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 시대 백신 개발이 이전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

“백신은 실험실의 과학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백신을 필요로 하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공중보건을 위한 공동의 방향성 있는 정책과 정치를 통해서 ‘함께 가꾸는 정원’을 완성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망설임’을 멈추고 함께 팔을 걷어야 할 때이다.”

BYESQUIRE2021.06.26
 
 

우리의 백신을 완성해줄 마지막 당신에게 

 
무분별한 개발로 살 곳을 잃은 과일박쥐는 돼지농장으로 날아들어갔고, 먹던 과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사육되던 돼지들은 떨어진 과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과일을 주워 먹은 돼지 한 마리는 고급 호텔 셰프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 셰프의 요리를 맛본 고객은 감격해 셰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고객과 셰프는 악수를 나누며 격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작은 과일박쥐를 자연 숙주(natural reservoir)로 삼은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돼지로, 돼지에서 인간으로, 종간 전파(spill over)를 거쳐 다른 인간을 숙주로 삼기 위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코로나19 같은 이 이야기는 무려 10년 전인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의 배경이다.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지난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 영화 속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들의 노력은 첫 번째 환자인 베스 엠 호프(기네스 팰트로 분)의 검체를 채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마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기네스 팰트로의 뇌를 부검하는 모습을 담았겠지만, 사실 호흡기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의 경우 호흡기 검체와 호흡기관부터 확인하는 게 맞다. 환자의 조직을 검출한 다음에는 이를 얇게 저며 전자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이러스의 크기와 모양만으로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바이러스의 종류를 유추할 수 있는데, 모든 바이러스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삐쭉삐쭉한 스파이크 단백질을 갖고 있는 구형은 아니다. 꼬인 줄 모양의 에볼라바이러스, 정이십면체의 아데노바이러스도 존재하며 이들은 크기도 각각 20에서 1000나노미터까지 다양하다.
 
바이러스의 종류를 유추하고 나면 유전자 분석을 시행해야 한다. 〈컨테이젼〉은 2011년의 영화였던 만큼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 2020년의 기술인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으로 바이러스 전체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 속 백신 개발 기술은 분리된 바이러스를 통해 사백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 속 백신 연구자인 엘리 헥스톨(제니퍼 일리 분) 박사는 분리된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불활성화해 원숭이들에게 실험을 했다. 백신 접종 후 일정 시간이 지나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는 공격 실험에서 원숭이들은 다 죽어나갔다. 사백신이 일으키는 면역반응이 실제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방어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헥스톨 박사는 사백신을 생백신으로 바꿨다. 생백신은 실제 바이러스를 약독화해 체내에 약하게 감염시키고,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다. 그는 원숭이 실험에서 성공한 뒤 자신의 허벅지에 백신을 찌르고, 병에 걸린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백신 연구자라면 이 장면을 보고 누구나 기겁했을 것이다. 영웅적인 서사를 위해서였겠지만 연구자가 직접 자신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건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이다.
 
2020년의 백신 연구 및 개발은 지금껏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던 방식으로 이뤄졌다. mRNA 코로나19 백신을 모더나사와 함께 개발한 미국 국립보건원의 키즈메키아 코벳(Kizzmekia Corbett) 박사는 “집에서 모니터를 보며 백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과학자들이 공개한 사스 코로나바이러스-2의 유전자 서열을 컴퓨터로 분석해 유전자 중 어느 부분이 바이러스가 감염될 때 숙주세포와 결합하는지 분석하고, 그 부분을 타깃 삼아 컴퓨터로 백신을 디자인했다는 설명이었다. 화이자사의 필립 도미처(Phillip R. Dormitzer) 박사는 고작 2~3일이면 백신 후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십 일에서 수주가 걸리던 일들이 컴퓨터로 뚝딱 이루어지는 세상인 것이다. 이런 기술 발전과 규제 완화, 그리고 전 세계의 공조를 통해 우리는 11개월 만에 백신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세계적인 팬데믹이 벌어진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컨테이젼〉에서 묘사한 것처럼 끔찍하지는 않았다. 무법천지가 되지도 않았고, 백신을 얻기 위해 국제기구 직원을 인질로 삼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백신 접종자를 선정하기 위해 마치 로또처럼 숫자가 적힌 공을 뽑거나, 백신 접종자임을 인증하는 팔찌를 차야만 쇼핑몰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진 적이 없다. 영화 속 묘사가 현실보다 자극적이었기에 우리는 백신에 대해 덜 갈급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영화 속에서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심지어 ‘개나리액’을 치료제라 속여 팔던 프리랜스 기자 앨런 크럼위드(주 드로 분)처럼 백신 접종을 가로막는 거짓의 장벽이 우리 사회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 백신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백신 접종 초반에 비해 최근 들어 신뢰도가 증가하고 있고 접종을 받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50%를 넘었다. 미국의 각 주정부에서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운동경기 무료입장이나 대중교통 패스 등 각종 인센티브 전략을 내놓고 있다. 이런 노력이 조금씩 먹혀들어가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백신 접종률은 50%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원고 작성일인 6월 11일 기준).
 
영국의 백신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백신에 대해 강한 신뢰를 갖고 있는 그룹과 주저하는 그룹, 그리고 반대하는 그룹 모두 ‘과학적인 정보’를 신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과학적 사실은 자명한데 왜 백신에 대한 신뢰도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신뢰할 만한 전문가와 과학자 집단을 통해 검증된 ‘과학적 사실’이 아닌, 자신의 이득을 위해 ‘과학 같지만 과학이 아닌 썰’을 풀어내는 유사 전문가 및 그들을 지지하는 소위 ‘셀럽’의 지위에 있는 선동가들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젼〉에서 크럼위드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판매한 가짜 치료제를 찾던 이들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죽어가는 이들에게 ‘개나리액’을 팔아 번 돈으로 유유히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는 크럼위드의 뒷모습이었다. 현실의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유사 전문가 및 선동가들과도 힘겹게 싸우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일상으로부터의 회복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 같은 존재인 셈이다.
 
내가 속한 연구소는 이제 공식적으로 닫았던 문을 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며 자녀를 돌보고 있는 이들에겐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줄 것이며, 한 건물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거리를 두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1년 반 동안의 독립된 생활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 느낄 심리적 변화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등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접종률은 아직 50%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작은 걸음을 내딛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집단면역’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구 대비 약 70%의 백신 접종자가 필요하다. 백신에 대한 망설임을 멈추고, 유사 과학이 아닌 ‘진짜 과학’을 신뢰하면 일상을 향한 좀 더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책 〈사이언스 고즈 온〉에 쓴 에세이의 일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백신은 실험실의 과학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백신을 필요로 하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공중보건을 위한 공동의 방향성 있는 정책과 정치를 통해서 ‘함께 가꾸는 정원’을 완성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망설임’을 멈추고 함께 팔을 걷어야 할 때이다."





Who's the writer?
문성실은 미국에서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 박사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공계 여성이자 외국인,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