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부양육자가 주양육자가 되었을 때 겪게 되는 일들

‘손 안 가는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 몇 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낸 탓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제외해도 별일 없이 큰 것 같다.

BYESQUIRE2021.07.12
 
 

돌보는 생활

 
‘손 안 가는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 몇 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낸 탓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제외해도 별일 없이 큰 것 같다. 외벌이 공무원 4인 가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안정적이었고, 살갑지 않았지만 부족할 것도 없었다. “너도 서태지나 듀스 듣냐?” 간만에 말을 걸어온 부친께 너바나의 음악과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그것도 밥상머리에서 운운하며 진정한 록 스피릿이 부재한 한국 음악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일 정도를 제외하면 말썽을 피워도 집에선 모르게 피웠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건 많았다. 소속보다는 취향으로 사람을 사귀었고, 그렇게 만난 친구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지난달과 다른 글을 쓰기만 하면 됐다. 야근은 많았지만 괜찮은 일이었다. 일로 술값을 벌어 아쉬운 게 없으니 별로 바랄 것도 없었다. 좋아서 하는 일 외에는 특별히 남을 챙겨본 일도 없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내 기분과 컨디션을 유지하고 일정에 맞추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왜, 아니 어떻게 내키지도 않은 일을 하며 남까지 챙겨?
 
일을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으레 그렇듯 누군가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하기 싫은 일 하지 않고 사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땐 꽤 근사한 답이었다. 나도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고 싶어서 결혼을 했고, 둘이 만났으니 둘을 낳자고 이야기했다. 하기 싫은 일을 꽤 해야 했지만 내가 선택했으니 그리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앞으로의 계획을 물을 때 나의 답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에서 ‘웃는 아빠, 아이와 눈 마주치면 어쨌든 그냥 웃는 아빠’로 바뀌었다. 그게 얼마나 태평하고 속 편한 소리였는지를 깨닫게 된 건 근래의 일이다.
 
올 초부터 집에서 일을 한다. 졸지에 아내는 ‘바깥양반’이 되었고, 집안일의 많은 부분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밥 차리는 데는 자신이 있어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숙제를 챙기고, 놀다 치우고 씻기고 재우는 아이들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 남의 시간에 맞추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거였나. 사실 10년 가까이 함께해온 일이었다. 달라진 건 내가 더 이상 ‘부’ 양육자가 아니라 ‘주’ 양육자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한가롭게 허허거리다 ‘이거 어쩌지?’ 중얼거리며 잠시 손을 놓고 대신 문제를 해결해줄 누군가를 기다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유일한 정규직이라는 부담과 나날이 시커메지는 집 안 사내들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과연 ‘바깥양반’다운 단호한 결단으로 말 못하는 식구를 들였다. ‘내 딸이야’라는 한 마디와 함께. 2개월 된 강아지, 털은 누렇고 꼬리와 입가는 까맣고 발은 하얬다. 믹스라 어떻게 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사랑스러울 거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아기 강아지들이 처음 집에 오면 사나흘은 적응하느라 의기소침한다는데, 잘 걷지도 못하던 아이는 30분 정도 낑낑대더니 이리저리 쿵쿵 미끄러지며 식구들 뒤꽁무니를 좇고 새로운 냄새를 찾아 집 안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돌 무렵, 조금씩 걷기 시작하고 눈만 마주치면 생글거리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현현한 것 같은 그 짧은 순간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아기 강아지가 그렇게 소변을 많이 본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걸까. 잠깐만 시야에서 사라지면 어김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보고 있었다. 하루에 서른 번은 싸는 것 같았다. 휴지로 닦으면 강아지는 장난감인 줄 아는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달려와(가끔은 저러다 날아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다) 손가락을 물어댔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매번 깔깔거리면서 웃었고, 강아지는 그 웃음소리에 반응해 다시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 쪽으로 달려갔다. 아, 나도 진심으로 그들 사이에서 함께 즐겁고 싶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야 어쩔 수 없으니 아이들에게 요구할 일이 늘어났다. 그러다 조금씩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아빠? 나는 마치 담배를 줄이거나 주량에 맞춰 술을 자제하듯이 언젠가부터 하루에 아이들에게 소리치는 횟수를 속으로 헤아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 가는 길에 강아지와 여유롭게 산책하고, 돌아와서 충분히 놀아준 후 잠잠해지면 일을 조금 하다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집을 치우고 다시 일을 하다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학교에서 받아온 것들을 체크하고 학원을 보내고 숙제를 시키고 저녁을 먹이고 치우고 내 일을 하는 일상. 이 모든 과정이 평온하고 만족스럽게 이뤄진 날이 언제였더라. 내 일의 분량과 아이들과 강아지의 컨디션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아이들은 귀를 닫고, 강아지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뒤꿈치를 물어뜯는다. 일과 잔소리를 병행하다 문득 뒤꿈치가 아파오면 뭔가 근원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고, 강아지는 방석 위로 피신한다. 당장의 문제가 잠시 해결된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쳐서 아이들의 시간을 맞추고 집을 정리한 뒤엔 자책의 시간이 찾아온다. 균형을 맞추는 건 어른의 몫이지만 반복되는 일일수록 그러기 힘들다는 걸 이젠 안다. 불공평한 일이다. 내 화는 어떻게든 먹히지만 그들의 화는 가볍게 묵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강아지의 입질로 뒤꿈치와 손가락 여기저기에 딱지가 진 지금보다 온몸에 상처가 더 많던 시절이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몸으로 놀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전속력으로 달려와 박치기하고, 아침에 침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 배를 밟으며 깨워도 웃을 수 있던 건 만 네 살 이전의 일이다. 그때가 지나면 멍이 들고 상처가 생긴다. 온몸에 생긴 멍과 상처를 보여주며 너 때문에 아빠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길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순해졌고 상처도 사라져갔다. 크는 아이들에 맞춰 다시 그 일을 반복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화를 내는 나를 돌아보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눈앞의 문제를 회피하는 타조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자기 전에 품에 안기고, 강아지는 언제 어디서든 꼬리를 흔든다.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그 어린 생명들은 놀라울 정도로 너그럽게 나를 용서한다. 그럴 때면 시들시들하다 물만 줘도 금세 생기를 되찾는 작은 화분들 생각이 난다. 물론 시들시들할 때까지 물을 안 주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그 초록은 영영 사라져버린다.
 
동물이든 아이든 나의 실수를 가없이 너그럽게 용서해왔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그걸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성하며 문득 겸허해지려는 바로 그때, 수상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드니 부엌에서 강아지가 나프탈렌 봉지를 뜯었다. 수많은 투명한 알갱이가 마룻바닥을 구르고, 깔깔대며 웃던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 안으로 줄행랑을 친다. 소리를 치는 대신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 역시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내가 아닌 타인에 맞춰 반복적인 일을 하며 자신에 대한 회의를 감내했을 양육자들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한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니 다행이야. 혼잣말하면서.
 

 
Who's the writer?
정규영은 콘텐츠 기획자로, 오랫동안 잡지를 만들었다. 돈을 벌고, 아이들과 강아지를 돌본다. 남는 시간엔 어제와 다른 안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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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정규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