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편견으로 점철된 사회의 흑인 인권 운동의 미래는?

흑인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

BYESQUIRE2020.08.03
 

흑인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 

 
 
나는 당신처럼 입고 일터에 갈 수가 없다. 내가 당신같이 정리되지 않은 머리에 야구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일터에 간다? 그러면 그날은 내가 해고되는 날이다.”
 
미국의 기업과 연구 기관들은 최근 몇 년 들어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이란 사회가 다인종 국가와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임에도 우리가 흔히 ‘주류’라고 부르는 집단은 다양성이 없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작은 조직부터 지역사회를 넘어 한 국가의 다양성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주류의 모습은 조직과 국가의 정책 결정 및 제도, 복지 등을 한편으로 치우친 시각으로 만들 수 있다. 조직과 국가에서 결정한 사항이 실제 우리가 사는 삶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주류에 있는 이들은 겪어보지 못하고 생각조차 못 해본 환경과 생각 그리고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연구소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평소 과학계에서 소수인 여성이자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다양성은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으며, 그래서 빠짐없이 교육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밀레니얼 세대, X세대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한 공간,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일어나는 소통에 대한 문제, 조직 내에서 가사와 양육과 함께 매일을 견뎌내는 여성 연구원에 대한 문제, 정규직과 계약직 같은 조직 구성원 간의 문제를 다루고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육은 꽤 유용했다.
그중 한 가지 기억에 오래 남은 교육이 있다면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8시간씩 이틀에 걸쳐 진행된 그 교육을 끝까지 이수하지 못했다.
 
15명 정도 참여했던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은 양복을 쪽 빼입은 흑인 강사가 맡았다. 흑인과 백인이 비슷한 비율로 참여하고 동양인은 나와 인도계 연구원 이렇게 두 명이 전부였다. 강사의 말투는 꽤 공격적이었다. 토론하고 롤 플레이를 하거나 혹은 강사가 잘 정리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는 여느 교육과 다르게 강사는 그곳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계속 쏘아붙였다. 그 과정에서 몇몇 참가자와는 언쟁이 격렬해졌고, 심지어 한 백인 남성은 강사와 싸우다시피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다 다른 사람들의 중재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보통 휴식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참가자들이 서로 교육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날 그 교육의 쉬는 시간에는 참가자들 사이에 깊은 침묵만 흘렀다.
 
첫날 교육을 마치고 다음 날 나는 그 교육에 다시 참가하지 않았다. 소수 인종으로서 연구소라는 조직 내에서 나와 같은 소수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가했던 그 교육은 미국뿐만 아닌 이 연구소라는 조직의 인종 문제가 흑과 백 혹은 흑과 나머지로 나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연구소의 교육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꼭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해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닫혀버린 마음에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가 인종에 대한 이야기에는 흑백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따질 요량으로 전화를 했다. 그가 말하길 강사가 교육 둘째 날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단다. 강사는 자신이 쏘아붙였던 이들을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들의 얼굴색이 어떠했는지, 그들의 성별이 어떠했는지, 그들의 옷차림이 어떠했는지 말이다.
 
강사와 싸울 듯이 굴다가 앉았던 사람은 곱슬거리는 흰머리를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에 배낭을 들고 있던 백인 남성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강사가 왜 늦게 들어왔느냐고 나무랐던 사람은 노 타이 셔츠와 벨트 없는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중년 백인 남성이었다. 강사가 그들에게 쏘아붙였던 이유는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권인 그들에게 흑인이, 여성이 늘 당하는 편견과 차별을 느끼게 하려고 일부러 연기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교육 담당자는 강사가 나처럼 하루만 참석하고 중도 포기한 이들이 혹시나 이 교육에 선입견이 생겼을까 싶어서 자신의 행동이 교육을 위해 일부러 연기한 것임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교육 담당자의 말을 듣고 강사의 행동을 곱씹어보았다. 부스스한 흰머리에 야구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은 사람과 언쟁하면서 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처럼 입고 일터에 갈 수가 없다. 내가 당신같이 정리되지 않은 머리에 야구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일터에 간다? 그러면 그날은 내가 해고되는 날이다.” 노 타이 셔츠를 입은 사람에게는 “당신은 그렇게 입고 일터에도 가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도 가고 클럽에도 가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일터의 복장, 레스토랑 갈 때의 복장, 클럽 갈 때의 복장이 다 따로 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이해할 수 있는가?” 그는 또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부동산 중개인이 한 말도 이야기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주는 곳들은 소위 학군이 좋지 않은 곳, 편의 시설이 부족하고 오래된 동네더란다. 강사가 ‘나는 A 지역 집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부동산 중개인은 ‘그곳은 백인 동네’라고 말했단다.
 
미국 사회에서, 더군다나 조직 내에서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꼭 닫고 있는 입과는 달리 편견과 차별이 사람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끝까지 이수하지 못한 그 교육을 통해 느꼈다.
미국 사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더불어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팬데믹이 몰려왔다. 시작은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회에 속한 우리 모두의 눈 속에 남아 있던 편견의 껍질을 벗겨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불평등의 고리가 드러날 때부터 또 다른 팬데믹의 서막이 올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동남부인 조지아주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이 시작되던 무렵 복면 금지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애틀랜타 시장인 케이샤 랜스 보텀스는 경찰에 애틀랜타 시내에서 이 법률을 적용하지 말고 마스크 쓴 사람을 체포하지 말라고 명령했고, 조지아주 민주당 진영에서는 주지사에게 복면 금지법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시카고에서 마스크를 쓰고 월마트에 들어가던 흑인 2명이 마스크 착용이 불법이라며 경찰에 의해 강압적으로 쫓겨난 사건 직후였다. 특히 흑인 남성들의 마스크 착용에 대한 반대와 거부감은 그들을 선천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이 사회의 편견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복면 금지법의 시작점을 찾아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951년에 제정한 이 법안은 공공장소나 타인의 개인 소유지에서 허락 없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나 복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당시 백인 우월 단체(Ku Klux Klan, KKK) 단원들이 복면을 하고 흑인에게 집단 폭행을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법안이었다. 70여 년 전 흑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현재는 거꾸로 흑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법이 되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8월 1일까지 효력이 정지된 복면 금지법의 효력 정지 기간 연장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만료를 주장하는 공화당 의원 간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마스크의 정치적 설전 가운데는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대를 이어 내려온 뼛속까지 박힌 차별과 태어나면서 받은 편견이라는 시선 속에서 전염병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팀의 유일한 흑인 동료는 며칠 전 나에게 트위터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성인 흑인 남성을 아들로 두고 있는 그가 보낸 링크에는 꽃무늬 마스크를 쓴 흑인 청년의 사진이 있었다.
 
내게는 독이 있는 마스크가 있었다. 내가 흑인인 것을 잊어라. 내가 크다는 것도, 선천적으로 눈이 좀 빨갛다는 것도, 내가 미국에 있다는 것도. 나는 꽃무늬 새 마스크를 썼다. 쏘지 말아라! 진짜로 쏘지 말아라.”
 
이 꽃무늬 마스크가 이 사회에 폭풍같이 몰아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WHO’S THE WRITER?
문성실은 미국에서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 박사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공계 여성이자 외국인,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