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로 웨이스트' 인증샷이 불편한 나, 비윤리적인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BY김현유2021.10.08
 
 

Ethics on the Edge

 
Q. 30대 남성입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로 웨이스트’가 인기인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서도 예쁜 디자인의 대나무 칫솔이나 보디바 등을 샀다는 ‘인증샷’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런 예쁜 인증샷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불편합니다. 있던 걸 두고 새로운 물건을 사는 건 ‘제로 웨이스트’ 취지와 맞지 않잖아요. 환경을 위한답시고 종이 빨대를 제공하면서 매 시즌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를 구입하게 유도하는 커피 전문점이나, 다양한 모양의 에코백 역시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환경 친화랍시고 괜히 물건을 구입하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이런 불만에 여자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불평만 하는 너보단 낫다”고 하는데, 환경 친화를 내세운 상품들을 보며 투덜거리는 제가 너무 꼬인 사람인 걸까요?
 
A. 인간의 언어는 참 신기하고도 미묘하죠. 역사 어느 때보다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이 시대에 ‘제로 웨이스트’라는 거창한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 물론 선의로 꽉 찬 말입니다.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다거나 최소한으로 만든다는 의사 표현이니까요. 여자 친구가 “아무것도 안 하고 불평만 하는 너보단 낫다”고 했는데, 이 말도 미묘한 인간 언어에 속하는 것 같군요. 언어는 명확한 듯하면서도, 참으로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쓰레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거나 또 실제 생활에서 오염을 줄이기 위해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불평만 한다면, 그렇게 여겨질 수 있겠죠. 그렇지만 불만을 표현하는 데에는 여러 뉘앙스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쓰레기에 대해 고민하면서 분리배출도 하는 사람이 친환경을 내세운 제품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면 어떤가요?
 
저도 종종 이런 ‘이유 있는 불만’을 갖는 사람에 속합니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상품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것들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거나 소비를 부추기는 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선의를 표방한 운동 앞에서 나름의 생각을 갖고 불만을 표현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때때로 그런 불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운동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운동 아래 또 다른 쓰레기가 만들어진다면 거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고 또 해야 하겠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2000년도 초에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처음 생겼다고 하지요. 제가 우연히 그때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텀블러를 두 개나 구입했습니다.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것, 다른 하나는 물을 마시는 것. 친환경 취지에 공감했었지요. 몇 년 늦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텀블러를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텀블러가 더 생겼다는 겁니다. 실제로 텀블러가 남아돌아요.
 
‘그래서 친환경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좋은 걸까’라는 물음이 생기지요. 반사효과 또는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텀블러를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보다 30배까지 많을 수 있으며, 세척하는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이 적지 않게 생깁니다. 친환경 상품은 최소한의 것을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해야 좋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미국 수명주기 에너지 분석연구소가 199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회용 종이컵보다 환경에 유익하려면 유리 텀블러는 최소한 15번, 플라스틱 텀블러는 최소 17번, 세라믹 텀블러는 최소 39번 사용해야 한다는군요. 종이봉투는 어떨까요. 2011년 영국 환경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종이봉투도 최소한 3번 이상 사용해야 비닐봉지보다 친환경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해요. 에코백도 최소 131번 이상 사용해야 ‘환경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답니다. 모든 에코가 그렇습니다. 태양광 에너지가 대표적입니다. 태양광 에너지로 얻은 환경 이익과 태양광 패널 폐기에 들어가는 환경 비용을 꼭 따져봐야 하지요.
 
세상에 이런 일이! 쓰레기를 줄이자는 운동은 선의를 가졌지만, 자칫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습니다. 모든 운동이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좋은 효과를 꾸준히 내야 좋은 것이겠죠. 쓰레기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은 차별화를 통해 작동합니다. 상품의 고급화는 그것의 대표적인 예이지요. 고급화는 아마도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인 과대 포장 없이는 굴러가지 않을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 명품들이 더 팔린다는 뉴스는 이제 새로운 것도 아니고, 한국도 명품에 죽고 사는 사회지요. 그러니 말로만 쓰레기를 없애자는 운동에 대해 가끔은 불만이나 이의가 생길만 합니다. 전반적으로 과대 포장을 없애는 일이 필요합니다만 포장 문제를 넘어, 지금 같은 소비 사회가 지속되는 한 과연 쓰레기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움직임은 좋을 뿐 아니라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여러 이유로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일단 또는 무조건 선의를 주장하는 일이 더 빈번해집니다만, 바로 그 움직임에 이유 있는 불만을 표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할 뿐 아니라 때때로 필요합니다. 취지가 좋다고 거기에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불만을 표하더라도, 나름대로 각자 실천을 하면서 해야겠지요.
 

 
Who's the writer?
김진석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비평〉 편집주간, 〈인물과 사상〉과 〈황해문화〉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초월에서 포월로〉, 〈기우뚱한 균형〉,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더러운 철학〉,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 〈소외되기 소내되기 소내하기〉,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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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진석
  • illustrator YANG SEUNGHEE
  • DIGITAL DESIGNER 김희진