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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뇌피셜] 코로나 이후 극장은 어떻게 될까?

놀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은 어떻게 폭발할까? 음악, 영화, 관광, 미식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나름의 뇌피셜을 받아봤다.

BYESQUIRE2021.08.03
 

대폭발 뇌피셜

기억하라. 영화는 외출이다
사람들은 극장에 가지 않았다. 지난 2019년 전체 극장 관객은 약 2억2668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2020년의 전체 관객수는 5952명으로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관객이 오지 않을 게 뻔하니 대작 영화들은 개봉을 미루었고, 대작 영화가 없으니 관객은 더욱 줄었다. 모두가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이후 극장은 절대 이전의 극장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이 예전만큼 극장을 찾지는 않을 거라는 게 그 전제다. 실제로 코로나19 때문에 OTT 가입자 수가 늘어난 걸 보면 많은 사람이 집에서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이 시기엔 극장으로 가지 못한 대작 영화들이 OTT로 직행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집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편했을까? TV로 영화를 보는 데 편안함을 느꼈다면, 집에 55인치 이상의 TV가 있어서는 아닐까? 물론 TV만 있다고 해서 무조건 편한 건 아니다.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작은 원룸이라도 혼자 혹은 단둘이 영화를 오롯이 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한국에서 그런 공간을 점유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은 약 30.2%다. 이들 중 얼마나 영화를 보기에 편안한 공간에서 살고 있을까?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여러 책과 강연을 통해 “한국에서는 부족한 개인 공간을 카페, PC방, 노래방 등 적은 돈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체해왔다”라고 말했다. 경제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20,30대 청년들이 집보다 집 밖에서의 활동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미국에서는 ‘Netflix and chill?’(집에 가서 넷플릭스나 볼래?)이란 말이 섹스의 함의를 담은 ‘밈’이지만,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시 말해 영화를 집에서 봐야만 하는 상황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극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의 또 다른 전제는 ‘극장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물론 극장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다. 단, “왜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하는가”란 질문이 뒤따른다. 코로나19 이전 한국의 관객수인 ‘2억’이란 숫자를 ‘영화를 보러 간다’는 개념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극장 방문’이란 행위에는 ‘영화’보다 더 상위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외출’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 집에만 있기 싫어서, 연애 초기에 바로 숙박업소에 갈 수는 없어서, 친구를 만나서 술만 마실 수는 없어서 극장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흥행’ 영화가 필요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봤고 그래서 나에게까지 소문이 난 영화라면 적어도 이 외출을 망치지 않을 거란 안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화씨 911〉, 〈식코〉의 감독 마이클 무어의 편집실에 붙어 있다는 문구도 ‘외출을 위한 이벤트로서의 극장’을 이야기한다. “기억하자. 우리의 관객은 이 영화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섹스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극장 관객이란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극장에 가기 위해서 비싼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했고, 비싼 영화표를 샀으며, 9달러짜리 팝콘을 샀다. 많은 돈을 쓴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집에 간다. 그게 그들의 ‘금요일 밤’이다.” 코로나19가 사라진 이후, 사람들의 ‘금요일 밤’은 어떻게 될까? 집에서 TV를 켜놓고 캔맥주를 마실까? 아니다. 사람들은 다시 이벤트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극장은 그때도 여전히 가장 가성비 높은 메인 이벤트일 수밖에 없다.
 
이미 조짐이 있다. 〈블랙위도우〉가 개봉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끊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어갔고, 〈모가디슈〉, 〈인질〉, 〈싱크홀〉 등의 한국 대작 영화들이 개봉 준비 중이다. 사실 조짐은 이미 5월부터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5월 한국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극장 성수기의 시작점인 지난 5월 전체 관객수는 438만 명이었다. 이건 4월보다는 71%, 2020년 5월보다는 187%가 증가한 수치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공헌이 컸다. 이 숫자는 관객들은 지금도 외출 이벤트가 되어줄 영화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019년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여름 극장으로 돌아올 겁니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 담당의 말이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여름에 어떤 영화들이 나올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대작 영화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했죠. 영화가 있으면 관객들은 옵니다. 우리도 총력전을 펼칠 생각입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을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중국의 사례를 들었다. “중국 극장에서 2019년 춘절 기간 동안 기록한 관객수보다 2021년 같은 기간 동안의 관객수가 더 높았습니다. 코로나19가 사라진다고 해도 당장 2019년의 기록을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일단 2억 명을 넘어서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팬데믹 시대의 좋은 친구였던 OTT는 팬데믹 이후 이용자를 잃게 될까? 이런 질문은 OTT가 극장의 대체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극장이 살아나면 OTT로 직행하는 대형 영화들은 없을 테니 당연히 이용자 수에 변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OTT는 영화만 보는 플랫폼이 아니다. OTT는 막 지상파에서 방영이 끝난 프로그램, 해외에서 수입해온 프로그램, 그리고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서비스한다.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과 연결만 되면 그런 콘텐츠를 내가 보고 싶은 부분부터 볼 수 있다는 게 OTT의 핵심이다. 극장이 외출을 위한 이벤트 공간이라면, OTT는 ‘비어 있는 시간’을 위한 플랫폼이다. OTT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책을 사고, 옷을 사고,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집에 와서도 잠들지 않고 OTT를 시청하도록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이용자는 이것만 보고 잠에 들려고 한다.” 마이클 무어의 방식으로 OTT 업계의 게시판 문구를 쓴다면 이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같다. 강병진(왓챠 콘텐츠 마케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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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Illustrator MYCDAYS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