 남북전쟁의 마지막 소규모 전투였다는 팔미토 목장 전투지에서 길옆에 있던 병원과 병영이 허리케인에 의해 바다로 쓸려나갔다. 해변 리조트에 관광객이 북적일 때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다. 당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아내가 쓴 일기에 따르면 앤더슨은 여기서 ‘근사한 레드피시’를 몇 마리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1933년에 또 허리케인이 찾아와 4m 높이의 폭풍해일과 시속 200km의 바람으로 전부 쓸어버렸다. 1930년까지 생산된 자동차인 문 모터 카 한 대는 해변에서 뒤집어진 채 30년 동안 모래를 덮어쓰고 묻혀 있다가 또 다른 허리케인 뷸라(폭풍해일 6m, 풍속 220km)로 인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다.
   
2019년 11월 압력 테스트 중 MK1의 칸막이 벽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스페이스X는 MK1을 해체하는 동시에 다음 프로토타입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2019년 11월 압력 테스트 중 MK1의 칸막이 벽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스페이스X는 MK1을 해체하는 동시에 다음 프로토타입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960년대에는 존 카푸타라는 책략가가 등장했다. 그는 시카고 인근의 폴란드 이민자 커뮤니티를 상대로 아름다운 은퇴자 마을이 있다고 홍보했다. 존 카푸타는 그곳을 대통령 이름을 딴 케네디 해변이라 부르며 투자자들에게 12%라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약속했다. 이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존 카푸타는 계획했던 개발의 극히 일부만을 이뤘다. 몇 년 뒤 그는 무일푼인 채 심장마비로 죽었다. 시간이 흘러 폴란드 이민자 커뮤니티는 케네디 해변 지역의 이름을 두 번 바꾸었다. 지동설을 주장한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딴 코퍼닉 해변, 그리고 지금의 이름 보카치카로. 보카치카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아름다운 해변 이름과 같다.
보카치카에 남아 있는 집 대부분은 존 카푸타가 지은 것이다. 히튼 부부는 그중 한 채를 2001년에 매입했다. 미네소타주의 겨울이 지긋지긋해진 그들은 따뜻하고 조용하며 저렴한 곳에서 은퇴 후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원래는 사우스파드레아일랜드로 갈 계획이었지만 바지선 사고로 다리가 일부 부서져 섬까지 갈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 그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보카치카 마을을 살펴보라고 했다. 히튼 부부는 곧 보카치카에 눌러앉았다.
주민의 상당수가 히튼 부부처럼 다른 곳에 가려다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웃들 혹은 인근 브라운스빌에서 당일치기로 놀러 오는 사람들처럼 ‘현지인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느꼈다. 보카치카는 서쪽으로는 로어리오그란데밸리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맞닿아 있다. 남쪽 국경을 따라 320km에 걸쳐 뻗어 있는 연방 정부 보호구역인데, 오실롯 등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표범과 비슷한 동물인 오실롯의 미국 내 개체 수는 100마리 이하로 줄었다. 어떤 사람들, 즉 편의보다 독립적인 생활이 중요하고, 주위에 사람보다 펠리컨이 더 많아도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지상에서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보니 히튼이 자신의 집 거실에 앉아 말했다. 고립된 생활이 자신과 남편에게는 잘 맞고, 낚시하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좋은 곳이라고. 겨울이 되면 보니는 이웃들의 미용을 도맡았고 남편 테리는 집수리를 도왔다. 이웃 대부분은 여름이면 알래스카, 미시간, 위스콘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조용한 여름이 되면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보니는 나를 딱하게 여기는 듯했다. “얼마나 환상적인데.” 하지만 그건 스페이스X가 끼어들기 전의 이야기다. “그들은 우리가 여기 있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있으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왔다. 여기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살려고 생각한 곳이다.”
보니와 테리 히튼 부부 집에서 몇 집 건너에 사는 셰릴은 조개껍데기로 집을 장식하고 접시에 철새가 마실 물을 담아 집 밖에 내놓는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대출한 돈을 갚았다. 여름이면 바다거북이 해변에 알을 낳는다. 셰릴은 둥지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바다로 가는 길을 찾는 걸 도와준 적도 있었다. 허리케인 직전의 으스스한 고요 속에서는 희귀한 야생 고양이 재규어런디를 본 적도 있다. 그 뒤 텍사스에서는 재규어런디가 멸종되었다. 셰릴은 황혼 무렵이면 마을 안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반쯤 길들여진 코요테와도 친하다. 코요테에게는 ‘와일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셰릴은 텍사스 남부에서 자랐다. 그의 가족은 네 세대에 걸쳐 보카치카 해변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오스틴에 살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집값과 물가가 비싸지자 포틀랜드로 떠났다. 그런 패턴이 반복됐다. 할머니가 편찮아지자 셰릴은 텍사스로 돌아왔고, 존 카푸타가 지은 집 한 채를 2005년에 샀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논리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다면 바로 보카치카일 것이라고 셰릴은 생각했다. 그래서 머스크가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여기 살던 우리는 그 프로젝트가 자멸하거나 머스크의 돈이 떨어지길 바랐다”고 한다.
롭 에이버리의 조개껍데기 컬렉션도 셰릴의 것 못지않다. 은퇴한 연관공인 에이버리는 64세로 구릿빛 머리가 점점 희어지고 있다. 63세인 아내 사라 에이버리는 보험 쪽에서 일했다. 에이버리 부부는 매일 보카치카 해변을 산책하며 굴이 모여 자라는 곳, 희귀한 조개껍데기, 들소 이빨, 심지어 수세기 전에 난파한 배의 흔적도 발견했다. 그들은 매년 6개월을 보카치카에서 지냈고, 이곳으로 영구 이주할 수 있도록 최근 텍사스 주민이 되었다. 그런데 코네티컷에 있는 그들의 다른 집에 스페이스X의 (이주) 제안 서한이 왔을 때 “우리는 쓰러졌다”고 롭이 회상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강제 수용이 될 거란 기분이 들었다.” 사라의 말이다. 롭은 “협박당하는 기분이었다. 급습당했다”라고 덧붙이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가족 두 명이 죽은 뒤였다. 시기가 이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 에이버리 부부는 서류에 서명하고 평소 스케줄보다 6주 빨리 서둘러 보카치카로 갔다. 짐을 싸고 보카치카에 작별 인사할 준비를 했다.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부 조립된 스타십 MK1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켓을 쳐다보기조차 거부하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눈을 떼지 못하는 이웃도 있었다.
 
 

“WHEN I FELL IN LOVE WITH A ROCKET”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는 보카치카로 영구 이주하기 위해 최근 텍사스 주민이 되었다. 그런데 스페이스X의 (이주) 제안 서한이 왔을 때 ’우리는 쓰러졌다“고 롭이 말했다.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는 보카치카로 영구 이주하기 위해 최근 텍사스 주민이 되었다. 그런데 스페이스X의 (이주) 제안 서한이 왔을 때 ’우리는 쓰러졌다“고 롭이 말했다.

어느 날 아침 새벽이 되기 전에 나는 발사장으로 갔다. 늘 근처에 있는 것 같은 버건디색 밴을 찾기 위해서였다. 밴은 스페이스X 경비원들에게 쫓겨나지 않을 만큼의 거리로 가까이 두고 있었다. 그 밴은 메리의 차다. 메리와 78세인 남편 게일은 12년 전에 은퇴하고 보카치카로 왔다. 이들은 이웃다운 배려가 있는 보카치카 커뮤니티를 아주 좋아했다. 한번은 메리가 임시변통으로 자투리 목재와 옷걸이로 안테나를 만들어서 셰릴이 TV를 볼 수 있도록 해준 적도 있다. 그와는 별개로 메리는 스페이스X에 방어적인 이웃들과 달리 아주 흥미로워한다. 보카치카가 우주로 가는 통로로 변신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메리의 흥미는 스페이스X가 스타호퍼를 조립하기 시작한 2018년 11월에 확 커졌다. 스타호퍼는 메탄을 연료로 하는 스페이스X의 랩터 엔진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키가 스타십의 절반 정도인 땅딸막한 모양새다. 메리는 T-페인의 노래 ‘I’m in Love with a Stripper’의 멜로디에 맞춰 노래했다. “나는 로켓과 사랑에 빠졌어.”
메리는 마치 로켓과 그 주위를 관찰하는 일이 주업인 양 낮 시간 대부분을 길가에서 보낸다. 텍사스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도, 비가 내리고 나면 잔뜩 등장하는 모기 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링 관련 경험은 없지만 관찰하는 눈만은 날카롭다. 메리는 이 프로젝트의 진척 현황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BocaChicaGal 계정으로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평균 스무 개 정도의 트윗을 올리며 눈이 별 모양인 이모티콘을 즐겨 쓴다. 우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 계정을 알게 되어 현재 보카치카 현장의 최신 소식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메리부터 찾는다. 2020년 3월 3일 현재 메리의 팔로워는 2만 명이 넘는다.
그날 아침에는 로켓에 열광하는 두 사람이 메리와 함께했다. 서프보드 제작자 진, 스페이스X를 따라 보카치카로 이사할 만큼 일론 머스크의 팬인 앤디 고치다. 앤디는 은퇴한 IT 테크니션이다. 보카치카의 집값이 싸다는 걸 알게 되어 한 채 샀다. 집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 테슬라 배터리에 연결하고 우주선 발사 시작을 기다렸다. 그게 4년 전이다.
우리는 로켓이 더 잘 보이는 해변의 모래언덕 위로 올라갔다. 오늘 일어난 일은 비교적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축하 분위기였다. 스페이스X는 MK1의 원통형 추진 연료 탱크를 조립 시설에서 옮기고 있었다. 거의 비포장에 4분의 1 이상이 물웅덩이인 발사 지역은 되는 대로 마구 만든 건설 현장처럼 급조한 느낌이다. 돌을 던지면 닿을 거리에 스타십의 시험 모델인 스타호퍼가 통통한 세 다리로 앉아 있다. 철책 울타리 위에는 흰 표지판이 걸려 있다. ‘알림: 바다거북 알 품는 시기’. 이 미래적인 하드웨어가 조용한 해초 틈에, 개펄을 헤치고 다니는 무관심한 황새들 옆에 철퍼덕 앉아 있다는 사실이 어지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건 최첨단 탄소 복합물로 만든 로켓이 아니다.” 진은 MK1의 스테인리스스틸 선체에 열광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은 탄소보다 훨씬 싸고 녹는점은 더 높은 재질이다. “엄청나게 비밀스러운 소재가 아니란 이야기다. 저건 지금 당장 철물점에서도 살 수 있다.”
“이건 그러니까 마, 말을 더듬게 만든다. 지금 내가 그러는 것처럼.” 앤디가 말을 더듬었다. “이 사람들이 배관공과 용접공 몇 명을 데리고 나타나더니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방이 탁 트인 여기서 용접을 하기 시작했다.” 앤디의 말대로 MK1은 어디에나 있었다. 보카치카에서는 남쪽만 보고 살지 않는 이상 시야에서 MK1이 사라지는 게 불가능하다. 항상 시야 어딘가에 걸린다. 그런데도 메리, 진, 앤디를 비롯한 이 지역의 로켓 팬들은 봐도 봐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스페이스X가 그들의 뒤뜰을 사들이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이제야 마침내 볼거리가 생겼다.
일론 머스크가 2002년에 스페이스X를 창업한 뒤 스페이스X의 발사는 항공우주국 기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과 캘리포니아의 반덴버그 공군기지 등 정부 소유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자기 방식, 자기 페이스대로 진행하고 싶어 하는 머스크의 욕구에 맞지 않았다. 일례로 2005년에 스페이스X가 일시적으로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발사장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스페이스X의 로켓이 폭발하면 인근 인프라에 피해를 주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 나온 결과였다. 머스크는 분노했다. “누가 당신 집 옆에 집을 짓고 당신더러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이 이슈를 두고 싸울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불공평하다.” 당시 머스크가 한 말이다.
 
투광 조명등이 로켓 조립 현장을 밤새 비추었다. 웅웅거리는 발전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밤낮으로 프로토타입을 두들겨댔다. 로켓 조립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마리아와 레이 부부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까지 용접공들이 뿜어내는 토치 불꽃을 침실에서 볼 수 있었다.
 
스페이스X가 직접 세계 최초의 상업적 궤도 발사장을 만들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스페이스X는 2011년부터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발사 궤적을 위해서는 적도에 가까워야 했고, 인구는 적고 지역 정부가 우호적인 곳이어야 했다. 스페이스X는 곧 세 장소로 후보지를 좁혔다. 플로리다,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보카치카.
알고 보니 일론 머스크는 텍사스의 정치를 좋아했다. 2011년에 그는 미국 텍사스주 남부의 캐머런 카운티 공직자들을 캘리포니아 호손에 있는 스페이스X 본부로 초대했다. 다음 해에는 텍사스 로비스트를 한 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렸다.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릭 페리는 미 연방항공국에 서한을 보냈다. “나는 스페이스X를, 또한 이 기업을 텍사스에 유치하려는 브라운스빌(미국 텍사스주 최남단, 보카치카 일부가 속한 도시) 커뮤니티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스페이스X의 신청을 승인할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 스페이스X는 로켓이 인구가 많은 지역을 피해 날아갈 경로에서 이름을 따 도그레그(dogleg: 굽은 것, 비틀린 것, 비행기 진로의 갑작스러운 변경) 파크 LLC라는 유령 회사를 세웠다. 이어서 플래츠 앳 마스 크로싱 LLC를 만들고 텍사스 지역 강제 공매로 나온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땅값은 쌌다. 그럴 만도 했다. 텍사스의 길은 침수되기 일쑤였고 봄이면 풍속 80km의 돌풍이 일어 모래가 휘날렸다.
그런데도 일론 머스크는 2013년에 텍사스 주 의회 세출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해 텍사스에 ‘케이프커내버럴의 상업적 버전’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펼쳐 보였다. 스페이스X를 텍사스에 유치하기 위한 두 법안도 지지했다. 하나는 소란 행위에 대한 항의가 일어날 경우 상업 우주 기업의 법적 책임을 줄이는 법안이었다. 브라운스빌 의원이 작성한 다른 법안은 우주 비행 활동이 예정되어 있을 경우 공공 해변에 대한 접근권을 카운티 공직자들이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머스크는 자신감과 겸손을 섞어가며 연설했다. “현재 텍사스는 우리의 유력한 후보지입니다”라고 했다가, “텍사스가 내놓은 지원은 어떤 것이든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도 했다. 당시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는 두 법안에 전부 서명했다.
스페이스X는 매년 최고 열두 번까지 발사할 것이라고 도도하게 밝혔다. 주력 로켓인 팔콘 9, 작동 중인 로켓 중 가장 강력한 팔콘 헤비 등을 매달 한 번씩 국제우주정거장(ISS) 또는 더 먼 곳을 향해 쏘겠다는 것이었다. 머스크는 당시 브라운스빌 시장인 토니 마르티네스에게 ‘언젠가 당신은 누군가 브라운스빌에서 화성으로 갔다는 기사를 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역 공직자들은 관심을 받는 일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운스빌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광역도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이 전국 뉴스에 등장한 것은 멕시코 남부와의 국경 관련 이슈가 불거졌을 때뿐이다. 지역 정치 블로거이자 평생 브라운스빌에 산 후안 몬토야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것에 굶주려 있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라고 내게 말했다. 스페이스X는 경제적 탈바꿈을 약속하고 있었다. 평균 연봉이 5만5000달러인 지역 일자리 500개가 생길 것으로 추정되었다. 브라운스빌 경제개발위원회가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스페이스X 유치를 홍보할 때 사용한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는 ‘스페이스X의 경제적 영향이 이 지역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카치카는 텍사스 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긴 해변이다. 몬토야는 이곳이 브라운스빌 주민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해변’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발사 때문에 가끔 보카치카 해변이 폐쇄되긴 하겠지만 그것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브라운스빌 경제개발위원회가 보수적으로 추산한 방문객 수는 매 발사 때마다 1만5000명이다. 토니 마르티네스가 설명했다. “아무도 브라운스빌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스페이스X와 브라운스빌을 같이 이야기하면 마케팅 툴이 생긴다. ‘로켓 발사 보러 가고 싶어? 그럼 브라운스빌에 가야 해’라고 말이다.”
경제 팽창 약속에 대한 호응이 높았기에 머스크는 큰 저항에 부딪히는 일 없이 계획을 진행해왔다. 시, 카운티, 주와 텍사스 대학교에 대한 일괄 보상안은 약 4000만 달러였다. 당시 브라운스빌 시장 토니 마르티네스가 회상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봐, 당신들에겐 새 공항이 필요해’라고 말하면 우리는 새 공항을 짓는 식이었다. 그는 상업 항공을 운영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계약이 성사됐다. 2014년 일론 머스크와 당시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가 함께 기공식에서 모래 섞인 땅에 삽을 박고 포즈를 취했다. 스페이스X는 거리 이름도 바꾸었다. 조애나 스트리트란 이름은 로켓 로드가 되었다.
 

DOGLEG

시작과 동시에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발사대를 만들 기반암을 찾으려고 드릴로 땅을 뚫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작업진이 알게 된 건 개펄에 구멍을 뚫으면 곧 혼탁한 물이 스며든다는 사실이었다. 탄탄한 지반을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페이스X는 약 2억3701만L의 흙을 트럭으로 나른 다음 3년 동안 토양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일론 머스크는 토지소유권 이전을 통해 습지 20만m²를 보존하겠다고 어류 및 야생동물국에 약속했다. 스페이스X가 기대했던 속도대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스페이스X는 연방 정부를 설득해 이 땅을 텍사스주로 넘기도록 했다. 머스크는 이 프로젝트가 2016년에는 제대로 기능하는 우주 공항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2016년은 금세 지나버렸다. 그가 보여줄 것이라곤 비싼 흙무더기뿐이었다.
몇 년 동안 스페이스X가 보카치카에서 한 일이라고는 집과 빈 땅을 계속 사들이는 게 거의 전부였다. 이 글이 발표되는 2020년 3월 기준으로 스페이스X는 보카치카 지역에 150곳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주민들을 찾아와 우주 공항 옆에 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으나 공항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이웃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매체를 통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테리와 보니 히튼 부부가 가장 많이 등장했는데, 일 년 내내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은 그들뿐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히튼 부부는 서민적인 털털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스페이스X는 자신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기대해왔던 은퇴 후의 황금기를 침범하고 있다고 온갖 매체에 말했다. 〈브라운스빌 헤럴드〉 〈휴스턴 크로니클〉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욕 포스트〉 〈NPR〉 등등에.
보카치카 주택 보유자들이 2015년에 스페이스X와의 회의에 초대된 적이 있다. 머스크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대리인들이 몇 가지를 약속했다. ‘발사가 있을 때마다 충분히 시간 여유를 두고 알리겠다’, ‘여름에는 주말에 해변을 폐쇄하지 않겠다’ 등. 스페이스X는 보카치카 주민들의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스페이스X의 고민거리는 흙만이 아니었다. 2015년에 ISS로 가던 팔콘 9 로켓이 분해되었고 2016년에는 폭발했다. 머스크는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머스크의 트윗이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노여움을 사 벌금 2000만 달러를 선고받고 자신의 회사 테슬라 이사회에서 쫓겨났다(2018년 8월 머스크가 트위터에 ‘테슬라를 비공개 회사로 전환하겠다. 자금이 확보돼 있다’고 밝혀 테슬라 주가가 11%까지 치솟았으나 테슬라 주주들의 반대로 비상장 전환 계획이 무산되었고 이에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이어서 나사가 머스크가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격투기 선수인 조 로건과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비난했다. 이 와중에 머스크는 태국의 동굴에 갇힌 소년들을 구조해낸 영웅을 ‘아동성애자’라고 불렀다.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페이스X는 개선에 매진했고 성과가 있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더 많이 쏘아올렸고 ISS 도착 성공 사례도 많아졌다. 팔콘 우주선은 정부와 수십억 달러짜리 계약을 맺을 정도로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그때 머스크는 야심 찬 다음 단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 우주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한 우주선. 스페이스X는 이 신세대 우주선을 BFR(Big Fucking Rocket)이라고 불렀다. 결국 스타십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2019년 5월 스페이스X는 보카치카 계획이 바뀌었다는 서류를 조용히 미 연방항공국에 제출했다. 보카치카를 상업적 목적으로 궤도 발사하는 곳이 아닌, 스페이스X의 실험 장소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스타십이 스페이스X의 미래 비전의 중심이니 보카치카도 마찬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책임보험 액수를 3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높이라고 요구했다. 가까운 곳에 주민들이 거주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 외의 변경은 승인했다.
보카치카 주민들은 이 사실을 즉각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2018년 가을 이후 이 지역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뿐이었다. 흰색 픽업트럭과 중장비가 대로를 가득 메웠고, 보니의 표현을 빌리면 스페이스X 직원들이 ‘개미 떼처럼’ 바삐 돌아다녔다. 스페이스X는 로켓을 실외에서 만들기로 했다. 건물을 지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머스크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투광 조명등이 로켓 조립 현장을 밤새 비추었다. 웅웅거리는 발전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밤낮으로 프로토타입을 두들겨댔다. 로켓 조립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마리아와 레이 부부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까지 용접공들이 뿜어내는 토치 불꽃을 침실에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지붕에 웹캠을 달고 스페이스X의 활동을 24시간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중계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셰릴의 집에 온 사람 중에는 환불을 요구한 이들도 있었다. 보카치카가 조용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동안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셰릴의 집을 빌린 지난해 10월에는 스타십 공사로 나는 소음이 뒷마당에서 들렸다.)
메리가 스타호퍼 제작을 기록하던 지난여름 동안 스페이스X의 활동은 점점 분주해졌다. 7월에는 스타호퍼의 프로토타입이 ‘홉(hop)’에 성공했다. ‘홉’은 일정 높이 떠올라서 옆으로 움직인 다음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는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 405m² 면적에 들불이 일었다. 셰릴은 불이 무섭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스페이스X의 편의를 봐주려고 하는 지역 의원들의 행태가 더 실망스러웠다. 발사장 맞은편에 지역 보안관들이 파견 나와 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스페이스X의 요청에 따라 보카치카 해변은 6월부터 8월 사이에 최소 여섯 번 이상 폐쇄되었다. 브라운스빌의 기온은 6월에 이미 37℃를 넘어갔고, 8월은 텍사스에서 기록이 시작된 이래 두 번째로 평균기온이 높은 달이었다. 스페이스X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보카치카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가 통제됐다. 주민들은 사실상 집에 갇히다시피 했다. 이런 일이 2주일에 한 번은 일어났다.
내가 메리, 진, 앤디와 함께 모래언덕 위에 서 있던 10월의 그날에도 해변 도로가 폐쇄되었다. MK1을 이동시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스타십 MK1이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 정문 안으로 들어가 멈추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은빛 선체의 흠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었다. 그들은 로켓을 보다 친근감 있게, 심지어 공감이 갈 정도로 만들었다.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인파가 모였고 기대감이 커졌다. 길은 여전히 막혀 있기에 스페이스X의 일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예정된 일정보다 한 시간 늦은 때였다.
’예수에게 꽂혔어’라는 범퍼 스티커를 붙인 빨간 SUV가 도로 위 보안관들이 이룬 장벽 앞에 멈춰 섰다. 아침 낚시를 다녀오는 테리였다. 그 역시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테리는 도로가 한 시간 반 전에 다시 열릴 거라고 알리는 유인물을 흔들며 “이건 정말 헛소리야”라고 외쳤다. 테리는 당뇨가 있어 인슐린 주사를 맞으러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이 떨리고 있다.” 그의 집은 여기서 고작 1~2km 떨어진 거리다. 테리가 조금씩 차를 전진시키자 보안관이 막아섰다. “이러면 안 됩니다. 체포됩니다.” 테리는 얼굴이 벌개졌지만 차를 세우고 로켓 이동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BEGIN AGAIN

 
텍사스주의 조용한 마을 보카치카에 들려온 스페이스X의 로켓 소식

텍사스주의 조용한 마을 보카치카에 들려온 스페이스X의 로켓 소식

가을 중순이 되자 보카치카 마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9월에 집을 팔라는 스페이스X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고 느끼고, 버틴 사람들은 집을 판 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다들 이웃이 얼마를 받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마리아는 스페이스X에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실패(스타호퍼의 원추형 앞부분이 강풍에 날아간 것, 지상 연소 시험에서 불길에 휩싸인 것 등)를 알리는데, 메리는 이를 불쾌하게 여겨 마리아와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는다. 메리는 마리아가 자신의 계정 @BocaChicaGal을 도용하려 했다고 주장한다(마리아는 부정한다). 메리는 트위터 프로필에 “내 이름은 마리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10월에 스페이스X가 버티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조금 양보했다. 데드라인을 몇 주 늦추고 보다 철저히 감정하겠다고 제안했다. 최초 감정은 대충 이루어진 평가에 기초했으며 소유주들이 직접 개선한 여러 사항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완된 감정가 역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스페이스X는 데드라인을 또다시 연장하지는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번 데드라인이 지나면 세 배로 쳐주겠다는 제안은 사라지는 것이다. 히튼 부부는 거실에 주민들을 모아 토지 수용권 전문 변호사와 함께 회의를 열었다.
좋은 소식: 어떤 배심원이라도 보카치카 주민들에게 공감할 것이며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나쁜 소식: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추한 법정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변호사는 정말로 긴 싸움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돈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토지 수용권을 전문으로 다루는 법률 지원 비영리단체 인스티튜트 포 저스티스(IJ)의 변호사가 보카치카 주택 보유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주민들로서는 자신들이 스페이스X와 맞먹을 수 있는 상대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마 스페이스X가 텍사스 남부에서 겪을 가장 큰 위협은 도널드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국경 장벽이었을 테니까. 장벽이 지나가는 예상 통로가 발사장을 가로지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원들이 로비를 해서 국경 장벽 통로가 다섯 군데를 피해 만들어졌다. 다섯 군데는 주립 공원, 나비 보호구역, 야생동물 보호구역, 역사적 교회, 그리고 스페이스X의 보카치카 작업장이다.
11월 중순, 카메라를 든 메리가 길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MK1의 내부 칸막이 벽이 갑자기 하늘로 치솟았다. 질소가 기둥처럼 치솟으며 로켓을 삼켰다. 폭발음이 워낙 커서 10여km 떨어진 사우스파드레아일랜드에 있던 진도 그 소리를 들었다. 보카치카 주민들이 초기 단계부터 지켜보았던 로켓이 가압 시험 중 폭발한 것이다. 우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스페이스X는 이미 업데이트된 버전 MK3 작업을 시작했다며 이 사건이 ‘심각한 차질’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사건 후 공사장은 더욱 분주해졌다. 마치 스페이스X가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려는 것 같았다. 레이와 마리아 포인터 가족은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공사장의 소음과 빛을 막으려 허리케인 셔터를 쳤지만 그래도 레이는 잠을 설쳤다. 결국 그들은 스페이스X와 타협하기로 했다. 아내 마리아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이 작디작은 땅 한 조각이 정말 소중한데, 이런 상실을 경험해야 한다고? 바다에 닿기 전 텍사스 4번 고속도로에 있는 마지막 집, 전망이 끝내주는 이 멋진 해변 빌라를? 돈을 얼마를 줘도 여기에는 못 미친다.” 날카로운 정의감을 가진 셰릴조차 스페이스X에 집을 팔까 고려 중이다. 늘 분노한 상태로 지내는 건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줄어드는 에어비앤비 수입도 걱정이다.
그러던 어느 11월 오전, 히튼 부부가 사라졌다. 그들이 스페이스X에 집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 대화를 나눈 이후 히튼 부부는 추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히튼 부부는 스페이스X에 격렬히 맞서왔을 뿐 아니라 셰릴이 “그들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의 기반”이라 표현할 만큼 보카치카에 가장 오래 살았다. “모든 집의 잔디를 깎아주는 데다 물건이 고장 났을 때도 사람들을 도와줬다. 히튼 부부는 모든 집의 열쇠를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는 이만 갈게’ 하고 사라졌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우리와 연락은 했으면 좋겠다.” 이제 수도에서 물이 새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
그 무렵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는 주택 인수 동의를 철회하기로 했다. 감정 가격은 후하게 보이도록 포장되어 있었지만,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고 해가 잘 드는 침실 세 개와 욕실 두 개짜리 집의 가격을 고작 4만7000달러로 평가했다. 이사 갈 만한 근처 집들을 살펴보고 그들은 더 경악했다. 롭에 따르면 스페이스X가 제안한 14만1000달러로는 허름한 집조차 찾을 수 없었다. 15년 동안 쓸고 닦은 집을 버려두고, 해변 저 멀리 아무 집들 사이에 끼어 여생을 보낸다고 생각만 해도 기운이 빠진다. 그들은 아직 양도하지도, 스페이스X의 돈을 받지도 않았다.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는 머스크가 계약 위반으로 고소하려 든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기나긴 법정 싸움이 된다 해도 최소한 보카치카에서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MK1 폭발이 있고 며칠 후, 해변에 죽은 바다거북들이 쓸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이버리 부부는 아침 산책 중에 스무 마리 정도를 목격했다. 지역 거북 보호 단체에 따르면 죽은 거북이는 총 63마리였다. 불법 어업에 따른 것으로 결론 났으나, 이 사건으로 스페이스X가 자신의 제국을 넓혀가는 보카치카에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스페이스X에 대한 글들을 읽어갈수록 나는 이들이 미래에 대해 가진 비전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화성 여행 가설보다는 단기적 야망이 더 그러했다. 스페이스X는 구글과 자산 운용 전문업체 피델리티가 지원하는 스타링크 프로그램(외딴 곳에 고속 인터넷을 보급하고 국제 금융 거래를 더 빠르게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위성 4만 개를 띄우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1조 달러 규모인 글로벌 이동통신 사업의 일부가 스페이스X에게 가도록 할 것이다. 스페이스X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하늘에는 실제 별보다 스페이스X가 띄운 위성이 다섯 배는 더 많아진다.
보카치카는 스페이스X의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존재다. 보카치카에서 쏘아 올릴 팔콘 9 로켓은 위성 수십 개를, 스타십은 위성 수백 개를 나를 수 있으니까. 일론 머스크는 보카치카에서 하루에 세 번은 로켓이 발사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비즈니스 및 기술 뉴스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스페이스X 담당 기자인 데이브 모셔가 말했다. "계산해봤다. 그러려면 연료가 4000톤 이상이 들어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연료를 계속 나를 수는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머스크 특유의 과장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보카치카는 조만간 붐비는 산업 통로가 될 것 같다. 인근 브라운스빌 항구에 LNG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12월 말에 보카치카로 다시 돌아가며 인적이 줄어든 우울한 마을을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란했던 한 해를 겪은 마을에는 새로운 기운이 깃든 듯했다. 주민들은 스페이스X의 존재가 싫든 좋든 받아들인 것 같았다. 로켓이 방해가 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웃이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주민들과는 달리 여기 계속 있을 존재다. 그렇기에 스페이스X와의 협의를 계속한 사람도 있었다. 셰릴이 말했다. “배가 가라앉기 전에 나는 옮겨 탔다.” 우리는 셰릴의 거실, 그가 지난 15년 동안 보카치카에 살며 세심히 모아온 살림살이 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곳에서 싼 집을 찾을 것이다. 텍사스가 역겨워졌으니 아마 다른 주에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을 새로 만들어보려 한다.” 스페이스X는 2020년 3월 전에 집을 비우라 했고, 셰릴은 바닷가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을 최대한 즐기려 한다.
싸우려고 결심한 사람들도 있다. 이 기사 작성 시점까지도 집 팔기를 거부한 이가 10여 명 있다. 기다리면 스페이스X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스페이스X가 집값을 세 배로 쳐주겠다는 제안은 끝이라고 말했으니 위험한 도박이다. 그저 시간을 더 벌려는 이들도 있다.
보카치카 최대의 로켓 팬도 버티고 있다. 메리는 전 세계 스페이스X 팬들의 광적인 커뮤니티에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앤디는 “사람들은 플로리다에 가서 수천 달러를 내고 로켓 발사를 본다. 나는 로켓 발사를 보려고 20만 달러를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스타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오랜 시간 동안 곁에서 지켜본 그들이기에 스타십 곁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같았다.
침울하고 안개 낀 어느 오후, 롭과 사라 에이버리 부부가 보카치카 해변 드라이브에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리오그란데강 어귀까지 갔다. 낚싯대를 든 두 남자가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멕시코가 자갈을 던지면 닿을 곳에 있었다. 나는 연료 생산 시설, 재사용 가능한 로켓,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수만 대의 스페이스X 위성을 상상해보려 했다. 일론 머스크의 수많은 비전이 그렇듯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동시에 묵살해버리기에는 위험하게 느껴졌다.
보카치카 발사장은 계속 커진다. 지난 12월에 스페이스X는 플로리다주 코코아에 있는 다른 로켓 시설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곳의 부속품을 전세선에 실어 텍사스로 보낸 뒤 보카치카의 거대한 흰 텐트로 나르는 중이다. 이전의 수많은 외부 개발자들을 좌절시킨 것, 즉 보카치카의 날씨로부터 부속품을 지키기 위해 스페이스X가 설치한 텐트다. 그보다 먼저 세운 아주 높은 쐐기 모양의 무광 검정 바람막이는 효과가 없었다. “보카치카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곤 한다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가 쓴 트윗이다.
보카치카 마을에 돌아오니 메리가 다시 길가에 나와 이것저것을 살피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거대한 건물 뼈대를 조립하는 인부들의 사진을 찍었다. SN1이라 불리는 스타십의 새로운 버전은 이제 안티도, 팬도 볼 수 없는 건물 내부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메리는 찍을 수 있는 한 계속 사진을 찍을 것이다. 자신이 남기는 기록이 자기 자신을 배제하는 일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