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로 인한 예술 진공 상태는 어떤 변화를 만들었나?

예술 공백이 만든 역학 관계.

BYESQUIRE2020.07.06
 

예술 공백이 만든 역학 관계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193.9 x260.6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0, 최지원.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193.9 x260.6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0, 최지원.

5월 말 미술관이 다시 문을 닫았다. 며칠 후 보려고 예매해놓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과 아르코미술관의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의 입장권은 무용지물이 됐다. 2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휴관한 미술관들이 5월 6일 재개관한 지 3주 만에 다시 휴관, 한 달 남짓 행복했던 관람의 순간이 꿈인 듯 아련했다.
 
전시 공간은 통상 전시 개막 며칠 전, 적어도 하루 전에는 기자 간담회를 열고 기획에 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다. 4월 셋째 주부터 갤러리 기자 간담회 일정을 하나둘 캘린더 앱에 기록하며 얼마나 설레었는지! 오랜만에 만난 미술 담당 기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 눈인사를 나누며 신나게 떠들었다. “오늘 여기서 다 보네. 간담회가 한참 없다 보니 오늘 다 왔네, 다 왔어.” 몇몇 갤러리는 그 주부터 조심스럽게 일반 관람객에게 전시를 공개했고, 관 주도의 방침을 따라야 하는 국립과 시립 미술관은 5월 첫째 주에 입장 예약제로 문을 열었다. 어느 전시 공간을 가나 입구에 손 소독제가 놓여 있었고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으며 방명록에 방문 시간, 주소와 전화번호, 이마에 갖다 댄 체온 측정기에 나온 숫자를 적어야 했다. 그렇지만 봄이 생동하는 삼청동, 점점이 자리한 갤러리를 산책 겸해 둘러보는 즐거움은 황홀했다. 한국 미술품 중 경매 최고가(132억원)를 기록한 김환기의 〈우주 05-IV-71 #200〉이 낙찰 이후 최초로 공개된 갤러리 현대 개관 50주년 특별전 〈현대 HYUNDAI 50〉에는 마스크를 쓴 관객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긴 줄을 이루고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 벽면에 나붙고 LED 사인에서 명멸하는 제니 홀저의 통렬한 문장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관객만큼이나 미술 관계자들도 전시라는 전문성이 압축된 결과물을 대중에 선보인다는 것의 환희를 새삼 깨달은 3주였을 것이다. 5월 7일, 기자 간담회를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신소장품전 〈수평의 축〉 담당 큐레이터인 학예연구사 양옥금은 피곤해 보였지만 개운한 표정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한 해의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기 때문에 미술관이 휴관인 상태여도 전시 개막은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해야 했다. 열심히 준비하면서도 이걸 관람객에게 정확히 언제 보여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자연’이라는 일반적이고 익숙한 주제를 가지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런 초유의 팬데믹 상황을 맞닥뜨린다는 게 기획자로서 매우 아이러니하게 여겨졌어요. 막상 전시를 공개하고 나서는 시의적절한 주제가 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이 파고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한편 5월 21일 기자 간담회를 하고 다음 날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아시아 기획전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는 채 일주일도 안 돼서 재휴관에 들어간 상태. 한 갤러리스트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 문자에 이렇게 답을 보냈다. “이번 전시는 출퇴근하면서 우리만 보고 끝날 듯. ㅎㅎ” 분노를 쏟아내는 큐레이터 M도 있었다. “클럽발, 교회발 확진자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문 닫는 게 어딘지 알아요?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이에요. 미술관은 그 어느 곳보다도 타인과의 거리 조정이 쉬운 곳인데도요!”
 
 
the crying woman, 72.7 x60.6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9, 최지원.

the crying woman, 72.7 x60.6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9, 최지원.

작품 판매로 수익을 내야 하는 갤러리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상업적 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일단 작품 운반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모든 작품이 수장고 안에 머물러 있다고 보면 돼. 갤러리 수장고 아니면 운반업체 수장고 둘 중 하나에. 컬렉터가 자기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경우도 많아. 무엇보다 생명이 위급할 수도 있는데 미술은 무슨 미술.” 더 심각한 문제는 아티스트들이 입는 타격이다. 20~30대 젊은 작가들의 ‘마더 갤러리’로 각종 아트 페어를 통해 그들을 소개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데 열심인 갤러리스트 K가 말했다. “이제 곧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는 아티스트들이 나올 거예요. 그들은 시간과 재능, 재료비로 쓰는 돈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트 페어에 선보일 작품, 개인전에서 소개할 작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모든 활로가 막혀버렸잖아요. 경제적인 것은 물론 커리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얼마나 낙담이 클지….” 며칠 전, 9월로 연기되었던 아트 바젤이 공식적으로 행사 취소를 발표했다. 아트 바젤은 3월에 홍콩, 6월에 바젤, 12월에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리는 가장 성공적인 아트 페어다. 이미 지난 3월 아트 바젤 홍콩이 민주화 시위 사태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취소된 후, 1년의 여행 스케줄을 아트 바젤에 따라 세팅하는 컬렉터들은 6월의 바젤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던 상황이었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돼 올해 50주년을 맞이하며 대대적인 기획을 준비하던 아트 바젤은 기념비적인 해를 처음으로 행사를 열지 않은 해로 기록하게 됐다. “아트 바젤뿐 아니라 아트 시카고, 아트 자카르타 줄줄이 취소됐어요. 그래도 아직 12월의 마이애미 비치는 모르는 일이니까 좀 더 기다려보려고요.”

 
그렇다고 아트 바젤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페어 기간에 맞춰 론칭한 것. 아트 바젤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에 들어가면 235개의 갤러리에서 내놓은 작품을 온라인 전시장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미술 시장에 대한 분석과 경험으로 다져진 아트 바젤이 디지털과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작품 구매에 관한 취향과 경로를 발 빠르게 캐치한 것이다. 실제로 영 컬렉터들은 아트 딜러와 카톡으로 작품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 주문하기도 하고 실제로 본 적 없는 작품이어도 필립스, 소더비 등 글로벌 옥션 사이트에서 거침없이 작품을 구매한다. 결과적으로 아트 바젤 온라인 뷰잉룸에는 7일간 26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하우저&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가고시안 등 오프라인에서도 판매가 활발했던 톱 갤러리들의 경우 온라인에서도 결과가 좋았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개별적인 갤러리들 역시 영 컬렉터들을 공략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고화질의 작품 이미지, 디테일한 정보, 가격까지 명확히 나와 있는 ‘구입 가능한 작품(Available Work)’ 리스트가 메일함에 도착해 있어요. 코로나19 발생 이후 그런 리스트를 꾸준히 보내주는 곳이 늘어난 것 같아요.” 나 역시 아트 컬렉터 L한테 가격의 투명성이 보장된 리스트를 건네받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집중적으로 작품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건 그 어느 때보다 아트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향유하는 데 익숙함에도 예술 작품을 직접 ‘보는’ 일에 대한 열정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거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오히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듯 보인다. 젊은 20대 작가 최지원의 첫 개인전 〈Cold Frame〉이 열리고 있는 청담동의 디스위켄드룸 김나형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히려 관객이 늘었다고 했다. “지난 주말에도 수십 명이 다녀갔어요. 소규모 공간이라서 저희에겐 꽤 많은 숫자지요.” 최지원 작가는 자신과 주변인들을 도자기 인형 같은 모습으로 가공한 뒤 가상의 풍경에 오브제처럼 배치해 아리송한 서사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쉽고 가볍게 소비된 후 신속하게 폐기되는 요즘의 감정을 표현한 작가의 그림은 천연덕스러운 유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소셜 미디어가 미술 지형을 부정적으로 바꿔놓는다는 의견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SNS에 올라온 전시 전경을 쓱쓱 넘겨 보고 그 전시를 봤다고 여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많은 전시 공간이 한동안 문을 닫게 되니까 관객들에게 오히려 디지털상에 재현된 작품을 보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마음이 쌓인 것 같아요. 작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증폭됐달까. 이전에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실제 작품을 보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젊은 관객들이 최지원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하는 얘기가 한결같아요.
 
“인스타에서 봤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너무 궁금했어요!” 김 대표의 말을 들으니 어떤 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평창동의 토탈미술관에서 이용백 작가의 개인전 〈Breaking Art〉를 보고 테라스에 앉아서 나눈 대화의 한 대목. 뉴욕에서 온 안무가 이양희가 말했다. “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공연 예술계에서 발 빠르게 각종 공연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는 것에 엄청난 당혹감이 들어요. 집합이 불가한 이상 한동안은 공연 예술을 보지 못한 채 그 아득한 공백 속에서 머물러보면 어떨까 상상합니다.” 그러고 나면 떠오르는 사유. 거기에서 예술이 무엇이고 내 삶에 어떤 걸 가져다주는지 사금처럼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WHO’S THE WRITER?
안동선은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이다. 〈코스모폴리탄〉 〈바자〉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현재 미술과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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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안동선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