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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가능했던 '비혼 인공수정', 지금은 안 되는 이유

왜 2007년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안 될까?

BYESQUIRE2020.11.20
방송인 사유리(후지타 사유리)가 기증받은 정자로 일본에서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린 지 사흘이 지났다. 사유리의 출산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큰 화제가 됐다. 이성애자 부부로 이루어진 가족 형태 밖에서도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비혼 여성의 출산 권리’라는 새로운 주제를 던진 셈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 비혼 여성의 인공수정을 알린 건 사유리가 처음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7년의 일이다. 방송인 허수경은 그해 여름, 독신 상태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듬해 1월 허수경은 출산했고, 딸에게 자신의 성(性)을 물려줬다. 허수경은 아이를 낳고 몇 년 뒤 이해영 한신대 교수와 결혼했다. 2017년과 작년에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등에 출연해 가족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사유리 인스타그램

허수경이 이 사실을 공개했던 무렵 방영된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SBS 드라마 ‘불량커플’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유전자를 받아 임신 계획을 세우는 30대 싱글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작품에서는 ‘미스맘’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도 했다.
 
TV리포트 등 관련 매체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발칙한 소재, 산뜻하고 깜찍 발랄한 아이디어”라고 평가했으나 ‘비혼 임신’을 현실에서 실천한 허수경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허수경에게는 “아동 학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몇몇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 역시 이런 인공수정에 성공했다. 외국이 아닌 한국의 이야기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전문직 종사자였다. 해당 기사 인터뷰에서 한 여성은 “호주제가 계속됐다면 이런 결정을 못 했겠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허수경의 선언과 더불어 그 무렵 사회적 이슈였던 호주제 폐지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가능했고 현재는 불가능한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박남철 이사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시에는 관련법들이 정립이 안 돼 있었다”라며 “실제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크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의 말대로, 당시 월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당시 병원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부부인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기 위한 여성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가짜 서류도 횡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정자 기증 관련 법규가 강화된 상태다.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현재 일부 산부인과 등에서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불임이나 난임 부부를 위한 것이다.
 
2017년 7월 개정된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정자공여시술 편에 따르면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돼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지침은 법률과는 별개지만, 학자의 의료윤리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다르다. 박정열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개선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으나, 어쨌든 개정 전까지 배우자가 없는 여성이 인공수정 등의 보조생식술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유리가 출산한 일본의 사례는 어떨까? 일본 산부인과학계 윤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결혼한 부부’에게만 허용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 정자 제공 사이트 등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사유리의 경우 일본 내에서 외국 정자은행을 통해 기증받았다고 한다. 〈아사히신문〉〈허프포스트재팬〉에서 기자로 일했던 요시노 타이치로씨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에스콰이어〉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상상도 못 하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아예 규제하는 법이 없어 지금도 큰 사회적 이슈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정자 기증이 허용된다. 미국 배우 조디 포스터는 인공수정으로 두 아이를 출산했다. 1998년, 2001년의 일이다.
 
사유리는 일본에서 출산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는 모든 게 불법이었다”라고 말했다. 화두는 현재 정치권으로도 옮겨간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사유리에 대한 축하 인사가 여럿 나왔지만,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만약 사유리가 한국인이었어도 축하의 말을 했겠느냐”고 꼬집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라는 사유리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자발적 비혼모의 출산은 대한민국에서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윤리지침으로 인해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인정했다. 한 정책위의장은 “복지부가 불필요한 지침 수정을 위한 협의 조치에 들어가달라”고 당부한 상태다.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편 사유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비혼 싱글맘’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낙태를 인정하라’는 것 있잖아요, 그걸 거꾸로 생각해서 저는 ‘아기를 낳는 것을 인정하라’ 이렇게 하고 싶어요. 일본도 한국도 저출산을 해결해야 한다지만, 아기를 가지려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않아요. 법이 바뀌고, 정자 기증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