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정신의학자가 분석한 '지워지고 싶은 욕망'

왜 지워요?

BYESQUIRE2020.07.14
 
 

왜 지워요? 

 
싸이월드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2019년 어느 날, 청춘 시절에 남긴 사진과 글을 백업받기 위해 15년 만에 나의 미니홈피를 방문했다. 충격적이었다. 그곳에는 깡마르고 스포츠머리를 한 풋내기 의대생이 머리에 한껏 젤을 발라 멋을 내고 쏟아낸, 당시에는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한 중2병 감성 멘트가 가득했다. 누군가 나의 이 흑역사를 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한강으로 차를 몰고 가 뛰어내리리라. 쪽팔림에 몸부림치던 나는 이 기록을 영원히 세상에서 말소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클리닉에는 SNS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생활이 의도치 않게 외부에 공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공개당하고 조리돌림당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공유한 사생활이 박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자신의 진면목을 누군가 알아달라며 간절히 남기고 공유하고자 했던 이들이 이제는 잊힐 권리를 외치고 있다.
 
이에 편승하듯 2020년 3월부터 트위터가 24시간 후 멘션이 사라지는 새 기능 ‘플릿’을 시범 운영 중이다. 플릿 기능으로 작성한 멘션은 타임라인에 남지 않고 영원히 사라진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답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시물이 일정한 시간 동안만 나타나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콘셉트를 선보인 것은 트위터가 처음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미 업로드 후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스토리’라는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피드’와 맞먹을 만큼의 활용도를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SNS 기능의 큰 줄기는 기억의 공유이다. 내 일상의 순간을, 내 생각이 명멸하는 순간을 글이나 그림 등의 형태로 기억하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SNS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표현하고 싶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몇 번의 타이핑과 클릭만으로 나의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SNS는 연결과 표현, 그리고 인정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대중의 취향을 말 그대로 저격했다.
 
영원성(기억)과 무한의 연결성(공유)을 모토로 하는 SNS에 이제는 역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무한을 제한으로 되돌리는 서비스가 탄생했다. 놀라운 일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꽤나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소통과 자기표현에 질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스토리나 플릿을 이용하기보다는 서비스 탈퇴를 택했을 테니. 소통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내가 이해받고 싶은 진정한 나는 영원 속에 박제된 기록 속 ‘사물로서의 나’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살아 숨 쉬는 ‘주체로서의 나’이다.”
 
1937년 미국의 신경해부학자 제임스 파페츠는 광견병에 걸린 개가 강렬한 공격성을 보이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인수 공통 바이러스인 광견병 바이러스는 숙주의 해마를 공격했고 해마를 자극당한 개는 그 즉시 강력한 불안감과 공격성에 시달렸다. 이에 파페츠는 감정의 중추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그는 해마와 시상하부, 대상회 피질, 편도 등을 연결하는 일련의 회로를 자신의 이름을 따 파페츠 회로(Papez circuit)라 명명했다. 이때 그는 몰랐다. 자신이 발견한 감정의 중추가 사실은 기억의 중추이기도 하다는 것을. 훗날 뇌과학자들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기억이 감정을 자극하고 감정이 또다시 기억을 자극하는 순환적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다.
 
싸이월드에 기록된 자신의 감정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다고 믿었던, ‘갬성’에 취한 요상한 머리 꼴의 20대 청년도 분명히 나였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그딴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보존하고 싶었던 것은 당시 내 내면에 비춰진, 나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기막히게 멋있고 감성적인 나의 모습이리라. 싸이월드에 남겨진 그때의 내 모습은 나에게는 더 이상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남은 것은 풋내와 촌스러움이 가득했던 그날의 껍데기뿐이다. 그래서 나는 삭제했다. 내가 올린 감성 넘치던 그 게시물이 지금에 와서는 ‘내가 원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던 것이다. 파페츠의 발견이 우리에게 알려주듯 기억은 감정과 함께하기에 우리에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한때 카메라와 필름업계를 지배했던 코닥은 인생에 한 번쯤은 있을 법한, 기록하고 싶은 빛나는 순간을 자사의 이름을 따 ‘코닥 모멘트’라 불렀다. 이 회사는 순간이 영원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인간은 점차 찍힌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진정한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필터를 이용해 색감을 조절하고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을 보정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의 사진과 글이 담고 있는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있었고, 그 불꽃과 같은 감정적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순간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기록에 제3의 개념을 넣었다. 사진과 글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의 분신은 실제와 동등한 순간으로서의 가치를 손에 넣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가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반영한 나의 사진과 글 또한 순간적이어야만 한다.
감정의 유통기한이 지나 변질된 나에 대한 기록은 빈 껍데기만 남은 뱀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누군가 그 껍데기를 들고 흔들며 이것이 나의 진짜 모습인 양 착각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은 친절하게도 영원을 다시 순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마련했다.
 
나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나의 일상을 한껏 보정한 사진과 하루만 지나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릴 감성에 찬 멘트를 올린다. 20년 후 내가 이 기록을 보면 이불을 발로 차며 후회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게시물은 24시간 한정이니까. 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바꾼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인간은 결심했다. 영원을 다시 순간으로 되돌리기로. 자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도 같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그리고 다시 순간으로.
 
WHO’S THE WRITER?
권순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및 치매전문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신의학신문〉에 ‘영화 속 마음을 읽다’라는 칼럼을 연재 중이며 이를 엮어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