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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군대, 트라우마, 그리고 <D.P.>

고통은 당신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BY김현유2021.09.26
 
 

고통은 당신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구교환이 고광렬이고, 정해인이 고니야. 둘이 파트너로 ‘나쁜 놈’ 잡으러 다니는 수사물이지. 어떻게 재미가 없겠어?
넷플릭스 시리즈 〈D.P.〉를 볼까 고민이라는 친구에게 해준 이야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분방하면서도 인간적인 베테랑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과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과묵하고 진지한 신참 안준호 이병(정해인 분)의 콤비 플레이는 속도감 있는 연출과 함께 익숙한 장르적 쾌감을 보장한다. 드라마 초반, 안준호 가족과의 어색한 식사 자리에서 한호열은 시종 하이 톤으로 수다를 쏟아내다 고광렬의 “고니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와 동일한 대사를 읊더니 급기야 바지에 물을 쏟기에 이른다. 빚을 대신 갚기 위해 고광렬이 고니 누나를 찾아가는 장면을 패러디한, 〈타짜〉를 향한 직접적인 오마주이자 한국 장르 영화 팬들을 향한 (뻔하지만 썩 유쾌한) 윙크.
 
D.P.는 Deserter Pursuit, 탈영병 추적조의 약자다. 정식 명칭은 군무 이탈 체포조라나. 한 줌이 채 되지 않는 내 지인 중에도 D.P.병 출신이 있는 걸 보면 그리 희소한 보직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탈영병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테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헌병대에 막 입대한 안준호의 내무 생활과 그가 한호열과 함께 잡아야 하는 탈영병의 이야기, 탈영병을 검거하기까지 추적 과정 등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탈영 계기를 제공하는 군대 내부, 내무실 막사와 연병장은 지극히 어둡고 답답하고 단조롭지만, 한호열과 안준호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부대 경계를 넘어 탈영병을 추적하는 부대 바깥은 다채로운 장르적 쾌감으로 가득한 세계다. 한호열은 순발력과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고, 안준호는 놀라운 관찰력과 추론 능력으로 탈영병의 소재를 밝혀낸다. 게다가 안준호는 복싱선수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탈영병과의 격투 신도 기가 막히다. 자기 업무에 꽤나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때로 어렵게 잡은 탈영병을 선의로 풀어주는 인간미까지 갖췄다. 그런데 그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걸까?
 
D.P.가 되기 이전, 고참들의 이유 없는 구타와 괴롭힘 속에서 서로 의지하던 같은 부대 선임 조석봉(조현철 분) 일병은 안준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픔 없는 교훈엔 의미가 없지. 인간은 희생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대사라며 “우린 나중에 애들한테 잘해주자”라고 말하는 조 일병.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걸 드라마를 보는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저 대사는 니체의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할 뿐이다”라는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은 사람들은 그 후에 남들은 멀쩡하게 넘기는 스트레스 요인에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성인도 마찬가지로, 9.11 테러 당시 뉴욕 쌍둥이빌딩 반경 3km 이내에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반경 300km 이상 떨어져서 거주하던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공포와 불안을 조절하는 두뇌 부위인 편도체 활성 반응이 확연히 커졌다.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 측정한 결과였다. 심리학자 노암 스펜서 박사는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 이 실험들의 결과를 인용하며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더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고통과 재난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군대에서의 경험 역시 다를 바 없다. 문화평론가이자 사회학자인 최태섭은 책 〈한국, 남자〉에서 군대 문제를 한국 남자들이 빠져 있는 ‘집단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표현했다. 연구에 따르면 반인권적 병영 문화를 경험한 예비역이 비교적 나은 환경에서 군 생활을 한 이들보다 낮은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을 보였고, 성 역할 갈등과 여성 혐오적 경향도 높게 나타났다. 인권 침해적인 군 경험이 이후 인생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징병 제도는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신체와 인격을 구속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2년여의 시간 동안 극단적인 기본권 제한을 경험한다. 군 복무 경험이 일으키는 문제는 군 내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은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D.P.〉가 여타 수사물과 가장 다른 건 형사나 탐정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쫓고 쫓기는 양쪽 모두 국가에 의해 징집된 사병이라는 점이다. 원작자인 만화가 김보통 작가도 D.P.병 출신이었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탈영병과 체포조의 이야기를 만화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탈영병을 체포하고 부대에 돌아오면 부대원들이 나를 앉혀놓고 어떻게 잡았는지 물어봤다. 체포 과정을 들려주면 다들 너무 재미있어했다. 사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는 재미있는 공간일 수가 없다. 그런데 군인들도 재미있어하는 군인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탈영을 하고, 누군가 그들을 잡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지만 애초에 그 모두가 비슷한 처지인 아이러니한 상황과 정서.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우린 나중에 애들에게 잘해주자”는 자신의 말을 끝내 지키지 못하는 조 일병은 극 중에서 거의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황장수 병장(신승호 분)이 제대하는 날, 악수를 청하며 꺼낸 “좋은 추억도, 좆 같은 기억도 다 털자”는 별 뜻 없는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좋은 추억이 뭐가 있습니까?” 트라우마 전문가인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박사는 책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에 “원래 기억이란 바뀌고 왜곡되기 마련”이라고 썼다. 그렇다. 기억은 왜곡되는데, 대부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뀐다. 내가 받아들이기 편한 쪽으로 기억이 변해야 세상 살기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트라우마 기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정,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신체 감각 같은 단편적 기억의 파편이 시간이 지나도 선명한 기억으로 격렬한 고통을 유발한다. 어떤 경우엔 트라우마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장르물의 쾌감을 덧씌운 채로 〈D.P.〉는 피해자의 출구 없이 암울한 기억과 ‘해도 되니까 하는’ 가해자의 잔혹함, 대부분의 우리가 속할 방관자들의 무관심이라는 세 겹의 어둠을 직시하려고 노력한다.
 
국방부는 오는 2022년 7월(국방부 조사본부)과 8월(육군) D.P. 병사 보직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사병을 수사 업무에서 배재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현재 100명 정도인 D.P.병이 맡던 탈영병 체포와 수사 보조 역할은 부사관과 군무원이 담당하게 된다. 국방부는 드라마 때문에 이뤄진 조치가 아니라고 굳이 덧붙였다. 군대 내 성범죄,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범죄 등에 대해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수사기관과 일반 법원이 수사, 재판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노무현,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차일피일 미뤄온 문제였다. 손해를 감수하고 군대에 만연한 성추행과 성폭력 등의 문제를 용기 있게 세상에 드러내고 밝혀온 이들과 유족들의 노력이 늦게나마 결실을 이룬 셈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 기억이 바뀌어가고,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어쩌면 군대도, 세상도 조금씩 바뀔지 모른다.
 

 
Who's the writer?
정규영은 콘텐츠 기획자로, 오랫동안 잡지를 만들었다. 돈을 벌고, 아이들과 강아지를 돌본다. 남는 시간엔 어제와 다른 안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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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정규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