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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당신을 치유할 수 있을까?

쇼핑을 하면 기분이 ‘붕’하고 뜬다. 오죽하면 ‘리테일 테라피’라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 리테일 테라피는 정말 정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 혹시 부작용은 없을까? <에스콰이어> 싱가포르 편집부의 패션 디렉터 아스리 자스만이 파고들어봤다.

BYESQUIRE2021.04.09
 
 

쇼핑은 우리를 치유할 수 있을까?

 
쇼핑을 할 때면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느껴져요. 하지만 곧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다시 쇼핑해야 하죠.
 
영화 〈쇼퍼홀릭〉의 등장인물 레베카 블룸우드(아일라 피셔 분)는 채권추심 대행업자를 피하려 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 생방송 스튜디오 인터뷰 중 수치를 당하며 이렇게 말한다.  2009년작인 이 영화는 쇼핑이라는 행위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한다. 예를 들어 블룸우드는 신용카드를 여러 개 가지고 있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얼음 속에 얼려둔 카드까지 있을 정도다. 우연히 금융 잡지의 칼럼니스트로 일하게 되어 자신의 파이낸스 문제로 곤경을 겪는 와중에 남들에게는 조언을 남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블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익명의 쇼퍼홀릭 멤버들에게 자신이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이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며,  장면을 보면 블룸은 “무언가를 샀을 때의 기쁨, 세상에 나와 쇼핑만 있는 기분”이라 털어놓는다. 쇼핑에서 즐거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쇼핑을 할 때면 저런 기분에 빠지고, 저런 기분이라면 어쩐지 정서 치료 효과가 있을 것만 같다. 정말일까?
 
리테일 테라피는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콘셉트다. 최초로 이 단어를 쓴 매체 중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은 1986년 기사에서 평균적 성인이 매주 쇼핑에 쓰는 시간은 113분으로, 이 수치는 '수십 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이었다'고 밝힌 연구를 언급했다. 기사는 이 통계치에서 일반적으로 ‘쇼핑’이라고 지칭한 것과 식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행위를 구분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본질적으로 리테일 테라피는 필수적이지 않고, 개인의 구매력이 커져서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 이상을 살 수 있게 되며 등장했다.
 
고 말했다. 리테일 테라피가 무엇인가에 있어 일반적인 통념이 보통 이렇다.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돈을 펑펑 쓰는 행위라는 시각이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구매하면 즉각 행복을 주는 물건, 최소한 기분을 유지하게 해주는 물건을 쇼핑하는 것.
 
그러나 리테일 테라피는 럭셔리 부티크에 쳐들어가 몇 달 전에 마음속으로 찜해두었던(그리고 계속 고민했던) 백을 몇 초 만에 사버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레너드 리는 2015년 저널의 글 '감정적 쇼퍼: 리테일 테라피의 효과 평가'에서 리테일 테라피가 우리의 기분에 주는 영향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있다고 했다. 이는 세 가지 면, 즉 동기부여적, 행동적, 감정적 면에 기반한 이론들이다.
 
동기부여적 면은 쇼핑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목표와 동기를 말한다. 쇼핑이라는 행위는 이 목표와 동기를 성취하는 행동이다. 한편 행동적 면은 쇼핑을 연속된 여러 행동으로 보며, 이 행동들을 모두 마침으로써 기분의 변화에 영향이 준다고 본다. 그리고 감정적 면은 쇼핑이 다양한 감정을 불러오는 향락적 경험이라는 설명이다.
 
리테일 테라피의 이러한 세 가지 면 안에도 다양한 변형과 특수함이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모든 개인의 모든 행동에 다 맞아 들어가는 한 가지 이론이란 드물다. 그러나 일종의 치료로 간주되는 리테일 테라피의 경우, 쇼핑의 효과를 믿고 의식적으로 이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저널과 책을 통해 리테일 테라피가 개인적 난관을 이겨내는 기제가 된다는 기록을 남겼다. 가장 단순한 동기부여(”내 자신에게 특별한 걸 주고 싶으면 쇼핑을 가”)부터 좀 더 추상적인 동기부여(”쇼핑할 때 느끼는 시각적 자극이 좋아”)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가장 유해한 것은 소비자 행동 연구자들이 보상소비라고 부르는 행동이다. 이는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물질이 보상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역시 범위가 넓으며 개인에 따라 다 다르다.
 
자신의 몸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신체 보정 속옷을 구입할 수도 있다. 혹은 미드 〈프렌즈〉에서 따분한 고생물학 교수로 나오는 로스 겔러처럼 멋진 사람이 되려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가죽 바지를 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즉 보상소비는 사회적 규준에 맞추려는 욕구,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오래된 경향의 산물이다. 남성의 경우, 리테일 테라피는 남성성 부족을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유해한 남성성’과 유사점이 있다. 포르쉐가 1980년대에 차를 광고하던 방식이 아주 좋은 예다.
 
카레라 4 모델 옆 모습 사진 위에 볼드 폰트로 '페니스가 작아? 당신을 위한 차가 있어'라는 카피를 얹었다. 그 당시에는 농담조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언어가 사람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된 지금의 우리가 봤을 때는 칭찬받아서는 안 될 광고다. 보상소비는 리테일 테라피를 한바탕 벌이는 이유 중에서는 극단적인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리테일 테라피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슈트를 입기만 해도 자신감이 치솟는 것처럼, 일부 남성과 럭셔리 스포츠카 사이에는 좀더 괴상하고 비슷한 관계가 있다.
 
리테일 테라피라는 개념의 핵심은 쇼핑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믿음이다. A 셀린 아탈리와 마가렛 G 멜로이 교수가 2011년에 발표한 연구 '리테일 테라피: 기분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은 쇼핑에 실제로 그런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리테일 테라피의 긍정적 영향이 장기적으로는 더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400명 정도의 성인을 대상으로 세 가지 현장 실험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계획에 없는 쇼핑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한 실험에서 주목할 결론이 있다.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한 구매가 후에 죄책감, 불안, 후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에게는 2주에 걸쳐 두 개의 소비 일기를 쓰도록 했다. 하나에는 스스로를 위한 구매를 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사건과 경험을 적게 했고, 또 하나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구매에 대한 참가자의 기분을 쓰게 했다. 결과에 따르면 리테일 테라피에는 부정적인 면이 거의 없었고, 압도적인 수의 참가자들이 치유를 위한 쇼핑이 끝나고 난 뒤에도 자신의 구매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또한 후회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이것이 리테일 테라피의 세일즈 포인트 아닐까? 스스로에 대해서, 혹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더 나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기본적인 필수품이 아닌 호사스러운 것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물질적인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며 물질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행동 양식은 이런 인식에 기인하니까.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리테일 테라피는 꼭 무언가를 구매해야 하는 게 아니다. 여러 해 동안 연구자들은 실제로 돈을 쓰지 않는다 해도, 쇼핑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상품을 취득하는 기능적 쇼핑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계속해 발견했다. 쇼핑은 그 자체로 오락적인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다. 1977년의 한 연구에서는 이렇다 할 목적 없이 하는 오락적 쇼핑이 기능적 쇼핑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쇼핑에 동참해 유대감을 키우게 하는 경향이 높다고 밝혔다. ‘윈도 쇼핑’ 그 자체만으로도 향락적 가치가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결국 무언가를 사든 말든(혹은 필요 이상으로 사든 말든) 효과는 같다고 한다.
 
쭉 늘어선 가게들을 가볍게 훑어보거나 혹은 여러 인터넷 쇼핑 사이트들에서 신제품을 살펴보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을 때를 떠올려보자. 알람을 맞추지 않고 늦게 깬 아침처럼 상쾌해지지 않나. 명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단순한 ‘구매’는 간단하고 비교적 짧게 끝나는 반면, 윈도 쇼핑이란 원래 느긋함과 무목적성에 그 의미가 있다. 마음을 자유롭게 떠돌게 놔두고, 혹시 구입할 수도 있는 여러 물건들을 살피고 바라보는 기회는 마치 몽상과도 비슷하다. 아주 잠깐뿐일지라도 세속적인 걱정에서 잠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긍정의 시간인 셈이다.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해도 시각적으로는 사로잡힌다. 시각적 판촉과 흥미를 끌 가능성이 낮은 상품들이 쇼퍼들의 관심을 끌고, 평소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물건들을 발견하게 한다. 쇼핑에 홀린 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다. 홀린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건 정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부정적인 감정을 잊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쌓인 에너지는 이성적인 상태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처하게 될 수 있는 힘이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리테일 테라피에 대한 소비자 행동 연구는 무수히 많았다. 보다 명확한 결론을 내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리테일 테라피의 효과를 부정할 순 없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는 제1의 방책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지만, 리테일 테라피가 갖고 있는 장점을 깎아내려서도 안 된다.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첫 록다운이 끝나자마자 럭셔리 부티크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최근의 좋은 예다. 위민스 웨어 데일리는 광저우의 에르메스 플래그십 부티크가 2020년 4월 재개점 첫날에 최소 270만 달러를 팔았다고 보도했다. 매출과 구매자가 몰려드는 현상으로 인해 ‘보복 쇼핑’이라는 말이 생겼다. 라이프스타일이 갑자기 바뀌고 사회에서 격리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팬데믹에 의해 변형된 리테일 테라피라고 할 수 있다.
 
COVID-19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뉴노멀에 서구 국가들보다 아시아 국가들이 더 빨리 적응하고 있다. 자국 내에서 팬데믹을 끝장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록다운 시행에도 더 적극적이다. 루이 비통과 디오르 등의 브랜드는 2020년 3사분기에 수요가 늘었다. 애널리스트들의 추정과는 달리, 전 세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LVMH는 핸드백과 기성복 매출이 전년 대비 동기 수익이 12% 늘었다고 밝혔다.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테일 테라피를 실행한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경향이다.
 
앞서 언급한 〈쇼퍼홀릭〉의 여주인공 블룸우드는 자신의 과소비가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대해 더 나은 감정을 가지려는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리테일 테라피가 영구적 처방은 아닐지언정 완충제 역할은 해낼 수 있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약과 마찬가지로 늘 지시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리테일 테라피의 경우 복약 지시는 매우 단순하다.
 
당신의 통장 잔고를 수시로 확인할 것
 
다만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영구적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쇼핑은 카운슬러가 아니다. 쇼핑을 한 후에도 오히려 기분이 처지고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계속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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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TRANSLATOR 이원열
  • PHOTO 게티이미지스 코리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