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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커플의 신상이 인터넷에 '박제'되는 게 찜찜한 나, 비윤리적인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BYESQUIRE2021.08.01
 

Ethics on the Edge

 
Q. 웹 커뮤니티를 자주 보는 평범한 30대 직장인 여성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채널을 통해 불륜을 저지른 남녀의 배우자가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다는 게시물을 자주 접했어요. 그러나 지난달에 본 게시물은 그 강도가 조금 셌습니다. 아마 그 게시물이 아니었다면 평생 알지도 못했을 남녀의 불륜 기록, 얼굴, 직업, 심지어 전화번호를 포함한 신상정보가 전부 담겨 있었죠. 그래서인지 파급력도 컸습니다. 그날은 어디든 모두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단톡방, 자주 가는 커뮤니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모두가요. 묘하게 찜찜했습니다. 물론 불륜은 큰 잘못이지만, 이렇게 전 국민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신상이 공개되는 벌을 받아야 할 정도의 죄일까요? 일부 친구들은 간통죄가 사라진 마당에 망신이라도 당해봐야 한다며 오히려 제가 불륜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난했어요. 신상이 전면 공개되는 불륜 커플을 보며 찜찜함을 느끼는 저는 비윤리적인 사람일까요?
 
A.신상이 전면 공개된 불륜 커플을 보며 찜찜함을 느낀다면, 윤리적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간통죄가 사라진 만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줘야 한다는 태도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간통죄를 폐지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불륜을 국가가 개입해 처벌할 일이 아닌 개인의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간통죄 폐지가 결정된 사회의 불륜이란 개인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온라인에서 ‘심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태도가 옳고 윤리적인지 결정하기 전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불륜 사건은 옛날부터 있던 건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과거에는 그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의 고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륜을 지켜보는 사람도 사건의 진행에 대해 ‘꼭 이래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물음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통죄가 폐지된 것에 대한 불만이 이런 온라인에서의 ‘처벌’을 부추겼기 때문일까요? 간통죄 폐지는 어쨌든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불만이 그 이후에 커졌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망신을 당해봐야 한다’라는 말에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죠.
 
불륜 사건을 보고 사연자분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윤리적 고민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법을 통한 공적인 처벌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건 자체의 진행 과정에 우리가 깊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더 크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볼 수 있듯, 과거의 불륜은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특히 삼각관계가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행위자의 모습이 가해자로 바뀌는 순간, 갑자기 피해자가 된 사람이 가해자와 공범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과정이 교차되죠. 어떤 쪽의 행위와 감정에 동조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윤리적 고민을 할 필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이 확대되며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정보도 눈을 한 번 깜빡하고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일 사이에 세상으로 재빠르게 퍼집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쉽게 사건의 관찰자가 되기 때문에, 구경하는 일에 큰 부담이 없어 보이죠. 굳이 물리적으로 현장 가까이에 갈 필요가 없기에, 보는 일 자체가 아주 가볍게 느껴지니까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관찰 또는 구경의 파급 효과가 엄청납니다. 그 상황에서 행위자들에 대한 정보는 한번 온라인에 뜬 이상 계속 재생산되고 또 지워지지 않습니다. 상세한 정보의 재생산에 모든 구경꾼과 관찰자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죠. 즉 과거에는 사건의 행위자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구경꾼 또는 관찰자가 사건을 크게 만들고 재생산하는 데 적극 기여하는 셈입니다.
 
간통죄가 있던 당시엔 법에 따라 심판이 일어났기에 구경꾼의 말은 부차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불륜을 중계하고 또 처벌까지 도맡는 상황에서는, 구경꾼이 새롭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이죠. 불륜에 대해 경찰과 감옥이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온라인이 그 역할을 새롭게 떠맡았으니까요. 사이버 경찰이나 사이버 교도소는 그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직접 참여하며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연적으로 윤리적인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사건에 대해 온라인이 개입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법이 충분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때가 있는 법이죠. 하지만 개인들의 자유에 판단을 맡기고 법이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망신을 주고 처벌을 하는 일은 어떤 점에서는 ‘퇴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을 법으로 처벌해 감옥에 보내지 않는 대신 망신을 주는 게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법이 도덕의 역할을 하지 않고 물러설 때, 인터넷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고 나서는 상황이죠. 이 사이에서 개인에게는 윤리적 물음이 밀려들게 될 것입니다.
 

 
Who's the writer?
김진석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비평〉 편집주간, 〈인물과 사상〉과 〈황해문화〉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초월에서 포월로〉, 〈기우뚱한 균형〉,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더러운 철학〉,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 〈소외되기 소내되기 소내하기〉,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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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진석
  • Illustrator 양승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