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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에 갇힌 갈라파고스, 도쿄

도쿄에도 국제영화제가 있다. 도쿄국제영화제라 불리는 그 영화제는 1985년에 시작됐다.

BYESQUIRE2021.08.27
 
 

매뉴얼에 갇힌 갈라파고스, 도쿄

 
도쿄에도 국제영화제가 있다. 도쿄국제영화제라 불리는 그 영화제는 1985년에 시작됐다. 당신은 도쿄에 국제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아마 도쿄 도민들도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도쿄국제영화제에 몇 번 취재를 갔다. 좀 놀라웠다. 롯폰기힐스 주변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라고 부르기가 조금 힘들었다. 대개의 영화제들이 발산하는 어떤 영화적 활기가 거의 없었다. 취재를 간 나로서는 나쁜 일은 아니었다. 상영작도 적고 인터뷰 스케줄도 붐비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롯폰기힐스 주변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았다.
 
2010년 도쿄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개막식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초청작을 가져온 중국과 대만 영화인들이 그린카펫(도쿄국제영화제는 레드카펫 대신 그린카펫을 쓴다)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별안간 중국 영화 관계자들이 난리가 났다. 중국의 외교 원칙은 ‘하나의 중국'이므로 ‘대만'이라는 표기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만 영화인들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이러다간 개막식이 엉망이 될 참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해결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도쿄영화제 주최 측이 선택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모든 소동을 듣던 한국 영화 관계자가 나에게 말했다. “부산영화제였다면 혹시나 이런 일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설득하고 꼬셔서라도 모두 무대에 세웠겠죠. 한국 사람들이 임기응변에는 기가 막히게 능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국제행사는 여러 번 와봤지만 임기응변 자체를 못해요. 계획은 한국보다 훨씬 세밀하게 짜는데 뭔가 예상에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면 해결이 안 된달까요.” 그 소동을 겪고 내가 ‘아 이래서 역시 한국이 나아'라고 생각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시기를. 그건 그냥 두 국가의 차이였을 따름이다. 한국은 치밀한 계획에 약하다. 대신 임기응변에 강하다. 일본은 치밀한 계획에 강하다. 하지만 임기응변에 약하다. 내가 느끼기에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나는 도쿄국제영화제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올림픽 개막식은 4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스펙터클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외한다면 그토록 압도적인 자본이 들어가는 ‘쇼'를 볼 일은 드물다. 내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기다렸던 이유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일본이 보여준 놀라운 홍보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도쿄를 배경으로 내달리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슈퍼마리오 복장을 한 아베 신조 총리가 폐막식 무대에 갑자기 등장하는 그 퍼포먼스는 입을 쩌억 벌리게 만들었다. 일본은 여전히 소프트파워 강국이다.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수억 명의 팬들을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게임과 캐릭터 분야에 있어서 여전히 일본은 따라갈 수 없는 모범이다. 나는 당연히 도쿄올림픽 개막식에는 일본 소프트파워를 이끌어낸 캐릭터들이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쇼가 됐을 것이다.
 
개막식은 형편없었다. 탭댄스? 맙소사. 2020년대의 올림픽에서 탭댄스가 등장한다고? 개막식은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국가에 기대하는 모든 현대적 재미를 제거하고 가부키와 게닌(일본 코미디언)들의 지루한 퍼포먼스로 채웠다. 외신 기자들은 “장례식 같다”고 말했다. 호주 기자는 “보고 있기 힘드네요”라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다음 날 TV에 출연한 일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는 “창피해서 외국도 못 가겠다. 일본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지 아느냐”고 독설을 퍼부었다.
 
원래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지상 최대의 쇼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 잡지 〈주간문춘〉은 개막식 원안을 폭로하듯이 공개했다.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주인공이 (스필버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도 등장했던)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개막을 알리고, 슈퍼마리오 등 일본의 다양한 게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계획이었다. 왜 도쿄올림픽위원회는 생각만 해도 일본 마니아들의 피가 끓어오르는 놀라운 개막식 원안을 파기하고 지루한 전통으로 무대를 채운 걸까? 거기에는 꽤나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2019년 6월 개막식 연출가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댄서 미키코가 선정됐다. 음악감독은 한국에도 팬이 많은 가수 시이나 링고였다. 리우올림픽 폐막의 도쿄올림픽 홍보 무대 연출을 맡은 것도 미키코였다. 2020년 5월,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 출신의 60대 남성 사사키 히로시로 갑자기 개폐막식 책임자가 바뀌었다. 덴츠는 도쿄올림픽 공식 홍보 에이전시이자 일본의 광고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회사다. 사사키 히로시는 미키코의 원안을 자기 마음대로 고치기 시작했다. 미키코가 “그런 건 시류에 맞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히로시는 미키코를 의사소통 라인에서 은밀히 제외시켰다. 결국 미키코와 시이나 링고 등 애초 기획자들은 스스로 걸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도 사사키 히로시는 개막식에 출연 예정이던 여성 코미디언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올해 3월 언론의 철퇴를 맞고 사퇴했다.
 
그때까지도 개막식은 훌륭할 수 있었다. 올림픽까지는 거의 5개월이 남아 있었다. 올림픽과 자본으로 결합된 거대 기업의 60대 남성이 크리에이티브한 젊은 여성들을 쫓아내고 준비한 “시류에 맞지 않는” 올드한 개막식 기획안을 파기하거나, 혹은 원안과 비슷하게 변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연출감독이 바뀌는 등 급박하게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처럼 임기응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도쿄올림픽위원회는 그러지 않았다. 더 나은 원래 계획으로 돌아가느니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이기를 원했다. 그건 오랜 일본 관료제의 특징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일본 관료제는 훌륭하게 작동한다. 부정부패도 거의 없다. 정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움직인다. 2016년 작인 안노 히데아키의 영화 〈신 고질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관료제에 대한 예찬이다. 괴물이 등장하는 할리우드나 한국 영화와는 달리 〈신 고질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공무원들이다. 영화는 회의와 회의를 통해 거대한 재난을 해결하는 일본의 힘을 보여준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 변수가 등장할 때다. 갑자기 그들의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때다.
 
도쿄영화제에서 대만 영화인들은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하고 무대 밖에서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개막식은 끝이 났다. 대만 영화인들은 그저 발걸음을 호텔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대만 영화인들이 정치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영화제 관료들의 매뉴얼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미학’이라고 불릴 만한 공허한 쇼였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도쿄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쓰고 있다. 사실 전날 밤 나는 꿈을 하나 꿨던 것도 같다. 거대한 토토로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폭신폭신한 품에서 우타다 히카루가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마리오카트가 선수들 주위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축하의 클랙슨을 울렸다. 정작 폐막식에는 그중 어떤 것도 없었다. 세계가 일본에 기대하던 어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크놀로지도 팝 컬처도 없었다. 늙은이들의 마츠리 같은 일본만이 남아 있었다. 오직 일본인만이 아는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가 국가를 불렀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상징하던 낡은 노래 ‘스키야키'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일본인 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배우 오타케 시노부였다. 그는 일본인들에게만 유명한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가사로 한 노래를 소박한 무대에서 아이들과 불렀다. 그러는 동안 지상 최대의 축제를 즐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선수들은 지루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갈라파고스섬의 바위에서 햇볕을 쬐며 퍼져 누워 있는 이구아나들처럼.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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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김도훈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