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밀레니얼, Z세대가 말하는 Z세대

세대를 규정하는 시선이 있다. 때로 신통하게 맞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주 편협하고 부당한. 그 시선 아래 놓여본 당사자들이 자신의 세대를 말한다.

BYESQUIRE2021.08.30
 

당신의 세대

 
밀레니얼이라는 몽타주, 맞거나 아예 다른 세상 얘기이거나
서한나(29/〈BOSHU〉 공동 대표)
 
“난 내가 마흔까지 살 줄 몰랐어.” 좋아하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흘리듯 한 말. 그가 어떤 세대인지는 모르지만, 내 또래 여자애들이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것은 안다. 자신이 언제나 무언가의 중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의 중심이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는 1990년대생을 가르치는 1990년대생 아닌 교수이면서도 1990년대생을 유형화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대하면서 느낀 바는 경향성 정도로 설명되었고, 분석에는 성별이나 계급이 반영되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말하기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았다. 그가 “나 꼰대 같니?”라고 물으면 나는 웃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김연경의 자연스러움, 박막례의 지혜로움, 윤여정의 날카로움을 좋아한다. 그들의 개인성과 고유성에 환호한다. 나는 기성세대 전체보다도 나이 권력과 성별 권력을 가진 아저씨를 멀리하는 편인데, 여기에는 내가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경험한 세대라는 점이 작용한다. 세대에 따라 이입하는 사회적 사건이 다르며, 세대 안에서도 성별이나 계급에 따라 동일시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세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세대를 이야기해보려는 이유다.
 
기성세대와 M세대는 서로를 판단하지만, 그것이 둘의 사회적 입지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M세대가 기성세대를 욕하면 그저 욕이지만, 반대는 앞길을 막는다. M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사회적 위치가 낮고, 자원을 적게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주말에 공주에서 밤막걸리를 사서 돌아오더라도, 저녁에 라이브카페에 가서 병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즐기더라도, MBTI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확행 하며 욜로 하기보다 거리에 내몰릴 염려 없이 안정적으로 사는 삶을 원하더라도 나는 어디까지나 M세대로 분류될 것이다. 하루는 내키는 대로 물건을 사고 다음 날은 ‘무지출 데이’를 시도해보기도 하는 나의 모순적인 면은 세대 안에서 세심하게 분석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세대라는 분류법이 꼭 들어맞을 때가 있다. 1992년에 태어난 나는 부동산을 물려받지 않는 이상 혼자 힘으로 자산을 증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식과 비트코인 정보에 쫑긋하는 것은, 부동산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M세대가 유독 신자유주의적이어서일까? 노동이 자기 착취와 인간 소외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세 자금 대출을 알아보다가 ‘와, 계속 이런 식으로 집주인과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이사를 반복해야 하는 건가’ 하며 슬퍼졌다. 친구 누구는 애인과 살림을 합쳤다가 이별과 함께 분리했고, 누구는 본가에 엉켜 있고, 누구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과 갈등하느라 수심이 깊다. 잠이 안 오는 날에도 잠을 자야 하는 우리는, 신통하게 잠이 오는 ASMR 영상을 하나씩 갖고 있다. M세대 사이에서 인기라는 ‘미라클모닝(일과 두세 시간 전에 일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나는 해본 적 없지만,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 은행 가서 일 보고 수영하는 게 하루를 얼마나 알차게 만드는지 안다. “괜찮아, 넌 그대로 예뻐”라고 말하는 류의 에세이가 서점을 점령했으나 여전히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의 대단함을 느낀다.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면 다들 좋다고 하니, 나는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세대를 분류하고 정의하는 것은 동시대에서 가장 입김 센 자들의 몫이라서 나와 친구들이 사회변혁에 몰두하든, 공동체를 사랑해서 함께 모여 살며 텃밭 가꿀 궁리를 하든 간에 혼자 뭘 하는 모습이라도 보일라치면 예의 개인적이고 주장 강한 M세대 칸에 정리될 것이다. 기성세대를 기준으로 차이를 조명하는 시도는 핀트가 안 맞기 쉽다. 상대적 약자인 M세대는 기성세대를 강제할 힘이 없는 대신, 해석하고 의미화하며 키를 쥔다. M세대가 권위적이고 몰상식한 일부 50, 60대 남성을 가리켜 ‘오륙남’이라 명명하더라도 직장에서 그들을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받도록 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상의 유머로 소비되며 폭넓게 공감받을 수는 있다. M세대는 온라인에서 윗세대를 압도한다.
 
나는 열 살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가졌다. 모니터의 뒤통수가 뚱뚱했고, 텔레비전 때리듯 때리면 화면이 돌아오기도 했다. 컴퓨터학원에서 홈페이지 만들기를 배우다가 플래시 게임에만 재미 붙이고 기술은 익히지 못했다. 지금의 코딩 바람은 내게도 낯설다. 이제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돈 벌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데, 받는 돈이 적어 그 얘기가 내 얘긴지 아는 데 오래 걸렸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돈을 번다는 점에서 그건 내 얘기가 맞다. 월급날은 따로 없다. 청약통장과 적금이 있지만, 잔액 부족으로 빠져나가지 않기도 한다. N개의 직업을 가진 프리랜서로 살며 새로운 무얼 배워 수입을 늘릴지 생각한다. 곧 암보험을 들 예정인데, 암이 안 생기는 부위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절망했다. 허리를 지켜야 하니 종종 동네 운동장을 달린다. 애플워치로 심박을 재는 모습은 퍽 현대인 같지만, 동시에 에어팟으로 이정현의 ‘바꿔’를 듣는다. 테슬라를 타고 e-편한 세상에 사는 상상을 한다. 계산은 안 되나 상상은 된다. 그러는 동시에 세상을 바꾸고 싶다.
 
얼마 전에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대전에 놀러 갈 건데 같이 차 마실 수 있겠냐고 물어본 사람과 만났다. 그는 내게 직접 그린 그림과 뜨개질해 만든 코스터를 선물해주었다. 그는 환경과 동물권에 관심이 있는 비건이고, 타투이스트이며, 2000년생이다. 우리는 천변을 달렸고, 그가 이상은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이상은 콘서트에 갔거든요. 근데 콘서트 보러 온 사람 중에 20대가 많다고 이상은 님이 놀라시는 거예요.” 나는 이상은처럼 놀랐다.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그가 답했다. “좋아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와 그는 평생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살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자꾸만 갈 것이다. 아무것도 허투루 배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을 내팽개치지 않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누굴 곁에 두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10대에도 멋있고 70대에는 더 멋있을 사람을 고를 것이다.
 
 
뚝배기를 닦다 아작 난 내 손목은 Z세대의 이야기가 되지 못할 거야
이용규(25/ 대학생)
 
달걀찜은 훌륭한 음식이다. 단백질은 말할 것 없이 풍부하고 탄수화물과 지방까지 충분히 갖춰 이것만 먹고 살아도 근손실 걱정이 없다. 몸에만 좋나. 보기에 포슬포슬한 게 식감도 부드러운 데다 고소하고 짭짤하기까지 하다. 따끈한 달걀찜이 눈앞에 있다면 586 꼰대부터 알파 세대 잼민이까지 숟가락을 들이대지 않을 사람이 없으리라. 대체 누가 달걀찜을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달걀찜을 좋아했다. 전역 후 식당 설거지 알바를 하기 전까지는. 그전까지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는데, 뒤바뀐 밤낮과 쑤신 허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처박혀 있어야 된다 해도 주방 이모들과 만담하며 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파출 사무소가 처음 소개한 곳은 종로구청 앞 한식당이었다. 사실 뒷주방 출근에는 일종의 낭만적 기대도 있었다. 배우 및 작가 지망생으로서 좋은 경험이 아닐까 하는. 언젠가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 치열한 주방 신을 넣을 자격이 생기리라. 아닌 게 아니라 그날 하루는 참으로 〈모던 타임스〉였다. 나는 컨베이어벨트처럼 들어오는 뚝배기 156개를 닦았고, 그 가운데 79개에는 먹다 남은 달걀찜이 그득 눌어붙어 있었다. 식어빠진 달걀찜은 지독할 정도로 끈질겼다. 철수세미로 뚝배기를 벅벅 긁어댄 열두 시간 동안 만담은커녕 혼잣말할 틈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모던 타임스〉는 무성영화다.
 
아무튼 그때부터였다. 달걀찜이 꼴도 보기 싫어진 게. 오피스와 대학가를 막론하고 달걀찜을 내는 식당은 많았으나, 그걸 바닥까지 긁어 먹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달걀찜은 내 손목 인대를 조진 원흉이 됐다. SNS에 누군가 달고나 커피를 만들다 손목이 아작 났다고 너스레를 떨 때, 나는 손목 인대 방향으로 테이프를 붙이며 잠들었다. 이번 주말 출근은 뚝배기 없는 집이길 빌면서.
 
물론 이건 내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다른 날 나는 대학에서 전공 강의를 듣고, 이달의소녀 세계관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시청하며, 때로는 설거지보다 시급이 훨씬 높은 과외나 학원 선생 알바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달리, 뒷주방 설거지 에피소드를 내놓을 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도 듣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그건 나의 스펙트럼 중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듯이. 사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런 게 ‘Z세대의 한 단면’이라고 하자면 좀 어색할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방에서 손목이 조져지는 Z세대.’ 이렇게 써보면 훨씬 더 신랄하고 명징하게 어색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에게는 기이할 정도로 유쾌한 이미지만 주어진다. 오늘날 묘사되는 ‘Z세대’는 늘 밝고 청량하며 돈 많고 여유롭다. 당대의 젊은이들이 사회의 가장 밝은 단면을 차지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Z세대에서는 ‘그 외’가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TV를 처음 보던 무렵에는 ‘청년실업 30만’ 어쩌구를 입에 달고 살던 〈논스톱4〉(2003)의 앤디가 있었고, 그 이후의 대학교 배경 드라마나 영화에도 어려운 여건의 캐릭터가 하나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보는 〈알고있지만,〉의 미대생들은 하나같이 멋진 ‘인싸’들이라 서운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Z세대라는 이미지는 사실 ‘서울에 거주하는 중산층 1824’를 그린 거니까. 이들이 우리 세대의 ‘인싸’이며 드라마는 그들을 그대로 그릴 뿐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서울 4년제 대학 재학생은, 여유롭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7개 대학 재학생의 22.37%만이 국가장학금을 받는다(전국 평균은 53.56%다). 특정 계층이 마이크로트렌드를 주도하고 나머지가 그 문화로의 삼투압을 겪는 현상은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우리를 조명하는 이 시선은 지나치리만큼 밝으며 어두운 단면은 포괄하지 못한다. 그래서 ‘Z세대’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실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처럼 대단히 겸연쩍어진다. 동시대의 동갑내기지만 Z세대처럼 살지 못하는 이들. 그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편의상 이 원고에서는 이들을 DZ세대(DeGeneration-Z, ‘조져진 Z세대’)라고 부르기로 한다. ‘인싸’들의 여집합. 세대 대부분을 구성하지만 Z세대의 이미지를 대표하지 못하는 이들. 편의점 알바를 하고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며 일자리에 민감한 청년들. 실은 우리 세대는 경제적 요소 외에는 서로에게 이질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극히 비슷한 배경을 공유한 세대 같기도 하다. 70%가 대학에 가고 남성은 80%가 현역으로 입대한다. 자신의 MBTI를 누구나 알며, 일찍이 엑소의 초능력을 비웃었을지 몰라도 에스파의 세계관은 모두들 대강 안다. 일상의 행복에 집중하고 오늘의 만족을 좇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주의적이다. 그것이 Z세대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때로는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로 규정되기도 하는데, 굳이 ‘DZ세대’라는 조어를 만들어 구분한 것은 이 대목 때문이다.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떠안는 집단이 결국 소비 권력을 지닌 ‘인싸’ Z세대와 구별되는 집단, DZ세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대가 보수화되었다.’ ‘20대가 경쟁 논리를 내면화했다.’ 근래 들어 자주 볼 수 있는 시선이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20대 절반 이상이 반대했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자 일각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여성 할당제 확대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대남'들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 목소리에는 분명 거친 면이 있다. 다만 비난 앞에서 좀 억울한 측면도 있다. Z세대가 당면한 문제를 기성세대가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처방하고 그에 반발하면 이기적이라며 싸잡아 폄훼하는 것 같달까. 점진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오랜 세월 방치된 문제를 급진적으로 고치고자 할 때, 그 영향의 당사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개인의 영역에서 보자면, 공공기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시험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고, 18개월의 군복무는 그간 오직 당위로만 설명되어 왔으며, 이유야 어찌 됐든 젊은이들의 불만이 방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타고난 세대다. 우리의 기억은 IMF 이후부터 존재한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시대, 평생 직장보다 상시 해고가 일상인 시대. 대부분이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을 학습했다. 개인주의를 익힐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 세대가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나 자신, 나 자신의 노력만을 믿는다는 뜻이니까. 그건 이 세대 공통으로 지닌 배경이라 할 수 있지만, '서울 사는 중산층 1824'는 계층 특성상 아무래도 앞선 이슈에 비교적 둔감할 수밖에 없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개 DZ세대일 것이다.
 
‘Z세대’라는 과도하게 반짝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 이면의 어둠은 DZ세대가 뒤집어쓰는 것 같다고 하면 주접일까? DZ의 갈 데 없는 소외감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어딘가로 분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세대는 학창 시절에 탄핵 정국을 목도했다. 변화의 물결이 어떻게 시작되고 거세어지는지 목격했고, 그것이 Z세대가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적 경험이다. DZ도 언젠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것도 지나친 주접일까? 물론 쌉주접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이만 줄여야겠다. 자꾸 주접이 나오기도 하고, 슬슬 다시 손목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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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Illustrator MYCDAYS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