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기후변화 대책을 위한 방안, 원자력

누구나 기후변화 대책을 지지한다, 가격표를 받아 들기 전까지는.

BYESQUIRE2020.10.07
 
 

누구나 기후변화 대책을 지지한다, 가격표를 받아 들기 전까지는

 
이 지면을 읽을 정도의 교양을 갖춘 독자라면 기후변화가 중대한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이번 여름은 특히 한국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일깨워줬다. 한반도에 태풍이 연속으로 세 번 상륙한 것은 현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1945년 이래 처음이라 한다. 앞으로는 다른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책임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기후변화가 ‘지구온난화’란 이름으로 소개되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프레온 가스(이거 기억나면 아재 인증)가 든 헤어스프레이를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었나 싶었는데 2020년은(코로나19 때문에 요즘은 무색해졌지만) 비행기를 타서 탄소를 배출하는 것도 비난받는 시대가 됐다(심지어 그레타 툰베리도 이 문제로 비난받은 일이 있다).
 
전국 각지의 농촌을 취재하러 다니는 배우자를 핑계로 SUV를 굴리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담이 끝내 삼켜 내리지 못한 과육 한 조각 같은 게 걸려 있다. 다음에는 꼭 전기차로 바꿔야지 생각하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현자들은 나의 간사한 심리에 어차피 그 전기차를 충전하는 전기가 대부분 원자력과 석탄으로 생산된다고 준엄한 일침을 가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보다 급진적인 대책을 요구하면서 과격한 시위법을 택한 사례도 나온다. 영국의 익스팅션 리벨리언(XR)은 작년 런던 등 주요 도시에서 도로에 드러눕거나 전철 위에 올라타는 등의 시위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02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도록 법을 제정하라는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기후 위기의 극복’이라는 대의는 이런 소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일까?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자동차를 굴리지 말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기후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책이 있다. 그것도 한 달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2권이 나왔다.
하나는 6월 말에 나온 마이클 셸런버거의 〈Apocalypse Never〉이고 다른 하나는 7월 중순에 나온 비외른 롬보르의 〈False Alarm〉이다. 두 책의 기본 논지는 상당히 비슷하다. 기후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영향이 너무 과장돼 있다는 것. 이들의 공격은 소위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에게 집중된다. 이들의 무기는 ‘과학’이다. 책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서지 목록을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이 많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음을 어필한다. 한편 비판론자들도 이들이 과학을 오용했다고 주장하니 대체 무엇이 진짜 과학인지는 더 많은 토론과 검증이 필요할 성싶다. 물론 K5는 사이언스지만. 작금의 기후변화 대책이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부담을 떠안긴다는 주장은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미 산업이 성숙한 선진국은 화석연료의 사용 억제를 감당할 수 있고 나중에는 녹색 기술을 통해 오히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산업을 일으키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당장 필요한 화석연료를 제한하면 결국 영원히 개발도상국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대책으로 주로 제시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필연적으로 전기 생산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는데 이런 정책을 지지하는 중산층은 이를 감당할 수 있어도 빈곤층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지금 논의, 시행 중인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 보다 냉정한 비용 편익 분석을 실시하고, 특히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계층의 부를 증대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이들 주장의 골자다. 기후변화 대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에너지 정책이기 때문에 이들은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현재의 대체 에너지 기술은 너무나 미흡해 녹색 기술의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해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역설은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면 높일수록 탄소 배출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태양열이나 풍력은 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청정 에너지 아닌가? 그런데 태양열과 풍력이 지속적으로 발전 능력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구름 낀 날이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사회의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백업 발전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이뤄진다. 게다가 언제 바람이 안 불고 구름이 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백업 발전소는 항시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는 탄소 발생은 물론이고 발전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친환경 교과서처럼 알려진 독일의 사례는 오히려 이들의 먹잇감이다. 선진국 중 가장 적극적으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뛰어든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막대한 비용을 들였음에도 주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전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보다 뚜렷하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전기 생산 비용은 두 배인데 탄소 배출량은 프랑스의 열 배다. 앞서 말한 재생에너지의 발전 항상성 문제 때문이다. 매킨지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기후 보호, 에너지 공급 안정성, 경제적 효율성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마이클 셸런버거는 탄소 제로에 경제성까지 갖춘 거의 완벽한 에너지원이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원자력이다. 롬보르도 원자력의 유용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셸런버거의 원전 애호는 유별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고, 방한해서 친원전 단체의 행사에 참가한 일도 있을 정도다. 그는 체르노빌에 대한 UN 보고서 내용 등을 인용하면서 원전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이 과장됐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문제인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해명을 하지 않는다.
둘의 논지가 비슷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비판도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뉴욕 타임스〉에는 무려 조셉 스티글리츠(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가 등판해 비외른 롬보르를 비판했는데 롬보르가 주로 의존하는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모델이 기후변화의 리스크는 과소평가하고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비용은 과대평가했다고 주장한다. 롬보르는 이에 대해 노드하우스는 기후 문제를 다룬 경제학자 중 유일하게 노벨상(2018년)을 받은 사람이라고 대꾸하기도 했다(참고로 스티글리츠는 정보 비대칭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롬보르와 셸런버거에 대한 또 다른 공통적 비판은 앞으로 인류가 맞이하게 될 기후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시대보다 2℃ 높았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00만 년 전인 플리오세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지구 해수면은 지금보다 10~20m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이상기후가 미치는 피해는 비대칭적으로 커질 수 있고 롬보르와 셸런버거가 인용하는 각종 연구도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가디언〉에 두 책을 모두 ‘정치 프로파간다’라고 힐난하는 리뷰를 쓴 밥 워드 런던 정경대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 정책홍보국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셸런버거의 주장에서 일부 경청할 만한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현재의 기술로는 전체 전력망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서 경제성 있게 보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만한 기술이 나올 때까지는 전환기의 에너지 수요와 탄소 저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원자력 발전에 나름의 역할이 있음을 인정한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셸런버거의 책은 지금까지 미국 아마존의 기후, 환경 정책, 환경 과학 부문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익스팅션 리벨리언의 대변인으로 유명했던 지온 라이츠는 셸런버거와 인터뷰한 후 원자력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자신도 원전 옹호론자가 됐다. 어쩌면 미국 민주당이 최근 발표한 정강 정책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가 롬보르와 셸런버거의 ‘원전 유지’ 주장이 결국 옳았음을 입증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이제야 자신들이 지지한 정책이 어떤 비용을 수반하는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9년 〈워싱턴포스트〉의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3이 기후변화가 위기라고 여기지만 이를 막기 위해 한 해 24달러를 쓰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타이슨의 유명한 말을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누구나 기후변화 대책을 지지한다. 가격표를 받아들기 전까지는. 아마존에서 사람들이 셸런버거의 책과 함께 구매했다고 하는 책은 대부분 극우파의 책이었다. 셸런버거가 오바마가 상원의원이던 시절부터 민주당과 적극 협력했던 것을 알고 있는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기후변화 대책과 그에 수반되는 비용처럼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계속 기후변화 대책의 당위에만 치우쳐 논의가 되지 않는다면 공론장 뒤편에서 음모론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 이 글은 개인의 견해를 반영할 따름이며 그가 소속된 매체 혹은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논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WHO'S THE WRITER?
김수빈은 BBC 한국어 서비스의 기자이자 번역자이다. 〈리얼 노스 코리아〉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 〈아더 마인즈: 문어, 바다, 그리고 의식의 기원〉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