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류, 소녀시대 그리고 가치의 마지막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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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미군 군복을 입고 도심을 걷던 20대 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로 시작한다. 이들은 즉심에 넘겨졌고 구류 처분을 받아 유치장에서 3일을 보내야 했다. 처벌 사유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저속한 옷차림’이었다. 언론은 군복을 입은 이들의 이름을 포함한 신상을 지면에 공개했다. 3일 후 그들은 풀려났지만, 언론사가 운용하는 기록 아카이브에는 지금도 그들의 이름, 나이, 거주지가 ‘박제’돼 있다. 1975년 9월 24일의 일이다. 이들의 운명은 현용 군복을 입고 채널을 누비는 〈강철부대〉 출연자들과 강렬히 대비된다.
군복, 군대, 1위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브레이브걸스’. 10년간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은 발표한 지 4년이 지난 곡 ‘롤린’으로 음악 방송과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국방TV 〈위문열차〉가 스케줄의 전부였던 이들은 군복 의상을 입고 전후방 각지를 돌며 ‘위문열차’ 무대에 매달 올랐다.
‘브레이브걸스: 롤린’의 역주행 스토리는 마치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의 ‘프리퀄(prequel)' 같다. 소녀시대는 2009년 6월 ‘소원을 말해봐’를 발표했고 곧 국내 음원 차트 전체 1위를 석권했다. 이들 역시 군복 의상을 입고 등장했는데, 대중과 언론의 최초 반응은 우려와 비판이었다. 대중은 “소녀시대에게 노출이 심한, 그것도 군복을 입히다니 무슨 짓”이냐며 우려했고, 언론은 군역 체험 없이 ‘의사(pseudo)-군복’을 착용해 복무의 신성을 훼손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시대가 입었던 군복 중 하나가 방송을 통해 670만원에 팔렸다. 판매금은 어린이도서관 건립에 기부될 것이라고 했다. 2011년 9월에 있었던 일이다. 거대 자본과 지상파 방송의 합심으로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에피소드의 사회성은 재배치되었다. 차트 1위라든가 순간 시청률 17.2% 그리고 670만원과 같이 언론이 내세운 기표(signifiant)가 기존의 우려와 비판을 덮었다.
1975년 가을, 서울 이태원 거리를 걷다 체포된 청년 2명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미군 야전 상의는 ‘근대의 군복’이었다. 근대의 군복은 관료제적 통제, 군-민 분리의 수단이었다. 중앙정부는 군복의 기능성을 알아본 민간인들이 이를 자의로 입지 못하도록 명예, 군기, 애국 같은 코드를 삽입했다. 민간인이 군복을 입는 것은 군인의 명예와 국가 정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멋’으로 군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두 청년은 그렇게 경범죄처벌법 제1조 49항에 의해 서늘한 유치장에 사흘간 갇혔다. 아마 그 군복은 압수당했을 것이다.
2011년 가을, 소녀시대 윤아는 ‘소원을 말해봐’ 활동 당시 입었던 군복을 들고 나왔다. 군복은 670만원을 외친 오랜 팬의 손에 쥐어졌다. 경매금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재단에 전달됐고,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사용됐다. 소녀시대의 군복을 놓고 모독이나 처벌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탈권위적 자유와 군-민 통합을 논할 때 긍정의 시그널로 등장했다. 방송 자본과 팬심이 가치의 표면을 새롭게 진열한 것이다. 소녀시대는 시청률, 경매가 같은 자본의 이미지로 군복의 신화를 살상했다. 그리고 전선의 군복과 무대 위 군복의 경계는 흐려졌다. 그러니까 ‘소원을 말해봐’로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한 소녀시대가 입었던 무대의상은 ‘탈근대의 군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군복이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중세의 군복 착용은 신의 대행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왕족과 귀족은 군복에 미적 가치를 삽입했다. 군복 착용은 신에 대한 찬미였기에 가능한 한 비싸고 화려한 소재와 디자인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려하고 비싼 중세 군복은 적에 대한 과시 기능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 군복의 아름다움은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apistos)’들에게 신벌의 두려움을 대신 전달했다. 가장 적절한 사례가 ‘교황 스위스 근위대(Pontifical Swiss Guard)'의 군복인 ‘란츠크네히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군복’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란츠크네히트는 화려하며, 그 화려함만큼이나 교황 스위스 근위대는 막강했다.
근대로 시점을 돌려보자. 근대의 군복은 중세 군복에 대한, 말하자면 역주행이었다. 근대 군복은 싸고 눈에 띄지 않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대량생산, 전장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은 막강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산업국가의 경제력과 동의어였다. 교전이 ‘술(art)’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중세에는 병사를 소모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전쟁을 과학(science)의 영역으로 확장한 국민국가는 병사를 대체재가 없는 자산으로 여겼다. 근대의 군복은 대량생산, 전쟁생존, 산업사회,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의 현상들이 만난 결과물인 셈이다. 근대 군복의 정점은 냉전 시기 미국 육군의 ‘M1951' 야전군복 시리즈일 것이다. M1951은 단순하며, 그 단순함 이상으로 미국 군대는 막강했다.
‘탈근대의 군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에둘러 왔다. 탈근대의 군복은 중세와 근대 군복의 관계처럼 연속, 반동과 같은 일관된 흐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의미나 가치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무언가 꼭 내가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브레히트적 의미의 ‘탈근대적 질서’이다. “아무것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곳, 이것은 무질서. 아무것도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없는 그곳, 이것은 질서!”
장 보드리야르를 차용하자면, 소녀시대로 예를 들었던 탈근대의 군복 이야기는 ‘가치의 마지막 탱고’다. 여기에는 서사가 있다. 먼저 소녀시대 같은 이들이 등장해 군복의 시뮬라르크(simulacre), ‘의사-군복’의 상징을 공공연하게 무너뜨려야 한다. 이들이 근대 군대의 가치 상징들을 표면에 달고 탈근대의 탕게리아(tangueria; 탱고 무대)에 오르고 나면 훈장이나 계급장, 휘장 같은 시뮬라르크들은 광고나 달러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번식하고 유통된다. 오늘날엔 브이로그나 틱톡 같은 시스템이 광고와 달러를 대체한다. 이어 탕게리아에 마지막 탱고 곡이 흐르면 모든 이들이 각자 자신의 시뮬라르크를 번쩍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이 어떤 휘장을 착용했는지 그들이 어떤 전투에 참가했는지는 상관없다. 레몽도 뫼르소도 아랍인도 모두 뒤섞여 일단 춤을 춘다. 모든 의미와 가치는 탱고의 마지막 격정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진다. 경매장에서 창조된 670만원이라는 말초적 언어와 미혹적 선동이 전쟁, 민족, 역사의 이미지를 덮었던 것처럼. 1위, 최초, 최대와 같은 신의 허무한 언어가 지면을 채웠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조회수,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같은 알고리즘의 수하들이 의미와 가치를 압연한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것을 ‘죽음의 왈츠’로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강철부대〉의 시청률에 맞춰 구르기 시작한 내 생각의 춤은 그러나, 1988년에 출간된 소설의 한 구절에서 이만 멈춰야겠다.
Who's the writer?
남보람은 전쟁사 연구자다. 워싱턴 미육군군사연구소와 뉴욕 유엔아카이브에서 일했고 ‘전쟁과 패션’ 시리즈 〈샤넬을 입은 장군들〉, 〈메디치 컬러의 용병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