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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자가 환경 문제에 회의적인 마음을 품게 된 이유

자연과학자가 환경문제에 회의적으로 변한 이유.

BYESQUIRE2021.06.14
 
 

자연과학자가 환경문제에 회의적으로 변한 이유

 
최근 본 기사 중 가장 충격적인 건 ‘분리수거 쓰레기가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보도였다. 쓰레기 배출 방법은 간단하다(고 기사에는 소개됐다). 용기에 담긴 내용물을 모두 비우고 씻고 말리고, 상자나 음료수 병 등은 모든 이물질을 제거하고 부피를 줄이고, 우유팩이나 신문지 등은 규격에 맞게 자르고 접고 요일에 맞게 배출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노력 끝에 배출된 쓰레기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오염물이 포함되면 일반 쓰레기로 폐기된다. 좀 더 알아보니 재활용에 성공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 혹은 단독 주택가에서는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분리수거 된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비율이 더 낮다고 한다. 기껏 씻고 말려 버려도 재활용되지 못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가? 비효율의 극치다.
 
OECD 국가 중 재활용 잘하는 나라 2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런 문제로 인해 수거된 재활용 쓰레기의 실질 활용률은 40%도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환경을 위해서, 그리고 뒤이어 살아가야 할 세대를 위해서, 내 아이가 살아야 할 세상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우유갑을 펴고 씻고 말린다. 유튜브에서 ‘분리배출 꿀팁’도 검색하고 블로그도 정독한다. 애당초 분리배출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면 좋겠지만, 각종 식재료와 생필품 포장재,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늘어난 음식물 배달 포장에 사용된 각종 플라스틱 제품에 이르기까지 쓰레기 감축은 요원하다. 대나무 칫솔이나 샴푸 바 등 환경 파괴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제로 웨이스트 제품들도 써보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효용감이 일반 칫솔이나 샴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SNS에 스타벅스 종이 빨대를 검색해본다. 커피 음료에서 젖은 종이 맛이 느껴져 불편하다거나, 초코칩이 든 음료를 마실 때는 무쓸모라는 등 불편을 토로하는 글이 가득하다. 영문으로 검색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피해자일 뿐인 바다거북들이 인터넷에선 ‘종이 빨대를 사용하게 만든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그렇다. 나의 회의는 이런 작은 피로감에서 시작됐다. 그러던 중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를 접했으니 타격이 없을 리가 없다. 다큐는 바다를 사랑하던 아이가 해안가로 밀려 들어온 쓰레기를 줍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는 내용을 다룬다. 아이는 빨대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0.01%에 불과하고 어업에 이용된 후 폐기된 어망과 어구에 의한 오염이 무려 46%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간 빨대를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환경오염 프레임으로 죄책감을 씌워놓고, 플라스틱 생산자들과 오염의 주범들은 교묘하게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는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악한 욕망이 모든 형태로 드러난다. 지속 가능한 어업은 존재할 수 없고,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050년경엔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아무리 내가 종이 빨대로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제로 웨이스트인 샴푸 바로 머리를 감아도, 상업적 이익의 극단을 쫓는 불법 어업이 계속된다면 해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피할 길은 없다. 불법 조업과 남획을 눈감아주는 당국, 가짜 인증제로 제 잇속만 챙기는 세계적 권위의 가짜 해양보호단체가 있는데, 내 노력 따위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망망대해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선원 학대, 대형 어류들을 그저 죽이기 위해 잡는 학살의 현장, 양식장의 비현실적인 환경을 보다 보니 환경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다.
 
바다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모든 것을 준다. 휴식과 레저를 위한 공간을, 양질의 단백질과 미네랄을 공급하는 해산물을 아무 말 없이 내어준다. 그뿐인가? 바다라는 거대한 물 덩어리는 전 세계를 순환하며 열과 물질을 저장하고 공급해 지구 온도와 기후를 조절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방출한 각종 온실기체를 포집하고 저장해서 더 깊은 바다로 보내는 ‘해양 탄소 펌프’(Oceanic carbon pump) 기능이 없었다면 이미 지구상에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바다는 육상에서 내보낸 각종 유무기 화학물질들을 희석하고 분해해왔지만, 이제 그 용량에 한계가 보인다.
 
해양의 환경 문제와 떼놓을 수 없는 게 미세플라스틱 오염이다. 구글에 플라스틱 오염 이미지를 검색하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자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이 등장한다. 해안가에 가득 밀려든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와 사체로 떠오른 해양 동물의 입과 뱃속에서 발견된 엄청난 플라스틱, 어업에 쓰이고 버려진 어구들, 쓰레기가 떠밀려와 만들어진 거대한 쓰레기섬까지. 이런 미세플라스틱은 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해 생체에 농축되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살 곳을 잃어버리고 빙하 조각 위에서 말라가는 북극곰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지금의 바다를 생각할 때면 그 영상을 볼 때의 죄책감, 무력감, 피로가 몰려든다.
 
나는 자연과학을 공부했지만, 환경에 관해서는 회의한다. 우리 중 일부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으로 대변되는 현상을 ‘위기’라고 표현한다. 이 ‘위기’라는 표현 안에는 ‘인간의 생존과 편의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위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 ‘위기’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인간은 순전히 자기 종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서만 사고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찍이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가끔 나는 이 가이아 이론을 생각하며 ‘이미 지구는 인간이라는 종을 시스템 유지에 매우 방해되는 요인으로 지목했고, 그래서 스스로 파멸의 길에 이르게 한 뒤 멸종시키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킨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한다. 체르노빌 폭발 사건 이후 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텅 빈 그곳에는 빠른 속도로 다양한 생태계가 채워졌지 않은가?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따위, 사라지는 편이 낫다. 나의 회의는 그런 의미에서의 회의다.
 
어쩌면 지금 세계인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팬데믹 상황은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모든 비극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환경 변화는 단지 기온 상승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는 조금의 물만 더해져도 장력으로 애써 버티던 물이 흘러내리고 만다. 자력으로 버텨오던 지구는 이제 티핑포인트에 도달했다. 개인의 힘을 모아 붕괴되는 효과를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고 자연의 치유를 기다리는 일, 그건 우리가 사라져도 지구에 남게 될 모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 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말 바꾸려면 이제는 샴푸나 칫솔을 바꾸는 일 정도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전 세계가 일시에 통합적으로 관련 법규를 그 바닥까지 뜯어고쳐야 한다. 이젠 정말 그 길밖에는 없다.
 

 
Who's the writer?
김재연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해양학자이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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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김재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