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업계가 우리 집을 노리고 있다

프레이그런스업계가 노리는 건 우리의 몸을 향긋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그들은 우리의 집으로 향할 계획이다.

BYESQUIRE2020.11.13
 

지금 당신의 집에선 어떤 향이 나고 있습니까? 

 
호주 멜버른의 부동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비싼 집을 팔고 싶으면 이솝 핸드 워시를 잘 보이는 곳에 둬야 한다”는 농담이 오간다. 매물을 보러 온 고객이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가구와 주방의 대리석 조리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창에는 감흥을 얻지 못해도 화장실에 놓인 달콤한 베티베르 향의 비누에는 마음이 녹을 거란 이야기다.
 
럭셔리 핸드 워시와 부동산에 대한 농담은 제쳐두더라도, 프레이그런스업계와 야심 찬 인테리어 세계의 접점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다. 이전에 비해 손도 자주 씻어야 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와 상관없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처럼 집에서도 좋은 향기가 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욕망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캔들, 디퓨저, 인센스 스틱 등 모든 ‘홈 프레이그런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준 높은 취향을 갖고 있기로 유명한 남성의 집에 딥티크 제품이 한 개도 없다면… 그의 취향이 정말로 수준이 높은 걸까?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동산 에이전시인 ‘더 모던 하우스’의 공동 창업자 매트 기버드는 집을 매력적으로 꾸미려면 고객의 모든 감각에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각·촉각·후각으로 고객에게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죠. 각각의 방마다 그 주인의 성격을 드러내는 향이 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 고객도 있었어요. 또 많은 고객이 자연 친화적이고 신체에 유해하지 않은 제품을 선호하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패션 스토어 ‘엔드’의 홈웨어 및 라이프스타일 바이어인 대니얼 크로에 따르면 ‘홈 프레이그런스’는 아직 규모는 작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이런 제품들에 관심을 갖는 고객이 점점 늘고 있어요. 특히 코로나19로 락다운이 이뤄지던 시기에 남성 고객이 늘었죠. 저희도 집의 분위기와 느낌에 이전보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일상에서 생산성을 높여주고 편안함을 조금 더 선사할 작은 요소들에 관심이 모이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저 역시 가구와 장식품, 캔들같이 제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저에게 즐거움을 주길 바라고요.”
 
앞서 언급한 고가의 핸드 워시와 핸드 크림 등을 만드는 호주의 ‘이솝’이나, 타투와 수염이 인상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햄이 만든 스웨덴의 ‘바이레도’가 향수와 캔들을 판매하는 브랜드 중 가장 잘 알려진 편이다. 특히 바이레도의 비블리오떼끄는 엔드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이 밖에 ‘코튼 포플린’과 ‘트리 하우스’ 등도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을 내놓고 있다. 뉴욕에서 상탈26 홈 디퓨저를 주문 제작해 345파운드에 판매하는 ‘르 라보’는 삭막할 수 있는 고층 아파트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귀한 단풍나무를 사용한다. 프랑스 캔들의 상징과도 같은 ‘딥티크’는 ‘럭셔리 홈 프레이그런스’의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이 브랜드들이 원하는 건 고객이, 특히 당신이 그들의 향수를 온몸에 뿌리고, 헤어 제품을 머리에 바르고, 천연 소재 치약으로 이를 닦는 것만이 아니다. 이들은 고객의 집 전체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품이 가득하길 바란다.
 
영국 런던의 하이엔드 향수 제조자인 톰 딕슨은 락다운 기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딴 비누와 핸드 케어 제품을 선보였다. 향수와 같은 전통적인 프레이그런스 제품은 위험한 상황인 반면, 위생의 중요성은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쿠아 디 파르마의 홈 컬렉션은 ‘이탈리아스러운’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품 개발 및 이노베이션 디렉터인 파올라 파가니니에 따르면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탈리아 시골 호숫가의 한 빌라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느긋하지 않나요?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인 ‘라 카사 술 라고’는 이런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설명이다. “‘카페 인 피아자’는 좋은 커피를 마시는 순간 같고, ‘아페리티보 인 테라사’는 친구들과 테라스에서 정말 맛있는 식전주를 마실 때 느껴지는 신나는 기분을 담으려 했죠. 정말 다양한 제품들이 있어요.”
 
독특한 향이 풍기는 방에 들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챈 그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 될 수 있죠.” 
 
올 한 해 내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은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도 먼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친구들과 레스토랑 테라스 자리에 앉아 가볍게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반짝이는 호수 앞의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게 어려워졌다. 당연했던 일상의 풍경과 멀어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상황이다. 그런 욕구를 반영한 홈 프레이그런스는 정말로 많이 팔리고 있을까? 수치를 보면 그런 것 같다.
 
글로벌 소매 애널리스트 NPD에 따르면 올해 3월, 영국에서는 고급형 룸 프레시너의 매출이 37% 늘었다고 한다. 고급 캔들의 경우 지난해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소매 애널리스트 벤드의 2019년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캔들 시장은 19억 파운드 규모로 성장했다. 하이 패션계의 ‘큰손’들이 이쪽 업계를 향해 눈을 돌릴 만한 수준인 것이다. 구찌와 디올, 루이 비통 등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정용 프레이그런스와 가구, 홈웨어 등을 꾸준히 출시하며 기반을 다졌다.
 
영국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이 맡고 있는 로에베의 경우, 인하우스 조향사인 누리아 크루엘의 손에서 탄생한 젠더리스한 향인 ‘홈 센츠’를 공개했다. 노간주나무, 인동, 달콤한 콩, 담쟁이덩굴 등을 담아 ‘텃밭의 본질’을 표현한 향으로, 이는 캔들과 라탄 디퓨저, 비누로 출시됐다.
 
크루엘에 따르면 이 향은 앤더슨의 의사를 적극 반영한 것이었다. “앤더슨은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온실을 떠올리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앤더슨은 향수업계에서 아주 찾아보기 드문 향들을 제시했어요. 실험은 끝이 없었죠.” 각고의 노력 끝에 깨끗하면서도 다채로운 향이 탄생했다. 근사하게 꾸며진 스페인의 여름용 별장이나 모로코 전통 주택에서 날 듯한 향으로, 사람들이 한 번 이상은 언급할 만한 냄새였다.
 
“스타일리시한 집에서는 반드시 독특한 향기가 나야 합니다.” 크루엘이 말했다. “전 누군가 저희 집을 방문한 뒤 ‘향기가 정말 좋네요, 당신다워요’라고 말해줄 때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각 방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잘 조화된 향기가 느껴져야 해요. 모두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고, 집주인의 성격과 데커레이션에 잘 맞는 향이 필요하죠.”
 
패션과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면, 이전까지 집의 향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대한 논의는 훨씬 적은 수준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사실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집과 방에서 나는 향기에 대해 생각본 사람이 있을까? 코로나19와 락다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누가 여기에 관심을 갖기나 했을까? 그전까지 집은 그저 물건을 쌓아두고, 넷플릭스를 보고, 다시 출근하기 전에 눈을 붙이는 곳에 불과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 늦은 시간 퇴근하는 풀타임 근무가 언제라도 다시 재택으로 바뀔 수 있는 지금, 집의 향기와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깊게 생각할 만한 주제가 됐다.
 
스투시와 톰 브라운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에이전시인 ‘퍼블릭 어나운스먼트’의 설립자이자 작가인 크리스 블랙은 이런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에 대해 “눈에 확 띄지 않으면서도 방문한 손님들에게 세련된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핸드 워시나 캔들, 인테리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홈 액세서리는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럭셔리잖아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랙은 ‘뉴욕’지에 ‘크리스 블랙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주로 독자들에게 건네는 미학적인 조언이 담긴다. 이 때문에 그는 온라인상에서 유행을 만드는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캔들의 경우, 저는 딥티크 우드나 바이레도 재패니스 앰버, 노든 조슈야 트리, 그리고 말린 앤 게츠 레더를 선호합니다. 인센스는 쇼에이도 슌-유 베커닝 스프링, 쿰바 샌들우드, 아스티에 드 빌라트 아오야마를 좋아하고요.” 그가 바라는 건 간단하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게 주류 문화가 돼야 합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이잖아요.”
 
자가가 아닌 집에 살고 있다면 - 혹시 찬장 손잡이라도 부서졌을 때 전 UN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 이상의 협상력을 가져야만 상대할 수 있는 건물주를 둔 사람이라면 더더욱 - ‘임스’ 의자나 ‘이사무 노구치’ 커피 테이블을 갖는 게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일로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실내용 화초처럼, 럭셔리 캔들 같은 가정용 프레이그런스를 갖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는 곳이 어디든 간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이 말했듯,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세련된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르 라보의 페트그레인21과 이솝 이스트로스 아로마티크 룸 스프레이를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다음으로는 바이레도의 피요테 포엠을 사용해볼 예정이다.
 
얼마 전, 일 년 내내 지퍼락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나는 소호 브로드윅가에 있는 엔드 매장을 방문했다. 옛 런던에서도 구질구질한 지역이던 곳에 위치한 밝고 깨끗한 유리 건물 안에는 스톤 아일랜드, 에임 레온 도르, 아식스, 나이키, AMI, 아크네 스튜디오가 들어서 있었고 위층에는 멋진 그루밍 셀렉션이 있었다. 대리석과 스테인리스스틸에 둘러싸인 깊은 사각형 싱크대 옆에는 이솝, 말린 앤 게츠, HAY,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신상으로 가득 찬 선반이 놓여 있었다. 칸예 웨스트, 이솝, 릭 오웬스에게 욕실 인테리어 컬래버레이션을 부탁했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모양새였다.
 
그곳에서 나는 세련된 헤어스타일을 한 채 고어텍스 코트를 입고 말끔한 운동화를 신은 젊은 남성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멈춰 서서 인테리어, 그루밍, 홈웨어를 지켜보고 있었다. 1000파운드대의 디자이너 의류와 희귀한 운동화에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화려한 그루밍 셀렉션에는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취향의 상징인 슈프림과 운동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취향을 처음으로 느낀 듯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크루엘은 이렇게 말했다.
 
“독특한 향이 풍기는 방에 들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챈 그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 될 수 있죠. 당신이 신은 운동화와 입고 있는 옷뿐만 아니라, 당신의 공간인 집에 향과 분위기를 담아냈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바이레도 캔들이든, 19-69든, 커먼 프로젝트든, 나이키X사카이 LDV 와플 운동화든 상관없어요. 그 모든 것이 당신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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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FINLAY RENWICK
  • Illustrator MANSHEN LO
  • TRANSLATOR 이원열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