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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웅이 말하는 '숙성된 위스키와 성숙한 배우'의 철학

세계 최다 수상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의 앰배서더와 함께 위스키를 사랑하는 남자 박성웅을 만났다. 연기와 술에 대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했다.

BYESQUIRE2021.08.23
 
 

The Men Who Love Whisky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이하 ‘박’) 박성웅 씨가 위스키 애호가라는 소문을 듣고 이 자리에 모셨어요.
박성웅(배우, 이하 ‘웅’) 저는 사실 주류 전반을 좋아해요. 그런데 요새는 정말 싱글 몰트에 빠져 있어요.
배대원(글렌피딕 앰배서더, 이하 ‘배’) 아까 촬영할 때도 정말 잘 아시더라고요. 싱글 몰트위스키는 얼음을 넣지 않는 게 더 부드럽지 않냐는 말씀도 해주셨죠.
맞아요. 제가 느끼기엔 그게 더 부드러워요. 얼음을 넣어 온도를 낮추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상온에서 마시는 미지근한 그 향이 아주 부드럽더라고요. 사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음용법이 있잖아요.
얼음도 물이라 얼음이 녹으면서 위스키가 묽어지죠. 반면에 물이 들어가면, 향은 풀어지면서 알코올 향은 좀 더 튀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엄밀하게 말하면 알코올 도수는 더 떨어졌는데, 알코올 향은 튀니까 온더록이 더 독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죠. 그 반대로 온더록을 마시다가 상온의 위스키를 ‘니트’로 마시면 부드럽게 느껴지는 거고요.
그게 참 희한하더라고요. 얼음을 넣었는데 더 독하게 느껴진다는 게요.
 
스페인산 오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미국산 버번 오크 배럴에서 최소 18년 이상 숙성한 원액으로 만든 글렌피딕 18년. 슈트,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페인산 오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미국산 버번 오크 배럴에서 최소 18년 이상 숙성한 원액으로 만든 글렌피딕 18년. 슈트,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늘 대화의 주제를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박성웅 씨 필모그래피를 보고 영감이 떠올랐어요. 박성웅 씨가 〈태왕사신기〉에서 주무치 역으로 대중한테 이름을 처음 널릴 알린 시점이 연기를 시작하신 지 한 10년 차 정도였더라고요.
그렇죠. 딱 10년 됐었을 때죠. 사람들이 ‘저 신인은 어디서 나왔냐’고들 했는데, 벌써 10년 차 배우였으니.(웃음)
‘이건 잭팟이다’ 싶을 정도로 터졌을 때가 〈신세계〉였잖아요. 그때가 몇 년 차였어요?
2013년도니까 16년 차였죠.
위스키의 숙성 연수랑 참 비슷하지 않나요?
그렇네요. 스카치 위스키 법령상 3년만 지나도 위스키를 팔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3년 숙성하고 파는 위스키는 정말 보기 힘들죠. 보통은 10년, 16년 길게는 50년까지 오크 통에서 숙성하며 인내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배우 박성웅은 뭔가 숙성을 마치고 등장한 위스키의 느낌이랄까요?
아니, 숙성을 마치다니요.(웃음) 숙성을 마쳤다는 말은 좀 그렇네요. 저는 아직도 계속 숙성 중이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면이 있네요. 10년짜리도 싱글 몰트 중에선 기본 제품에 해당하잖아요. 12년은 지나야 판매가 좀 되고 18년은 되어야 고연산 취급을 받죠.
숙성도 숙성이지만, 오늘 함께 마신 글렌피딕 18년처럼 오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한 원액을 섞거나, 글렌피딕 21년 그랑 레제르바처럼 마지막 숙성을 럼 캐스크에서 마쳐 특별하게 피니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영화 〈신세계〉는 지금의 배우 박성웅을 빚어낸 오크 통이지만, 너무 강한 이미지로 다음 작품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저도 그 오크 통을 벗어나야죠. 〈내 안의 그놈〉에서 고등학생의 영혼이 내 안에 들어온 역할을 하고, 〈메소드〉에서 퀴어 역할을 맡은 것들이 다 그런 도전이죠.  
‘오크 통을 벗어난다’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21년산 그랑 레제르바가 배우 박성웅의 위스키라는 생각이 드네요.
숙성이 여러 면에서 참 재밌어요. 그런데 잘 숙성된 위스키의 특징은 뭔가요?
잘 숙성된 위스키는 자기 향이나 개성을 한 번에 확 드러내지 않아요. 또 피니시가 매우 길죠. 여운이 진하게 남는달까요? 한 가지 맛만 강조되는 단순한 풍미의 위스키와는 달리 맛이 복합적이고 그 향취들 간에 밸런스가 잘 잡혀 있죠. 이런 위스키는 처음 마시면 ‘어 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가 아주 복합적인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요.
 
글렌피딕의 배대원 앰배서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 박성웅. (박성웅) 슈트,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계 태그호이어.

글렌피딕의 배대원 앰배서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 박성웅. (박성웅) 슈트,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계 태그호이어.

그럼 성숙한 배우의 특징은 뭔가요?
성숙한 배우라…아직 저는 덜 성숙해서 말하기가 힘드네요. 아까 말했듯 배우는 계속 성숙해가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이거든요. 남자들은 군대에 다녀오면 이미 어른인 줄 알잖아요. 근데 30대가 되어서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참 애 같단 말이죠. 지금 저 역시 ‘50대인데, 이 정도면 성숙했지’라고 생각하지만, 70대에 돌이켜보면 청년일 거잖아요. 그러나 과거와 지금의 박성웅을 비교해 말할 수는 있겠네요.  뭐랄까. 지금 제가 배우 24년 차거든요. 초년에는 내 연기를 하기에 바빴지만, 이 연차가 되니까 전체를 보게 됐어요. 예를 들면 영화 촬영장은 드라마와 좀 다르거든요. 드라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찍지만, 영화는 로케이션 하나에서 그날의 촬영 분량을 다 찍어요. 요새는 그런 영화 촬영장에서는 제 촬영이 끝나도 집에 안 가요.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밥도 먹고 그날의 촬영에 대해서 얘기도 나누죠. 후배들 얘기도 들어주며 같이 가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보니, 숙성과 성숙이 정말 비슷하네요. 사실 숙성을 할 때 매년 약 2%의 원액이 증발해요. 이걸 천사의 몫이라는 의미로 ‘앤젤스 셰어’라고 하죠. 우리가 길게는 30년 동안 원액의 증발을 감내하며 위스키를 오크 통에 담아두는 이유가 바로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니까요.
배우가 20, 30대일 때는 혼자 튀고 싶어 해요. 그런데 40, 50대가 되면 혼자 튀어서는 절대 안 돼요. 작품은 무조건 팀플이에요. 참 신기한 게 팀플이 잘돼서 현장 분위기가 좋으면, 그 영화는 잘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 저도 그런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 홍보 담당자들이 홍보할 때 항상 “이번에 잘될 것 같아요.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해요.
물론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도 영화 흥행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긴 있어요. 그런데 현장이 안 좋은 영화가 잘되는 경우는 절대 없어요. 조화가 깨지면 100% 실패한다는 거죠.
최근에 여러 작품 하셨잖아요. 제가 아는 작품만 두 개가 크랭크업을 했어요.
많아요. 오픈이 안 된 것들이 많이 있죠. 정 감독(정우성) 데뷔작인 〈보호자〉가 있고, 지난 6월에 촬영을 마친 〈더 와일드〉가 있죠. 그보다 먼저 찍은 영화로는 제가 무당으로 나오는 〈대무가〉라는 영화도 있고요. 〈대무가〉는 무속 얘기지만 〈곡성〉처럼 무서운 작품이 아녜요. 무당판 〈쇼미더머니〉라고 할까요? 무당들끼리 서로 배틀을 벌이는 코미디고, 멜로적인 요소도 있어요. 〈대무가〉 팀의 감독이랑 제작사 대표가 〈더 와일드〉 현장에 커피차를 보낼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죠.
다른 작품 얘기도 좀 해주세요.
〈보호자〉는 사실 정우성 감독님이 제 동갑내기 친구다 보니까,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지요.(웃음) 친구가 다이렉트로 부탁을 하니까…전화해서 “감독님 캐스팅 보드판에 제 사진 올리세요” 했어요. 정 감독도 “아이고, 박 배우님 감사합니다”라며 받아줬어요. 촬영 참 재밌었죠.
〈더 와일드〉는 어땠는지도 좀 궁금해요.
〈더 와일드〉는 예산 규모는 좀 작지만, 저한테 책임감이 막중했던 영화였어요. 멜로가 바탕인 누아르라고 하면 맞아요. 대환(배우 오대환)이랑 주연이고 헤로인 역 신인 배우(서지혜)를 오디션으로 뽑았어요. 그 현장도 참 좋았어요. 정겨웠죠.
이번에 또 다른 작품이 기사로 떴더라고요.
아 〈젠틀맨〉이요?
맞아요. 제작이 웨이브더라고요.
그렇죠. 그건 주지훈 배우랑 같이해요. 숫자는 안 세어봤지만, 계속 일할 수 있는 게 감사해요. 지금 같은 시점에 이렇게 〈에스콰이어〉와 화보도 찍고요. 저는 좀 파이어니어, 선구자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배우는 극 중에서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했어요. 실제로 착할 필요도 없고, 또 그러면 오히려 손해 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저는 남을 다 챙기면서 연기도 잘 해내는, 그런 면에서 선구자가 되고 싶네요. 가끔은 ‘여기서부터는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내 삶을 살아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 의미에서는 이제 항상 선구자인 셈이죠.
 
오크 통에서 21년 숙성한 원액을 디캔팅한 후 몰트 마스터가 직접 선택한 카리브해 럼 캐스크에서 4개월 이상의 2차 숙성 과정을 거쳐 마무리한 글렌피딕 21년 그랑 레제르바. 그린 니트, 팬츠 모두 토즈.

오크 통에서 21년 숙성한 원액을 디캔팅한 후 몰트 마스터가 직접 선택한 카리브해 럼 캐스크에서 4개월 이상의 2차 숙성 과정을 거쳐 마무리한 글렌피딕 21년 그랑 레제르바. 그린 니트, 팬츠 모두 토즈.

파이어니어라….
저는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어릴 때는 남이 하는 말을 다 듣고 정답이 뭔지 고민했단 말이죠. 요새 3040 젊은 청년 사업가들은 그렇지 않아요. 다들 자기 인생에선 자신이 선구자라는 걸 벌써 알고 있더라고요.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네요.
그러게요. 글렌피딕 창립자가 정말 딱 이렇게 생각하셨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다 블렌디드 위스키 만들어 팔 때 혼자 선구자로 ‘나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팔 거야’라며 만든 게 글렌피딕이에요. 박성웅 씨가 말한 그 파이어니어 정신이 없었으면 지금의 글렌피딕은 없었을 거예요. 아니, ‘싱글 몰트’라는 카테고리가 아예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전에 싱글 몰트란 뭐였는지도 설명해주세요.
당시에는 싱글 몰트라는 말은 없었고, 지금의 싱글 몰트위스키 회사들은 대부분 거대한 블렌디드 위스키 회사에 원액만 공급하는 납품 회사였어요. 글렌피딕 증류소 창립자의 외손주인 샌디 그랜트 고든이 1963년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스트레이트 몰트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싱글 몰트를 출시했죠.
그런데 블렌디드의 미덕이 밸런스라면 싱글 몰트의 미덕은 크게는 또 ‘개성’ 또는 고유성이잖아요. 글렌피딕의 고유성은 뭔가요?
글렌피딕의 가장 큰 순수함과 개성을 꼽으라면 저는 ‘로비듀’를 얘기하고 싶어요. 글렌피딕이 1887 년에 처음으로 중류를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로비듀라 부르는 샘물을 사용해왔어요.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40도인데요, 반대로 얘기하면 약 60%가 물이라는 얘기거든요. 술병에 물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셈이죠. 그러니 얼마나 좋은 물을 쓰느냐에 따라서 위스키의 맛이 확 달라지겠죠? 창립자 가문이 5대째 이 샘물과 증류소를 소유하고 운영하며 그 순수함과 고유성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죠.
그런데 다른 위스키도 다 그렇게 고유한 물을 쓰지 않나요?
맞아요. 그러나 위스키를 만드는 처음 순간부터 마지막 병입할 때까지 증류소의 고유한 물을 쓰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가 스코틀랜드에 지금 130개 정도가 있는데요, 그중에서 아직까지 창립자 가문이 수원과 증류소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곳은 딱 4개밖에 안 남았습니다. 다른 곳도 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창립자의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은 4개밖에 안 되는 거죠. 상업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 반복되어 여기까지 온 거라고 봐야 해요.
영감이 되네요. 예술가들한테도 뭔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근본, 가장 아래 있는 바탕 같은 게 있거든요.
배우 박성웅의 고유함은 뭔가요?
비슷해요. 아까 60%가 물이라고 했죠. 저도 제 몸의 약 70% 정도가 물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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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성룡
  • STYLIST 정혜진
  • HAIR 이승황
  • MAKEUP 김미소
  • ASSISTANT 윤승현
  • COOPERATION 코블러 연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